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편지
2007.01.30 21:19
어떤 편지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중) 배윤숙
휘몰아치다가 펄펄 내리고 다시 차창에 눈물처럼 흘러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변덕스런 오늘 날씨가 꼭- 내 마음 같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조그만 찻집에서 만나서 따끈한 쌍화차를 마셔야지 생각하며 막 집을 나서려는데, 달포 전까지 살던 집에서 우편물을 찾아오던 남편과 마주쳤다. 분명 우체국에 주소이전신고를 했는데 우편배달부가 요즘 오늘 날씨처럼 변덕이 생겼나보다. 어떤 날은 새로 이사한 집으로 보내주고, 또 어떤날은 전에 살던 집으로 배달하는 통에 가끔 먼저 살던 집에 들러 우편물을 찾아오곤 했는데 오늘도 잘못 배달된 우편물을 가져오던 남편과 아파트 층계에서 마주친 것이다.
“당신 어디가?”
물음에는 대꾸도 않고 남편 손에 들린 우편물을 빼앗다시피 건네받아 살펴보았다. 낯선 글씨의 편지가 온 적이 하루이틀이 아니니 이상할 것이 없으련만 번지를 쓰다만, 전혀 모를 사람의 편지를 발견했다. ‘사서함 00호 1209번’ 이라고 봉투에는 그렇게 씌어져 있었다. 잘 꺼내지지 않아서 애가 타는 내 심정은 아랑곳없이 내용물이 봉투 속에 달라붙어 있어 나오지 않았다. 성급한 내 성미에 못 견뎌 결국 봉투가 엉망으로 찢겨지고 나서야 겨우 내용물을 꺼낼 수 있었다.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가는 동안 내 가슴은 심하게 요동쳤고,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진정하려 하였으나 어찌 해야할지 몰랐다. 모르는 이의 편지를 처음엔 호기심으로 읽기 시작했다가 한숨까지 쉬니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남편은 무슨 편지인데 눈물까지 글썽이며 읽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런 말없이 편지를 건넸다.
술에 취해 한 순간의 실수로 인하여, 무기수로서 11년째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 어느 수인(囚人)의 편지였다. 술에 취했다는 내용과 봉투에 적힌 이름을 보고 남자분인 것으로 생각했다. 혹시 여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보았으나 남자이거나 혹은 여자이거나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모르는 이가 내 글을 읽고 편지를 보냈다는 사실 자체가 내겐 말할 수 없이 놀라운 일이었던 것이다.
그는, 작년 12월에 발간된 제10호 ‘행촌수필’에 실린 제1회 ‘해피수원’ 수필 수상작품인 ‘창룡문 돌아 팔달문 돌아서니’라는 글을 보았다고 했다. 어느 분께 수필집을 선물 받았고 내가 쓴 글을 여러 번 읽었다고 했다. 부산이 고향인 그 분은 늘 가슴속에 해운대와 여러 곳이 맴돌고 있다면서 글 쓰는 방법에 대해 조언을 해주거나 지도를 해 줄 수 없겠느냐는 내용이었다. 수감생활을 하면서 글을 쓰기도 한다는 그 분은 자신의 나이가 올해 쉰이 되었다면서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잃은 터라 허탈할 것도 없고, 암담한 현실이지만 이 다음에라도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봉사하면서 살고 싶다고도 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살아있는 한 좋은 글도 써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답장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어떻게,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지 몰라 며칠동안 고민을 했다. 나를 지도해주시고 계신 김 교수님께서는 도움을 줄 수 있으면 그렇게 하라고 하시지만 막상 편지를 하려 했으나 첫 마디를 어떻게 써내려가야 할지 여러 번 펜을 잡았다 놓았다 하였다.
그 사람은 자신을 독자라 생각하라고 했랬지만 내 글을 보고서 공감하고, 부끄러웠다고 하였으나 오히려 보잘 것 없는 글을 쓴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한없이 부끄러웠다. 그 동안 글을 쓰니 어쩌니 하면서 조금이라도 자만심을 키우고 있었던 것만 같았고, 정말 한 치의 거짓 없고 올바른 마음을 가지고 살아왔다고 과연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는 것일까 싶어 고개를 들고 하늘을 우러르기도 했었다.
