望海寺
2007.05.17 10:06
망해사
- 추억의 회상 -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고급) 박귀덕
망해사, 그 곳은 언제나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서해 바다와 맞닿은 절벽에 고즈넉이 서있는 그 고찰(古刹)은 내 마음의 고향이었다. 늦은 봄날이면 절마당과 뒷동산에 아름드리 나무마다 벚꽃이 활짝 피었었다. 바다를 향해 망부석처럼 서 있는 웅장한 절, 고목나무마다 장미꽃송이처럼 탐스럽고 예쁜 진분홍 꽃봉오리를 활짝 피어 운치를 더해주었다. 단청은 어찌 그리도 고왔던지, 시오리를 걸어 봄 소풍 온 초등학생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충분했다. 집 밖을 나가보지 못했던 어린 시절, 그 절을 바라보면서 궁궐도 저렇게 좋을까? 저 그림처럼 나도 그림을 잘 그려봤으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음속 깊이 담아 놓은 그 아름다움이 오랜 세월 동안 꿈속을 헤매게 했는가 보다.
바다의 정령이 유혹하던 수많은 밤, 갯바람을 맞고 둑 위에 우뚝 서있는 예배당 뒤로 난 길을 걸었다. 파도를 벗삼아 걷다가 산과 바다가 맞닿으면 산 아래 아슬아슬한 바위 위로 갔다. 파도가 밀려와 바위에 부서져 하얀 포말을 이루고 흩어진다. 철썩 차르르~~, 철석 차르르~~. 부서진 파도는 잔잔한 바닷물이 되어 말없이 서해바다로 흐른다. 살아 있는 바다를 보며 둑 아래 갈대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었다. 그 길을 걸을 때면 시흥이 절로 났다. 그 땐 해변의 시원한 바람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파도의 합창을 감상할 수 있었다. 다정한 벗을 그리워하는 풀벌레들의 사랑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으며, 밀물에 밀려오는 고기들의 생동감 넘치는 춤도 볼 수 있었다. 갈대밭에서 놀다 온 바닷바람은 부드러운 감촉으로 귓불을 스치고, 5월의 훈풍에 실어온 아카시아꽃 향기는 코끝에 머문다. 긴 머리를 바람에 휘날리며 둑 위를 걷는 낭만이 그립다.
망해사를 휘돌아 상무지에 가면 어촌 마을이 있고, 확 트인 넓은 바다엔 어부들의 고깃배가 몇 척 떠 있다. 등대는 없어도 방파제에 서서 파도의 출렁임을 몸으로 느낄 수도 있다. 밀물이 싸~아~한 바람을 몰고 올 때 망둥어를 낚아 올리는 낚시꾼의 얼굴엔 희열이 넘친다. 구럭에 생합을 가득 담고 나오는 어부들의 해 맑은 미소도 있다. 갓 잡은 생합을 늘어놓고 호객하는 모습이 재래시장처럼 생동감이 넘쳐 좋았다. 갈매기 몇 마리가 하늘을 날아 뱃전을 맴돌며 먹이 사냥을 하는 모습도 아직 남아 있다. 통통배가 고기를 잡으러 먼 바다로 나가는 풍경, 강산이 몇 번이나 변했을 세월인데도 바다는 아직도 변하지 않고 침묵하는 고향 바다가 좋았다.
이 곳엔 지난날의 내 삶과 추억이 숨어 있다. 꺼내 보이지 않은 마음 속 갈피에 깊이깊이 간직한 고향이었다. 어머니 가슴처럼 포근한 고향바다는 고단한 삶을 모두 잊게 해줄 것 같다. 마음이 울적하거나 외로울 땐 달려와 위로를 받고 싶은 곳이다. 삶이 풍요로워질 땐 목청껏 큰 소리로 자랑하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좋은 사람 만나면 곱게 간직했던 고향의 추억을 한보따리 풀어 놓고 술 한 잔을 나누고 싶은 곳이다.
