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은 내 생애에서 가장 화려한 한 해

2007.12.29 20:14

최정순 조회 수:735 추천:2

2007년은 내 생애에서 가장 화려한 한 해  
- 2007년 우리 집 10대뉴스 -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최정순



2007년은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한 해였다고 말하고 싶다. 황금돼지만큼이나 떠들썩하게 나도 황금빛 옷을 입었었는데, 화무십일홍이라더니 정해년도 벌써 마지막 문턱에 이르렀다. 빠르다 빠르다하지만 세월같이 빠르랴. 세월이 내 마음을 알아줄 길 없으니 세월에 순응하리라. 올해도 우리 집 10대 뉴스를 기록으로 남기려 한다.
  
1. 남편 후두암 수술 뒤 계속 치료 중    

집안의 중심인 가장이 2006년 2월 9일 후두암으로 목 수술을 하고나서 정기검진을 계속 받는다. 12월 5일 6개월 만에 찾은 병원, CT촬영 결과 다행이도 별 이상이 없다. 다시 6개월 뒤 지료를 예약했다. 목을 수술하면 본래의 음성을 되찾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던데, 불편하지만 의사소통에는 거의 지장 없이 ‘이만큼’ 되는 일도 천행이라 했다. 앞으로도 계속 정기검진은 받을 것이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2. 큰손자 정종욱 전국수학경시대회 대상

  손자 종욱이가 막 태어났을 때는 튼튼해 보이지 않아 걱정했는데 요놈이 벌써 초등학교 4학년이다. 영어도 잘하지만 성균관대학교 주최 전국수학경시대회에서 5학년수학에 도전하여 작년에 이어 올해도 대상을 거머쥐었다.
“종욱아, 자랑스럽다. 활발하게 뛰놀며, 어른께 인사도 잘하고, 친구들과도 사이좋게 지내기 바란다.  정종욱, 파이팅이다!”

3. 아파트로 이사  

그 동안 30년 가까이 단독주택에서 살다가 전주시 덕진구 우아동 대우2차푸르지오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아파트에서 살아보니 단독주택에 비해 아주 편리하고 좋다. 자식들이 잘 사는 것도 고마운 일인데, 우리 부부가 아파트로 이사하도록 도와 준 아들과 며느리가 정말 고맙다.  
  
4. 신인상 당선으로 수필가 등단의 꿈 이뤄      

종합문예지「대한문학」(제19호) 가을호에서 신인상을 수상하여 수필가로  등단을 했다. 옹달샘 물은 퍼낼수록 맑은 물이 고이건만 내 머릿속 글샘은 어찌 이리 가뭄을 타는지……. 어렵사리 얻은 자리이니 새해부터는 더 열심히 글을 쓰려고 한다.      

5. 독무대공연

10월 24일 부안 변산반도 전북학생해양수련원에서였다. 대한문학상, 연암문학상, 신인상을 수여하는 영광스런 자리. 전국에서 모인 300여 문학인과 수상자, 그 가족친지 등 수준 높은 이들이 지켜보는 무대에서 15분정도 판소리를 할 기회가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영광이고 큰 경험이었다. 명고수로 통하는 이수홍 회장님 역시 나에겐 과분한 고수님이었다. 지도해주신 김 학 교수님과 축하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6. 복 터진 해외여행

1월에는 12박 13일 여정으로 그리스, 터키, 스페인, 포르투갈, 불란서, 암스테르담을 다녀왔다. 몸담고 있는 봉사회가 추진한 성지순례여행이었다.  또 11월에는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등 동남아를 5박 6일 일정으로 다녀왔다. 가족 같은 교직동호인 모임이어서 역시 빠질 수가 없었다. 우물 안의 개구리였던 내가 한반도를 벗어나 세계가 좁다하게 돌아다녔다. 이제 기행수필을 써서 견문을 기록으로 남길 일만 남았다.

7. 천주교 전주교구 성령봉사회 총무를 맡다

  천주교전북교구 산하에 여러 개의 심신단체가 있다. 그중 ‘전주교구성령쇄신봉사회’라는 단체가 있는데 한마디로 신앙을 북돋우는 게 주 업무다. 봉사자 수가 100명이 넘는다. 전북대병원장을 역임한 바 있는 안득수 박사께서 회장으로 다년간 봉사하시는데 금년에 내가 총무를 맡게 되었다. 임기동안 깔끔하게 모든 일을 처리하려고 한다.  

8. 동생 최대관 재취업  

현대건설 전기부 부장으로 해외 파견근무도 여러 해 동안 했던 동생 최대관이 퇴직한 뒤 일거리가 없이 지내더니 다시 재취업이 되어 부산으로 떠났다. 나도 덩달아 기쁘다.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일인가!    

9. 하늘나라로 간 손아래 동서

여태 고향을 지키면서 선산을 돌보고 열심히 농사를 짓던 손아래 동서가 지난 9월 먼저 조상님 곁으로 갔다. 고향을 지키던 동서의 빈자리가 너무 크다. 부디 명복을 빈다.  
  
10. 인기 없는 단독주택 언제쯤 팔리려는지

단독주택이나 우리 집 막둥이 인기 없는 것은 마찬가지인가보다. 집은 살면서 팔아야 한다고 사람들이 이사할 때 말린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우편물을 가지러 가보면 정말 나간 집 같다. 집이나 사람이나 멀쩡한 것이 폐허로 바뀌는 것이 무엇이 다르랴. 나에게는 팔리지 않는 물건 하나가 더 있다. 효성중공업에 근무하는 우리 집 막둥이 때문이다. 인물 반듯하겠다, 직장 짱짱하겠다, 왜 결혼에 신경을 쓰지 않는 건지 모르겠다. 눈높이를 낮추어 무자년에는 꼭 결혼하길 기원한다.
“정지균 과장, 제발 장가 좀 가라. 알겠니? 정 과장, 파이팅이다.”

한 해의 삶을 되돌아보면 감사해야할 일로 꽉 차 있다. 그러나 아쉬움이 남는다. 족자에 걸려있는 문구를 본다. ‘거안사위(居安思危).’ 그리고 후회하지 말라는 주자십회훈(朱子十悔訓)을 되새겨 본다. ‘춘불경종추후회(春不耕種秋後悔)-봄에 씨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거둬들일 것이 없어 후회한다.’
아파트로 이사한 일과 수필신인상 수상은 화려했던 일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언제부턴가 기도제목 하나가 더 늘어서 나 자신도 놀란다.
“하느님, 최 카타리나 글 좀 잘 쓰도록 맑은 지혜를 주시옵소서.”  

                    정해년 세밑 (2007. 12. 30. 일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