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와 물 위의 풍경

2007.08.21 19:59

정원정 조회 수:76 추천:8




모네와 물 위의 풍경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 정 원 정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지난 7월 19일, 나는 서울시립미술관을 찾았다. 본관에 들어서기까지 짙푸른 수목으로 에워싸인 사잇길에는 똑같이 깎은 돌들이 가지런히 깔려 있었다. 입구까지 가서 우산을 접었다. 입장권을 검표원에게 보여 준 다음 이층 전시실로 들어갔다. 전시실은 어두컴컴했다. 평일을 택해서 왔더니 관람객이 붐비지 않아 좋았다.

나는 미술에 대한 조예나, 그림을 감상할 안목도 없으면서 이따금 미술전을 찾는다. 내 눈높이에서 아는 만큼 볼 뿐이다. 그림을 보노라면 음악을 들을 때처럼 막연히 마음이 그윽해지고 시적 감상이랄까, 감동이 스친다. 그리고 그림 속에 아름다운 세계가 있음을 느끼며 그것이 그리움이 되어 내게 다가오는 게 좋아서 모네의 그림을 보러 갔었다.

작가의 살아온 모습도 그의 사유에서 영감을 얻어 그렸을 성싶은 그림을 감상하는 것도 내게, 하나의 정신적인 자양분이 될 터이다. 이런 때는 혼자여도 괜찮다. 그리고 굳이 모네의 특별전을 찾은 것은 10여 년 전, 큰딸 내외가 미국 뉴욕으로 나를 초청한 적이 있었다. 그 때 그들이 바쁜 중에도 맨 먼저 구경시켜 준 곳이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이었다. 그 때 처음으로 끌로드 모네 (1840ㅡ1926)의 그림을 보았다. 거장들의 그림도 함께 보았지만 인상에 남은 것은 모네의 초대형 그림 ‘수련’이었다. 벽 두 면을 차지한 큰 화폭에 그려진 ‘수련’앞에 섰을 때 숙연하기까지 했던 기억이 지금껏 남아 있다.

수평선도 하늘도 없는 화면 가득한 물 위에, 듬성듬성 무리지어 떠 있는 ‘수련’그림이었다. 물안개 낀 듯 뿌옇게 덮여있는, 실체가 명료하지 않으면서 예술가의 고뇌가 그대로 묻어있는 듯. 사색적인 듯, 우주의 신비가 담겨 있는 듯, 알 수 없는 우수가 깃든, 그리고 가슴을 꽉 메이게 하는 아름다움이, 거기 있었다. 추상화에 가까운 그 ‘수련’을 상상하면서 이번 특별전에 갔던 것이다.

모네는 풍경화 ,인물화, 정물화 등 많은 그림을 그렸지만 생의 긴 고락을 겪은 후기에는 연못에 뜬 수련 풍경만 그렸다고 한다. 파리에서 서쪽으로 80킬로미터 떨어진 세느강과 엡트강이 만나는 노르망디의 작은 마을 지베르니에서 정착한 다음, 정원에 넓은 연못을 만들고 시간 따라 비치는 빛을 색으로 형상화한 것을 화폭에 담았으며, 같은 소재를 가지고 비치는 빛이 변하는 그 찰나를 포착해서 덧없는 순간을 묘사하려 했다는 것이다.

모네는 젊은 시절 한 때는 눈 풍경에 매료되기도 했었다. 그 중에 시골 설경을 그린 ‘까치’는 쓸쓸한 겨울날의 풍경이다. 어느 시간을 포착했을까. 사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는 뉘 집 뒤뜰의 텃밭쯤인 듯, 키 큰 나무 몇 그루, 그 밑의 울타리 위에는 소복소복 눈이 쌓여 있다. 몇 가닥 나무토막으로 얽어 만든 쪽문은 반이나 열려 있다. 조용한 눈밭 위에 햇살의 그림자는 길게 드리우고, 그 울타리 쪽문 맨 위에는 까치 한 마리가 외롭게 앉아 있다. 눈 덮인 마을에서 모이나 제대로 먹었을까. 하얀 눈 위에 쏟아진 햇빛의 광채와 명암을 절묘하게 표현한 이 그림이 미술사상 가장 뛰어난 설경 작품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모네는 생의 후반기 1897년부터 1926년 86세로 세상을 뜨기까지 쉬지 않고 수련을 그린 그림이 250여 점이나 되는데 그 중에 40여 점은 3미터가 넘는 대형그림이었다고 하니 그 정열이 놀랍다. 모네는 빛의 화가라는 이름 외에 인상파의 시조라고도 한다. 왜냐면 그의 예술은 풍경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풍경이 만들어내는 인상을 그렸대서 붙은 이름이다. 이 ‘수련’그림을 어떤 이는 인상주의의 성서라고까지 극찬했다.

인상주의는 빛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의 순간적인 인상을 포착한 예술운동이라는데 모네라고 하면 인상주의의 19세기 역사에서 선구자라는 것이다. 인상주의라는 말이 나온 연유는 모네가 <인상, 해돋이>(1872ㅡ1873)란 그림을 인상파전에 출품한 이후 생겨난 말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인상, 해돋이>란 어떤 그림일까, 어디에서 언제 그림으로 보았음직한 작품이다. 이 그림은 국보급이어서 우리나라에서는 전시가 어렵다고 한다. 도록에서 보면 대서양 연안 도시 르아브르항구가 배경이라는데 내가 보기에는 어느 외딴 포구인 듯 바다에 큰 배가 정박해 있는 형태로만 그려져 있고, 그 주변에 작은 배 두어 척과 배에 탄 어부도 새까맣게 형태만 그려져 있다. 주변은 아직 날이 새지 않은 어슴푸레한 빛만 감도는데 큰 배너머에서 붉은 해가 꽤 높이 솟아오르고 있다. 햇빛이 바다에 반사된 묘사를 슬쩍슬쩍 붉은 물감으로 그려져있다. 그런데 그 풍광이 묘하게 보는 이를 사로잡는다. 역시 대가의 그림인 듯싶다. 제목이 해돋이가 아니라면 보는 이에 따라서는 해가 어찌나 붉던지 달이 뜨는 초저녁 풍경으로 볼 수도 있겠거니 싶었다.

이번 전시작 60여 점은 파리의 마르모땅 미술관을 비롯해 전 세계 20여 곳의 미술관과 개인이 소장한 비장품들을 대여해 왔다고 한다. 이번 전시된 그림 중에는 제목이 없으면 뭣을 표현한 형태인지 모르는 추상화도 있었다. 내 눈으로 구별되지 않은 그림은 그냥 스칠 수밖에 없었다.

모네는 말년에 창조적 삶을 살면서 오로지 순간의 묘사를 포착하는데 열정을 다하며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 구도자적인 정신이 아니고서야 어찌 세기의 걸작을 남겼을까. 어쩌면 그의 그림은 눈으로가 아닌 마음의 눈으로, 아니 가슴으로 감상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가 그린 색채와 형태의 ‘수련’그림이 눈앞에 아롱거린 채 이층 전시실을 내려 왔다.

(2007. 7,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