하나

2007.01.24 07:49

조내화 조회 수:60 추천:11

하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야) 조내화

                                                                          

  전체 중에서 하나는 얼마나 소중할까?
  “하나 정도는 뭐!”, “한 번 정도는 뭐!”
하고 무시되기 일쑤다. 사람들은 한 번의 실수는 눈을 감아 주어야 대범한 사람이라 하기도 하고, 한 번의 실패는 그저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위안삼기도 한다. 하지만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라며 한 걸음의 의미를 크게 생각하기도 하고, 한 마디 말이 천 냥 빚을 갚을 수 있을 만큼의 중요성을 지닌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나가 모여 전체를 이루니 하나가 전체일까, 아니면 전체의 극히 적은 부분일까?  

  점심을 먹고 학교로 되돌아가려고 차를 보니 앞바퀴가 내려앉아 있었다. 이미 훌쭉해진 바퀴로는 어찌해 볼 수도 없었다. 어제 새 타이어로 교체를 했는데 말썽을 부리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무리 만져 봐도 터지거나 찢어진 부분은 찾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가까운 정비소에 연락하여 수리 차량이 와 타이어에 바람을 넣은 후 정비소로 옮겼다. 바퀴를 빼 바람을 빵빵하게 넣었는데 문제가 있는 곳이 보이지 않는다. 이리저리 살피다 공기주입구를 흔드니 바람 새는 소리가 났다. 타이어를 새로 갈면서 공기 주입구 부품을 손대지 않아 문제가 된 듯했다. 공기주입구 쪽의 고무가 오랜 시간을 지내며 딱딱해졌는데 위치가 바뀌면서 틈이 생겨 그곳으로 바람이 샌 것이다. 5천 원을 주고 부품을 갈고 나니 자동차는 아무런 문제도 없이 제 모습을 되찾았다.

  승용차는 작은 부품 2만 개가 모여 조립된다고 한다. 많은 부품 중의 하나인 공기주입구의 고무패킹 하나가 승용차를 달리지 못하도록 만들어 버렸다. 나머지 부품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도 고장 난 부품 하나만으로도 승용차는 멈출 수밖에 없다. 한 개의 부품이 전체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한 순간에 모든 부품들은 존재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기능이 정지해 버린 그 부품 하나의 미련만이 덧칠되어 커다란 의미로 남은 것이다.

  서울에 사는 초임시절의 제자들이 한 번 만나자는 연락을 해와 서둘러 나갔다. 단발머리의 촌티가 흐르던 모습으로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소녀들은 서울에서 나고 자란 듯 훤칠하고 어여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한창 이야기가 진행되었을 때 한 제자가 불쑥 학교 다니던 시절의 이야기를 꺼냈다. 선생님이 했던 말 한 마디가 지금도 가슴에 상처로 남아 있다며 왜 그런 말씀을 했는지 묻고 싶단다. 순간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나는 아무런 기억도 없으니 더욱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내 마음에 차지 않았던 한 부분을 나무라며 아무런 생각 없이, 아무런 뜻도 없이 충격을 주기 위해 불쑥 던진 한 마다의 말이었던 모양이다. 이리저리 변명하고, 해명하고, 설명했지만 가슴 속에 남아 있는 상처는 지워주지 못했으리라. 한 순간에 던진 말 한 마디가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에 대한 기억의 전부로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린이들과 살면서 말 한 마디의 힘을 느낄 때가 많다. 착한 일을 하는 모습을 보고 웃으며 칭찬해 주는 한 마디와 어렵게 일을 마쳤을 때 주어지는 칭찬의 말 한 마디에 환한 얼굴로 변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해버린 무시한 듯한 말투 하나에 어린이의 얼굴이 샐쭉해지는 모습을 보면 아차하며 얼버무리려 수많은 말들을 동원해보지만 펴지지 않는 얼굴을 보면 속상하기도 한다. 내가 맡고 있는 일년 동안 쏟아냈을 수많은 말 중에서 단 한 마디의 말이 어린이들의 가슴에 희망으로, 그리고 상처로 남아 있음을 느낄 때 단 한 마디의 말도, 단 한 동작의 행동도 일생을 결정할 마력을 지니고 있음을 느끼며 한 마디 말의 소중함을 가슴에 새겨보곤 한다.    

  하나는 매우 작을 수 있다. 자동차의 수만 가지 부품 중에서 공기주입구의 고무패킹 하나와 일년 동안 쏟아내는 내 말 중에서 기억되는 말 한 마디는 정말 적은 부분이다. 하지만 그 하나는 자동차를 움직이지 못하게도 하며, 평생 가슴 속에 기억되기도 하지 않는가? 내가 살면서 양이 적다는 이유를 들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작은 변화들을 무시하거나 버린 경우를 생각해 보았다.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고, 열심히 실천하려 노력하지 않고 무심히 넘기는 일들도 많았던 듯하다. 하지만 조그마한 고무패킹 하나가 자동차를 멈추듯이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작은 변화 하나가 나를 무너지게 할 수도 있지 않는가! 나를 지탱해 주고 있는 진실한 힘은 그 작은 변화 하나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닐까!

  큰일은 큰일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요, 작은 것 하나 하나가 모여서 큰일을 만들어 낸다. 마음의 상처는 말 한 마디로 생겨나고, 엄청난 둑도 빠져나간 돌부리 하나로 무너지듯 작은 것들의 존재 의미는 전체를 만들어 내는 주춧돌이 아닐까. 부품 하나하나가 모두 충실할 때 그 기계는 제 성능을 발휘하고, 우리 사회에 속한 사람들 하나하나가 건전할 때 우리사회는 안정되어 균형을 이뤄 갈 것이다.
“하나쯤 괜찮겠지.”, “한 마디쯤 괜찮겠지.”
하는 가벼운 생각이 전체를 그르치게 하는 불씨로 존재할 수 있듯이, 내 삶에 숨어 있는 작은 것에 대한 무시를 걷어내야겠다. 하나는 전체를 이루는 기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