어느 여름 밤, 삶의 환희를 노래하는 별들의 합창에 이끌려 은하수를 따라 망해사까지 왔다. 책을 읽고 그 내용을 이야기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걸었다. 그 때는 화제의 중심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서 아무 책이나 닥치는 대로 읽어야 했다. 그 날의 대화 내용이 정확히 기억되지는 않는다. 아마 버트란드 럿셀의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에 대한 토론이었던 것 같다. 망해사에 도착하니 새벽이었다. 그 때는 통행금지가 있었다. 간첩들이나 활동하는 시간에 바닷가에서 철없이 놀다가 경찰서로 끌려가면 망신이다. 바짝 긴장되었다. 전투경찰이 지키고 있는 초소엔 빨간 불이 켜있었다. 우리 모두다 숨을 죽이며 포복으로 그 앞을 지났다. 무사히 집에 돌아올 수 있었던 그때 그 친구들이 보고 싶다.
한낮의 바다는 금빛 은빛의 햇살로 다가오지만 석양의 바다는 붉은 산호를 깔아 놓은 듯 화려하게 치장을 했다. 바다를 가슴에 품고 꿈속을 헤매던 고향집이 그립고, 고향 바다와 그곳에 활짝 핀 왕 벚꽃이 보고 싶었다. 이런 내 마음을 알아줄 것 같은 벗과 절 마당에 섰다. 바다는 변하지 않았는데 절이 변했다. 어린시절엔 그렇게도 웅장하게 느껴지던 절이 초라하고 작아 보인다. 소풍 나온 사람들로 북적이던 절이 고즈넉하다. 고목나무였던 왕 벚꽃도 어린 나무로 바뀌어 예전의 운치를 찾아 볼 수 없다.
“백제 의자왕 2년(642년) 부설거사가 이곳에 와 사찰을 지어 수도하였고, 당나라 승려 중도법사가 중창, 조선 인조 때 진묵대사가 1589년 낙서전(문화재자료 128호)을 지었으며, 1933년 김정희 화상이 보광전과 칠성각을 건축하고 중수했다”
안내표지판이 고찰임을 증명해 주고 있을 뿐이다.
대웅전 동쪽으로 승방이 있고, 종각은 예전 그대로 절 마당 가장자리 절벽에 있다. 절벽 주변엔 여러 가지 들꽃이 예쁘게 피어있다. 노란 민들레꽃이 유난히 탐스럽다. 그 옆으로 듬성듬성 클로버가 있다. 클로버는 세 잎이 행복이고 네 잎은 행운이라고 하던가. 어찌 보면 행운보다 행복이 더 좋은 것인데도 클로버만 보면 네 잎을 찾게 된다. 난 아직 행운을 찾아야할 일이 많이 남았나 보다. 눈에 들어온 네 잎 클로버를 꺾기 위해 주저앉았다. 한 잎을 꺾으며 아들의 시험합격을, 두 잎을 꺾으며 멀리 몽골에서 공사를 하고 있는 사위의 건강과 사업 성공을, 세 잎을 꺾으면서 큰 사위의 승진을, 네 잎을 꺾으면서 가족 모두의 건강과 행복을 비는 간절한 마음을 내 책갈피에 펴 놓았다.
계란 두 판이 되어버린 이 나이에 봄은 왜 그리도 기다려지며 망해사의 왕벚꽃은 어찌 그리도 보고 싶었던지, 해넘이까지 보고 가려고 시간을 끌며 방파제를 걸었다. 밀물 때 불어오는 봄바람이 온 몸을 휘감아 돈다. 매일 찾아오고 싶은 곳에서 봄맞이를 하고, 바다 소리를 들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니 마음이 풍요로워졌다.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렸다. 모든 근심이 사라지고, 머리가 맑아진다. 가슴이 후련하다. 꿈을 키울 때 또 다시 찾아와 네 잎 클로버를 꺾으며 소원을 빌고, 갈대의 속삭임을 가슴 가득 안아가야겠다.
