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 얼어죽은 날

2007.11.15 15:58

신기정 조회 수:762 추천:2

까마귀 얼어죽은 날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야) 신기정




온난화의 영향일까? 단풍든 잎과 겨루기라도 할 듯이 초겨울에 붉은 꽃을 매단 철쭉이 보인다. 새봄의 전령사(傳令使)를 포기하고 철없이 꽃을 피우는 나무가 느는 건 예삿일이 아니다. 농부들은 겨울이 매서울수록 월동하는 해충들이 줄어들어 이듬해 풍년이 든다고 한다. 그러나 비닐을 덧댄 창으로 코끝이 시린 겨울을 맞을 이웃들을 떠올리면 이내 따뜻한 겨울을 더 기대하게 된다.

예전 이슥한 겨울밤에는 군불을 지펴 고구마나 배추 끌텅을 삶았다. 뜨끈해진 구들방에서 장광의 살얼음이 섞인 싱건지를 곁들여 먹는 맛이 일품이었다. 두꺼운 솜이불 덕에 구들방은 새벽까지 온기를 유지했다. 그러나 아침이면 어른들의 바지가랑이를 잡고 들어서는 찬바람을 피해 우리는 더 깊이 이불속으로 기어들었다.

우리의 치기어린 잠투정은 아침 밥상이 차려질 때까지만 허용되었다. 아버지는 이불을 걷어내고, 어머니는 찬물을 적신 손으로 등을 쓰다듬었다. 고치를 잃은 번데기처럼 오므라들며 버티면 차가운 윗목으로 내몰아 잠을 깨웠다. 이 때 새벽같이 마실을 다녀오신 할머니가 웃으시며 한마디 거드셨다.

"아가. 그만 인나봐라. 저그 다리 밑에 까치하고 까마구가 겁나게 얼어죽어부럿써야. 언능 가서 주워오니라."

우리에겐 가마솥에서 데운 김이 모락거리는 뜨거운 물 한 바가지가 배당되었다. 물을 부으면 세숫대야 바닥에 엉겨 붙었던 얼음이 녹으며 스르르 미끄럼을 탔다. 할머니는 차가운 샘물을 더하고 수건으로 목 윗부분만 남게 물막이를 한 뒤 얼굴을 씻겨주셨다. 할머니의 손바닥은 거친 결이 적당한 마찰력을 갖추어 밀린 때를 시원하게 없애주는 성능 좋은 약손이었다. 이어 한 쪽씩 코를 번갈아 막고 코를 풀라고 하셨다. 다음은 손. 주저하듯 내미는 손을 보며 할머니의 탄식이 이어졌다.
"오메! 이거이 사람 손이다냐? 까마구가 보믄 친구허쟈고 그러것다."
"아유! 요놈의 손좀 봐라. 까마구가 보믄 아자씨~ 아자씨~ 그러것다."

구슬치기, 딱지치기, 팽이치기, 미나리꽝에서의 썰매타기 등 흙바닥에서 벌이는 놀이로 손이 트기 마련이었다. 변변한 방한장구도 없어서 동상에 걸리는 경우도 많았다. 형편이 좋아도 늘 손톱 밑에는 까만 흙이 끼어 있었다. 부르튼 손을 씻는 데는 반들반들 윤기가 흐르는 조약돌이 최고였다. 씻은 손에는 안티프라민이나 바셀린을 발랐다. 갈라진 상처를 콕콕 파고들던 겨울철 최고의 상비약이었다.

어린 시절, 우리는 다리 밑에서 주워 온 공통점을 가진 아이들이었다. 놀러 온 이웃 할머니로부터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의 충격은 대단했다. 비밀인 양 어른들이 짜고 거들면 우리들은 '엄마 없는 하늘 아래'의 슬픈 주인공이 되어 울먹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일이년만 지나도
"아니야. 거짓말이야."
라고 울먹이는 동생들을 천애의 고아로 만드는 악역을 태연히 거들곤 했었다.

요즘 아이들에겐 씨도 안 먹힐 말이다. 하지만 당시엔 집게로 고물을 집어 등에 진 커다란 대바구니에 보지도 않고 넣던 넝마주이들도 흔했다. 또 또래의 아이들이 찌그러진 깡통에 구멍 뚫린 벙거지를 쓰고 동냥을 다니는 것이 아주 낯선 풍경이 아니었다. 때문에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 ‘넝마주이가 데리고 왔다’는 말이 꽤나 설득력 있게 들렸었다. 코흘리개를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통과의례였던 것이다.

우리세대의 어린 날은 멀쩡하던 하늘에 갑자기 빗방울이 비치면 ‘호랑이가 장가가는’ 날이었다. 반대로 비 오는 날에 구름이 한쪽으로 물러나며 햇빛이 반짝이면 '여우가 시집가는'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그렇게 자연과 하나되는 고운 말들을 즐겨 쓰던 때가 '호랑이 담배 먹던' 먼 이야기가 아니다. 한 짐을 이룬 세월의 무게에 눌려 하늘을 볼 여유마저 잊은 것은 아닌지 반성해볼 일이다.

식량자급률은 형편없어도 생산비도 못 건진다고  경작을 포기하는 논밭이 늘어가고 있다한다. 이러다 진짜 먹을 것 없는 빈 들판을 헤매다 배고픔에 얼어 죽은 까마귀 이야기를 듣는 날도 있을 법하다. 실제 먹이사슬 파괴로 해마다 겨울이면 철새의 먹이까지 챙겨주어야 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또 휴전선 일대에서 독수리들이 무더기로 굶어죽었다는 소식이 반복되기도 한다. 때가 지나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동물들도 돌보는데 하물며 우리 이웃은 어떻게 해야 할까? 한겨울에 더 낮게 얼어붙는 어려운 이웃들의 가슴을 감싸줄 햇살 같은 온정이 올 겨울엔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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