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문화탐방기
2008.01.07 10:28
문화교류의 관문 후쿠오카
-일본 문화탐방기(1)-
행촌수필문학회 이윤상(제156호)
일본의 후쿠오카는 부산에서 서울 가기보다 더 가까운 거리다. 큐슈의 관문으로서 우리나라와 문화교류가 가장 많았던 지역이다. 1884년 하카다현과 후쿠오카현이 통합되어 후쿠오카현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도 항구 이름은 하카다공항으로 부른다. 후쿠오카는 현재 500만 인구로, 시내 인구만도 140만 명이고 일본에서 8번째 가는 큰 도시요, 아름다운 도시로 알려져 있다.
이번 일본세미나는 후쿠오카 지방의 문화탐방이다. 후쿠오카 공항은 353만 850㎡이며 활주로는 2800m*60m로 1개 코스다. 현재 국내선은 1일 약 250편, 국제선은 주간에 230편이 운행되는 일본에서도 큰 국제공항이다. 후쿠오카 여객터미널 중심가는 16차선 도로망으로 관광객이 붐비는 복잡한 도시임을 알 수 있었다.
오전 9시 40분 인천공항에서 떠오른 아시아나 항공기는 55분간 날아서 후쿠오카 공항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나오니 봄을 재촉하는 보슬비가 내렸다. 곧바로 현지가이드는 우리를 로이얄 관광버스로 안내했다. 공항구내를 벗어나 일본 전통적인 마을길을 통과하여, 토산품 판매장을 겸하는 관광식당에서 오찬을 들었다. 축소지향적인 일본인 식당도 관광객이 늘어남에 따라 대형식당으로 변모되었다. 우리 연수단 240명이 들어가도 공간이 넉넉했다. 의자가 놓여진 것을 보니 천 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일본 정통식당으로서 찬합에 1인 1찬의 반찬을 담았지만, 한 톨도 남기지 않을 만큼 소량을 고루고루 넣었고, 밥은 밥통에서 자유로 퍼먹게 했고, 된장국물도 공기로 여러 번 퍼서 마시게 했지만 뷔페식이 아니고 좌석으로 배식되는 형태였다. 음식물쓰레기를 하나도 버릴 것 없게 배식하는 음식문화는 우리들이 꼭 배워야 할 점이었다. 우리나라는 음식물쓰레기로 연간 8조원을 날리며, 그것을 처리하는데 얼마나 몸살을 앓고 있는가. 일본 여행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음식을 남기지 않고, 휴지를 버리지 않는 문화만 실천한다면, 그 이상의 큰 수확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슬부슬 내리던 비도 오후 1시 30분 우리가 후쿠오카 관광에 나서려니 멈추었다. 춥지도 덥지도 않는 3월 중순이다. 이곳 기온은 우리나라 4월 중순의 날씨로 포근했다. 첫 번째 코스는 시사이드모모치 해변에 위치한 234m 높이의 정삼각형의 후쿠오카 타워였다. 1988년 후쿠오카시 100주년 기념으로 세웠다는 탑이다. 후쿠오카 타워는 새로운 출발하는 범선에 비유하며, 항해 시 안전운행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했다. 약 8천 장의 반투명거울로 만들어져 있어 미러세일(mirror sail)이라 부르기도 한다. 116m 123m두 지점에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으며, 약 70초 만에 123m까지 올라가는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자랑한다, 5층 전망대에서 바라보니, 하카다 만과 후쿠오카 돔, 타워 주변의 공원, 마리존 등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었다.
다음은 국영 "우미노나가미치" 해변공원 마린랜드로 향하였다. 하카다 만과 갠 가이나다를 가로 막은 통칭 우미노나가미치는 540ha로 일본 최대 규모의 해양공원이다. marine world로 불리는데, '쓰사미난류'를 테마로 삼아 350종, 2만여 점의 바다생물을 영상, 음향기기, 수중카메라 등 다양한 전시 방법으로 전시해 놓은 바다 학습관이었다. 1~3층까지 수족관을 돌아보고 나오면 바로 돌고래 쇼 장이었다. 돌고래를 잘 훈련시킨 쇼맨이 나와서 돌고래를 쇼로 유도하는 장면을 한 시간 가량 흥미롭게 관람했다.
