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무엇이기에-영화 천년 학을 보고-
2007.04.15 12:32
사랑이 무엇이기에
- 영화 천년 학을 보고 -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기) 이수홍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봄날은 낮잠 자기 좋은 날인지 영화보기 좋은날인지 답을 얻으려고 할 것이 없다. 두 가지를 다 하면 된다. 아내와 낮잠은 따로 자고 함께 상쾌한 기분으로 롯데백화점 영화관으로 천년 학을 보러갔다. 개봉하면 바로 가려고 기대하고 있었다. ‘영화 서편제의 속편이고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날갯짓이 전하는 격조 높은 감동!’이라고 선전을 많이 한 영화이기도 하지만, 내가 판소리를 좋아하기 때문에 더 보고 싶은 영화였다.
‘동호’(조재현 분)가 ‘송화’(오정해 분)를 찾기 위하여 장흥 버스에서 내려 옛날 어린 시절 추억을 더듬는 장면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남남이지만 소리꾼 양아버지에게 맡겨져 의남매가 된 동호와 송화. 소리와 북장단을 맞추며 자라난 두 사람은 어느새 서로에게 애틋한 마음을 갖게 된다. 하지만 동호는 마음속의 연인을 누나라 불러야 하는 괴로움을 견딜 수 없어 집을 떠나버린다. 그리고 몇 년 뒤, 양아버지가 죽고 송화는 눈이 먼 채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제 송화를 누나가 아닌 여자로서 사랑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 동호는 송화를 찾아 다시 한 번 그녀의 노랫소리에 북 장단을 맞추며 눈이 되어 주고 싶어 연인의 자취를 찾아 길을 나선다. 하지만 엇갈린 운명으로 얽힌 두 사람은 가슴 아린 잠깐의 만남과 긴 이별로 자꾸 비껴가기만 한다. 그러던 중 동호는 유랑극단 여배우 ‘단심’(오승은 분)의 유혹에 흔들리고 만다. 차마 동호 앞에 사랑을 드러내지는 못하지만 선학동 선술집 주인 ‘용택’(류승룡 분)의 한결같은 사랑도 뿌리치며 판소리가 동호인 듯 소리에만 열중하던 송화는 이 소식에 충격을 받아 모습을 감춰버린다. 그리고 마침내 용택의 선술집을 찾아 온 동호는 자신이 미처 몰랐던 송화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동호는 송화의 소리청을 지어주고자 돈을 벌려고 중동으로 떠난다. 많은 돈을 벌어와 단심이를 찾아 간다. 도박만 하던 단심이는 아들 ‘기철’이를 찾는 동호에게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말을 한다. 동호가 단심이를 때리면서 가구를 발로 차부수자 단심이 동호에게 기철이가 당신의 아들이 아니고 유랑극단 단장의 아들이니 서운하게 생각할 것 없다고 한다. 동호는 그 사실을 다 알고 있었다고 말하는 대목은 나의 머리를 찡하게 했다.
동호는 눈먼 송화가 소리를 하며 살 수 있는 집을 지었다. 단심이 그 집을 찾아온다. 하이힐 신발을 벗어들고 들어와 처마에 왜 풍경을 달았느냐고 묻는다. 동호는 맹인이 청각은 예민하기 때문이라며 뜰에는 맷돌을 밟고 걷게, 복도는 양팔을 벌리면 닿도록 좁게, 벽의 나무무늬는 방마다 다르게, 모든 방문턱을 없애고, 문은 미닫이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릇은 하나씩 꺼낼 수 있게, 밥그릇은 플라스틱으로, 아이들 공부방, 소리 하는 방, 모두가 맹인을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거울은 왜 걸어두었느냐고 묻는 단심에게 장님도 때로는 자기 모습을 거울에 비춰 본다고 대답한다.
단심은 장님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갑자기 흰 가운을 입은 두 사람이 나타나 단심을 납치해서 대기하고 있던 정신병원 앰뷸런스에 태울 때 동호는 성급히 뛰어 그 앰뷸런스에 함께 탄다. 동호는 단심의 정신병 치료를 위하여 그 집을 다 날려버리고 단심은 자살을 해버린다. 다시 선학동 선술집 용택을 찾아와 송화이야기를 듣는다. 두 마리의 학이 되어 공중을 훨훨 날아 관객들에게 상상의 날개를 달아주며 막을 내린다.
