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우리 집 10대 뉴스

2007.12.22 19:52

김학 조회 수:747 추천:2

행복과 불행이 교차한 2007년
-2007년 우리 집 10대 뉴스-
                                    김 학


6백 년 만에 찾아온 황금돼지해라는 2007년 정해년(丁亥年)도 어느새 저물고 있다. 올해에 태어난 아이들은 평생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하여 예년보다 출산율이 조금 높아졌다고 한다. 특히 올해엔 제17대 대통령선거가 있어서 각 당은 대통령후보자 선출을 위하여 당내 경선을 거쳤고, 선거사상 처음으로 정당공천후보는 물론 무소속까지 무려 12명의 후보가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여 장밋빛 약속을 펼치며 말잔치를 벌였다. 1인당 입후보 공탁금이 5억 원씩이라고 하니 한 번에 60억 원의 공탁금이 모인 셈이다. 12명의 후보 중에서 이미 2명의 후보가 사퇴를 하였으니 10명의 후보가 각축을 벌이는 셈이다. ‘잃어버린 10년’인지 ‘되찾은 10년인지’ 투표일인 12월 19일이 지나면 판가름이 날 것이다.
신문사나 방송사들이 해마다 연말이면 10대 뉴스를 선정하여 발표하듯 2007년 올해에도 우리 집의 가족사(家族史)를 정리하여 10대 뉴스를 뽑아보고자 한다.

1. 어머니 이복남(李福男) 여사의 별세

1919년 기미년 1월 4일에 남원군 덕과면 신양리 비촌(扉村)에서 태어나신 어머니 이복남 여사는 17살 때 임실군 삼계면 삼계리 탑전(塔田)마을의 동갑나기 아버지 김옥기(金沃基)님과 결혼하셨다. 유교를 숭상하는 광주이씨(廣州李氏) 집안에서 출생하신 어머니는 신식교육을 받은 경주김씨 집안으로 시집을 오셔서 구식과 신식을 접목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셨다. 그러나 어머니는 결혼 14년 만에 남편을 잃고 그 다음해인 1950년 6‧25때에는 삼계초등학교 교장과 삼계면장을 지내신 시아버지마저 공산당의 총탄에 여의어야 했다. 그뿐 아니라 2남1녀 3남매 중 막내인 유복녀조차 병원 한 번 찾지 못하고 날려야 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한가로이 눈물을 흘릴 수도 없었다. 느닷없이 가장이 되셨으니 시어머니와 두 아들을 보살피며 큰살림을 꾸려가야 했으니까. 어머니는 왜소하셨지만 카리스마를 갖춘 여장부였다. 상머슴과 꼴머슴 등 두 명을 부리면서 농사를 지으셨다. 그러다가 1958년 봄 나와 내 동생이 고등학교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고향을 떠나 전주로 이사를 하셨다. 그때는 이사를 전문으로 하는 이삿짐센터도 없었으니 필요한 살림도구들을 오수에서 전주까지 완행열차로 모두 실어 날라야 했다. 그러니 그 고생이 오죽하셨을까? 어머니는 기울었던 우리 집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고 헌신노력하신 우리 집안의 중시조 할머니이시다. 그런 어머니께서 3년 남짓 병원을 전전하시며 병석에 누워계시다 지난 3월 15일 새벽 89세를 일기로 하늘나라로 가셨다. 어머니의 한 평생은 한 편의 대하드라마로 엮어도 모자랄 정도로 인고의 세월이었다. 어머니를 오래 전에 돌아가신 선산의 아버지 곁에 모셨다. 이승에서 있었던 온갖 이야기들을 아버지에게 들려드리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2. 둘째며느리 최수영 임신

미국 텍사스주립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IT를 전공하는 둘째아들을 따라가 달라스에서 사는 둘째며느리 최수영이 임신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왔다. 2005년 9월 9일 결혼하였으니 손꼽아 그 소식을 기다리던 참이어서 기쁨은 더 컸다. 보석디자이너인 둘째며느리가 미국의 보석디자인회사인 포비온에 취직을 했는데 무거운 몸으로 어떻게 회사의 일을 감당할 수 있을지 은근히 걱정이 된다. 2008년 3월에 출산예정이라는데 가끔 산부인과에서 태아 사진을 찍어 e-mail로 보내주니 우리 내외도 태아의 노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참 좋다. 큰아들과 딸은 이미 아들을 낳았고 둘째까지 아들을 낳을 예정이라니 나중에 내가 저승에 가서 조상님들을 뵙더라도 떳떳이 말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아 기쁘다.

