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

2008.01.31 10:41

이종택 조회 수:725 추천:3

능소화(凌霄花)




                                               행촌수필문학회 이종택













찌는 듯이 무더운 여름의 한 복판이다. 장마에 시달렸던 매미는 찢어질듯 울어대는, 바람 한 점 없는 오후다. 창문을 활짝 열고 바라보니 감나무의 푸른 잎사귀 사이로 붉은 등을 밝혀놓은 것처럼 환하게 핀 능소화 넝쿨이 치렁치렁 늘어져있다.




능소화는 한자로 업신여길 능(凌), 하늘기운 소(霄), 꽃 화(花)자를 쓴다. 즉 하늘이 높으면 얼마나 높을 소냐 하며 계속 하늘 높이 올라가면서 꽃을 피운다는 뜻이다.




우리 집은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능소화가 감나무 가지와 담장 너머까지도 흐드러지게 핀다. 20여 년 전 일이다. 내가 주월사(主月寺)에 가서 능소화를 보는 순간, 그 꽃이 얼마나 현란(絢爛)했던지 어디서 그 꽃을 구할 수 없을까 생각하고 있을 무렵, ‘가마골 농장’을 경영하는 친구가 주어서 심은 것이다. 그런 능소화가 해마다 여름만 되면 저토록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걸음을 멈추고 “히야! 그 꽃 참 곱다!” 감탄들이다. 이처럼 능소화가 만발하는 여름에는 어디선가 벌‧나비들도 날아와 함께 향연을 벌인다.




능소화는 슬픈 한 여인의 전설을 지니고 있는 꽃이다. 오랜 옛날 광해군 시절, 예쁜 궁녀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소화, 복숭아처럼 고운 살결에 초롱초롱한 눈망울, 얌전한 솜씨와 행실로 봐서는 사람이라기보다 천사에 더 가까웠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어여쁜 소화는 마침내 궐내를 순행하던 임금님의 눈에 띄었다. 소화를 본 임금님은 첫눈에 반했다. 그것은 감당할 수 없는 큰 충격이었다. 둘이는 꿈결처럼 황홀한 하룻밤을 보내고 나자 이튿날부터 소화의 신분은 ‘빈(嬪)’으로 격상되었다. 그러나 임금님은 하룻밤 회포로 끝내고 그 뒤로 다시는 찾아주질 않았다. 소화는 일편단심 날마다 담장 가에서 서성이며 임금님의 발자국소리가 나지 않을까, 그림자라도 비치지 않을까 기다렸지만 임금님은 끝내 오질 않았다. 그 뒤로 덧없는 세월은 흘러서 소화는 한 맺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소화를 모셨던 시녀들은 그녀의 죽음이 너무도 안타까워 소화가 발이 닳도록 서성였던 그 담장 밑에 묻어주었다. 그런데 어느 더운 여름 날, 담장 위에는 주홍빛 예쁜 꽃들이 활짝 피어 있더라는 것이다. 그것은 소화의 혼이 능소화로 환생한 것이 아니었을까. 능소화는 임금님이 그리워 더 높이 뻗어 올라 고개를 내미는 모습 같고, 발자국소리라도 들으려는 듯 꽃조차 나팔 모양으로 생겼다. 그뿐이랴. 꽃이 지는 순간에도 빈의 기품을 잃지 않으려고 가장 활짝 피었을 때의 모습으로 꽃송이가 뚝뚝 떨어져 내린다. 또한 임금님 외에는 그 누구도 자신의 몸을 만지지 못하도록 독을 품고 있다는데 누구나 그 꽃이 고와서 함부로 따거나 떨어진 꽃을 줍다가 혹시라도 화분이 눈에 들어가면 실명할 수 있다고 하니 소화의 한이 얼마나 깊었으면 그렇겠는가.  




내가 능소화를 처음 본 것은 어느 해 여름 의성의 불출산(佛出山) 주월사(主月寺)에서였다. 주월사는 신라 법흥왕 2년에 의상조사(義湘祖師)가 창건했다고 하는 고색창연한 절이지만 겨우 조그만 법당 하나가 있는 작은 사찰이다. 좁다란 산길을 타고 한참 오르다가 등성이를 넘어서니 저 아래 골짜기에 작은 절(寺) 하나가 있었다. 법당은 마당 안쪽에 힘들게 버티고 서 있었는데 능소화는 석대에서 밑으로 길게 드리워 피어 있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능소화를 ‘절꽃’ 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꽃을 보는 순간 그 빛깔이 너무도 황홀했다. 아주 붉지도 아니하고 그렇다고 노랗지도 않은, 붉은빛과 노란빛이 적절히 조화를 이룬 주홍빛이었다. 그것은 하룻밤의 운우지정(雲雨之情)으로 끝나버린 미완성의 사랑이었기에 주홍색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능소화의 빛깔이야말로 어느 명장(明匠)이 그렇게 아름답게 빚어낼 수 있으랴. 털끝만치의 오차도 없을 것 같은 두 빛의 절묘한 배합으로 만들어 낸 색깔이 능소화다. 고우면서도 눈부시지 않고, 아리따우면서도 천박하지 않는 그 모습은 자못 기품이 있어 보였다.




그러한 기품 때문이었을까. 능소화는 옛날부터 ‘양반꽃’이라고도 불려져서 양반집에만 심었다. 원래가 중국 토종인지라 우리나라 사신들이 중국을 왕래하면서 그 꽃을 얻어다가 자기네 양반들끼리만 나눠 심었다는데 혹시라도 여염집에서 심었다가 발각되면 관가에 끌려가서 곤장을 맞아야 했었다던가. 옛날 양반들은 꽃을 두고도 이렇게 백성들을 울렸으니 그 시대 민초들의 삶이 얼마나 억울했을까.




나는 어젯밤 이 글을 쓰다 말고 밖으로 나가 능소화를 바라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는 보름달빛이 치렁치렁 쏟아지고 있었는데 달빛 아래서 바라본 능소화는 어느새 소화의 모습으로 보였다. 오매불망(寤寐不忘) 임금님만을 사모하다가 끝내 죽고 말았던 소화, 나도 어느덧 그녀의 서러움에 젖어 우두커니 선 채 깊은 상념에 잠겨야 했다. 스치는 바람결에 능소화 꽃송이 두서너 개가 떨어지고 있었다. 내 눈가엔 이슬이 맺혔다.    

                               (2007.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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