‘서편제’가 소리꾼의 예술혼을 그렸다면 ‘천년학’은 애절한 사랑 이야기다. 주요 장면마다 등장하는 소리는 구구절절한 대사보다 강한 여운을 남긴다. 나오는 곡마다 내가 판소리를 배우기 때문에 아는 소리다. 광대가, 사철가 등 단가에서부터 춘향가의 갈가부다, 심청가의 효성대목, 흥보가의 제비노정기와 박타는 대목, 적벽가의 불 지르는 대목, 수궁가를 제외한 판소리 다섯 바탕이 다 나오는데 내가 배우는 동초제는 아니지만 다 아는 대목이다. 장단도 엇 머리와 엇 중머리만 안 나오고 진양, 중머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 고루 나왔다. 게다가 주연 오정해와 조재현은 말고 유봉(임진택-전 전주소리축제 총감독) 명창으로 나온 조평쇠(송순섭-판소리인간문화재 실지명창) 고수(이규호-판소리연구가, 박근영-전주 고수대회 대통령상 수상)등은 내가 잘 아는 사람들이어서 실감이 났다.
유봉이 어린 두 자매를 데리고 소리를 가르치며
“소리꾼이 되려면 사람이 먼저 되어야한다.”
면장 아버지(장민호 분)의 잔치에서 송화의 춘향가 소리를 들은 명창 조평쇠 가
“상전(桑田)을 쌍전이라고 하고 어장성단(語長聲短)도 모르고 무슨 소리를 한다고 하느냐?”
고 큰소리를 치자 그 노인이
“내가 듣기 좋으면 됐지, 사람이 다니면 길이 되지 않느냐?”
라고 변호해주는 장면은 내가 느낀 명장면이었다.
서편제 영화를 보고 애환과 한이 담긴 소리와 그 북소리에 크게 감동을 받았었다. 영화 천년 학을 보고는 내가 판소리와 북을 배우며 면역이 되었지만 우리소리와 북장단의 멋에 다시 한 번 큰 감동을 받았다. 명배우와 실제 소리꾼과 고수를 등장시키고 노래도 적절한 대목을 짜임새 있게 넣는 등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의 거장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라고 하기에 기대가 컸는데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작품이었다.
[2007.4.13.금]
- 영화 천년 학을 보고 -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기) 이수홍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봄날은 낮잠 자기 좋은 날인지 영화보기 좋은날인지 답을 얻으려고 할 것이 없다. 두 가지를 다 하면 된다. 아내와 낮잠은 따로 자고 함께 상쾌한 기분으로 롯데백화점 영화관으로 천년 학을 보러갔다. 개봉하면 바로 가려고 기대하고 있었다. ‘영화 서편제의 속편이고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날갯짓이 전하는 격조 높은 감동!’이라고 선전을 많이 한 영화이기도 하지만, 내가 판소리를 좋아하기 때문에 더 보고 싶은 영화였다.
‘동호’(조재현 분)가 ‘송화’(오정해 분)를 찾기 위하여 장흥 버스에서 내려 옛날 어린 시절 추억을 더듬는 장면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남남이지만 소리꾼 양아버지에게 맡겨져 의남매가 된 동호와 송화. 소리와 북장단을 맞추며 자라난 두 사람은 어느새 서로에게 애틋한 마음을 갖게 된다. 하지만 동호는 마음속의 연인을 누나라 불러야 하는 괴로움을 견딜 수 없어 집을 떠나버린다. 그리고 몇 년 뒤, 양아버지가 죽고 송화는 눈이 먼 채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제 송화를 누나가 아닌 여자로서 사랑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 동호는 송화를 찾아 다시 한 번 그녀의 노랫소리에 북 장단을 맞추며 눈이 되어 주고 싶어 연인의 자취를 찾아 길을 나선다. 하지만 엇갈린 운명으로 얽힌 두 사람은 가슴 아린 잠깐의 만남과 긴 이별로 자꾸 비껴가기만 한다. 그러던 중 동호는 유랑극단 여배우 ‘단심’(오승은 분)의 유혹에 흔들리고 만다. 차마 동호 앞에 사랑을 드러내지는 못하지만 선학동 선술집 주인 ‘용택’(류승룡 분)의 한결같은 사랑도 뿌리치며 판소리가 동호인 듯 소리에만 열중하던 송화는 이 소식에 충격을 받아 모습을 감춰버린다. 그리고 마침내 용택의 선술집을 찾아 온 동호는 자신이 미처 몰랐던 송화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동호는 송화의 소리청을 지어주고자 돈을 벌려고 중동으로 떠난다. 많은 돈을 벌어와 단심이를 찾아 간다. 도박만 하던 단심이는 아들 ‘기철’이를 찾는 동호에게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말을 한다. 동호가 단심이를 때리면서 가구를 발로 차부수자 단심이 동호에게 기철이가 당신의 아들이 아니고 유랑극단 단장의 아들이니 서운하게 생각할 것 없다고 한다. 동호는 그 사실을 다 알고 있었다고 말하는 대목은 나의 머리를 찡하게 했다.