이 사회에 죄 짓지 않고 사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정작 더 커다란 잘못을 저지르고도 뻔뻔스럽게 살아가는 이들이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한마디 말 실수로, 한 순간의 판단 착오로 크나 큰 과오를 저지르는 일들이 얼마나 많던가. 그 사람이 어떠한 잘못을 저지르고 무기수로 수감생활을 하는지 어렴풋이 짐작만 할뿐이다. 그렇지만 내가 안타깝게 느끼는 것은 그러한 상황에서, 그 사람에겐 정상참작이 없었던 것일까 하는 점이다. 분명 그런 경우 충분한 이유가 있기도 했을 터인데 어떠한 이유로 무기수로 그토록 오랜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남자가 썼다고 보기엔 너무나도 글씨가 달필이었다. 순수한 편지 내용은, 그 사람이 내 글을 읽고 느낀 감정보다 내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용기를 내어 답장을 썼다. 사르락 사르락 꽃송이가 되어 내리는 눈을 커다란 유리창밖으로 내다보며 그 사람을 생각했다. 아주 조그마한 창문으로, 손바닥 하나로도 가릴 수 있는 하늘을 볼 수 있는 곳에서 지낼 것 같은 그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을 듬뿍 담아 감사함을 전했다. 김 교수님께 허락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내 마음대로 이러한 제안을 했던 것이다. 요즘에는 수감생활을 하면서도 자유스럽게 인터넷이 허락되고 있다고 하는데 그 곳의 생활을 알 수가 없기에 이미 써놓은 글이나 쓰고 있는 글을 내게 보내준다면 교수님께 지도를 해주십사하여 다시 보내줄 수도 있고, 교수님께서 직접 글쓴이의 이름 그대로 게시판에 올리시는 방법도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교수님께 말씀드려보지도 않고 허락도 받은 채 내 마음대로 방법을 일러주었지만 아마도 흔쾌히 승낙하실 것 같다. 나도 이제 첫돌 맞은 아기처럼 걸음마를 걷고 있는데 감히 지도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 시건방진 생각이기에 최상의 방법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전자메일이 아니라 손으로 편지를 쓰는 것이 얼마만이던가. 정성들여 편지를 썼고, 그 사람에게 편지가 꼭 전달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편지봉투 겉에 주소를 썼다. ‘oo사서함 oo호, 1209번’이라고……. 행여나 ‘1209번지‘라고 쓴 것은 아닌가 하여 두 번, 세 번 들여다보며 설레는 마음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침에 우체국에 들러 250원짜리 우표를 사서 붙이면서 기원했다. 부디 그 분이 희망을 가지고 글을 쓰며 힘든 수감생활을 잘 견뎌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간절히 기원했다. 우체국 문을 나서는 내 마음은 앞으로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에서일까, 훨훨 날아갈 것만 같았다. 분명 다시 답장이 올 것 같은, 그리하여 좋은 글동무가 생길 것을 진심으로 기대해본다.(2007. 1. 31. 수요일)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중) 배윤숙
휘몰아치다가 펄펄 내리고 다시 차창에 눈물처럼 흘러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변덕스런 오늘 날씨가 꼭- 내 마음 같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조그만 찻집에서 만나서 따끈한 쌍화차를 마셔야지 생각하며 막 집을 나서려는데, 달포 전까지 살던 집에서 우편물을 찾아오던 남편과 마주쳤다. 분명 우체국에 주소이전신고를 했는데 우편배달부가 요즘 오늘 날씨처럼 변덕이 생겼나보다. 어떤 날은 새로 이사한 집으로 보내주고, 또 어떤날은 전에 살던 집으로 배달하는 통에 가끔 먼저 살던 집에 들러 우편물을 찾아오곤 했는데 오늘도 잘못 배달된 우편물을 가져오던 남편과 아파트 층계에서 마주친 것이다.
“당신 어디가?”
물음에는 대꾸도 않고 남편 손에 들린 우편물을 빼앗다시피 건네받아 살펴보았다. 낯선 글씨의 편지가 온 적이 하루이틀이 아니니 이상할 것이 없으련만 번지를 쓰다만, 전혀 모를 사람의 편지를 발견했다. ‘사서함 00호 1209번’ 이라고 봉투에는 그렇게 씌어져 있었다. 잘 꺼내지지 않아서 애가 타는 내 심정은 아랑곳없이 내용물이 봉투 속에 달라붙어 있어 나오지 않았다. 성급한 내 성미에 못 견뎌 결국 봉투가 엉망으로 찢겨지고 나서야 겨우 내용물을 꺼낼 수 있었다.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가는 동안 내 가슴은 심하게 요동쳤고,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진정하려 하였으나 어찌 해야할지 몰랐다. 모르는 이의 편지를 처음엔 호기심으로 읽기 시작했다가 한숨까지 쉬니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남편은 무슨 편지인데 눈물까지 글썽이며 읽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런 말없이 편지를 건넸다.
술에 취해 한 순간의 실수로 인하여, 무기수로서 11년째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 어느 수인(囚人)의 편지였다. 술에 취했다는 내용과 봉투에 적힌 이름을 보고 남자분인 것으로 생각했다. 혹시 여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보았으나 남자이거나 혹은 여자이거나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모르는 이가 내 글을 읽고 편지를 보냈다는 사실 자체가 내겐 말할 수 없이 놀라운 일이었던 것이다.
