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의 가을걷이
2007.11.15 21:16
우리 집의 가을걷이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야) 정원정
서리가 몇 차례 내렸다. 감나무 밑의 풀들이 시들시들 기세가 꺾였다. 감나무 잎도 부지런히 떨어진다. 대신 위에 매달려 있는 감의 색깔이 더 영롱하게 주황색 꽃처럼 날마다 더 예뻐진다. 감을 딸 때가 된 것 같다.
내가 이곳에 집터를 잡을 때, 이곳엔 감나무만 있었다. 아무 것도 없는 밭에 40여 그루의 감나무만 줄지어 서 있었다. 먹감나무였다. 붉은 감 얼굴에 검은 반점이 묻어 있는 게 먹감이다. 생김새가 작아서 상품가치는 없지만 맛은 어느 감보다 당도가 높고 홍시가 되면 육질이 일품이다.
20여 년 동안 이 감나무는 내게 기쁨도 안겨 주었지만 나를 고생도 많이 시켰다. 감나무가 많다 보니 해마다 감 따는 삯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게다가 가을이면 농촌은 누구나 바쁘지 않은가. 가까스로 일손을 구해야만 했다. 그렇다고 감에서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감나무는 나무질이 단단치 못해서 아무나 못 올라간다. 나무에 올라가다 나무가 부러지면 떨어져 다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몸도 가볍고 경험이 있는 사람이 감을 따게 된다. 감 따는 삯은 그래서 더 비싸다. 몇 해를 되풀이 하다보니 나도 꾀가 생겼다.
나무키가 낮으면 품삯이 적게 드는, 여자 놉으로도 될 성싶었다. 몇 해 동안 세 차례, 나무를 낮게 전지를 했다. 전지 삯으로 한꺼번에 인건비가 많이 들어가긴 해도 그게 좋았다. 감나무의 키가 낮으니 나도 감을 딸 수 있었다. 지금은 서른다섯 그루뿐이다.
고개를 맘껏 젖히고 간짓대로 나무 우듬지에 달린 감을 향해 조준을 한다. 넓고 깊은 가을 하늘에 하얀 구름 한 조각 천천히 유영하며 간짓대 끝을 지나간다. 하늘의 풍경은 감을 따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몇 개를 땄을까. 이번에는 날개에 햇빛을 받은 은빛 비행기가 텁텁한 포물선을 꼬리로 길게 내뱉으며 참으로 천천히 남쪽에서 북쪽으로 가는 것을 본다. 그림 같은 하늘바다를 새들은 거꾸로 나르는 듯 보였다.
또 큰 사다리 위를 4단까지 올라가면 처음엔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지만 그것도 극기가 된다. 높은 위치에서 보이는 사방 전망의 아름다움이 가슴을 탁 트게 해준다. 산의 아롱다롱한 단풍도 훨씬 아름다워 보인다.
이래저래 감 따는 재미도 있지만 며칠을 따다 보면 여간 고단한 게 아니다. 놉을 얻어 일을 해도 그 뒤의 잡다한 처리란 역시 힘이 든다. 40여 개의 노란 콘테이너 과일박스에 담겨질 양의 감을 선별해야 한다. 이미 익어 무른 것은 놓아두고 단단한 것만 택배로 애들과 친지들에게 보낸다. 택배비도 쏠쏠하다. 게다가 포장하는 일도 힘겹다. 그게 내 몫이다. 언젠가는 감당할 수가 없어서 큰 아들이 트럭을 빌려 와서 서울로 가지고 가서 친지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지난날에 가사 도우미 아주머니까지 불러서 감을 가져가게 했다. 감이 무거우니 택시비까지 쥐어주며 보냈다. 하찮은 것이지만 무슨 자선을 하는 양 그럴 때면 신이 났었다. 이제는 나무도 많이 전지를 했기에 일은 수월해졌다. 올해도 종이박스로 37개를 보냈다.
얌전한 사람은 하나도 허실하지 않고 먹는데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하는 것 같았다. 감이 똑같이 무르는 것이 아니어서 밑에서 익은 것을 위로 올려놓고 위에 있던 것을 밑으로 보내며 챙겨 먹는 일도 얌전해야 하는 것을 알았다. 홍시는 사람의 장을 윤활하게 한다고 한다. 겨우내 좋은 군것질감이다. 특히 노인들에게 더 좋은 게 과일이다. 무엇으로 그렇게 여럿이 나누어 먹겠는가.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정을 나누는 작업이다.
