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우리 집의 10대 뉴스

2008.01.26 19:57

정원정 조회 수:728 추천:2

2007년 우리 집의 10대 뉴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 수요반 정원정

  

한 해를 돌아보며 우리 집 10대 뉴스를 적으려하니 처음엔 막막했다. 시골로 내려온 뒤로는 나는 늘 이방인처럼 세상 돌아가는 구경꾼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79세라는 문턱에서 80고개를 넘는 나이니만큼 할 일을 의욕적으로 준비하려 했던 것 외에 두드러지게 생각나는 게 없었다. 그래서 가족들에게 일일이 전화로 취재를 해서 추려보았다.

  첫째,  축제마당인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에 등록
  
봄 학기에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에 발을 드려 놓았다. 내 나이와 실력도 헤아리지 않고 무턱대고 찾아 갔었다. 아무 정보도 없이 입학한 것이다. 그러나 의외로 그곳은 노래하지 않고 춤추지 않아도 잔치마당이었다. 거기에는 따스함이 있었고, 진지함과 열성이 있었다. 글 쓰는  방법에 대한 성의를 다한 강의와 반원들의 열성적인 습작태도 그리고 그걸 꼼꼼히 다듬어 주시는 지도교수의 가슴 따뜻한 마음은 몸짓 없는 축제분위기를 연출했다.
나는 주 일회 수요일마다 목욕재계(沐浴齋戒)하고 불공드리는 심정으로 그 잔치마당이 좋아서 신나게 정읍에서 전주까지 왕래했다. 그동안 하고 싶었던 얘기, 생각만 가슴에 묻어두었던 속내를 주절주절 글로 늘어놓았다. 내 글 수준도 가리지 않고 그곳 분위기와 글 쓰는 것에 푹 빠져 지냈다. 두 학기를 마무리하는 즈음 어렴풋이 글의 줄기가 어떠해야하는지 감이 잡히는데 오히려 멈칫해진다.
정원정이란 한 사람이 축제마당에서 신나게 글이란 춤을 추던 모습을 타인이 된 또 하나의 정원정이가 주춤해진 위치에서 바라보게 된 것이다. 새판으로 가다듬고 신변잡기에서 벗어나 조금은 글다운 글을 쓰고 싶은데 그건 희망사항일 뿐, 어디 그 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라야지……. 애당초 실력이 모자란 상태에서 출발했지 않았는가.  

    둘째,  나는 이 집이 싫어요
  
큰며느리가 결혼 초기에  큰 집을 관리하기에  오죽이나  힘들었으면 어느 말끝에,
  “나는 이 집이 싫어요.”
했을까싶다. 아파트가  아니었으니 일거리가 많았다. 평소 말이 없고  진득한 며느리가 시집와서 모든 게 익숙지 않을 때 악의 없이 한 말이다. 큰아들이 장가를 들자 시어미인 나는  내가 살던 집과 묵은 살림을 고스란히 넘겨주고 시골로 내려왔었다. 헌 살림만 갖다 놓은  정읍으로 몸만 온 것이다. 정리도 안한 서울 살림을 큰 며느리에게 맡기고 온 것이 두고두고 미안했다. 뒤에 차츰  내가  쓰던 물건들을 정리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큰아들네는 그 집에서 예쁜 세 딸을 얻었다. 넓은 집에서 아가들이 마음껏 소리치고 뛰놀며 잘 자라서 초등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큰아들네는 올봄 소원대로 학군이 방배동에 아파트를 전세로 얻어  드디어 이사를 하게 된 것이다. 젊은 애들이야  아파트를 선호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이 35평 좁은 집으로 가면서도 내 소지품마저 다 가져갔다.  

    셋째,  키가 175센티까지 훌쩍 커버린 손자 김진결
  
작은 아들 장봉군의 첫 아들,  진결이가 외국어고등학교에 합격했다. 어려운 경쟁을 뚫고, 그것도 사립에 비해 학비가 적게 드는 동두천에 있는 학교에 합격한 것이다. 사립은 학비가 엄청 비싸서 아예 엄두도 못 냈을 텐데, 제 부모의 짐을 덜어 주었으니 기특했다. 학생 전원이 기숙사 생활이어서 친교도 쌓고 우수한 아이들이 모인 곳이라 면학분위기가 좋다고 한다. 지난여름엔 학교에서 단체로 독일여행을 다녀와서 할머니가 혼자 사셔서 걱정이라며 독일에서 사온 초콜릿을 들고  다녀갔다. 제 어미를 닮아서인지 싹싹하고 인사성이 밝아서 어른이 다 된 듯하다. 키도 또래보다 크고 주말에는 집에 와서 교회생활도 열심이어서 주위에서 귀여움을 받는다.

    넷째,  한겨레신문 그림판을 맡은 둘째 아들의 승격  
  
한겨레신문사에 몸담고 있는 작은 아들 장봉군(본명은 김주성)이 차장에서 부장 대우로  승격했다. 그림판의 시사만평이란 힘겨운 직분을 맡고 있어서 늘 안쓰럽다. 만화라는 형식으로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 발언한다는 것이 매력이 있다지만 얼마나 힘들까 싶다. 그러기에 때로는 시간에 쫓길 땐 피 말리는 사투를 벌인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만화를 가지고 그 날의 시사성에 맞게 자유롭게 생각을 담아낼 수 있다는 데 묘미를 느끼기도 한단다. 시사 만평가는 소재를 찾는 일이 중요하다. 모든 게 소재 대상이라고 하니 그 중 하나를 선택하려면 끊임없이 머리를 써야할 것이다. 어떤 이름 있는 소설가는 장봉군 그림판을 보고 무릎을 칠 때가 자주 있고, 또 어떤 이들은 신문에서 맨 먼저 그림판부터 본다고도 한다. 둘째 아들의 땀과 노력이 늘 독자들과 시원한 공감을 나누었으면 좋겠다.

