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배우러 가는 날

2007.08.25 14:28

김학 조회 수:63 추천:4

노래 배우러 가는 날
                               김 학

매주 화요일과 토요일은 노래를 배우는 날이다. 오늘은 토요일, 두 번째로 노래를 배우러 가는 날이다. 처서가 지났는데도 무더위는 물러갈 줄도 모른다. 땀을 뻘뻘 흘리며 전주안골노인복지관에 도착하니 일찍 나온 수강생들이 웅성거리며 강의실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안골노인복지관에 노래교실이 문을 연지 벌써 10년. 그런데 이번 학기에 처음으로 등록한 나는 아는 이가 없으니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어색할 뿐이다. 세월이 흐르면 분위기에 좀더 익숙해지려나?

“친구도 좋아요 애인도 좋아요 누구라도 좋아요 혼자 있는 건 죽기보다 싫어요 외로워서 싫어요.……”
지난 화요일에 배웠던 설운도의 ‘그런 여자 없나요’란 노랫말의 서두다. 100여 명의 남녀 수강생들이 목이 쉴 정도로 큰소리로 따라 부르며 노래를 배운다. 손과 손에는 노래책이 들려져 있고, 교단 왼쪽에는 커다란 노래방 기기들이 설치되어 있다. 노래교실 강사 ㅈ씨는 열심히 선창을 하면서 따라 부르기를 유도한다. 수강생 모두가 6,70대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기에 진도가 느릴 수밖에. 그래도 모두들 즐거워하며 열심히들 배운다. 노련한 노래강사 ㅈ씨는 어르고 추켜세우며 늙은 수강생들이 도중에 포기하지 않고 즐겁게 노래를 배우도록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이고 있다.

합창으로 노래를 부르게 하다가 때로는 수강생들을 일어서게 한 다음 율동을 곁들여 노래를 부르도록 한다. 즐거운 노래만 배우는 게 아니라 근육을 풀어주는 맨손체조까지 배우는 셈이다. 또 모든 수강생들을 네 팀으로 나누어 노래를 부르게 했다. 자기 팀이 잘 부른다는 칭찬을 들으려고 서로가 더 열심히 노래를 불렀다. 그런 다음에는 희망자를 앞으로 불러내어 노래방기기에 맞춰 노래를 부르라고도 하였다. 점수가 나오지는 않지만 열심히들 노래를 부른다. 나는 숫기가 없어서 노래를 부르겠다고 손을 들지 못했다. 희망자가 없으면 노래강사기 지명하여 무대에 세운다. 노래교실은 평소 1시간 반이면 끝나는데 토요일인 오늘은 특별히 1시간 더 연장하여 12시 반까지 계속하는데도 전혀 지루하지가 않았다.

노래교실이 문을 여는 날은 할아버지‧할머니들의 패션쇼가 열리는 날이다. 다루기 힘든 모시옷을 곱게 손질하여 입고 나오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장롱 속에 넣어 두었던 농지기 중에서 가장 좋은 옷을 골라 입고 나오기도 한다. 멋 내기 면에서는 할아버지보다 할머니들이 한 수 위다. 또 원색차림의 할머니들이 많다보니 언뜻 겉모습만 보면 할머니인지 새댁인지 구별하기도 쉽지 않다. 또 어떤 이들은 부부가 함께 나오기도 한다. 그런 분들은 집에 가서 함께 노래연습을 하면 훨씬 더 효과적이려니 싶어 은근히 부럽다.

예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노래 부르기를 퍽이나 좋아했다. 토끼가 발맞추는 시골에서도 추석명절 무렵이면 노래자랑대회를 열고, 여행을 가더라도 관광버스는 으레 노래방으로 둔갑하곤 한다. 또 오죽하면 전국 방방곡곡에서 노래방이란 직업이 번창하겠는가? 대개 퇴근 길 술잔이 오가는 모임이 끝나면 으레 2차는 노래방을 찾는다. 또 시아버지와 며느리, 장모와 사위 등 가족들도 스스럼없이 노래방을 찾아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그런 기회가 잦을수록 인간관계는 더 가까워진다.

노래방에 가면 어떤 노래를 고르느냐에 따라 세대차를 엿볼 수가 있다. 나이가 많은 이들은 흘러간 노래를 고르지만 젊은이들은 최신 유행곡을 즐겨 부른다. 어쩔 수 없는 현상일 것이다. 나의 경우 노래방에 가면 흘러간 노래를 부르지는 않지만 10여 년 전에 유행했던 노래를 즐겨 부른다. 그러니 내 노래의 단골 방청객들은 내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내가 부를 노래 번호를 알아서 미리 입력해 줄 정도다. 나는 그들 방청객들에게 미안한 생각뿐이다. 새 노래를 배우려 노력하지 않고 해마다 똑 같은 노래로 마이크를 잡는 내가 얼마나 얄밉고 짜증스러웠겠는가?
내가 새 노래를 배우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다만 기회가 없었고,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으며, 꼭 배워야겠다는 절실한 마음이 없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안골노인복지회관과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고, 옛날 직장동료인 ㅊ씨로부터 노래교실에 대한 정보를 얻었기에 용기를 내어 등록했던 것이다. ㅊ씨는 전주안골노인복지회관에서는 인기가 높은 스타로 군림하고 있다. 지금도 노래교실의 수강생 대표를 맡고 있을 뿐 아니라 노래자랑에 출전하여 대상을 받은 화려한 경력이 있기 때문이다.

노래를 배우러 가는 날은 매우 즐겁다. 지난 시간에 배운 노래를 콧노래로 흥얼거리며 걷는 기분이 상쾌하고 발걸음도 한결 가볍다. 건강하게 살 수 있는 13가지의 지혜 가운데 하나가 바로 ‘노래 부르기’라서만은 아니다. 이 노래교실에서 앞으로 새 노래를 많이 배워서 관광버스나 노래방에서 즐겁고 신나게 새 노래를 부르고 싶은 내 조그만 꿈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그 꿈이 이루어지는 날, 낡은 노래만 들었던 나의 단골 방청객들은 나의 변신과 레퍼터리 변화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줄 것이다.
                              (2007. 8. 26.)

*김 학 약력
1980년 월간문학으로 등단/<실수를 딛고 살아온 세월> 등 수필집 9권, 수필평론집 <수필의 맛 수필의 멋>/펜문학상, 한국수필상, 동포문학상 본상, 영호남수필문학상 대상, 전주시예술상 등 다수 수상/전북수필문학회 회장, 대표에세이문학회 회장, 임실문인협회 회장, 전북문인협회 회장, 전북펜클럽 회장 역임/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이사장,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전담교수/e-mail: crane43@hanmail.net http://crane43.kl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