감을 다 따고난 감나무를 보노라니 말없이 다 내주고 앙상한 가지만 지닌 채 겨울을 맞을 모양이 안쓰럽다. 감나무는 봄엔 다른 나무들이 잎을 다 피워도 죽은 듯이 꼼짝도 않다가 어느 날 나뭇가지에 쥐 귀만 하게 잎이 붙어 있으면 참 신비롭다. 잎이 더 넓어지면 마치 기름을 칠한 것처럼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연녹색마저 너무 예뻐 무엇이 저토록 아름다우랴 싶다. 꽃이 피고 떨어질 무렵은 내 어릴 적 추억을 자극한다. 누구나 감꽃으로 목걸이를 만들어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여름에는 그늘을 만들어 주고 가을엔 열매를 맺어주며 또 겨울에는 가지마다 눈꽃으로 휘황찬란한 옷을 입는다. 그 나뭇가지마다 풍성하게 눈꽃을 피울 때면 그 밑은 마치 눈세계의 터널처럼 만들어진다. 그걸 보면 나 자신이 얼마나 왜소한지 모른다. 그 때만큼은 나는 어린애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그렇게 우리 집 감나무는 사계절 사람에게 기쁨을 주었다.
감의 수확 철이면 나에게 고된 행사를 치르게 했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인정을 맺어주기도 했다. 사람의 관계에서도 미운 정 고운 정 들듯이 우리 집 감나무도 나와 힘든 일 기쁜 일, 끈끈하게 맺고 살아 왔다. 정작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베풀기만 한 감나무가 오늘따라 더 그지없이 고마울 뿐이다.
감나무를 쳐다보니 가슴이 멘다. 이 지역에 첨단과학산업단지가 들어설 예정이서다. 내년 하반기에 공사를 착공할 예정이니 상반기에는 이주해야 한다. 감나무와 이별할 일을 생각하니 서운하기 짝이 없다. 머지않아 감나무가 베어질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Tm리고 눈물이 맺힌다.
(2007. 11. 12.)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야) 정원정
서리가 몇 차례 내렸다. 감나무 밑의 풀들이 시들시들 기세가 꺾였다. 감나무 잎도 부지런히 떨어진다. 대신 위에 매달려 있는 감의 색깔이 더 영롱하게 주황색 꽃처럼 날마다 더 예뻐진다. 감을 딸 때가 된 것 같다.
내가 이곳에 집터를 잡을 때, 이곳엔 감나무만 있었다. 아무 것도 없는 밭에 40여 그루의 감나무만 줄지어 서 있었다. 먹감나무였다. 붉은 감 얼굴에 검은 반점이 묻어 있는 게 먹감이다. 생김새가 작아서 상품가치는 없지만 맛은 어느 감보다 당도가 높고 홍시가 되면 육질이 일품이다.
20여 년 동안 이 감나무는 내게 기쁨도 안겨 주었지만 나를 고생도 많이 시켰다. 감나무가 많다 보니 해마다 감 따는 삯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게다가 가을이면 농촌은 누구나 바쁘지 않은가. 가까스로 일손을 구해야만 했다. 그렇다고 감에서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감나무는 나무질이 단단치 못해서 아무나 못 올라간다. 나무에 올라가다 나무가 부러지면 떨어져 다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몸도 가볍고 경험이 있는 사람이 감을 따게 된다. 감 따는 삯은 그래서 더 비싸다. 몇 해를 되풀이 하다보니 나도 꾀가 생겼다.
나무키가 낮으면 품삯이 적게 드는, 여자 놉으로도 될 성싶었다. 몇 해 동안 세 차례, 나무를 낮게 전지를 했다. 전지 삯으로 한꺼번에 인건비가 많이 들어가긴 해도 그게 좋았다. 감나무의 키가 낮으니 나도 감을 딸 수 있었다. 지금은 서른다섯 그루뿐이다.
