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을 옮겨 심으며
2007.11.09 12:49
동백을 옮겨 심으며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기초반 배 영 순
내 키보다 더 큰 동백이 커다란 화분에 담겨진채 내 집으로 온 지 4년이 되었다. 해마다 꽃이 얼마나 많이 피어나는지 오히려 꽃 속에 잎사귀들이 피어 있는 듯했다. 게다가 실내의 따뜻한 온도 덕택에 화단의 동백이 꽃망울을 맺기도 전에 피기 시작하여, 두어 달 동안 한도 끝도 없이 피었다 지곤했다.
동백꽃은 목숨이 다하면 세상에 더 이상의 미련이 없는 듯 톡! 하고 떨어진다. 열정을 다하여 삶을 살다가 자신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톡! 떨어진 모습을 보면 나도 생명이 다하는 그 날 동백꽃처럼 떨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4년 동안 내 가족이 되어 추운 겨울에도 따뜻한 기쁨을 선사하던 동백나무 잎에 먼지가 뿌옇게 쌓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먼지인 줄 알고 젖은 수건으로 한 잎 한 잎 닦아 주었다. 그러나 여전히 혈색이 없어 희뿌연 먼지가 그대로 앉아 있는 듯이 보였다. 영양제를 넣어주고 물로 또 닦아 주어도 기력을 회복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아프면서도 때가 되면 꽃을 한 아름씩 선사하는 녀석을 보면 내 마음이 아팠다.
올 3월 초, 마지막 꽃이 다하던 날, 우리 가족은 이 녀석에게 완전하진 않지만 반쪽 고향이라도 찾아주기로 했다. 아파트 화단에 깊은 구덩이를 파고 심어 주었다. 사실, 아파트 화단이란 시멘트 바닥위에 흙을 좀 두툼하게 덮어 놓은 것이기 때문에 원래 이 녀석의 고향인 산이나 밭의 흙 같을까만 답답한 화분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려니 생각했다.
화분에 심겨져 내 집에 들어올 땐 나보다 크게 보이던 녀석이 화단에 심어 놓으니 내 키의 반밖에 안되었다. 화분에서는 뿌리 부분만 겨우 흙속에 담겨져 있었으니 영양분을 넣어 준들 제대로 흡수나 할 수 있었겠는가.
“비록 반쪽 고향이지만 무럭 무럭 자라거라!”
오고 갈 때마다 살펴봐도 집안에 있을 때 모습 그대로, 아직도 기력을 찾지 못하고 피부는 누렇게 떠 있었다. 흙이 메마르면 물을 떠다가 먹여주고 영양제도 넣어 주면서 살핀지 몇 달 뒤였다. 한때 내 가족이었던 녀석인지라 주변에 아무리 예쁜 꽃들이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고 있어도 이 녀석에게만 눈길이 가고 생기가 없는 모습이 안쓰럽기만 했는데, 며칠 전 국화향기 그윽한 화단을 지나, 집에 들어오던 길에 잠깐 들여다보니 꽃망울들이 탐스럽게 맺혀있고 잎은 혈색이 돌아 반짝 반짝 빛을 발하고 있었다. 녀석이 방긋 웃으며 입을 여는 듯했다,
“고향으로 보내줘서 고맙습니다!”
지금도 뿌리를 내려야 될 곳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영혼들이 많다. 자신에게 맞는 흙에 뿌리를 내린 이는 세찬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그렇지 못한 이는 가벼운 미풍에도 쓰러진다. 내 뿌리는 제대로 심어진 걸까? 오늘도 나는 가벼운 바람에도 흔들리지는 않는지 스스로 되돌아 볼 일이다.
( 2007. 11. 9. )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기초반 배 영 순
내 키보다 더 큰 동백이 커다란 화분에 담겨진채 내 집으로 온 지 4년이 되었다. 해마다 꽃이 얼마나 많이 피어나는지 오히려 꽃 속에 잎사귀들이 피어 있는 듯했다. 게다가 실내의 따뜻한 온도 덕택에 화단의 동백이 꽃망울을 맺기도 전에 피기 시작하여, 두어 달 동안 한도 끝도 없이 피었다 지곤했다.
