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여행을 다녀와서
2007.10.24 08:25
일본 여행을 다녀와서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 금요반 김세웅
3박 4일간의 패키지 여행인지라 으레히 그렇듯이 주마간산(走馬看山)격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십여 년 만의 일본관광은 인상적인 볼거리가 적지
않았다. 여행사측에서 일정대로 계속 내달리는 바람에 힘겹기는 했으나
시간 낭비를 줄이려 알차게 짠 일정이라 그런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떠나는 날까지 퇴행성관절염으로 무릎이 아파 여행에 자신이 없다고 침울
해 하던 아내는 끙끙대면서도 끝내 일정을 모두 소화해 냈다.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물론 안쓰럽기는 했다. 게다가 끼니마다 일본식 성찬(盛
饌)이 나왔지만 비위에 안 맞는다며 아내는 거의 먹지 못 했다. 그렇게 먹는것이 부실했으면서도 뒤쳐지지 않고 따라다니느라 얼마나 힘에 겨웠을
까.
이번 여행에서 만이 아니다. 해외 여행 때는 번번히 그런 꼴이니 여행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렇듯 해외여행을 탐탁지 않아하는 아내 덕에 비용 절감은 꽤 되었지만 그렇다고 고마운 생각은 별로 우러나지 않는 게 솔직한 마음이다. 나를 이곳 한국 땅에만 진창 붙들어 맬 요량인 걸 어찌 고마워 한단 말인가.
이번 여행은 막내사위 내외가 주선하였다. 양쪽 집 어른들과 자기네 꼬마까지 동반하는 대 식구가 이동을 한 것이다. 그 동안 여러 차례 외국을 드나 들었던 여행과 비교할 때 비행기 좌석에서부터 특급호텔까지 그들의 세심한 배려가 있어 더욱 편안하고 좋았다. 자기네 가족들만 떠나지 않고 양쪽 집 어른들까지 생각했다는 점에서 그들의 성의가 돋보이는 여행이었다. 일행 중 그 사실을 알게 된 사람마다,
“딸을 낳고 볼 일이다. 부러운 일이다.”
라는 등 한마디씩 해댔다. 그저 듣기 좋게 한 말일망정 약간 우쭐한 기분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
첫날 ‘오다이바’에 들러 아오미(靑海)를 바라보았을 때다. 동경만을 중심으로 바다를 메운 일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규모는 잘 몰랐으나 장장 100
킬로미터에 이르는 넓은 해역(海域)을 메워 공업단지를 조성했다는 가이드의 말을 들으니 그들의 지혜와 야심이 참으로 경탄스러웠다. 만일 그러한 사업을 진즉 펼치지 않았더라면 오늘의 일본 공업화가 어떻게 가능할 수 있
었을가 싶었다.
우리 전라북도의 숙원사업으로 추진 중인 새만금개발사업도 하기에 따라
서는 엄청난 국부를 안겨주는 노다지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다. 오다이바에는 노사화합 기업경영으로 세계 제일의 실적을 올리고 있는 도요
다자동차의 전시장이 있었다. 해마다 한 번도 거르지 않는 노사분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우리나라의 H자동차를 떠올리며 씁쓸함을 느꼈다. 노동쟁의는 긍정적인 측면이 많은 민주사회의 제도이긴 하지만 자기의 삶과 직결되는 회사의 발전과 국민경제 쪽에서 신중해야지 도(度)를 지나친 횡포나 폭력적인 집회 따위는 없어야 되는 것이 아닐까.
이즈반도에 들어가는 입구에 위치해 있고 예전에 온천지로 유명했다는
누마쓰(沼津)라는 곳에 당도했을 때의 일이다. 아담한 고풍(古風)스러움이 도
시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호텔에 당도하니 기다렸던 대여섯 명의 종사원들
이 그들의 전통 의상을 입고 일행을 반가이 맞아 주었다. 식사 때도 일일이
시중을 드는 친절함을 보였고, 다음 날 떠나올 때도 역시 전통의상으로 갈아 입은 그들은 차가 안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며 배웅해 주었다. 그들의 그런 친절은 말할 나위 없이 영업적인 의도로 하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그들의 자상한 매너가 퍽 인상적이었다. 전에 일본 규슈지방 ‘시마바라’의 한 음식점에서는 종업원들이 현수막을 흔들면서 작별인사를 하는 걸 본 적이 있었다. 마음속으로야 손님들이 떠나는 게 뭐 그리 섭섭하겠는가만 단순히 겉으로만이라도 손님들에게 친절함을 보이는 것은 입 소문을 통해 자기 업소를 선전하는 효과를 노리고 한 행동일 것이다. 손님들은 구태어 진심어린 친절을 요구치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종업원들의 고달픔을 모르는 바가 아니나 그런 친절이 있으면 관광사업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겨졌다.
