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디에고에서
2007.02.01 10:12
샌디에고에서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기초) 이의
3학년에 편입한 손자를 학교까지 데려다 주고 나는 어제와 다른 골목을 따라 걸었다. 14살 까지는 반드시 보호자가 대동해야 하는 이곳 법에 따라 같이 있는 동안 아침마다 초등학교까지 데려다 주고 동네 주위를 돌아다니며 미국적인 것들을 찾아보며 어슬렁거린다. 모퉁이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가 '굿모닝!' 하며 인사를 건넸다. 그런 인사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당황스럽고 쑥스러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급히 지나쳤다.
가로등 전봇대에 붙어있는 가라지세일 광고를 눈여겨보았다. 그래야 내일 새벽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러 일찍 올 수 있으니까. 참 좋은 관습인 것 같았다. 가라지세일장에는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싼 값에 구입할 수 있어 임시 거주자에게는 너무 좋았다. 생활하다 보면 쓸모없는 물건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합리주의적인 미국인들은 필요 없는 물건들을 보관하였다가 주말을 이용해 집 창고 앞에서 중고품시장을 연다. 대개는 이방인들이 즐겨 이용한다. 이곳 샌디에고에 짐을 푼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식탁을 찾지 못해 불편했는데 마침 큼지막하고 튼튼한 식탁을 의자 6개까지 포함해서 싸게 내놓고 있었다. 이만하면 2년 동안 밥상 겸 책상으로는 안성맞춤이구나 싶었다. 그러나 가지고 갈 방법을 찾지 못해 망설이고 있는 동안, 가라지세일은 막을 내리려 하였다. 나는 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정리에 여념이 없는 주인 할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외대 통역대학원에 가겠다고 전공은 뒷전이고 영어공부만 열심히 한 효과가 발휘되고 있었다. 우리 사정을 들은 주인은 흔쾌히 식탁을 배달해 주겠다며 팔리지 않은 커피내림기까지 덤으로 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주인은 햄버거 가게 앞에 서있는 마스코트 할아버지처럼 후덕한 인상이어서 이곳에 두고 올 아이들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샌디에고의 기후는 여름인데도 찌는 듯한 더위도 없고, 나무그늘에 앉아 있으면 시원했다. 이 도시는 사막 위에 세운 도시인지라 햇빛은 눈을 찌를 듯 따갑지만 습기가 없어 불쾌감이 없었다. 초여름에 가서 가을걷이가 거의 끝날 때쯤 돌아오는데도 비가 한 번도 내리지 않았다. 겨울이 돼야 비를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잔디와 나무들은 항상 푸르고 싱그러웠다. 아침저녁으로 스프링쿨러가 시원한 물줄기를 내뿜었다. 조금만 걸으면 넓게 펼쳐진 잔디밭 공원들, 시원하게 뚫린 도로, 네 계절이 춥지도 덥지도 않은 이곳이 바로 지상낙원이 아닐까 싶었다. 이런 온화한 기후 때문에 샌디에고는 퇴직자들의 안식처가 되었고, 생명과학연구소를 비롯한 많은 첨단과학연구소들이 몰려오고 있다고 한다.
15분쯤 나가면 태평양 연안인 바닷가에 닿는다. 가는 도중에 딸이 다니는 번햄연구소를 둘러보니 놀라우리만큼 규모가 컸다. 처음에는 연구실을 찾느라고 헤맸다는 딸의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런 큰 연구소가 기부자들의 자선에 의하여 유지되는 미국의 기부문화를 보며 우리나라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한없이 펼쳐진 태평양이 지금껏 보아온 바다와 달리 더 넓고 깊게 보였다. 세상에는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더니 바다도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랐다. 내 시야에 들어오는 땅 말고는 지구 전체가 물로 덮여 있는 착각이 들었다. 물속에 들어가기는 좀 차갑게 느껴지는데도 많은 젊은이와 아이들이 물놀이에 여념이 없었다. 밀가루 같이 고운 백사장에는 일광욕을 즐기는 백인들이 많았다. 휘휘 둘러보다 나는 잠시 익숙한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래, 분명 한국인일거야. 이곳에서 처음 보는 양산이다.' 난 그곳으로 다가갔다. 내 직감이 맞는 것 같았다. 인사를 건네 보니 이민 온 할머니였다. 지금은 여름에 모자를 많이 쓰지만 10여 년 전만 해도 여름 외출 시 양산은 여성들의 필수품이었다. 미국에 온지 10여 년이 넘었는데도 외출할 때면 버릇처럼 양산을 갖고 다닌다며 웃었다. 미국 생활에 만족한다며 나에게 돌아가지 말고 여기서 살라고 권했다. 아무리 미국이 좋다 해도 어찌 내 나라 내 집보다 나을 것인가. 어서 내 나라 내 집으로 가고 싶을 뿐이다.