그는, 작년 12월에 발간된 제10호 ‘행촌수필’에 실린 제1회 ‘해피수원’ 수필 수상작품인 ‘창룡문 돌아 팔달문 돌아서니’라는 글을 보았다고 했다. 어느 분께 수필집을 선물 받았고 내가 쓴 글을 여러 번 읽었다고 했다. 부산이 고향인 그 분은 늘 가슴속에 해운대와 여러 곳이 맴돌고 있다면서 글 쓰는 방법에 대해 조언을 해주거나 지도를 해 줄 수 없겠느냐는 내용이었다. 수감생활을 하면서 글을 쓰기도 한다는 그 분은 자신의 나이가 올해 쉰이 되었다면서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잃은 터라 허탈할 것도 없고, 암담한 현실이지만 이 다음에라도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봉사하면서 살고 싶다고도 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살아있는 한 좋은 글도 써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답장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어떻게,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지 몰라 며칠동안 고민을 했다. 나를 지도해주시고 계신 김 교수님께서는 도움을 줄 수 있으면 그렇게 하라고 하시지만 막상 편지를 하려 했으나 첫 마디를 어떻게 써내려가야 할지 여러 번 펜을 잡았다 놓았다 하였다.
그 사람은 자신을 독자라 생각하라고 했랬지만 내 글을 보고서 공감하고, 부끄러웠다고 하였으나 오히려 보잘 것 없는 글을 쓴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한없이 부끄러웠다. 그 동안 글을 쓰니 어쩌니 하면서 조금이라도 자만심을 키우고 있었던 것만 같았고, 정말 한 치의 거짓 없고 올바른 마음을 가지고 살아왔다고 과연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는 것일까 싶어 고개를 들고 하늘을 우러르기도 했었다.
이 사회에 죄 짓지 않고 사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정작 더 커다란 잘못을 저지르고도 뻔뻔스럽게 살아가는 이들이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한마디 말 실수로, 한 순간의 판단 착오로 크나 큰 과오를 저지르는 일들이 얼마나 많던가. 그 사람이 어떠한 잘못을 저지르고 무기수로 수감생활을 하는지 어렴풋이 짐작만 할뿐이다. 그렇지만 내가 안타깝게 느끼는 것은 그러한 상황에서, 그 사람에겐 정상참작이 없었던 것일까 하는 점이다. 분명 그런 경우 충분한 이유가 있기도 했을 터인데 어떠한 이유로 무기수로 그토록 오랜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남자가 썼다고 보기엔 너무나도 글씨가 달필이었다. 순수한 편지 내용은, 그 사람이 내 글을 읽고 느낀 감정보다 내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용기를 내어 답장을 썼다. 사르락 사르락 꽃송이가 되어 내리는 눈을 커다란 유리창밖으로 내다보며 그 사람을 생각했다. 아주 조그마한 창문으로, 손바닥 하나로도 가릴 수 있는 하늘을 볼 수 있는 곳에서 지낼 것 같은 그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을 듬뿍 담아 감사함을 전했다. 김 교수님께 허락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내 마음대로 이러한 제안을 했던 것이다. 요즘에는 수감생활을 하면서도 자유스럽게 인터넷이 허락되고 있다고 하는데 그 곳의 생활을 알 수가 없기에 이미 써놓은 글이나 쓰고 있는 글을 내게 보내준다면 교수님께 지도를 해주십사하여 다시 보내줄 수도 있고, 교수님께서 직접 글쓴이의 이름 그대로 게시판에 올리시는 방법도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교수님께 말씀드려보지도 않고 허락도 받은 채 내 마음대로 방법을 일러주었지만 아마도 흔쾌히 승낙하실 것 같다. 나도 이제 첫돌 맞은 아기처럼 걸음마를 걷고 있는데 감히 지도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 시건방진 생각이기에 최상의 방법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전자메일이 아니라 손으로 편지를 쓰는 것이 얼마만이던가. 정성들여 편지를 썼고, 그 사람에게 편지가 꼭 전달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편지봉투 겉에 주소를 썼다. ‘oo사서함 oo호, 1209번’이라고……. 행여나 ‘1209번지‘라고 쓴 것은 아닌가 하여 두 번, 세 번 들여다보며 설레는 마음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침에 우체국에 들러 250원짜리 우표를 사서 붙이면서 기원했다. 부디 그 분이 희망을 가지고 글을 쓰며 힘든 수감생활을 잘 견뎌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간절히 기원했다. 우체국 문을 나서는 내 마음은 앞으로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에서일까, 훨훨 날아갈 것만 같았다. 분명 다시 답장이 올 것 같은, 그리하여 좋은 글동무가 생길 것을 진심으로 기대해본다.(2007. 1. 31.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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