또한 관광지로 유명한 이즈(伊豆) 반도의 입구인 하꼬네를 샅샅이 둘러보며 먹으면 수명이 길어진다는 온천수로 삶은 계란(흑 달걀)을 먹기도 하고, 호수의 유람선을 탔던 것은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하꼬네는 일본의 이름난 온천 관광지답게 ‘히노끼’-목질이 단단한 나무-가 온 산을 가득 덮고 있었다. 나무 모양이 좋기도 했지만 정성들여 가꾼 흔적이 엿보였다. 선착 장에 닿으니 일제 때 삽을 어깨에 메고 일하러 가면서 불렀던 노래가 흘러 나와 옛날의 감회에 젖기도 했다.
“하꼬네노 야마와 덴가노…….”(하꼬네의 산은 천하의…)
인상적인 또 한가지는 일본 사람들의 검소한 생활모습이었다. 일본의 동경과
맞닿은 중앙고속도로나 관동고속도로 등 여러 고속도로를 장시간 달려 보았으나 어떤 곳을 막론하고 고급승용차는 거의 눈 씻고 볼래야 볼 수 없었다. 달리는 모든 차가 짐 실은 차가 아니면 소형차였다. 고급승용차는 동경 복판에 와서야 볼 수 있었다.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부자나라인 일본의 경제력을 생각할 때 그들의 검소한 생활은 우리가 본받을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름 값이 근래에 부쩍 오른 탓에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경차(한국1000 cc,일본 660cc)로 바꿔 탄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는 전체 자동차가운데 경차비중이 겨우 6%에 불과한데 일본은 무려 33%에 이른다고 했다. 세계적으로 선두를 다투는 자동차회사들이 큰 차를 만들어 세계시장에 내다 팔고 국내에서는 소형차를 개발하여 최근에는 매해 200만대 이상씩 경차가 팔려 나갔다는 것이다.
노인들이 왕성하게 일하는 모습도 남달랐다. 정책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결과겠지만 고속버스 톨게이트나 호텔의 종사원들이나 심지어 관광지의 매점에서 땀 흘려 일하는 노인들이 참 많기도 했다. 젊은이들은 잘 눈에 띄지 않았는데 대부분 산업현장에 모조리 투입된 탓에 그렇지 않았을까. 우리 나라 노인들의 취업률이 매우 낮고 일하려 해도 일자리가 없어 할일 없이 살아가는 현실과 대조적이어서 부러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우리 나라도 노령인구가 나날이 늘어나는 현실이라 대비책을 강구해야 할 것 같다.
여행은 비록 길지 않았으나 이번 여행에서 여러 차례 갈 기회가 있었으나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일본의 대표적인 산인 후지산((富士山)을 둘러 본 것은 큰 수확이었다. 산 중간 지점까지만 버스로 올라 갔는데 정상에는 한 여름인데도 아직 눈이 녹질 않고 그대로 덮여 있었으며 한기를 느낄만치 기온이 뚝 내려가 있었다. 국내외 관광객이 어찌나 많이 몰려왔는지 넓은 광장이 입추(立錐)의 여지가 없었다.
우리들이 일본관광을 하는 중에 마침 일본의 참의원 선거가 있었다. 현 집권당이 참패하고 야당인 민주당이 압승을 거두었으며 TV에서는 내내 선거에 관한 각 당의 분석토론이 이어지는 것을 들었다. 승리한 민주당의 선거 캐치프레이스는 “이젠 경제다!”였다. 나라마다 숨가쁘게 경제전쟁을 치르고 있음을 실감했고 전후의 평화헌법체제를 바꾸려고 법석대는 ‘아베’ 수상이 이끄는 집권당의 참패가 내심 통쾌했다.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하여 아직껏 떫은 감정이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배울 점이 많은 나라라고도 느꼈다.