3. 장인 유시성(劉時成) 어르신 별세

장모님께서 돌아가신 7년 만인 12월 7일 새벽 5시, 장인어르신께서 82세를 일기로 눈을 감으셨다. 성가한 1남3녀를 두셨지만 홀로 사시다가 서너 달 전 병원에 입원하신 뒤 돌아가신 것이다. 한국전력에서 근무하고 퇴직하신 장인 어르신은 제1회 부동산중개사 시험에 응시하여 합격하셨지만 그 자격증을 한 번도 활용하지 않고 날마다 증권회사에 나가시며 소일하셨다. 고향인 정읍시 입암면 연월리 장모님 옆자리에 묻히셨다. 순망치한(脣亡齒寒)이란 고사가 떠오른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듯 바람을 막아주시던 어른들이 다 돌아가시니 이제부터는 내가 우리 가족들의 바람막이가 되어야 한다.

4. 제1회 연암문학상 대상 및 대한민국 향토문학상 수상

2003년에 펜문학상과 전주시예술상을 수상했듯이 올해도 나에게 상복이 터져 두 가지의 문학상을 받았다. 먼저 대한문학사가 제정한 제1회 연암문학상 대상을 받았다. 11월 24일 오후 4시 전북 부안군 변산면 격포 전북학생해양수련원에서 성대한 시상식이 열렸는데 경향 각지에서 참석한 3백여 명의 문인들이 축하해 주어 고마웠다. 연암은 열하일기를 쓴 조선시대 문사 박지원 선생의 호다. 연암은 그 열하일기에서 ‘일신수필’이란 말을 처음으로 사용하였는데 그것을 기리고자 그 작품을 썼던 7월 15일을 ‘수필의 날’로 정하여 기념행사를 갖는다. 그런 인연이 있기에 제1회 연암문학상 대상을 받은 것은 영광이다. 또 12월 8일 오후 2시 전남 화순군 동북면 금호 리조트에서는 제7회 대한민국 르네상스문학상과 향토문학상 시상식이 있었다. 나는 대한민국향토문학상을 받았는데 전국지역문학인교류대회에 참석한 문인 6백여 명이 아낌없는 박수로 축하를 해 주었다. 나는 문학 활동을 하면서 꽤 많은 상을 받았다. 속된 말로 상복을 타고 난 모양이다. 고맙고도 미안한 일이다. 더 열심히 노력하고 정진하라는 채찍으로 받아들여야겠다. 앞으로도 나는 수필가로서, 수필전도사로서의 소임을 다하려고 한다.

5. 둘째아들 김창수(金昌洙) 펜실베니아주 카네기 멜론 대학으로 옮겨  

미국 텍사스주립대학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하던 둘째아들 창수가 내년부터는 펜실베니아주 피츠버그에 있는 카네기 멜론대학으로 옮겨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 카네기 멜론대학은 미국의 최고 사립명문 아이비리그대학으로서 둘째가 전공하는 전자마그네틱분야에서는 미국에서 가장 알아주는 대학이라고 한다. 학비가 1년에 3만 달러일 뿐 아니라 지도교수 Dr, Mark Kryder 교수 역시 Hard Disk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의 권위자라고 한다. 둘째아들이 옮겨갈 카네기 멜론대학은 MIT, 스탠포드와 더불어 미국의 3대 명문 공과대학일 뿐 아니라 세계적인 권위를 지닌 지도교수까지 만났으니 드디어 소원성취를 한 셈이다.
다행이 둘째아들은 카네기 멜론대학교 전자과 Dean's Followship 수상자로 선정되어 3만 달러의 등록금 일체를 면제 받고, 매달 1,950달러의 월급을 받기로 했다니 넉넉하지는 않지만 공부하는 데는 별 지장이 없을 것 같아 안심이다. 두드리면 열린다더니 둘째의 도전정신이 이룬 쾌거다. 이름난 학교와 명성 높은 지도교수를 만나게 되었으니 천만 다행이다 싶다.

