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아 피천득 선생의 서거를 애도하며

2007.06.01 00:02

김학 조회 수:98 추천:11


금아 피천득 선생의 서거를 애도하며
김 학(수필가,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이사장)


5월을 유난히도 사랑했던 수필가 금아 피천득 선생이 찬란한 그 5월에 97세를 일기로 하늘나라로 가셨다.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라는 오월, 밝고 맑고 순결한 그 오월에 금아 피천득 선생이 눈을 감으신 것이다.

금아 선생은 자신이 오월에 태어나셔서 그 오월을 더 사랑하셨던 건 아닐까? 하느님도 금아 선생이 5월을 사랑하신 걸 아셨던 모양이다. 5월이 저물어 가는 25일 밤 11시 40분, 입원중인 아산병원에서 금아 피천득 선생을 저승으로 모셔갔으니 말이다. 더 기이한 것은 태어나신 날인 5월 29일 금아 피천득 선생의 육신은 땅에 묻히셨다는 점이다.

수필은 난이요, 학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라고 읊으셨던 금아 피천득 선생! 그분은 시인이자 수필가였지만 수필가로서 더 이름을 떨치셨다. 금아 선생은 ‘인연’이라는 수필집 한 권을 남기셨지만 그가 남긴 수필들은 모두가 천의무봉의 명 수필들이다. 연한 5월의 나뭇잎 같은 그의 수필들을 쥐어짜면 서정의 초록색 물감이 주르륵 쏟아질 것 같다. 금아 선생의 수필 가운데서 수필, 인연, 눈보라 치는 밤의 추억, 기다리는 편지 등도 좋지만 내가 반신욕을 즐기면서 읽었던 ‘피가지변(皮哥之辯)은 유머러스한 수필의 전형이었다.

‘皮哥가 다 있어!’로 서두를 연 이 작품에는 피씨의 집안내력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수필이 '나상(裸像)의 문학'이란 말에 수긍이 간다.

“(전략)옛날에 우리 조상께서 제비를 뽑았는데 皮씨가 나왔다. 皮가도 좋지만 더 좋은 성(姓)이었으면 하고 다시 한 번 뽑기를 간청했다. 그때만 해도 면 직원들이 어수룩하던 때라 한 번만 다시 뽑게 하였다. 이번에는 毛씨가 나왔다. 毛씨도 좋지만 毛는 皮에 의존한다고 생각하셨기에 아까 뽑았던 皮씨를 도로 달래가지고 돌아왔다. 그 후 대대로 우리는 皮씨가 좋은 성 중의 하나라고 받들어왔다.(후략)”
사실 여부는 따질 수 없지만 퍽 해학적이다. 또 皮씨의 직업은 대개 의사였는데 조상 중에는 임금님의 주치의까지 있었다고 내세운다. 자기 아버지는 종로에서 가죽신가계를 하여 돈을 벌자 '주사(主事)'라는 호칭을 돈으로 샀다고 스스럼없이 드러내기도 한다. 그런 뒤부터 겉봉에 피주사댁입납(皮主事宅入納)이라 씌어진 편지를 자주 받았던 기억을 떠올린다. 자신의 이름도 원래는 천득(天得)인데 면서기의 실수로 하늘 천(天)자가 일천 천(千)자로 바뀌는 바람에 이름의 획 하나가 줄어들어 부자가 되지 못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유머러스한 수필을 읽으면서 목욕탕 안에서 나는 혼자 가가대소(呵呵大笑)할 수밖에 없었다.

맑은 영혼의 소유자인 금아 선생은 늘 동심에 젖어 사셨다고 한다. 침실엔 곰 인형 3형제가 있었는데 눈을 플라스틱으로 만들어 그 곰 인형들이 잠들 수 없자, 눈가리개로 눈을 가려주고 자장가를 불러 잠을 재운 다음, 잠자리에 드셨다고 한다. 금아 선생의 수필에는 어머니와 딸 서영의 이야기는 자주 나오지만 아내 이야기는 없다. 또 금아 선생은 미국에 사는 딸 서영이 대신 여자인형을 가슴에 안고 잠을 잤다고 한다. 그 인형을 금아 선생의 관 속에 넣어드렸는지 모르겠다.


금아 선생은 에피소드를 많이 남긴 분이기도 하다. 금아 선생은 서울대학교 영문과 교수로 계실 때 정년을 몇 년 앞두고 후배를 위해 조기 퇴임하기도 했고, 많은 수필집을 남기지 않았으면서도 지난날에 발표한 수필보다 질이 낮은 작품이 나올까봐 60대에 절필을 하기도 한 분이시다. 돌아가시기 10여 년 전에 금아 선생의 서재를 찾았던 분이 쓴 글을 보면 책꽂이에는 영문시집 몇 권, 좋아하는 글귀를 적은 노트 한 권, 앨범 한 권, 평생 즐겨 듣는 음악 테이프 몇 개밖에 없었다고 한다. 일찌감치 주변을 말끔히 정리하고 홀연히 하늘나라로 떠날 준비를 하셨다는 이야기다.
이제 금아 선생은 가셨다. 하늘나라로 가신 금아 선생은 이승에서 한글로 아름다운 수필을 많이 빚으셨으니 그곳에서 세종대왕을 만나실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금아 선생 편에 내가 하늘나라 세종대왕께 올리는 상소문을 전해달라고 간청해야겠다.

"세종대왕께 올리는 상소문

상감마마께서 훈민정음을 반포하신지 어느덧 561년이 되었습니다. 해마다 10월 9일을 한글날로 정하여 다채로운 기념행사도 갖습니다. 어리석은 백성을 어여삐 여겨 만드신 그 한글이 있기에 저희들 단군의 자손들은 문맹을 면하고 삽니다.
이 세상에는 6,500개 언어가 있고, 그 중 4백 개 언어만 기록할 문자가 있답니다. 상감마마가 아니었다면 우리도 다른 나라 문자를 사용해야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유네스코가 1998년부터 2002년까지 문자 없이 언어만 있는 6,100개 종족들에게 어떤 문자를 가르치면 가장 좋을까 연구했더니 한글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하옵니다. 이 지구상 4백여 가지 문자 가운데 제작자는 물론 제작원리 등 족보가 있는 유일한 문자가 한글이기 때문이지요. 유네스코가 1997년 10월 1일 우리 한글을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한 것도, 또 해마다 세계 방방곡곡에서 문맹퇴치에 이바지한 사람을 찾아 주는 상의 이름이 ‘세종대왕상’이라는 사실도 결코 우연이 아니옵니다. 상감마마!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언어학대학이 합리성, 과학성, 독창성, 실용성 등의 기준에 따라 채점한 결과 세계의 4백여 문자 가운데서 한글이 1등을 차지했다는 사실도 마마의 성은이옵나이다. 하오나, 소중한 우리글이 야금야금 영어에 쫓기고 있으니 이를 어찌해야 하오리까? 어서 가르침을 주시옵소서!"

금아 피천득 선생의 금쪽같은 수필들은 수필을 사랑하는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영원히 살아 숨쉬며 우리를 늘 일깨워 줄 것이다. 삼가 금아 피천득 선생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