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강하던 날
2007.12.17 10:33
종강하던 날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오명순
오늘도 5분 지각이었다. 강의실 문을 살그머니 열었는데 문 여는 소리가 어찌 그리 크던지. 시선을 아래로 깔고 모기소리 만하게 죄송합니다 하고 강의실로 들어섰는데 순간 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빈 자리가 많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모두 내 탓인 것 같았다. 문우님들에게 문자로 인사를 드리지 않아서일까, 바쁘다는 핑계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지 못한 나의 게으름을 스스로 책망했다.
바쁘게 살다 보니 약속시간에도 늦고 성격이 점점 급해지는 것 같다. 걸음걸이가 빨라지고, 말이 빨라지며, 음식도 빨리 먹어서 자주 체하곤 했다. 그래서 느긋해지려고 많이 노력해 왔다. 이제 걸음걸이, 말씨, 빨리 먹는 습관이 고쳐져서 좋은데 또 나쁜 점이 생겼다. 너무 느긋해져서 게으름뱅이에 가까워졌다. 약속시간에 다른 사람보다 먼저 나가는 일이 드물고 더 늦어지기 일쑤다. 철저하고 깔끔한 성격이라고 자부해 오던 내가 이렇게 변한 것은 나이 탓도 있으리라. 느긋함과 게으름은 어떤 차이일까? 또 조급함과 부지런함은 어떤 차이일까? 이제 느긋함과 부지런함이 공존하는 내가 되기 위해서 또 노력해야겠다.
강의내용은 마지막 시간에 걸맞은 퇴고 즉 글다듬기의 중요성에 대해서 배웠다. 나의 경험으로 보아도 글을 써 놓고 여러 번에 걸쳐 퇴고했던 글은 남에게 보일 때 자신이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글은 차라리 보이지 말 걸 하고 후회했던 적이 있었다.
글을 한 편 쓰는 것이 아이를 하나 낳은 것 같은 산고를 겪어야 완성된다고 어느 선배님이 말씀하셨는데 맞는 말인 것 같다. 소재를 찾고 주제를 선정해서 글이 한 편 완성되기까지의 과정들을 돌아보면 그렇다. 특히 글 제목을 먼저 정해놓고 쓸 때는 펜을 들고 하얀 종이만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그만 둔 적이 많다. 마음을 비우고 영혼에 평안함이 찾아올 때는 단숨에 글이 씌어져 마침표를 찍는다. 그 때의 그 기쁨은 마치 가슴 속에 막혀있던 돌덩이가 쑤욱 빠져 나간 듯한 시원함 바로 그것이다. 읽는 사람은 잘 썼다, 못 썼다 쉽게 판단하겠지만 글을 쓴 사람은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을 수 없고 쉽게 쓴 글이 아닐 것이다. 나와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다고 해도 나의 잣대로 판단하지 않고 읽으면 작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일곱 여인이 다방에 모였다. 종강이라서 헤어지기가 아쉬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빛을 주고 받으며 식사를 마치고 근처 다방으로 들어갔다. 7,80년대에는 약속이 거의 다방에서 이루어졌었다. 터미널 근처의 다방은 맞선 보는 장소로 많이 이용되었고 음악다방의 멋진 DJ오빠들은 한결 같이 멋있어 보여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었다. 요즘은 커피숍이라는 이름이 더욱 낯이 익지만 오랜만에 다방에 들어서니 옛날 생각도 나고 정겨웠다.
결혼 전에 남편을 만나려고 남편 직장 옆 다방에서 3시간 이상을 기다린 적이 많았었다. 그렇게 기다리게 한 남편도 대단하고 나의 인내심도 대단했었다. 그렇다고 내가 남편을 더 좋아해서 그랬다고 생각하지 말았으면 한다. 내가 기다리고 있는 것을 잊었다는 게 그 사람의 변명이었으니 그런 사람과의 결혼을 다시 생각했어야 했다. 아무튼 내게 다방의 추억이 그리 달콤한 것만은 아니다.
30대에서 70대까지의 여인들이 모여 앉았다. 대화의 폭이 얼마나 다양했을까는 상상해 볼 수 있으리라. 놀라운 인연이고 만남이다. 한 학기동안 보내면서 이런 자리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참으로 아쉬웠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런 소중한 자리를 가끔 만들어 서로 대화하고 정보도 나누고 사는 이야기도 나눈다면 정말 좋으리라 생각했다. 도가니탕으로 보양을 하고 계란을 띄운 쌍화차를 마시며 아리따운 일곱 여인들은 다방이 떠나갈 듯 웃으며 수다를 떨었다. 노른자 동동 띄운 쌍화차, 환상적인 그 맛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2007. 12. 13.)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오명순
오늘도 5분 지각이었다. 강의실 문을 살그머니 열었는데 문 여는 소리가 어찌 그리 크던지. 시선을 아래로 깔고 모기소리 만하게 죄송합니다 하고 강의실로 들어섰는데 순간 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빈 자리가 많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모두 내 탓인 것 같았다. 문우님들에게 문자로 인사를 드리지 않아서일까, 바쁘다는 핑계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지 못한 나의 게으름을 스스로 책망했다.
