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아프리카

2007.08.06 12:05

김학 조회 수:124 추천:20

굿바이 아프리카
                             김 학


설렘을 안고 찾아갔던 아프리카에 연민의 마음을 남겨두고 10여 일만에 돌아와야 했다. 아프리카대륙의 53개 나라 가운데 고작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세네갈공화국 두 나라만을 주마간산 격으로 대충대충 둘러보고 돌아온 셈이니, 코끼리 비스킷이라 해도 할 말은 없다.

이번 아프리카 여행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검은 불상(佛像)을 만났다는 사실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야외조각전시장에서였다. 다양한 주제의 조각품들이 즐비하게 전시되어 있었는데 새까만 오석(烏石)으로 조각한 불상이 눈에 띄어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검은 불상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사찰을 가거나 으레 불상은 누렇게 도금되어 있거나 돌로 조각한 석불상뿐인데 새까만 불상을 보게 되니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한 편 생각하니 불교 역시 세계적인 종교이니만치, 황인사회에서는 노랑색 불상이 있듯이, 백인사회에서는 흰 불상이, 흑인사회에서는 검은 불상이 있어야 마땅하겠구나 싶었다. 그 검은 불상을 사진으로 찍어오지 못한 게 몹시 아쉬울 따름이다.

아프리카의 개와 고양이, 말 역시 우리나라의 동물들과 생김새가 똑 같았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보신탕을 먹는 사람들이 없으니까 아프리카 개는 우리나라 개보다 오히려 행복하려니 싶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한국음식점 한국관에서 15,000원에 산 국산 소주 참이슬의 맛은 우리나라에서 자주 마셨던 소주와는 달리 별미요 꿀맛이었다. 남아공이나 세네갈 호텔에서 끼니때마다 나온 음식은 진수성찬이었다. 쌀밥도 있는데 김치가 없어서 아쉬웠다.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아프리카까지 많이 찾아가게 되면 그 호텔식탁에서도 김치가 나오려니 기대하며 참았다. 홍콩호텔보다 아프리카호텔 음식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훨씬 푸짐하고 훌륭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홍콩에서 아프리카로 갈 때 비행시간이 13시간이나 소요되니 예쁜 스튜어디스들이 자주 기내식을 가져다주었다. 비행기 속에 가만히 앉아서 영양가 높은 식사만 하다보니 자꾸 몸무게가 불어나는 것 같았다. 또 아프리카에서 머문 10여 일 동안에도 푸짐한 음식을 배불리 먹고 평소보다 운동을 못하니 살이 찌는 기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오죽하면 이런 농담을 건네며 웃었겠는가?
“아프리카에 왔다가 따가운 햇볕 때문에 피부는 검어지고 살이 뒤룩뒤룩 찐 채 돌아가면 아내가 나를 몰라보고 누구시냐면서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어떡하지요?”

아프리카에서는 달력이 눈에 띄지 않았다. 아프리카는 달력을 어떻게 만들어 활용하는지 궁금했는데, 호텔 프론트와 객실 또는 공항과 항구의 도선장에도 달력은 붙어 있지 않았다. 아프리카에서 머물던 10여 일 동안 나는 한 번도 달력을 보지 못했다.

검은 대륙이라고 들어온 아프리카, 그 아프리카에 도착하니 내 입에서는 토막 영어가 자꾸 튀어 나왔다. 피부가 검거나 희거나 상관없이 필요하면 입이 열렸다. 토막영어와 보디랭귀지가 합쳐지니 웬만한 의사소통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숫기가 없던 나도 나이가 들면서 그만큼 뻔뻔해진 모양이다. 궁하면 통한다는 진리를 깨달았다고나 할까.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Courtyard 호텔에서 마지막 아침식사를 마친 뒤 커피를 건네주는 흑인여성에게 나는 점잖게 작별인사를 건넸다.
“Thank you. See you again!"
그녀 역시 웃으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나는 이번 아프리카 여행을 하면서 두 번이나 구두를 닦았다. 세네갈의 다카르항에서 노예집결지 고례섬으로 가는 배를 기다릴 때였다. 열댓 살 정도의 검은 소년이 구두를 닦으라고 졸랐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배에 올랐다. 고례섬이 가까워졌는데 또 구두를 닦으라고 권했다. 당연히 아까 권했던 그 소년이려니 여기고 고개를 끄덕였다. 한창 구두를 닦고 있는데 맨 처음 구두 닦기를 권했던 그 소년이 내 곁에 앉더니 서운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나는 그 배에 구두 닦는 소년이 또 있으리라곤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다. 미안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쫓기듯 1달러를 건네주고 자리에서 일어서고 말았다. 또 한 번은 요하네스버그공항으로 갈 비행기를 기다리며 케이프타운 공항에서도 구두를 닦았다. 일행 중 누군가가 구두를 닦으면 임금 대접을 받을 수 있다고 허풍을 떨었다. 아닌 게 아니라 편안한 안락의자 7개를 쭉 늘어놓고 20대 젊은 구두닦이들이 손님을 받고 있었다. 어떤 재빠른 청년에게 떠밀려 자리에 앉았다. 담배 한 대참도 되지 않아 구두를 다 닦았다. 1달러를 주고 돌아섰다. 이번에 두 나라에서 구두를 닦아 보았지만 구두 닦는 기술도 우리나라를 따라오려면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아프리카 여행에서 처음 겪었던 일이 또 하나 있다. 남아공 요하네스버그공항에서 짐을 부치고 세네갈 다카르공행 비행기에 올랐다. 두 시간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으나 짐이 따라오지 않았다. 그 짐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도 없었다. 우리는 그냥 호텔로 갔다. 한국의 여행사로 연락을 하여 추적한 끝에 하루 늦게 짐을 찾을 수 있었다. 이럴 경우 하루에 70달러까지 세면도구나 내복 등 당장 필요한 물건을 사고 영수증을 건네주면 보상해 주는 제도가 있다는 사실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해외여행을 꽤나 해보았지만 이런 경험이 없었기에 그런 보상제도가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 사람은 늘 배우면서 사는 존재인 모양이다.

내가 언제 다시 아프리카에 갈지는 모른다. 그러나 오는 11월이면 우리나라 전주에서 아시아와 아프리카 작가 100여 명과 국내작가 100명 등 2백여 명의 문인들이 자리를 같이 하는 세계적인 문학축제가 열리게 된다. 아시아 아프리카 두 대륙의  민중이 겪었던 고통과 슬픔을 이야기하고, 문학의 미래를 토론하며, 국적과 종교‧인종을 뛰어넘어 희망연대를 이루게 될 것이라고 한다. 내 고장 전주가 세계문학계에 새로운 논의의 발상지, 새로운 문학의 유통 중심지로 부각될 것이라는 야심 찬 프로젝트가 기다리고 있어 기대된다. 세네갈 제73차 펜클럽국제대회에서 만났던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문인들을 전주에서 또 만나게 되면 훨씬 더 반가울 것이다.

*김학 약력
1980년 월간문학으로 등단/<실수를 딛고 살아온 세월> 등 수필집 9권, 수필평론집 <수필의 맛 수필의 멋>/펜문학상, 한국수필상, 영호남수필문학상 대상, 신곡문학상 대상, 동포문학상 대상, 전라북도문화상, 전주시예술상 등 다수 수상/전북수필문학회 회장, 대표에세이문학회 회장, 임실문인협회 회장, 전북문인협회 회장, 전북펜클럽 회장 역임/국제펜클럽한국본부 부이사장,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전담교수/
e-mail: crane43@hanmail.net http://crane43.kl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