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옹
2007.03.09 14:05
포옹(抱擁)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야) 정현창
오늘도 출근길에 배웅하는 아내를 꼭 껴안아주었습니다. 이제는 둘 다 지천명의 나이를 넘겨 서로에게 특별히 설레는 마음은 없지만 그래도 나는 한없이 사랑스런 아내를 매일같이 포옹해줍니다. 뜨거운 사랑이 밀물처럼 밀려옵니다. 둘이는 행복의 큰 바다가 됩니다. 사랑의 춤을 추는 한 쌍의 갈매기가 됩니다. 아무 말 없이 가만히 껴안고만 있어도 수많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서로의 체온과 심장소리를 느끼며 한 몸임을 확인합니다. 아내를 포옹하면 왜 내가 행복해질까요? 모든 근심 걱정은 사라지고 하늘을 나는 기분입니다.
얼마 전 텔레비전을 보다가 길거리에서 포옹을 하고 있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서울 인사동 쌈지길에서 최혜리 양(18)이 프리 허그(Free Hugs, 무료로 안아드립니다)라는 피켓을 들고 프리 허그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거리에서 낯선 사람과 포옹을 나누는 프리 허그 운동은 2001년 제이슨 G. 헌터가 free-hugs.com을 만들며 처음 시작, 호주 청년 후안 만의 시드니 거리에서 펼친 프리 허그 동영상이 전 세계로 퍼지면서 한국에도 알려졌다고 합니다. 프리 허그 실천자들의 공통적인 반응은 안기는 사람과 안는 사람 모두 따뜻함을 전해 받았다는 것입니다. 과연 낯선 사람과의 포옹에서 사람과 사람 간의 따뜻함을 전해 받을 수 있을까. 사람들은 모두 위로받고 싶어 하고, 안기고 싶어 하며, 자기가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을,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이것을 가장 쉽고 강하게 전해주는 포옹은 사랑의 매개체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는 악수를 하면서 신체적인 접촉을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입맞춤을 하고, 다정한 사람들과는 포옹을 합니다. 하지만 개방되었다고는 하나 아직 신체적 접촉에 보수적인 우리들은 사랑의 실천보다는 모르는 사람과의 포옹이라는 것에 선뜻 다가설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서양문화권에서는 신체적 접촉이라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닌 일반적인 것이므로 단순한 호기심보다는 순수한 인류애와 온정주의의 실천이라고 봅니다. 포옹은 가장 따뜻한 신체언어이며 가장 강하게 전할 수 있는 사랑의 매개체다. 을지대학병원 정신과 유제춘 교수는
"외로움을 느끼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낯선 사람과의 포옹은 세상과 통하는 매개체이면서, 남남인줄 알았던 '너와 나'가 ‘우리’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고, 이 같은 느낌이 전해지면서 위로와 위안을 받을 수 있을 것.”
이라고 설명합니다.
내가 먼저 용기를 내어 옆 사람을 꼭 껴안아 봅니다. 포옹은 누구나 할 수 있으며,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어 좋습니다. 포옹을 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외로움을 떨쳐버릴 수 있으며 자신감이 생깁니다. 꼭 껴안으면 몸은 물론 마음까지 하나가 되어 화해가 이루어집니다. 체온을 느끼고, 심장의 소리를 느끼며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포옹은 아무런 준비도, 경비도 필요 없으며 그저 달려가 두 팔을 벌려 꼭 껴안아주기만 하면 됩니다. 포옹은 내가 주는 것은 없지만 얻는 것은 너무 많습니다. 행복과 자신감을 얻고, 외로움과 두려움을 씻어버리며, 포근하고 사랑스런 기분이 됩니다.
마음이 허허로운 날엔 봄이 오는 뒷동산엘 오릅니다. 이제 막 새싹이 돋고 있는 나무를 찾아가 가만히 안아 봅니다. 새싹들이 어미나무의 젖을 힘차게 빨아들이는 소리가 들립니다. 새싹들끼리 재잘거리는 소리도 들립니다. 나무들은 일 년 중에 지금이 가장 행복한 순간일 것입니다. 갓난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행복에 젖어있는 어머니들처럼……. 사랑의 소리들로 가득 찬 나무와 포옹하는 나에게도 어미나무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집니다. 나도 모르게 내 몸은 봄 동산에 서있는 한 그루 행복한 나무가 됩니다. (2007.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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