6. 고명딸 김선경(金宣京)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원 박사과정 합격

성균관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사범대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고명딸 선경이가 이번에는 같은 대학원 박사과정시험에 합격하여 가정교육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고향이 박사고을이니 너희들도 박사가 되라고 귀에 못이 박히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더니 그게 주효했던 모양이다. 앞으로 세월이 가면 갈수록 가정교육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질 터이니 딸아이가 학위를 받고나면 쓰일 곳이 많으리라 기대한다. 어려서부터 선경이는 집요하게 파고드는 성격이었다.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믿는다.

7. 승진연수를 받은 큰아들 김정수(金廷洙)

LG텔레콤 대리로 근무 중인 큰아들 김정수는 11월 마지막 주에 1주일간 승진연수를 받았다. 내년 1월부터 과장으로 승진하게 된다고 한다. 직장인이 가장 바라는 점은 승진과 월급 인상일 것이다. 회사를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하다 보면 이렇게 기쁜 날도 오는 법이다.
능력이 뛰어나고 인간성이 좋으면 만점짜리 직장인이다. 그 두 가지 중 한 가지라도 갖춰야 직장에서 버틸 수 있지, 그렇지 못하면 직장에서 뿌리를 내리기 힘들다. 나는 큰아들이 CEO가 되는 그날까지 열심히 창의적으로 일하고, 건강관리에도 힘쓰라고 권하곤 한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꿈을 다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큰아들 김정수 파이팅이다.

8. 수필평론집 <수필의 맛 수필의 멋> 출간

나는 올해 수필평론집 <수필의 맛 수필의 멋>을 대한문학사에서 펴냈다. 9권의 수필집을 펴낸 뒤 처음 낸 수필평론집이다. 지금까지 문학 활동을 하면서 써 준 후배들의 수필집 발문을 모아 묶은 것이다. 나로서는 10권 째 저서를 낸 것이다. 앞으로 내가 몇 권의 저서를 낼 수 있을지는 신이나 알 수 있을 뿐 아무도 모른다.

9. 아프리카 세네갈의 다카르에서 열린 제73차 세계 펜 대회 참가

올 7월 4일부터 11일까지 아프리카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에서 제73차 세계 펜 대회가 열렸다. 나는 한국대표의 일원으로 그 대회에 참가했었다. 처음으로 밟아 본 아프리카는 나의 관심과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피부색과는 상관없이 사람이 사는 곳에는 어디에나 예술이 있고, 정치가 있었다. 이번 아프리카 여행에서 기행수필 6편밖에 건지지 못했지만 가장 보람이 큰 여행이기도 했었다.

10. 안골노인복지회관 노래교실 등록

안골노인복지회관으로 탁구를 치러 다니다가 2학기부터는 노래교실에 등록을 하였다. 매주 화요일과 토요일 오전에 2시간씩 노래를 배운다. 가요 64곡이 수록된 교재를 샀는데 내가 잘 부를 수 있는 노래는 한 곡도 없었다. 노래를 배우는 일은 즐거웠다. 100여 명이 넘는 남녀 수강생들이 열심히 노래를 배웠다.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면서부터 노래가사가 잘 외워지지 않는다. 노래교실 역시 마찬가지다. 기억력이 감퇴한 영향도 있겠지만 너무 기계에 의존하다 보니 그리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새해에도 또 노래교실에 나갈 계획이다. 나는 평소 노래방에 드나들면서 시방(詩房)이나 수필방(隨筆房)도 생겨서 온 국민들이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르듯 시방과 수필방을 찾아가 시도 읊고 수필도 낭송하면서 즐거움을 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황금돼지해라는 2007년 정해년도 어느새 저물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가 압도적인 표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민심은 천심이라고 했는데 이명박 후보가 천심을 얻은 것이다.
가버린 한해를 되돌아보면 기쁜 일도 있지만 슬픈 일과 아쉬운 일도 있기 마련이다. 세상을 사노라면 그런 일들이 얽히고설키며 일어나는 법이다. 그것이 인생살이다. 그러나 이 다음에는 더 좋아지겠지 기대하면서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다. 우리 선인들도 그랬고, 우리와 우리 후손들도 그럴 것이다. 내일이 있기에 오늘의 고통을 견딜 수 있다. 누구에게나 내일은 희망인 것이다. 2008년 무자년이 다가오고 있다. 뚜벅뚜벅 그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성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