이른 아침 현관문을 열면 상큼한 공기가 꽃향기와 더불어 집안으로 밀려들어 온다. 공해로 몸살을 앓고 있는 서울의 대기오염이 새삼스럽게 걱정이 되었다. 서머타임을 시행하고 있는지라 아침 출근이 빨라 벌써 차들이 주차장을 빠져 나가고 있다. 물 흐르듯이 시원하게 빠져 나가는 넓은 아파트 주차장을 보노라니 우리가 사는 아파트가 떠올랐다.
아침이면 경비아저씨들의 힘자랑이 시작된다. 빽빽이 들어찬 차들을 이리 밀고 저리 밀어 공간을 만들어 겨우 한 대가 빠져 나간 뒤 또다시 밀어야 출근할 수 있는 내 나라의 아파트 주차장------. 이토록 좁은 땅에 살면서 큰 집은 왜 그리도 선호하는지? 우리들은 마음만이라도 넓게 가지고 살아야지 싶다. 이곳에서 사는 한국인들을 보니 너무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부지런히 노력하여 얻은 성공담을 들을 때는 박수라도 쳐 주고 싶었다. 한국에서는 꿈도 꿀 수 없도록 큰 저택들이었다. 수영장이 붙은 집은 보통이고, 삼천 평의 정원이 있는 집을 둘러보면서는 하느님께 감사기도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메리카 드림을 이룬 이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늘 함께하기를 진심으로 빌었다.
우리 민족의 근면성과 우수한 두뇌는 미국 사회에서도 인정을 받는다고 한다. 그러기에 우리 동포들이 당당히 미국사회의 한 축을 차지하며 계속 발전하리라 믿는다.
(2001. 8.)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기초) 이의
3학년에 편입한 손자를 학교까지 데려다 주고 나는 어제와 다른 골목을 따라 걸었다. 14살 까지는 반드시 보호자가 대동해야 하는 이곳 법에 따라 같이 있는 동안 아침마다 초등학교까지 데려다 주고 동네 주위를 돌아다니며 미국적인 것들을 찾아보며 어슬렁거린다. 모퉁이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가 '굿모닝!' 하며 인사를 건넸다. 그런 인사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당황스럽고 쑥스러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급히 지나쳤다.
가로등 전봇대에 붙어있는 가라지세일 광고를 눈여겨보았다. 그래야 내일 새벽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러 일찍 올 수 있으니까. 참 좋은 관습인 것 같았다. 가라지세일장에는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싼 값에 구입할 수 있어 임시 거주자에게는 너무 좋았다. 생활하다 보면 쓸모없는 물건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합리주의적인 미국인들은 필요 없는 물건들을 보관하였다가 주말을 이용해 집 창고 앞에서 중고품시장을 연다. 대개는 이방인들이 즐겨 이용한다. 이곳 샌디에고에 짐을 푼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식탁을 찾지 못해 불편했는데 마침 큼지막하고 튼튼한 식탁을 의자 6개까지 포함해서 싸게 내놓고 있었다. 이만하면 2년 동안 밥상 겸 책상으로는 안성맞춤이구나 싶었다. 그러나 가지고 갈 방법을 찾지 못해 망설이고 있는 동안, 가라지세일은 막을 내리려 하였다. 나는 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정리에 여념이 없는 주인 할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외대 통역대학원에 가겠다고 전공은 뒷전이고 영어공부만 열심히 한 효과가 발휘되고 있었다. 우리 사정을 들은 주인은 흔쾌히 식탁을 배달해 주겠다며 팔리지 않은 커피내림기까지 덤으로 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주인은 햄버거 가게 앞에 서있는 마스코트 할아버지처럼 후덕한 인상이어서 이곳에 두고 올 아이들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샌디에고의 기후는 여름인데도 찌는 듯한 더위도 없고, 나무그늘에 앉아 있으면 시원했다. 이 도시는 사막 위에 세운 도시인지라 햇빛은 눈을 찌를 듯 따갑지만 습기가 없어 불쾌감이 없었다. 초여름에 가서 가을걷이가 거의 끝날 때쯤 돌아오는데도 비가 한 번도 내리지 않았다. 겨울이 돼야 비를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잔디와 나무들은 항상 푸르고 싱그러웠다. 아침저녁으로 스프링쿨러가 시원한 물줄기를 내뿜었다. 조금만 걸으면 넓게 펼쳐진 잔디밭 공원들, 시원하게 뚫린 도로, 네 계절이 춥지도 덥지도 않은 이곳이 바로 지상낙원이 아닐까 싶었다. 이런 온화한 기후 때문에 샌디에고는 퇴직자들의 안식처가 되었고, 생명과학연구소를 비롯한 많은 첨단과학연구소들이 몰려오고 있다고 한다.