세 번째는 큐슈를 대표하는 국립박물관으로 갔다. 일요일이지만 평일처럼 개방하고 일본인 특유의 친절로 관광객을 맞이했다. 일본문화의 형성과 아시아 대륙과의 교류역사를 알 수 있게 했다. 1.2층은 큐슈 자체 소장품이고 외국 관광객은 3층부터 관람한다. 3층에는 국‧내외 다채로운 작품들이, 4층 문화교류실은 여러 나라와의 교류작품과 하나가 된 지구, 가까워진 서양이라는 주제로 잘 전시되어 있었다.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시내 복판에 있는 SeaHwak호텔로 향했다. 로비에 들어서니 한복정장으로 예쁘게 차려입은 일본으로 시집온 한국여성들이 극진한 친절로 우리를 환영했다. 일본인과 결혼해서 최근에 가정을 이루고 사는 한국여성이 일본에 약 6천 명이나 된다는 말을 듣고 놀랐다. 어찌나 친절하게 맞아주고 기념사진도 찍자고 하며, 가방도 자기네가 운반해 주고 만찬장 안내도 하는 한국여성을 대하니 언어도 잘 통하니 너무나도 감동적이었다. 외국에 온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어느 관광지 특급호텔에 들어 온 느낌이었다. 시확호텔은 호수처럼 맑은 바닷물이 드나들고, 후쿠오카 돔이 바로 옆에 있으며, 열대식물과 온실정원, 사철 꽃이 피는 그야말로 최고급 호텔이었다. 객실에 여장을 풀고 만찬장에 나오니, 만찬 프로그램으로 여러 가지 예술 공연을 했다. 일본인 초‧중등학교 여학생들이 그룹으로 출연하여 일본 전통 춤을 보여주고, 가수 사카이히로미의 가요독창, 안용희의 섹스폰 연주로 열애, 동심초 등 4곡을 연주해 주었다. 정통일식의 성찬인데다, 노래와 춤, 섹스폰 연주로 입맛을 돋우니, 매우 황홀한 만찬이었다. 내가 투숙한 방은 아침에는 동해의 밝은 햇살이 노크하고, 호텔 마당으로 넘나드는 물, 출렁이는 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특실을 독방으로 쓰게 되니, 너무나도 환상적이었다. 이 좋은 방에서 5박을 하면서 세미나에 참석하고, 큐슈 유명관광지를 돌아보니,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마치 극락에 온 기분으로 첫날밤을 보냈다.
--06.3.12~16 후쿠오카 세미나를 다녀와서 3.17씀--
높아진 한국위상
-일본문화 탕방기(2)-
행촌수필문학회 이윤상(제157호 )
일본에는 한류열풍이 한창이었다. 특히 ‘겨울연가’란 우라나라 드라마를 본 뒤 욘사마 열풍이 일본 전역을 휩쓸고 있다고 한다. 욘사마란 용왕님이란 뜻이다. 일본어에서는 님이라는 존칭을 쓰지 않는다. 다만 일본황실 호칭에만 님자를 쓴다. 그런데 사마, 즉 님이라는 글자로 극존칭을 붙인다고 했다. 배용준을 용왕님으로 호칭한다는 의미다.
욘사마 열풍으로 일본의 지방이나 도시마다 한국어교습소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한국어를 배우는 일본인들이 엄청 많아졌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한국어 교습소마다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단다. 한국인들의 아르바이트자리도 그 만큼 늘어났고, 한국가요를 익히고, 한국영화 개봉극장이 초만원을 이룬다. 일본인은 한국어를 배워서 가이드 없이 한국여행을 자유로이 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는 것이 큰 꿈이라 했다.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그만큼 한국의 위상이 높아졌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가는 곳마다 도로 표지판이나 식당에도 한국어로 간판이 걸려 있는 모습을 보니 어깨가 으쓱해졌다.