      다섯째,  자주 꽃다발을 받는 작은 며느리

작은 며느리가 직장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아이 리더스쿨에 근무하는 그 애는 실적이 좋아서 우수사례로도 뽑히고, 일등을 해서 가끔 꽃다발을 받는다. 전국에 7개 지국이  있는데 책임자는 다 남자 일색이라고 한다. 본사에서 오라는데도 집과의 거리와, 가사도 생각해서 강북지국 책임자로 있다. 영특하고 성격이 트여서 사교성도 좋다. 항상 긴장상태에서 회원 1,000여 명을 관리하고 연구한다고 한다.

      여섯째, 하늘나라로 가버린 딸과 초등학교 친구
  
가까운 두 사람을 잃은 슬픔이 아직 가라앉질 않았다. 한 사람은 전실 소생인 딸 성희가 저 세상으로 갔다. 전화로 자주 안부를 물어 오던 신앙심이 깊은 딸이었다. 나무랄  데라고는 없는 사람이었다. 또 한 사람은 초등학교 때의 단짝 친구다. 그만이 가지고 있는 우정을 내게 주었었다. 내게 힘과 위로를 듬뿍 준 친구였다. 두 사람이 한꺼번에 생의 뒤안길로  가버리니 세상이 텅 빈 듯 허전하고 허망하다.
  
      일곱째, 컴퓨터와 사귀게 된 나
.
  그동안 주변 친구들이 컴퓨터를 상당 수준까지 배우고도 써먹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글을 쓰려면 필수적이라니 나도 배워야 했다. 정읍시청의 지원으로 가르치는 곳을 찾아갔다. 2수, 3수를 한다는 이들도 수강할 때 보면 얼굴들이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만큼 힘들어 보였다. 진도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어휘가 나와서 그게 뭘까 하면 다음으로 넘어가 버리는 것이었다. 내가 이렇게 미련한가 싶어 3일 만에 그만 두었다.
사정 이야기를 들은 큰아들이 나한테 필요한 것 몇 가지만 전화로 배워보라 했다. 전화통을 컴퓨터 옆에 놓고 그의 지시를 받았다. 그러고도 막히는 것은 틈틈이 같은 울안에 사는 장 선생한테 배웠다. 장 선생을 가정교사로 모신 셈이다. 겨우 메일을 보내고 받는 정도까지는 익혔다.  
  
        여덟째,  사위 이상성 교수 ‘추락하는 한국교회’ 출간

사위 이상성이 책을 냈다. 현재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인 그가 지금의 한국교회의 문제점을 짚어 고발하였다. 한국교회의 폐단과 교리의 독선을 설명하며 세 불리기에만 정신없는 한국교회의 현 위치를 점검하고 한국의 기독교가 나아갈 길, 세상을 바꾸고 전 인류와 화합하는 ‘상생의 종교’로 탈바꿈할 해법을 조직신학자답게 제시한 내용이었다. <추락하는 한국교회>라는 제목에 ‘교회의 미래는 한국의 미래‘다라는 부제가 붙어 있었다. 이 책이 널리 읽혀져서 우리나라 교회가 바로 서면 좋겠다.

          아홉째,  평생 들어보지도 못한 ‘대상포진’에 시달린 나

‘대상포진’이란 병명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난 초여름, 컴퓨터를 배우는 사이 몸에 이상증세가 있어서 정읍시내 어느 병원에 갔더니 의사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대상포진이라고 진단했다. 암은 아닌 듯해서 조금 마음이 놓였는데 치료가 오래 걸릴 수 있다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무척 고생을 하였는데 아직도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열째,  나를 문 지네를 잡다

추운 음력 정월은 지네가 나올 턱이 없는 계절이다. <경칩>이 지난 그 이튿날 밤이었다. 나는 지네에 물렸다. 아마 작년 늦가을에 지네가 숨어 들어왔을까. 처음에는 모르고 내 몸에 무슨 이상이 생긴 줄만 알았다. 다음날은 더 강도가 센 통증과 동시에 잠이 깨어 불을 켜 보니 머리맡에서 길이가 한 뼘이 채 못 된 지네가 S자로 비상하게 도망가는 게 아닌가.    그 순간은 그게 곤충이 아니라 나를 해치고 도망가는 한 불량배로 보였다. 그것을 빨리 잡기는 해야겠고, 손가락은 부어올라 독이 퍼지는 것 같았다. 또 통증은 심해지니 응급실에 가야할건지 말아야 할 건지 어쩔 바를 몰랐다. 새까만 가죽 같은 등에다 붉은 40개의다리를  징그럽게 움직이는 지네는 그 순간만은 한 마리의 곤충이 아니었다. 잘못하면 다시 나를 덮칠 것 같은 공포감, 마구 가슴은 뛰고 손발마저  떨렸다. 가구 밑에 음흉하게 숨어있던 지네를 잡고야 말았다.

위와 같이  10대 뉴스를 적고 보니 우리 집안의 가족역사를 기록한 것 같다. 이런 기록도 필요한 걸 왜 진즉 몰랐을까. 지나간 1년을 돌아보며 우리 가족이 잘 지낸 것은 하나님의 깊은 은총이라고 생각되어 두루두루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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