(2007.4. 28.)
- 추억의 회상 -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고급) 박귀덕
망해사, 그 곳은 언제나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서해 바다와 맞닿은 절벽에 고즈넉이 서있는 그 고찰(古刹)은 내 마음의 고향이었다. 늦은 봄날이면 절마당과 뒷동산에 아름드리 나무마다 벚꽃이 활짝 피었었다. 바다를 향해 망부석처럼 서 있는 웅장한 절, 고목나무마다 장미꽃송이처럼 탐스럽고 예쁜 진분홍 꽃봉오리를 활짝 피어 운치를 더해주었다. 단청은 어찌 그리도 고왔던지, 시오리를 걸어 봄 소풍 온 초등학생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충분했다. 집 밖을 나가보지 못했던 어린 시절, 그 절을 바라보면서 궁궐도 저렇게 좋을까? 저 그림처럼 나도 그림을 잘 그려봤으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음속 깊이 담아 놓은 그 아름다움이 오랜 세월 동안 꿈속을 헤매게 했는가 보다.
바다의 정령이 유혹하던 수많은 밤, 갯바람을 맞고 둑 위에 우뚝 서있는 예배당 뒤로 난 길을 걸었다. 파도를 벗삼아 걷다가 산과 바다가 맞닿으면 산 아래 아슬아슬한 바위 위로 갔다. 파도가 밀려와 바위에 부서져 하얀 포말을 이루고 흩어진다. 철썩 차르르~~, 철석 차르르~~. 부서진 파도는 잔잔한 바닷물이 되어 말없이 서해바다로 흐른다. 살아 있는 바다를 보며 둑 아래 갈대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었다. 그 길을 걸을 때면 시흥이 절로 났다. 그 땐 해변의 시원한 바람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파도의 합창을 감상할 수 있었다. 다정한 벗을 그리워하는 풀벌레들의 사랑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으며, 밀물에 밀려오는 고기들의 생동감 넘치는 춤도 볼 수 있었다. 갈대밭에서 놀다 온 바닷바람은 부드러운 감촉으로 귓불을 스치고, 5월의 훈풍에 실어온 아카시아꽃 향기는 코끝에 머문다. 긴 머리를 바람에 휘날리며 둑 위를 걷는 낭만이 그립다.
망해사를 휘돌아 상무지에 가면 어촌 마을이 있고, 확 트인 넓은 바다엔 어부들의 고깃배가 몇 척 떠 있다. 등대는 없어도 방파제에 서서 파도의 출렁임을 몸으로 느낄 수도 있다. 밀물이 싸~아~한 바람을 몰고 올 때 망둥어를 낚아 올리는 낚시꾼의 얼굴엔 희열이 넘친다. 구럭에 생합을 가득 담고 나오는 어부들의 해 맑은 미소도 있다. 갓 잡은 생합을 늘어놓고 호객하는 모습이 재래시장처럼 생동감이 넘쳐 좋았다. 갈매기 몇 마리가 하늘을 날아 뱃전을 맴돌며 먹이 사냥을 하는 모습도 아직 남아 있다. 통통배가 고기를 잡으러 먼 바다로 나가는 풍경, 강산이 몇 번이나 변했을 세월인데도 바다는 아직도 변하지 않고 침묵하는 고향 바다가 좋았다.
이 곳엔 지난날의 내 삶과 추억이 숨어 있다. 꺼내 보이지 않은 마음 속 갈피에 깊이깊이 간직한 고향이었다. 어머니 가슴처럼 포근한 고향바다는 고단한 삶을 모두 잊게 해줄 것 같다. 마음이 울적하거나 외로울 땐 달려와 위로를 받고 싶은 곳이다. 삶이 풍요로워질 땐 목청껏 큰 소리로 자랑하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좋은 사람 만나면 곱게 간직했던 고향의 추억을 한보따리 풀어 놓고 술 한 잔을 나누고 싶은 곳이다.
