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기행

2007.10.31 05:19

이종택 조회 수:40 추천:14

<대만(臺灣)기행>

                      -대 자연과 세월이 빚어낸 태로협(太魯峽)-

                                                                                             이  종  택




일찍이 중국 본토에서는 ‘사람이 태어나서 장가계를 보지 않고서 백세가 되어도 어찌 노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人生不到 張家界면 百歲豈能 稱老翁)라고 했는데, 이곳 대만 사람들은 ‘사람이 태어나서 태로협을 보지 않고서 백세가 되어도 어찌 노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人生不到 太魯峽이면 百歲豈能 稱者翁)’라고 자랑했다. 대만의 세계적인 명승지 태로각국립공원을 찾아갔다. 태로각이란 이곳 원주민이었던 ‘타이야르 족’의 용감한 두목인 ‘타로코’의 이름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장춘교에서 바라본 ‘태로각협곡’은 얼른 봐도 대단한 명승지로 보였다. 그러나 이곳이 국립공원으로 개발되기까지는 수많은 난관이 있었단다. 하늘을 찌를 듯 3,000여m 높이로 솟은 산과, 깎아지른 절벽, 그리고 아스라이 저 밑으로 굽이쳐 흐르는 물결은 세계적 관광지로 개발할 가치가 충분히 있어 보였다. 그러나 당시의 대만의 국내기술과 장비로는 시공할 업체가 없어 장개석(蔣介石)총통이 고민하고 있을 때 그의 아들인 장경국(蔣徑國)이 제안했다. 본토에서 데리고 온 퇴역군인들을 활용해서 공사를 추진해 보자는 것이었다. 여기에 부자간의 의기가 투합하여 마침내 1957년에 착공하여 3년여 만에 장장 26km의 ‘동서횡관공로(東西橫貫公路)가 완공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군대식으로 밀어붙이다 보니 200여 명이나 되는 군인이 억지죽음을 당했는가 하면 수백 명의 중상자를 내고 말았다. 오! 슬프다. 노역장으로 끌려 나간 군인들이여! 그들 희생자의 넋을 달래기 위해 협곡 건너편 산 중턱에는 장춘사(長椿祠)라는 사당을 지어 의령(義靈)을 추모하고 있었는데 그 밑으로 떨어져 내리는 두 줄기 폭포는 하얀 광목을 풀어 놓은 듯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있었다.

횡관공로는 해발 400여m의 높디높은 절벽의 허리를 잘라 아슬아슬하게 에둘러가며 건설되어 있었는데 위를 보나 아래를 보나 절벽이었다. 구절양장 좁은 길은 환했다가 깜깜했다가 전등하나 없는 수많은 터널을 지나는 동안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도대체 이렇게 위험한 작업을 삽과 곡괭이로 어떻게 해냈을까? 자연을 정복하려는 인간의 의지가 이토록 강했단 말인가. 터널 천정이 길 위에 반쪽만 걸쳐있는 대목이 여러 곳이었다.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만 같았다.가이드는 지금도 가끔 돌멩이가 떨어지는 데 맞고 안 맞는 것은 순전히 자기 재수라고 했다. 대만은 이 공사를 하다가 이곳에 대리석과 옥 광산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는데, 대만은 이 대리석만으로도 30년 동안은 먹고 살 수 있다면서 앞으로 500년 동안이나 캐낼 매장량이 있다는 것이다.

구곡동계곡(九曲洞溪谷)에서는 모두 내려서 200m는 걸었다. 이곳이 태로각관광에서 하이라이트라는 것이었다. 가장 좁은 양쪽 단애(斷崖)의 폭이 10m도 안 되어 보이는 절벽이 눈앞에 서 있었다. 이름 그대로 창자처럼 꼬인 9개의 협곡은 대 자연과 세월이 빚어낸 거대한 조각품이었고 천태만상의 암석은 신이 만들어 낸 걸작품으로 신선들만이 사는 선경 같았다. 발  아래 물소리는 아득하고 절벽 끝에 걸린 바람이 우우우 울어댔다. 건너편 암석에는 오랜 세월 풍마우습으로 군데군데 구멍이 뚫려있었는데 제비들이 사는 연자구(燕子口)라 했다. 그 옆에 서있는 비석에는 비연영빈(飛燕迎濱)이라, 날아다니는 제비가 손님을 환영한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오래 전 우리 집 처마 밑에서 살던 그 제비와 닮았다. 그 제비들이 언제 이곳까지 날아왔는지 궁금했다.

오후엔 화련의 대리석공장지대로 찾아갔다. 그곳에는 대리석의 원산지답게 가공공장이 500여 개가 있다는 데, 단지 내에 들어서니 돌 가는 소리로 귀가 따갑고 먼지가 자욱했다. 먼저 대리석 전시장으로 갔다. 현관의 황옥으로 새긴 구룡(九龍) 작품은 대작이었다. 아홉 마리의 용이 살아서 움직이듯, 그 한 작품을 만드는 데 무려 2년이 걸렸다는 정교한 조각솜씨에 감탄했다. 사무실에는 탁자와 의자 등 응접세트 전체가 호랑이 무늬 대리석으로 조각된 작품이었는데 처음으로 본 것인지라 호기심에서 한 번 살짝 앉아보았더니 차갑고 딱딱했다. 왼쪽 전시실로 가봤다. 맨 먼저 옥돌로 만든 병풍이 눈에 잡혔다. 화려하고 정교하게 십이간지(十二干支)동물을 열두 폭에 새겨 붙여 놓았는데 그 값이 자그마치 5억원이라고 했다.

용산사(龍山寺)로 갔다. 용산사는 타이베이에서도 가장 중국적인 요소를 갖춘 곳이 아닌가 싶었다. 화려하게 장식한 지붕 문을 통과해서 들어가니 오른쪽 인공 폭포에서 쏟아지는 물이 시원스러웠다. 또 다시 용과 꽃의 문양이 새겨진 작은 문안으로 들어서니 자욱한 향내 속에 경전 읽는 소리가 웅성웅성 울려 퍼졌다. 향의 연기로 가득 찰 만큼 참배객이 많은 걸 보면 용산사가 크지는 않더라도 타이베이 시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절이란 걸 얼른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아이들로부터 노인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진지하게 참배를 하고 있었는데 2세에 대한 고민부터 진학과 관련한 소원까지,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다른 방법으로 빌고 있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자녀들의 대학시험 합격을 빌면서 엿을 붙이지만 이들은 몇 가지 야채들을 차려놓고 중얼중얼 무엇인가 빌고 있었다. 소원을 비는 방법이야 어떻든 용산사의 엄숙한 분위기를 보니 바라는 마음만으로도 소원은 이미 반쯤은 이루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도 한 쪽에 서서 우리 집의 가화태평을 빌고 나니 어쩐지 매사가 후련하게 풀릴 것 같았다.

                                          (2007.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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