(2007. 8. 7.)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 금요반 김세웅
3박 4일간의 패키지 여행인지라 으레히 그렇듯이 주마간산(走馬看山)격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십여 년 만의 일본관광은 인상적인 볼거리가 적지
않았다. 여행사측에서 일정대로 계속 내달리는 바람에 힘겹기는 했으나
시간 낭비를 줄이려 알차게 짠 일정이라 그런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떠나는 날까지 퇴행성관절염으로 무릎이 아파 여행에 자신이 없다고 침울
해 하던 아내는 끙끙대면서도 끝내 일정을 모두 소화해 냈다.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물론 안쓰럽기는 했다. 게다가 끼니마다 일본식 성찬(盛
饌)이 나왔지만 비위에 안 맞는다며 아내는 거의 먹지 못 했다. 그렇게 먹는것이 부실했으면서도 뒤쳐지지 않고 따라다니느라 얼마나 힘에 겨웠을
까.
이번 여행에서 만이 아니다. 해외 여행 때는 번번히 그런 꼴이니 여행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렇듯 해외여행을 탐탁지 않아하는 아내 덕에 비용 절감은 꽤 되었지만 그렇다고 고마운 생각은 별로 우러나지 않는 게 솔직한 마음이다. 나를 이곳 한국 땅에만 진창 붙들어 맬 요량인 걸 어찌 고마워 한단 말인가.
이번 여행은 막내사위 내외가 주선하였다. 양쪽 집 어른들과 자기네 꼬마까지 동반하는 대 식구가 이동을 한 것이다. 그 동안 여러 차례 외국을 드나 들었던 여행과 비교할 때 비행기 좌석에서부터 특급호텔까지 그들의 세심한 배려가 있어 더욱 편안하고 좋았다. 자기네 가족들만 떠나지 않고 양쪽 집 어른들까지 생각했다는 점에서 그들의 성의가 돋보이는 여행이었다. 일행 중 그 사실을 알게 된 사람마다,
“딸을 낳고 볼 일이다. 부러운 일이다.”
라는 등 한마디씩 해댔다. 그저 듣기 좋게 한 말일망정 약간 우쭐한 기분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
첫날 ‘오다이바’에 들러 아오미(靑海)를 바라보았을 때다. 동경만을 중심으로 바다를 메운 일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규모는 잘 몰랐으나 장장 100
킬로미터에 이르는 넓은 해역(海域)을 메워 공업단지를 조성했다는 가이드의 말을 들으니 그들의 지혜와 야심이 참으로 경탄스러웠다. 만일 그러한 사업을 진즉 펼치지 않았더라면 오늘의 일본 공업화가 어떻게 가능할 수 있
었을가 싶었다.
우리 전라북도의 숙원사업으로 추진 중인 새만금개발사업도 하기에 따라
서는 엄청난 국부를 안겨주는 노다지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다. 오다이바에는 노사화합 기업경영으로 세계 제일의 실적을 올리고 있는 도요
다자동차의 전시장이 있었다. 해마다 한 번도 거르지 않는 노사분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우리나라의 H자동차를 떠올리며 씁쓸함을 느꼈다. 노동쟁의는 긍정적인 측면이 많은 민주사회의 제도이긴 하지만 자기의 삶과 직결되는 회사의 발전과 국민경제 쪽에서 신중해야지 도(度)를 지나친 횡포나 폭력적인 집회 따위는 없어야 되는 것이 아닐까.
이즈반도에 들어가는 입구에 위치해 있고 예전에 온천지로 유명했다는
누마쓰(沼津)라는 곳에 당도했을 때의 일이다. 아담한 고풍(古風)스러움이 도
시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호텔에 당도하니 기다렸던 대여섯 명의 종사원들
이 그들의 전통 의상을 입고 일행을 반가이 맞아 주었다. 식사 때도 일일이
시중을 드는 친절함을 보였고, 다음 날 떠나올 때도 역시 전통의상으로 갈아 입은 그들은 차가 안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며 배웅해 주었다. 그들의 그런 친절은 말할 나위 없이 영업적인 의도로 하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그들의 자상한 매너가 퍽 인상적이었다. 전에 일본 규슈지방 ‘시마바라’의 한 음식점에서는 종업원들이 현수막을 흔들면서 작별인사를 하는 걸 본 적이 있었다. 마음속으로야 손님들이 떠나는 게 뭐 그리 섭섭하겠는가만 단순히 겉으로만이라도 손님들에게 친절함을 보이는 것은 입 소문을 통해 자기 업소를 선전하는 효과를 노리고 한 행동일 것이다. 손님들은 구태어 진심어린 친절을 요구치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종업원들의 고달픔을 모르는 바가 아니나 그런 친절이 있으면 관광사업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겨졌다.