동백꽃은 목숨이 다하면 세상에 더 이상의 미련이 없는 듯 톡! 하고 떨어진다. 열정을 다하여 삶을 살다가 자신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톡! 떨어진 모습을 보면 나도 생명이 다하는 그 날 동백꽃처럼 떨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4년 동안 내 가족이 되어 추운 겨울에도 따뜻한 기쁨을 선사하던 동백나무 잎에 먼지가 뿌옇게 쌓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먼지인 줄 알고 젖은 수건으로 한 잎 한 잎 닦아 주었다. 그러나 여전히 혈색이 없어 희뿌연 먼지가 그대로 앉아 있는 듯이 보였다. 영양제를 넣어주고 물로 또 닦아 주어도 기력을 회복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아프면서도 때가 되면 꽃을 한 아름씩 선사하는 녀석을 보면 내 마음이 아팠다.
올 3월 초, 마지막 꽃이 다하던 날, 우리 가족은 이 녀석에게 완전하진 않지만 반쪽 고향이라도 찾아주기로 했다. 아파트 화단에 깊은 구덩이를 파고 심어 주었다. 사실, 아파트 화단이란 시멘트 바닥위에 흙을 좀 두툼하게 덮어 놓은 것이기 때문에 원래 이 녀석의 고향인 산이나 밭의 흙 같을까만 답답한 화분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려니 생각했다.
화분에 심겨져 내 집에 들어올 땐 나보다 크게 보이던 녀석이 화단에 심어 놓으니 내 키의 반밖에 안되었다. 화분에서는 뿌리 부분만 겨우 흙속에 담겨져 있었으니 영양분을 넣어 준들 제대로 흡수나 할 수 있었겠는가.
“비록 반쪽 고향이지만 무럭 무럭 자라거라!”
오고 갈 때마다 살펴봐도 집안에 있을 때 모습 그대로, 아직도 기력을 찾지 못하고 피부는 누렇게 떠 있었다. 흙이 메마르면 물을 떠다가 먹여주고 영양제도 넣어 주면서 살핀지 몇 달 뒤였다. 한때 내 가족이었던 녀석인지라 주변에 아무리 예쁜 꽃들이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고 있어도 이 녀석에게만 눈길이 가고 생기가 없는 모습이 안쓰럽기만 했는데, 며칠 전 국화향기 그윽한 화단을 지나, 집에 들어오던 길에 잠깐 들여다보니 꽃망울들이 탐스럽게 맺혀있고 잎은 혈색이 돌아 반짝 반짝 빛을 발하고 있었다. 녀석이 방긋 웃으며 입을 여는 듯했다,
“고향으로 보내줘서 고맙습니다!”
지금도 뿌리를 내려야 될 곳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영혼들이 많다. 자신에게 맞는 흙에 뿌리를 내린 이는 세찬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그렇지 못한 이는 가벼운 미풍에도 쓰러진다. 내 뿌리는 제대로 심어진 걸까? 오늘도 나는 가벼운 바람에도 흔들리지는 않는지 스스로 되돌아 볼 일이다.
( 2007. 11. 9. )
댓글 0
|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 494 | 전설이 된 빈대 이야기 | 신기정 | 2007.11.13 | 428 |
| 493 | 망각 | 이민숙 | 2007.11.13 | 37 |
| 492 | 노래하는 산수유꽃 | 이수홍 | 2007.11.11 | 48 |
| 491 | 신비의 섬,울릉도 | 임두환 | 2007.11.10 | 45 |
| 490 | 만종 | 김동영 | 2007.11.10 | 47 |
| » | 동백을 옮겨 심으며 | 배영순 | 2007.11.09 | 37 |
| 488 | 납자루와 피라니아 | 신기정 | 2007.11.08 | 46 |
| 487 | 다비 | 신기정 | 2007.11.07 | 42 |
| 486 | ㅎ 목사님께 | 정원정 | 2007.11.04 | 42 |
| 485 | 나바위 피정의 집을 찾아서 | 김금례 | 2007.11.03 | 41 |
| 484 | 대만기행 | 이종택 | 2007.10.31 | 40 |
| 483 | 술의 속마음 | 김세웅 | 2007.10.30 | 48 |
| 482 | 생명의 땅, 순천만을 찾아서 | 임두환 | 2007.10.30 | 42 |
| 481 | 전해산 장군의 추모제를 보고 | 김종윤 | 2007.10.29 | 34 |
| 480 | 조선시대 역대 왕들의 진기록 | 두루미 | 2007.10.29 | 44 |
| 479 | 계절의 복병, 정전기 | 신기정 | 2007.10.28 | 33 |
| 478 | 첫날밤 | 최정순 | 2007.10.24 | 46 |
| 477 | 일본여행을 다녀와서 | 김세웅 | 2007.10.24 | 46 |
| 476 | 홀로 사는 노인들 | 이의 | 2007.10.23 | 43 |
| 475 | 스님께 | 정원정 | 2007.10.21 | 4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