내가 현직 교장으로 있을 때 일본 큐슈의 미아자끼 오츠카 소학교와 자매결연을 하고 그 학교를 두 번이나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 학교 여선생 한 분이 교류학습을 담당한 뒤 한국어를 1년간 열심히 배우고, 여름 방학 때는 연세대학교 어학원에 와서 한국어 학습을 하여 통역 없이 나와 대화를 나눌 정도가 된 것을 보고 놀랐던 적이 있다. 우리 학생들을 인솔하고 그 학교에 교류학습을 갔을 때, 푸른 하늘 은하수로 시작하는 ‘반달’이란 동요를 우리말로 불러 주어서 얼마나 감격했는지 모른다.
일본은 한반도와 대한해협을 사이에 두고 남서쪽으로 길게 뻗어 내린 4개의 섬으로 된 나라이다. 37만㎢로 한반도의 1.7배의 면적이다. 예로부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류가 많았던 관계가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본은 큐슈, 주코쿠, 시코쿠, 감키, 주부, 간토, 도호구, 홋가이도 등 8개 광역 지방으로 나뉘어져있다.
1853년 미국의 페리제독의 요구로 쇄국을 푼 일본은 이를 계기로 1868년에는 천황을 중심으로 메이지시대(明治時代)가 시작되었다. 막부정치가 무너진 뒤 내각제를 도입하고, 헌법을 제정했으며, 독일식 육군과 영국식 해군을 창설하고, 지방제도를 정비했다. 경제면에서는 토지개혁과 화폐제도의 통일, 근대적인 유럽식 학교가 설립되었다. 1929년 세계경제 대공황을 계기로 군부가 세력을 강화하고, 정치와 외교를 장악하여 1937년에는 중일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1945년 연합군에 항복한 뒤에 정치, 경제, 교육의 개혁을 이루고, 민주주의국가 즉 평화국가로 급성장하여 세계평화와 번영에 기여하고 있는 경제대국이요, 미국 다음으로 잘 사는 선진국이 되었다.
현재 일본은 48개현, 도쿄, 교토, 오오사카 등 3개 광역시로 행정구역이 편제되었으며, 매년 9~10월에는 아시아 축제가 열린다.
큐슈인들은 우리나라 사람들과 비슷한 기질이 있다고 한다. 백제인들이 그 당시에 20만 명이나 이주해서 살았고, 임진란 이후에는 10만 명의 조선인이 이주하여 살았기에 후쿠오카에는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 후쿠오카에는 하카다 타임이란 유행어가 있다고 했다. 한국의 코리언 타임과 같은 의미다. 후쿠오카 주민들은 다른 지방에 비해서 시간관념이 희박하다는 뜻이다. 나가사끼(長崎)는 원자폭탄이 투하된 도시로 유명하지만, 롯데월드보다 10배나 되는 도쿠가와 정권시대에 만든 네델란드 캠퍼스가 있다.
4월 1일이 신학기가 되며, 봄방학은 3월 24일부터 1주일간이다. 4월은 온통 벚꽃 축제기간이다. 축제는 주로 밤에 이루어진다. 축제기간에는 회사별로 남자사원들이 낮에 벚꽃나무 밑에 비닐 포장을 넓게 깔아놓고, 퇴근 후에 밤에는 회사원들이 모여서 흥겨운 축제를 즐긴다. 사꾸라 꽃은 원래 일본 국화가 아니다. 황실에서는 가을 국화를 나라의 상징 꽃으로 존중한다고 했다. 후쿠오카 요리는 곱창전골이 전통요리이며 명란젓이 특산품이다. 이것도 한국요리에서 배운 전통이라 했다.