고개를 맘껏 젖히고 간짓대로 나무 우듬지에 달린 감을 향해 조준을 한다. 넓고 깊은 가을 하늘에 하얀 구름 한 조각 천천히 유영하며 간짓대 끝을 지나간다. 하늘의 풍경은 감을 따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몇 개를 땄을까. 이번에는 날개에 햇빛을 받은 은빛 비행기가 텁텁한 포물선을 꼬리로 길게 내뱉으며 참으로 천천히 남쪽에서 북쪽으로 가는 것을 본다. 그림 같은 하늘바다를 새들은 거꾸로 나르는 듯 보였다.
또 큰 사다리 위를 4단까지 올라가면 처음엔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지만 그것도 극기가 된다. 높은 위치에서 보이는 사방 전망의 아름다움이 가슴을 탁 트게 해준다. 산의 아롱다롱한 단풍도 훨씬 아름다워 보인다.
이래저래 감 따는 재미도 있지만 며칠을 따다 보면 여간 고단한 게 아니다. 놉을 얻어 일을 해도 그 뒤의 잡다한 처리란 역시 힘이 든다. 40여 개의 노란 콘테이너 과일박스에 담겨질 양의 감을 선별해야 한다. 이미 익어 무른 것은 놓아두고 단단한 것만 택배로 애들과 친지들에게 보낸다. 택배비도 쏠쏠하다. 게다가 포장하는 일도 힘겹다. 그게 내 몫이다. 언젠가는 감당할 수가 없어서 큰 아들이 트럭을 빌려 와서 서울로 가지고 가서 친지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지난날에 가사 도우미 아주머니까지 불러서 감을 가져가게 했다. 감이 무거우니 택시비까지 쥐어주며 보냈다. 하찮은 것이지만 무슨 자선을 하는 양 그럴 때면 신이 났었다. 이제는 나무도 많이 전지를 했기에 일은 수월해졌다. 올해도 종이박스로 37개를 보냈다.
얌전한 사람은 하나도 허실하지 않고 먹는데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하는 것 같았다. 감이 똑같이 무르는 것이 아니어서 밑에서 익은 것을 위로 올려놓고 위에 있던 것을 밑으로 보내며 챙겨 먹는 일도 얌전해야 하는 것을 알았다. 홍시는 사람의 장을 윤활하게 한다고 한다. 겨우내 좋은 군것질감이다. 특히 노인들에게 더 좋은 게 과일이다. 무엇으로 그렇게 여럿이 나누어 먹겠는가.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정을 나누는 작업이다.
감을 다 따고난 감나무를 보노라니 말없이 다 내주고 앙상한 가지만 지닌 채 겨울을 맞을 모양이 안쓰럽다. 감나무는 봄엔 다른 나무들이 잎을 다 피워도 죽은 듯이 꼼짝도 않다가 어느 날 나뭇가지에 쥐 귀만 하게 잎이 붙어 있으면 참 신비롭다. 잎이 더 넓어지면 마치 기름을 칠한 것처럼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연녹색마저 너무 예뻐 무엇이 저토록 아름다우랴 싶다. 꽃이 피고 떨어질 무렵은 내 어릴 적 추억을 자극한다. 누구나 감꽃으로 목걸이를 만들어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여름에는 그늘을 만들어 주고 가을엔 열매를 맺어주며 또 겨울에는 가지마다 눈꽃으로 휘황찬란한 옷을 입는다. 그 나뭇가지마다 풍성하게 눈꽃을 피울 때면 그 밑은 마치 눈세계의 터널처럼 만들어진다. 그걸 보면 나 자신이 얼마나 왜소한지 모른다. 그 때만큼은 나는 어린애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그렇게 우리 집 감나무는 사계절 사람에게 기쁨을 주었다.
감의 수확 철이면 나에게 고된 행사를 치르게 했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인정을 맺어주기도 했다. 사람의 관계에서도 미운 정 고운 정 들듯이 우리 집 감나무도 나와 힘든 일 기쁜 일, 끈끈하게 맺고 살아 왔다. 정작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베풀기만 한 감나무가 오늘따라 더 그지없이 고마울 뿐이다.
감나무를 쳐다보니 가슴이 멘다. 이 지역에 첨단과학산업단지가 들어설 예정이서다. 내년 하반기에 공사를 착공할 예정이니 상반기에는 이주해야 한다. 감나무와 이별할 일을 생각하니 서운하기 짝이 없다. 머지않아 감나무가 베어질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Tm리고 눈물이 맺힌다.
(2007.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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