또한 관광지로 유명한 이즈(伊豆) 반도의 입구인 하꼬네를 샅샅이 둘러보며 먹으면 수명이 길어진다는 온천수로 삶은 계란(흑 달걀)을 먹기도 하고, 호수의 유람선을 탔던 것은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하꼬네는 일본의 이름난 온천 관광지답게 ‘히노끼’-목질이 단단한 나무-가 온 산을 가득 덮고 있었다. 나무 모양이 좋기도 했지만 정성들여 가꾼 흔적이 엿보였다. 선착 장에 닿으니 일제 때 삽을 어깨에 메고 일하러 가면서 불렀던 노래가 흘러 나와 옛날의 감회에 젖기도 했다.
“하꼬네노 야마와 덴가노…….”(하꼬네의 산은 천하의…)
인상적인 또 한가지는 일본 사람들의 검소한 생활모습이었다. 일본의 동경과
맞닿은 중앙고속도로나 관동고속도로 등 여러 고속도로를 장시간 달려 보았으나 어떤 곳을 막론하고 고급승용차는 거의 눈 씻고 볼래야 볼 수 없었다. 달리는 모든 차가 짐 실은 차가 아니면 소형차였다. 고급승용차는 동경 복판에 와서야 볼 수 있었다.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부자나라인 일본의 경제력을 생각할 때 그들의 검소한 생활은 우리가 본받을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름 값이 근래에 부쩍 오른 탓에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경차(한국1000 cc,일본 660cc)로 바꿔 탄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는 전체 자동차가운데 경차비중이 겨우 6%에 불과한데 일본은 무려 33%에 이른다고 했다. 세계적으로 선두를 다투는 자동차회사들이 큰 차를 만들어 세계시장에 내다 팔고 국내에서는 소형차를 개발하여 최근에는 매해 200만대 이상씩 경차가 팔려 나갔다는 것이다.
노인들이 왕성하게 일하는 모습도 남달랐다. 정책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결과겠지만 고속버스 톨게이트나 호텔의 종사원들이나 심지어 관광지의 매점에서 땀 흘려 일하는 노인들이 참 많기도 했다. 젊은이들은 잘 눈에 띄지 않았는데 대부분 산업현장에 모조리 투입된 탓에 그렇지 않았을까. 우리 나라 노인들의 취업률이 매우 낮고 일하려 해도 일자리가 없어 할일 없이 살아가는 현실과 대조적이어서 부러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우리 나라도 노령인구가 나날이 늘어나는 현실이라 대비책을 강구해야 할 것 같다.
여행은 비록 길지 않았으나 이번 여행에서 여러 차례 갈 기회가 있었으나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일본의 대표적인 산인 후지산((富士山)을 둘러 본 것은 큰 수확이었다. 산 중간 지점까지만 버스로 올라 갔는데 정상에는 한 여름인데도 아직 눈이 녹질 않고 그대로 덮여 있었으며 한기를 느낄만치 기온이 뚝 내려가 있었다. 국내외 관광객이 어찌나 많이 몰려왔는지 넓은 광장이 입추(立錐)의 여지가 없었다.
우리들이 일본관광을 하는 중에 마침 일본의 참의원 선거가 있었다. 현 집권당이 참패하고 야당인 민주당이 압승을 거두었으며 TV에서는 내내 선거에 관한 각 당의 분석토론이 이어지는 것을 들었다. 승리한 민주당의 선거 캐치프레이스는 “이젠 경제다!”였다. 나라마다 숨가쁘게 경제전쟁을 치르고 있음을 실감했고 전후의 평화헌법체제를 바꾸려고 법석대는 ‘아베’ 수상이 이끄는 집권당의 참패가 내심 통쾌했다.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하여 아직껏 떫은 감정이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배울 점이 많은 나라라고도 느꼈다.
(2007.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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