후쿠오카에서 만난 상냥하고 예쁜 한국인 여성가이드, 조순선은 금천구 통일교회 지부장으로 일본의 역사, 문화를 아주 재미있게 잘 소개해 주어서 너무나도 고마웠다. 일본도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온갖 복지정책을 다 쓴다고 했다. 2자녀는 매월 5000엔, 3자녀는 10,000엔을 육아비로 지급하며 생후 3개월부터 만 6세 소학교 입학 전까지는 국가가 모든 양육비를 다 대준다. 후쿠오카는 3면이 바다를 낀 도시이다. 일년 내내 비가 많이 내리는 곳이다. 제주도가 삼다의 섬이라고 하지만 후쿠오카는 습기, 바람, 지진이 많은 삼다의 항구도시다. 지금도 주택에는 다다미를 깔고 산다. 습기가 많기 때문에 온돌보다 다다미를 사용한다. 지진이 심해서 고층 건물은 짓지 않는다. 갠 날이면, 집집마다 창문에 옷이나 이불을 말린다. 습기를 건조시키는 것이다. 그러기에 일제 36년간 한국을 지배할 때는 한국은 기후가 좋고 토지가 비옥하며, 대륙으로 연결된 국토로 살기 좋은 나라이기 때문에, 그들이 장차 한국인은 만주지방으로 몰아내고 자기나라 일본의 본토를 한국으로 삼으려는 야심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악천후, 지진이 심한 일본은 한국이 살기 좋은 나라라고 부러워 한다는 것이다. 나는 한국에 태어난 것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고마운지 모른다. 다만 일본인은 똘똘 뭉치는 애국심이 세계에서 최고다. 우리들도 단결해서 애국심을 기른다면 세계 1등 국가로 우뚝 서게 될 것이다. 앞으로 우리나라가 세계를 주도할 나라로 급부상할 날을 기대하며 긍지를 갖고 일본 여행을 마쳤다.
---06,3 12~16까지 일본문화탐방을 하고 와서 3.18 씀----
한일 해저(海底) 평화터널
-일본 문화탐방기(3)-
행촌수필문학회 이윤상(제158호)
사흘째 후쿠오카 관광길에 올랐다. 첫 번째 코스는 나고야 성터였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조선침략의 전진기지였던 나고야(名古屋)에는 풍신수길이 성을 쌓았다. 지금 성은 흔적이 없고, 빈 터만 남아있다. 그 성터를 둘러보고 해변으로 내려오니 한일 해저터널 공사현장이 있었다. 400여 년 전, 전쟁기지였던 곳이 이제는 큐슈의 나고야와 부산을 바다 속으로 잇는 평화터널의 출발지가 되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공사현장 소장의 설명을 듣고 터널공사 실황을 보니 정말 기적적인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한반도와 일본열도 사이의 해협을 잇는 해저터널은 이곳 나고야를 기점으로 하여 대마도와 이키섬을 경유하여 사가현 가라츠 시를 연결하고, 부산으로 이어지는 총 연장 230km의 터널을 의미한다. 이 해저터널을 완공하려면 7년 공사에 10조 엔(한화 800조)의 예산이 소요된다. 이 거대한 공사를 세계평화가정연합 문선명 선생이 수 백조의 예산을 투입해서 착공한 것이다. 앞으로 세계의 민간자본을 유치하여 완공시키겠다는 것이다.
한일해저터널은 영국과 프랑스를 연결한 유로터널과 같다. 한국과 일본의 민간자본이 주축이 되어 미국, 중국, 러시아, EU 등의 자본을 끌어들여 민간회사를 설립하여 사업을 추진한다고 했다. 재일동포 김영길 씨가 한일해저터널 사업본부 사무국장으로 현장에서 뛰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남북화합과 민족평화의 새 시대를 여는 한일해저터널은 일본 정부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갖고 지원하고 있으며, 재일동포 재벌은 물론, 일본 재벌들이 투자를 많이 하여 아주 활기차게 공사가 진행 중이라는 설명을 들으니, 매우 감격적이었다. 이 터널은 한국과 일본 우호증진은 물론, 양국 경제발전과 사회문화교류뿐만 아니라 장차 철도가 북한을 관통하여 시베리아와 중국을 경유하여 유럽과 연결이 되면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에 엄청난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되는 터널공사다. 따라서 이 해저터널이 완공되면 우리나라가 동북아시아의 물류거점국가가 되고 더 나아가서는 선진국으로 도약함은 물론, 평화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계기가 될 희망의 터널이요, 평화와 번영의 터널이 될 것이려니 싶었다.
