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산수유꽃

2007.11.11 10:34

이수홍 조회 수:48 추천:18

노래하는 산수유(山茱萸)꽃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 목요반 이수홍



“나는 누구인가?” 라고 묻는 사람의 이야기다. 그의 부모는 산수유 꽃 논밭에서 자식농사를 지었다. 그 논밭에서 아들 딸 각 5명씩 수확을 했다. 열 명에게 인생길을 달리게 했다. 1,2번 주자는 여자였다. 남자 두 사람이 바통을 받아 달렸다. 여자에게 넘기더니 또 사내가 쥐고 가시내, 머스마, 가시내로 이어졌는데 그는 마지막 주자였다.

육상경기에서는 400m계주를 빼놓지 않는다. 보통 스타트는 순발력이 좋은 사람을 세운다. 마지막주자는 지치지 않고 달려 맨 먼저 테이프를 가슴에 들이댈 사람이 맡는다. 부모님은 사랑의 열매 10명에게 화려하게 산수유 꽃길을 가라고 하셨다. 4번 주자는 앞사람을 제치고 하이에나처럼 달리더니 좌측으로 추월하다가 반측으로 29살에 퇴장당하고 말았다. 9번째는 5년이 되던 해 장애물을 넘지 못하고 달리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그는 맨 마지막에서 70여 년간이나 달리고 있다. 그가 언제 달리기를 끝낼지 아무도 모른다.

산수유 꽃은 3월에 핀다. 봄의 전령사다. 무엇이 그리도 바쁜지 매화꽃에 뒤질세라 성급하게 핀다. 눈꽃이 자리를 내주지 않으려는 듯 사나운 눈보라를 내리쳐도 빙긋이 웃으며 피는 꽃이 산수유 꽃이다. 열매가 익을 무렵 꽃망울을 맺어 추운 겨울을 거뜬히 넘긴 힘이 있기에 눈보라쯤 아랑곳하지 않은가 보다. 70년간 살아온 동안 산수유 꽃이 눈보라를 맞지 않은 것을 본 일이 없다. 여린 듯 보이지만 강인한 산수유의 생명력은 놀랍도록 위대하다. 그 힘이 어디서 나올까? 질긴 나무에 여러 개의 조그만 꽃들이 뭉쳐서 하나의 큰 꽃송이를 이루는 게 산수유나무다. 아름다우면서도 장엄미를 간직한 꽃이다. 그는 산수유 꽃을 좋아하고 사랑한다. 그 꽃은 그가 태어나기 전에도 피었고 태어난 뒤에도 해마다 핀다. 내년에도 피고 또 앞으로도 영원히 필 것이다.

10남매(5남 5녀)의 막둥이로 태어난 그는 참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다. 바로 위 누나는 5년을 살다가 가버려서 8명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살아왔다. 하지만 그의 인생인들 사나운 눈보라 같은 시련이 어찌 없었겠는가! 11살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해 10월에 여순반란사건이 일어나 둘째형님이 돌아가셨다. 그러자 호랑이같이 무서운 큰 형님이 우리 집의 정권을 장악하여 호주가 되셨다. 아버지와 형님이 돌아가셔도 어려서 슬퍼 할 줄도 몰랐다. 빨갛게 익어 주렁주렁 매달린 산수유 열매도 수확을 못했다. 친구들과 산수유 열매를 따서 호주머니에 뺑뺑하게 넣고 다니며 서로  전쟁놀이를 했다. 학교도 반란군 토벌작전을 나온 군인들이 주둔하여 공부도 제대로 못했다. 전주북중학교 시험을 보았으나 낙동강 오리알이 되었다. 함께 시험을 치른 친구 두 명은 보결로 들어갔지만 그는 구례중학교 야간부에 입학을 하였다. 그에게 큰 힘이 되셨던 형님과 아버지가 돌아가신 설움을 그때에야 크게 느꼈다.

6‧25사변이 일어났다. 집이 지리산 빨치산들에 의해 불에 타버려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없게 되었다. 넷째 누님 집에 잠시 얹혀살면서 학교에 다녔다. 넷째 누님이 시어머니 눈치를 보며 괴로움을 당했던 일을 잊을 수가 없다. 배고픈 설움도 받았다. 학교를 중퇴해버리고 싶었지만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 때문에 참고 견뎠다.

그는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군내 가요콩쿠르에 나가 ‘꿈에 본 내 고향’을 불러 입상하기도 했다. 군대 훈련병시절에는 학과장에 나가 휴식시간에 으레 노래를 불렀다. 소대장에게 ‘고향에 찾아와도’ 란 유행가를 가르치기도 했다. 셋째형님은 그를 경찰관이 되게 했다. 경찰관이 되어서도 직장대항 노래자랑에 나가 실력을 겨루었다. 전투경찰대 부대장시절에 그는 대원레크리에이션 강사였다. 그때 가르친 노래는 가수 김상희가 불러 히트 친 ‘코스모스 피어있는 길’이었다. 회식 때면 당연히 첫 테이프를 끊는 첫 번째 가수다.