어느 여름 밤, 삶의 환희를 노래하는 별들의 합창에 이끌려 은하수를 따라 망해사까지 왔다. 책을 읽고 그 내용을 이야기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걸었다. 그 때는 화제의 중심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서 아무 책이나 닥치는 대로 읽어야 했다. 그 날의 대화 내용이 정확히 기억되지는 않는다. 아마 버트란드 럿셀의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에 대한 토론이었던 것 같다. 망해사에 도착하니 새벽이었다. 그 때는 통행금지가 있었다. 간첩들이나 활동하는 시간에 바닷가에서 철없이 놀다가 경찰서로 끌려가면 망신이다. 바짝 긴장되었다. 전투경찰이 지키고 있는 초소엔 빨간 불이 켜있었다. 우리 모두다 숨을 죽이며 포복으로 그 앞을 지났다. 무사히 집에 돌아올 수 있었던 그때 그 친구들이 보고 싶다.
한낮의 바다는 금빛 은빛의 햇살로 다가오지만 석양의 바다는 붉은 산호를 깔아 놓은 듯 화려하게 치장을 했다. 바다를 가슴에 품고 꿈속을 헤매던 고향집이 그립고, 고향 바다와 그곳에 활짝 핀 왕 벚꽃이 보고 싶었다. 이런 내 마음을 알아줄 것 같은 벗과 절 마당에 섰다. 바다는 변하지 않았는데 절이 변했다. 어린시절엔 그렇게도 웅장하게 느껴지던 절이 초라하고 작아 보인다. 소풍 나온 사람들로 북적이던 절이 고즈넉하다. 고목나무였던 왕 벚꽃도 어린 나무로 바뀌어 예전의 운치를 찾아 볼 수 없다.
“백제 의자왕 2년(642년) 부설거사가 이곳에 와 사찰을 지어 수도하였고, 당나라 승려 중도법사가 중창, 조선 인조 때 진묵대사가 1589년 낙서전(문화재자료 128호)을 지었으며, 1933년 김정희 화상이 보광전과 칠성각을 건축하고 중수했다”
안내표지판이 고찰임을 증명해 주고 있을 뿐이다.
대웅전 동쪽으로 승방이 있고, 종각은 예전 그대로 절 마당 가장자리 절벽에 있다. 절벽 주변엔 여러 가지 들꽃이 예쁘게 피어있다. 노란 민들레꽃이 유난히 탐스럽다. 그 옆으로 듬성듬성 클로버가 있다. 클로버는 세 잎이 행복이고 네 잎은 행운이라고 하던가. 어찌 보면 행운보다 행복이 더 좋은 것인데도 클로버만 보면 네 잎을 찾게 된다. 난 아직 행운을 찾아야할 일이 많이 남았나 보다. 눈에 들어온 네 잎 클로버를 꺾기 위해 주저앉았다. 한 잎을 꺾으며 아들의 시험합격을, 두 잎을 꺾으며 멀리 몽골에서 공사를 하고 있는 사위의 건강과 사업 성공을, 세 잎을 꺾으면서 큰 사위의 승진을, 네 잎을 꺾으면서 가족 모두의 건강과 행복을 비는 간절한 마음을 내 책갈피에 펴 놓았다.
계란 두 판이 되어버린 이 나이에 봄은 왜 그리도 기다려지며 망해사의 왕벚꽃은 어찌 그리도 보고 싶었던지, 해넘이까지 보고 가려고 시간을 끌며 방파제를 걸었다. 밀물 때 불어오는 봄바람이 온 몸을 휘감아 돈다. 매일 찾아오고 싶은 곳에서 봄맞이를 하고, 바다 소리를 들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니 마음이 풍요로워졌다.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렸다. 모든 근심이 사라지고, 머리가 맑아진다. 가슴이 후련하다. 꿈을 키울 때 또 다시 찾아와 네 잎 클로버를 꺾으며 소원을 빌고, 갈대의 속삭임을 가슴 가득 안아가야겠다.
(2007.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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