동호는 눈먼 송화가 소리를 하며 살 수 있는 집을 지었다. 단심이 그 집을 찾아온다. 하이힐 신발을 벗어들고 들어와 처마에 왜 풍경을 달았느냐고 묻는다. 동호는 맹인이 청각은 예민하기 때문이라며 뜰에는 맷돌을 밟고 걷게, 복도는 양팔을 벌리면 닿도록 좁게, 벽의 나무무늬는 방마다 다르게, 모든 방문턱을 없애고, 문은 미닫이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릇은 하나씩 꺼낼 수 있게, 밥그릇은 플라스틱으로, 아이들 공부방, 소리 하는 방, 모두가 맹인을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거울은 왜 걸어두었느냐고 묻는 단심에게 장님도 때로는 자기 모습을 거울에 비춰 본다고 대답한다.
단심은 장님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갑자기 흰 가운을 입은 두 사람이 나타나 단심을 납치해서 대기하고 있던 정신병원 앰뷸런스에 태울 때 동호는 성급히 뛰어 그 앰뷸런스에 함께 탄다. 동호는 단심의 정신병 치료를 위하여 그 집을 다 날려버리고 단심은 자살을 해버린다. 다시 선학동 선술집 용택을 찾아와 송화이야기를 듣는다. 두 마리의 학이 되어 공중을 훨훨 날아 관객들에게 상상의 날개를 달아주며 막을 내린다.
‘서편제’가 소리꾼의 예술혼을 그렸다면 ‘천년학’은 애절한 사랑 이야기다. 주요 장면마다 등장하는 소리는 구구절절한 대사보다 강한 여운을 남긴다. 나오는 곡마다 내가 판소리를 배우기 때문에 아는 소리다. 광대가, 사철가 등 단가에서부터 춘향가의 갈가부다, 심청가의 효성대목, 흥보가의 제비노정기와 박타는 대목, 적벽가의 불 지르는 대목, 수궁가를 제외한 판소리 다섯 바탕이 다 나오는데 내가 배우는 동초제는 아니지만 다 아는 대목이다. 장단도 엇 머리와 엇 중머리만 안 나오고 진양, 중머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 고루 나왔다. 게다가 주연 오정해와 조재현은 말고 유봉(임진택-전 전주소리축제 총감독) 명창으로 나온 조평쇠(송순섭-판소리인간문화재 실지명창) 고수(이규호-판소리연구가, 박근영-전주 고수대회 대통령상 수상)등은 내가 잘 아는 사람들이어서 실감이 났다.
유봉이 어린 두 자매를 데리고 소리를 가르치며
“소리꾼이 되려면 사람이 먼저 되어야한다.”
면장 아버지(장민호 분)의 잔치에서 송화의 춘향가 소리를 들은 명창 조평쇠 가
“상전(桑田)을 쌍전이라고 하고 어장성단(語長聲短)도 모르고 무슨 소리를 한다고 하느냐?”
고 큰소리를 치자 그 노인이
“내가 듣기 좋으면 됐지, 사람이 다니면 길이 되지 않느냐?”
라고 변호해주는 장면은 내가 느낀 명장면이었다.
서편제 영화를 보고 애환과 한이 담긴 소리와 그 북소리에 크게 감동을 받았었다. 영화 천년 학을 보고는 내가 판소리와 북을 배우며 면역이 되었지만 우리소리와 북장단의 멋에 다시 한 번 큰 감동을 받았다. 명배우와 실제 소리꾼과 고수를 등장시키고 노래도 적절한 대목을 짜임새 있게 넣는 등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의 거장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라고 하기에 기대가 컸는데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작품이었다.
[2007.4.13.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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