37년간 경찰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직 후 그는 판소리와 북을 배우기 시작했다. 취미로 시작했지만 남다르게 열심히 배웠다. 매사를 적당히 하지 않은 그의 성격답게 열정을 쏟았다. 판소리와 고수대회에 출전해서 판소리부문에서 2번, 고수대회에서 7번이나 상을 받았다.

그렇게 노래를 부르며 살던 그가 2006년 가을부터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에서 수필공부를 하고 있다. 글공부 또한 교수님의 불광불급(不狂不及=미치지 않으면 미칠 수 없다)이란 방침대로 수필에 미치더니 2007년 봄 계간종합문예지 ‘대한문학’에서 수필부문 신인상을 받아 수필가로 등단도 했다.

지난 10월 27일 행촌수필문학회가 전라남도 순천만 갈대밭으로 문학기행을 갈 때였다. 관광버스가 구례 산동을 지나갈 즈음 그는 마이크를 잡았다.

“여기는 내 고향 구례산동입니다. 산수유가 유명합니다. 산수유 꽃은 봄을 안고 맨 먼저 달려오는 봄의 전령사입니다. 해마다 3월이면 산수유축제가 열립니다. 온 산야를 노랗게 물들이다 가을이면 빨간 열매를 맺습니다. 그 열매는 보약으로 사용합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는 처녀들이 그 산수유 씨를 입으로 빼냈습니다. 산수유를 깐다고 합니다. 햇볕이나 따뜻한 아랫목에 말려 서 상위에다 쌓아놓고 처녀들이 둘러앉아 양손으로 번갈아가며 열매 한 알씩 잡아 이빨로 껍질을 벗기고 씨를 빼냅니다. 그래서 산동처녀와 키스를 한번 하면 보약 한 제를 먹는 효과가 있다는 유머가 생겼습니다. 지금은 기계로 그 작업을 하고 있으니 편리하기도 하지만 하나의 낭만이 사라져 아쉽습니다.”

자기가 건강한 이유가 산동 처녀의 덕이란 이야기로 말문을 닫을 거라는 사람들의 예측은 빗나갔다. 그 버스 안에 여자 회원도 버티고 있기에 인기관리를 위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수필 신인상 당선수상소감에서 자기가 산수유를 닮았다고 했다. 빨강색은 정열이고 노란색은 질투다. 여린 것 같이 보이지만 강인하고, 정열적이며 질투심이 강하다. 컴퓨터 자판을 열심히 두드리더니 신변잡기지만 책으로 엮어보겠다고 했다. 125편 넘게 썼는데 우선 70여 편을 가려 처녀수필집으로 선을 보이겠다고 했다. 어느 날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을 한 듯해서 까닭을 물었더니 책 제목 때문이라고 했다. 출판사에서 원고를 보내라는 날짜는 다가왔는데 아직도 제목을 정하지 못해 못 보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누구인가><명고수의 잠꼬대><제목을 찾습니다><조금만 웃기세요><얼굴 없는 천사><아내의 신발><내 어깨에 무궁화 꽃이 피고><그래도 산수유 꽃은 핀다><산수유 꽃길을 걸어온 삶><산수유 꽃길><산수유> 등 많은 가제목을 들춰봤지만 마음에 착 안기는 것이 없다고 했다. 수필장작강의실 칠판에 <책 제목 공모 상금 x 원> 이라고 써놓기도 했는데 상금을 밝히지  않아서인지 응모자도 없었다. 어제 행촌수필 게시판에 교수님이 올린 ‘웃기는 남자’라는 유머 글을 보고 무심코 댓글을 달았다.

★ 웃기는 남자 * 제목도 못 정해놓고 책 낸다고 요란 떠는 남자. * 완창 한 번 못 하고 판소리한다고 고함지르는 남자. * 직장 대표도 못된 주제에 테니스한다는 남자. * 어제 입은 옷 또 입으면서 멋쟁이인척 거울을 보는 남자. * 2차도 못 가면서 술자리에 앉은 남자. ♪ 아~~나는 노래하는 산수유꽃이다.♬
댓글을 본 나는 즉시 그에게 “제목은 여기에 있다. <노래하는 산수유꽃>이라고 일러주었다. 즉시 아내에게 알려 박수를 받았다. 행촌수필 문들우에게서 전화가 왔다.
“제목은 <노래하는 산수유 꽃>이 좋겠네요.”
어쩌면 그렇게 맞아 떨어졌는지 우연은 아니었다. 결정한 뒤라서 상금 받을 생각은 접으라고 농담을 했다.

매일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고 산수유 꽃같이 살았다고 한 그의 말이 생각나서 그렇게 하라고 했다. 글의 제목은 사람의 이름이나 상점의 간판과 같다. 제목을 정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실감했다. 결정을 하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홀가분해 하며 기뻐하는 그를 보는 내 마음도 무척 흐뭇하다.
                                                   [2007.11.10.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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