바쁘게 살다 보니 약속시간에도 늦고 성격이 점점 급해지는 것 같다. 걸음걸이가 빨라지고, 말이 빨라지며, 음식도 빨리 먹어서 자주 체하곤 했다. 그래서 느긋해지려고 많이 노력해 왔다. 이제 걸음걸이, 말씨, 빨리 먹는 습관이 고쳐져서 좋은데 또 나쁜 점이 생겼다. 너무 느긋해져서 게으름뱅이에 가까워졌다. 약속시간에 다른 사람보다 먼저 나가는 일이 드물고 더 늦어지기 일쑤다. 철저하고 깔끔한 성격이라고 자부해 오던 내가 이렇게 변한 것은 나이 탓도 있으리라. 느긋함과 게으름은 어떤 차이일까? 또 조급함과 부지런함은 어떤 차이일까? 이제 느긋함과 부지런함이 공존하는 내가 되기 위해서 또 노력해야겠다.
강의내용은 마지막 시간에 걸맞은 퇴고 즉 글다듬기의 중요성에 대해서 배웠다. 나의 경험으로 보아도 글을 써 놓고 여러 번에 걸쳐 퇴고했던 글은 남에게 보일 때 자신이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글은 차라리 보이지 말 걸 하고 후회했던 적이 있었다.
글을 한 편 쓰는 것이 아이를 하나 낳은 것 같은 산고를 겪어야 완성된다고 어느 선배님이 말씀하셨는데 맞는 말인 것 같다. 소재를 찾고 주제를 선정해서 글이 한 편 완성되기까지의 과정들을 돌아보면 그렇다. 특히 글 제목을 먼저 정해놓고 쓸 때는 펜을 들고 하얀 종이만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그만 둔 적이 많다. 마음을 비우고 영혼에 평안함이 찾아올 때는 단숨에 글이 씌어져 마침표를 찍는다. 그 때의 그 기쁨은 마치 가슴 속에 막혀있던 돌덩이가 쑤욱 빠져 나간 듯한 시원함 바로 그것이다. 읽는 사람은 잘 썼다, 못 썼다 쉽게 판단하겠지만 글을 쓴 사람은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을 수 없고 쉽게 쓴 글이 아닐 것이다. 나와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다고 해도 나의 잣대로 판단하지 않고 읽으면 작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일곱 여인이 다방에 모였다. 종강이라서 헤어지기가 아쉬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빛을 주고 받으며 식사를 마치고 근처 다방으로 들어갔다. 7,80년대에는 약속이 거의 다방에서 이루어졌었다. 터미널 근처의 다방은 맞선 보는 장소로 많이 이용되었고 음악다방의 멋진 DJ오빠들은 한결 같이 멋있어 보여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었다. 요즘은 커피숍이라는 이름이 더욱 낯이 익지만 오랜만에 다방에 들어서니 옛날 생각도 나고 정겨웠다.
결혼 전에 남편을 만나려고 남편 직장 옆 다방에서 3시간 이상을 기다린 적이 많았었다. 그렇게 기다리게 한 남편도 대단하고 나의 인내심도 대단했었다. 그렇다고 내가 남편을 더 좋아해서 그랬다고 생각하지 말았으면 한다. 내가 기다리고 있는 것을 잊었다는 게 그 사람의 변명이었으니 그런 사람과의 결혼을 다시 생각했어야 했다. 아무튼 내게 다방의 추억이 그리 달콤한 것만은 아니다.
30대에서 70대까지의 여인들이 모여 앉았다. 대화의 폭이 얼마나 다양했을까는 상상해 볼 수 있으리라. 놀라운 인연이고 만남이다. 한 학기동안 보내면서 이런 자리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참으로 아쉬웠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런 소중한 자리를 가끔 만들어 서로 대화하고 정보도 나누고 사는 이야기도 나눈다면 정말 좋으리라 생각했다. 도가니탕으로 보양을 하고 계란을 띄운 쌍화차를 마시며 아리따운 일곱 여인들은 다방이 떠나갈 듯 웃으며 수다를 떨었다. 노른자 동동 띄운 쌍화차, 환상적인 그 맛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2007.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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