영국의 유로터널은 한일해저터널의 4분의 1정도의 규모인데도 7년 공사에 150억 달러의 예산이 들었다고 한다. 1987년에 착공하여 1994년에 완공하였으며, 개통 당시에는 적자를 면치 못하였으나 지금은 제2의 유로터널을 구상할 정도로 통행량이 해마다 엄청나게 늘고 있다고 한다. 2005년도에는 하루 평균 여객수송량이 45,000명이며 화물 수송량이 5만 톤에 이르고, 55년 동안 민간이 운영한 뒤에 2042년에는 양국정부에 운영권을 양도할 계획이라고 한다. 한일해저터널도 유로터널 못지않게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측했다.
이 거대한 사업을 문선명 선생이 200조 원을 투자하고, 세계 각국의 민간자본을 유치하여 추진하는 현장을 둘러보니, 과연 새 역사를 창조하고 있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해저터널을 돌아보고 나와서 나고야의 전통요리인 오징어회 정식으로 점심을 들고, 곧바로 다자이후 천만궁(天滿宮)으로 향하였다. 후쿠오카 남쪽 교외에 있는 다자이후 정(町)청에서 7세기에 세웠던 일종의 신사(神社)자리다.
다자이후덴만구는 종교취락으로 발달되어 1년이면 70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후쿠오카 관광의 필수코스다. 덴만구(天滿宮)는 학문의 신을 모시는 신사로 국민들의 존숭을 받으며, 특히 입시철에는 학생, 학부모 참배객들이 줄을 잇는다. 기도를 하고 소원을 비는 일본인들의 관습 때문이다. 이곳에는 6천여그루의 매화가 자라는 곳인데, 3월 중순 우리가 찾아 갔을 때는 매화가 만발하지는 않고, 일부 나무에만 매화가 피고 있었다. 나는 이곳을 2년 전에도 학생들을 데리고 미아자카 소학교를 방문하고 오는 길에 돌아보았다. 그때는 10월 하순 단풍을 보았고, 이번에는 이른 봄으로 매화를 감상했다.
천만궁 관람을 마치고 관광버스로 들판을 한참 달려간 야외 가든에서 뷔페로 만찬을 하는데, 그 곳은 고기를 마음대로 갖다가 불판에 구워 먹는 집으로 2년 전에 내가 갔을 때 들렀던 그 집이었다. 그야말로 푸짐한 고기전용식당이었다. 고기는 무한대로 실컷 먹는데, 진로소주 한 병에 1만 5천 원이나 받으니, 우리 일행들은 술값이 너무 비싸서 마음대로 들지 못해 아쉬웠다. 쇠고기로 포식을 하고 다음은 시확호텔로 돌아와서 옆방의 일행들과 술 파티를 하면서 즐거운 밤을 보냈다.