15분쯤 나가면 태평양 연안인 바닷가에 닿는다. 가는 도중에 딸이 다니는 번햄연구소를 둘러보니 놀라우리만큼 규모가 컸다. 처음에는 연구실을 찾느라고 헤맸다는 딸의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런 큰 연구소가 기부자들의 자선에 의하여 유지되는 미국의 기부문화를 보며 우리나라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한없이 펼쳐진 태평양이 지금껏 보아온 바다와 달리 더 넓고 깊게 보였다. 세상에는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더니 바다도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랐다. 내 시야에 들어오는 땅 말고는 지구 전체가 물로 덮여 있는 착각이 들었다. 물속에 들어가기는 좀 차갑게 느껴지는데도 많은 젊은이와 아이들이 물놀이에 여념이 없었다. 밀가루 같이 고운 백사장에는 일광욕을 즐기는 백인들이 많았다. 휘휘 둘러보다 나는 잠시 익숙한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래, 분명 한국인일거야. 이곳에서 처음 보는 양산이다.' 난 그곳으로 다가갔다. 내 직감이 맞는 것 같았다. 인사를 건네 보니 이민 온 할머니였다. 지금은 여름에 모자를 많이 쓰지만 10여 년 전만 해도 여름 외출 시 양산은 여성들의 필수품이었다. 미국에 온지 10여 년이 넘었는데도 외출할 때면 버릇처럼 양산을 갖고 다닌다며 웃었다. 미국 생활에 만족한다며 나에게 돌아가지 말고 여기서 살라고 권했다. 아무리 미국이 좋다 해도 어찌 내 나라 내 집보다 나을 것인가. 어서 내 나라 내 집으로 가고 싶을 뿐이다.
이른 아침 현관문을 열면 상큼한 공기가 꽃향기와 더불어 집안으로 밀려들어 온다. 공해로 몸살을 앓고 있는 서울의 대기오염이 새삼스럽게 걱정이 되었다. 서머타임을 시행하고 있는지라 아침 출근이 빨라 벌써 차들이 주차장을 빠져 나가고 있다. 물 흐르듯이 시원하게 빠져 나가는 넓은 아파트 주차장을 보노라니 우리가 사는 아파트가 떠올랐다.
아침이면 경비아저씨들의 힘자랑이 시작된다. 빽빽이 들어찬 차들을 이리 밀고 저리 밀어 공간을 만들어 겨우 한 대가 빠져 나간 뒤 또다시 밀어야 출근할 수 있는 내 나라의 아파트 주차장------. 이토록 좁은 땅에 살면서 큰 집은 왜 그리도 선호하는지? 우리들은 마음만이라도 넓게 가지고 살아야지 싶다. 이곳에서 사는 한국인들을 보니 너무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부지런히 노력하여 얻은 성공담을 들을 때는 박수라도 쳐 주고 싶었다. 한국에서는 꿈도 꿀 수 없도록 큰 저택들이었다. 수영장이 붙은 집은 보통이고, 삼천 평의 정원이 있는 집을 둘러보면서는 하느님께 감사기도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메리카 드림을 이룬 이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늘 함께하기를 진심으로 빌었다.
우리 민족의 근면성과 우수한 두뇌는 미국 사회에서도 인정을 받는다고 한다. 그러기에 우리 동포들이 당당히 미국사회의 한 축을 차지하며 계속 발전하리라 믿는다.
(200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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