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거리

2007.05.23 18:05

하재준 조회 수:56 추천:11

삶과 죽음의 거리
하 재 준


만춘(晩春)의 밤을 촉촉이 적시며 내리는 봄비 속에 시간은 하염없이 흐르고, 유난히도 밤이 깊어갈수록 온 몸의 통증은 나를 심하게 괴롭히고 있다.
교통사고를 당한지 오늘로 4주째, 낮에는 교인들과 친지들이 끊임없이 찾아와 기도해주고 위로해주는 덕택에 그럭저럭 지냈으나 아무도 찾아 줄 이 없는 고적한 밤이면 아픔의 통증과 맞싸워야 하는 시간이다.
지난 4월 24일 7시경, 새벽 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부천 호수공원 중간지점 옆 8차선 대로(大路)의 횡단보도에서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다가 마침내 청색불이 켜지기에 그 길을 몇 발자국 옮기는 도중에 신호등을 보지 못한 승용차가 미친 듯 달려와 그만 나를 덮치고 말았다.
횡단보도에서 1미터가량 앞 길바닥에 내 몸은 내동댕이쳐졌고 나를 친 승용차는 찌익 하는 급정거 소리와 함께 과속했는지 타이어자국을 내며 횡단보도에서 약 4미터 앞 지점에 서 정지했었다. 그 승용차 안에는 운전자와 함께 3명이 타고 있었는데 그들 모두 대형사고로 알고 가슴을 쓰러 내리며 당황했다고 한다.
곧바로 사고를 낸 승용차에 몸을 싣고 부천 순천향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아갔고 이어 엑스레이 촬영을 했다. 그 결과 기적처럼 몸 전체의 뼈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고 내 궁둥이에는 시퍼런 멍이 커다랗게 자리 잡고 있어 사고 당시를 입증해주고 있었다.
몸은 조금도 추스를 수 없다고 해도 뼈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으니 개인 병원으로 옮겨 입원을 하라고 권하기에 어찌할 수 없이 그곳에서 가장 가까운 서동상 신경외과로 이송되었다. 그곳에서도 또다시 엑스레이를 촬영했는데 역시 판독결과 머리와 뼈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의사의 진단이 있었다. 그런데도 심한 통증은 나를 못 견디게 괴롭혔다.
삶과 죽음의 거리는 이같이 지척에 있을까.
0,1초, 이처럼 지극히 짧은 찰나의 순간이 삶과 죽음의 거리란 말인가. 생각해 보면 생각해 볼수록 신비스러운 거리다. 운명을 좌우하는 신(神)밖에 주장할 수 없는 거리라고 달리 생각할 수 없다.
그렇지 아니한가.
0,1초만 더 빨리 황단 보도를 가고 있다할지라도 나는 차바퀴에 깔리거나 차 정면에 부딪혔을 것이니 어찌 되었을까? 아니면 0,1초만 더 늦게 차가 그곳을  달렸다고 해도 역시 나는 차의 한 중앙부분을 걷고 있었기에 나의 생명은 끝이 났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해서 0,1초 사이에 내가 타고 간 자전거 앞바퀴가 승용차 앞 범퍼에 부딪히면서 그 앞바퀴가 휘어지는 순간 그 충격에 의해 내 몸이 붕 떴고 그 찰라 오른쪽 백미러가 내 왼쪽 궁둥이를 세차게 쳐버렸기에 1미터 앞 길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고 백미러 역시 박살난 채 저 멀리서 뒹굴고 있었다.
참으로 신비스러울 일이다. 어찌 오른쪽 백미러가 살점이 많이 붙은 내 궁둥이를 세차게 쳤을까하는 점이다. 어느 누군가 사고 현장을 지켜본 자 중 한 사람이 나를 가리켜
“저 사람은 진정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운명을 지닌 자.”
라고 했다. 분명 운명논자들은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으리만큼 큰 사고를 당했는데도 어느 곳 하나 작은 상처도 입지 아니하고 온 몸에 타박상만 입어 통증을 느끼고 있을 뿐이다. 만일 백미러가 내 옆구리를 쳤다면 장(腸) 파열로 죽었을 것이요, 허리를 쳤다면 두 동강, 세 동강이 났을 것이 아닌가.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노라니 시간은 벌써 자정을 훨씬 넘긴 깊은 밤이었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감사기도를 드리지 않을 수 없어서였다. 이곳이 비록 병실 침대 위일지라도 내가 무릎 꿇는 곳에 주님이 나를 돌보고 계신 것만 같았다. 방금 전만하더라도 통증이 나를 심히도 괴롭혔건만 그것도 다 잊고 주님을 향한 이 시간이다.
이번 사고를 통하여 한 생명이 얼마나 소중하고 더할 수 없이 귀중한 목숨인가를 새삼 깨달았다. 영원에서 보면 한낱 생명이란 수유(須臾)에 지나지 못하지만 그처럼 수유와 같은 생명이 지상에 태어나서 다시 살아질 때까지 지니는 의미는 무엇이며 희로애락이 교차되는 삶 자체는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볼수록 너무도 크고 어려운 문제임을 느낀다.
하기야 인간이란 원래 비극으로 출발해서 비극으로 끝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다고 무미하게 보낼 수는 없다고 평소에 느껴왔던 나였기에 딴에는 부지런히 살아 왔는데도 이번 사고를 통하여 이렇게 허무하게 인생을 마치는가하여 얼마나 가눌 길 없는 슬픔의 순간을 보냈는지 모른다.
그러나 생사화복은 오직 절대자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그분의 의도에 따르기로 했는데 의사의 진단결과가 곧 이어져 그분의 뜻을 전달받은 듯했다. 순간이다. 생의 의미를 깊이 깨닫는 순간이다. 다시 생명을 연장시켜주신 그분에 대한 감사와 함께 새로운 결단이 선 것이다.
앞으로의 삶 자체도 생존경쟁을 전제로 한 것이기에 온갖 고뇌와 괴로움이 뒤따르겠지만  그러나 나는 이 땅에서 비록 ‘부족한 자라’고 남들이 손가락질을 할지라도 나를 살리신 절대자의 의도를 존중하며 그 뜻에 따라 앞으로 내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고 싶고 또 찾으려고 혼신을 쏟을 각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