--- 06.3.12~16일 일본문화탐방을 다녀와서 3.19일 쓰다--
사가현의 아리타 도자기 고장
-일본 문화탐방기(4)-
행촌수필문학회 이윤상(제159호)
큐슈의 북단 산골짜기, 사카현을 찾아 나섰다. 보슬비가 내리다 멈추다 반복하는 날씨였다. 호텔에서 조찬을 하고 다른 때보다 한가롭게 9시 30분에 출발하였다. 얼마쯤 가니까 아주 깊숙한 시골길로 접어들었다. 무주구천동 심심산골 같은 농촌 길을 무려 2시간이나 구불구불 돌아서 들어가는 코스였다. 큐슈의 북단에 자리 잡고 있는 사가현은 인구 87만이 사는 도자기 왕국이다. 요시노가리 유적은 2천년 전에 형성된 일본 최대 규모 환호취락 터로, 고대국가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400여 년 전에 조선의 도자기 기술을 전래받은 도자기 명산지로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청초하고 기품 넘치는 자기와 소박하고 훈훈함이 느껴지는 도기의 원조 고장이다. 해마다 7월 중순에서 10월 중순까지 ‘세계불꽃 박람회’라는 도자기 축제가 열린다. 세계의 수백만 점의 도자기가 전시된다고 했다.
사카현의 아리타(有田)는 일본 도자기의 원조라 불리는 조선인 이삼평의 유적이 있는 곳이다. 이삼평은 임진왜란 때 일본에 붙잡혀 가서 아리타 아즈미야미에서 도자기의 원료인 도광맥을 발견하여 이곳에서 일본 최초의 도자기를 굽기 시작하였다. 그러기에 이삼평을 도자기의 원조라 한다. 현재는 전통 가마대신에 전기가마를 사용하여 100% 완성도를 높인다고 한다.
1616년에 창업 300주년인 1916년에 주민들이 도산신사 뒤편에 도조 이삼평의 비를 세워 그 공을 기렸다. ‘월창정 거사(月窓亭 居士)’ 묘비가 바로 이삼평의 묘비라 했다. 달빛 아래 창이 있는 정자에 서서 조선 땅을 그리는 거사(居士)라는 호에서 애절함을 느끼게 했다. 이삼평이라는 도공을 통해서 불모지인 일본에 도자기 문화가 꽃피게 되었으니, 조선인의 예술적 재능이 뛰어난 점을 자랑하는 우리 조상의 얼을 보는 듯해서 기분이 매우 흐뭇하면서도 씁쓸했다.
점심 뒤에는 이곳 사가이 도자기 전시장과 도자기 판매장을 돌아보았다. 우리나라 도자기와 비슷한 모양이지만 값이 엄청나게 비쌌다. 일본의 군사력이 강해서 우리나라를 침략했지만, 그 당시의 문화는 우리나라보다 뒤진 것이 확실했다. 우리나라는 고려시대에는 고려청자라는 세계적인 아름다운 자기를 구워내지 않았던가. 지금도 우리나라의 도자기가 일본의 자기보다 더 예술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도자기 전시장을 관람하고 다시 후쿠오카 국제공항을 향해서 달렸다. 보슬보슬 비는 내리는데 천만궁 무역회관 면세점에서 쇼핑시간을 주었다. 면세점에서 쇼핑을 하는데 나는 디지털카메라를 한 대 구입하였다. 이번 일본여행 기념으로 카메라를 구입하니 다른 물건보다 아주 실용적인 기념물을 하나 갖게 되어서 기분이 매우 흐뭇하였다.
오후 4시 후쿠오카 국제공항에서 출국수속을 밟았다. 2시간이나 공항에서 보내는 것이 지루하기만 했다. 6시에 탑승하여 6시 30분에 비행을 시작한 아시아나 항공은 1시간 뒤에 인천공항 고국의 품에 내려주었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14번 게이트로 나오니 전주에서 올라온 리무진 관광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하행 길에 화성 휴게소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밤 11시 30분 전주에 도착하여 해산했다. 4박 5일간의 후쿠오카 세미나는 문화탐방과 여러 가지로 유익한 정보를 얻고 VIP손님으로 호화로운 호텔에 투숙하며, 즐거운 여행으로 좋은 추억을 많이 남겼다. 세계평화가정연합 본부와 정병수 전북지역 사무처장의 배려 덕이다. 그 분들께 참으로 깊은 감사를 드린다. 앞으로 평화대사행사에 적극 참여하고, 통일재단사업에 적극 협조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 06.3.12~16일 일본 세미나를 다녀와서 3.20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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