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갸용은 본처 택시는 애첩

2008.03.07 19:29

김학 조회 수:738 추천:2

                                  자가용은 본처 택시는 애첩
                                                                                      김학



택시를 탔다. 걸어갈까 시내버스를 탈까 망설이고 있는데 빈 택시가 눈에 띄었다. 손을 번쩍 들었다. 기다렸다는 듯 택시가 멎었다. 나는 시내에 나갈 때 가급적 승용차를 이용하지 않는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그게 편하고 안전하기 때문이다. 택시를 타면 운전기사의 외모를 살펴보게 된다. 순박한 인상인지 아니면 까다로운 용모인지를 파악한다. 그리고 나서 슬며시 대화를 시도해 본다. 몇 마디 나누다 보면 잠깐의 여행이 즐거울지 여부가 판가름 난다. 대체로 요즘 택시 기사들의 심사가 편안하지 않아 보인다. 승객이 줄어들어 예년의 수입을 따르지 못한 탓이다.

택시를 탈 때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택시 한 번 타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려니 싶다. 서로 약속을 한 것도 아닌데 그 때 그 자리에서 만나게 되는 게 택시가 아닌가. 시간이나 장소가 조금만 어긋나도 그 때 그 자리에서 그 택시를 만날 수 없는 일이 아니던가.

택시는 어느 곳에서 어떤 승객을 태우느냐에 따라서 운명이 달라져 버리기 마련이다. 몽룡이를 태웠더라면 서쪽으로 가야 할 택시가 춘향이를 태우면 동쪽으로 가게 되는 게 택시의 운명이다. 자가용이 본처(本妻)라면 택시는 애첩(愛妾)같다는 생각이 든다. 본처는 원래 부모를 봉양하고 자녀를 양육하며 집안에서 살림이나 하는 게 본분이다. 그러나 애첩은 집 밖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는 게 예사다. 요사이 젊은 사람들이야 본처를 애첩처럼 여기며 살아가지만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다. 세상이 달라지고 여성의 권익이 신장된 까닭일 것이다.

택시를 타면 마음의 부담이 없는 편이다. 도로사정이 좋던 나쁘던, 목적지가 가깝던 멀던, 교통순경이 있던 말던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가 없다. 느긋한 심정으로 택시에 등을 기대고 앉아서 졸아도 좋고 차창 밖 풍경을 감상해도 즐겁다. 마음의 부담이 없는 편이다. 주차 문제로 고민할 필요도 없고, 끼어 들려는 차로 인해 기분 상할 일도 없다. 택시에서 내리면서 지폐 몇 장 꺼내주면 그만이다. 애첩과 더불어 나들이하는 맛이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승용차를 운전하고 거리를 나서 보라. 얼마나 신경이 곤두서고 피로하던가. 신호등 살피랴, 차간 거리를 유지하며 흐름을 유지하랴, 눈을 부라리며 끼어 들려는 차에게 양보하랴. 잠시도 휴식을 취할 틈이 없다. 본처와의 나들이가 그에 못지 않게 곤비한 일이려니 싶다.

택시를 탄다. “어디로 모실까요?” 으레 택시기사가 묻는 말이다. “광화문까지 갑시다.”  택시의 운명은 내 한마디로 결정이 난다. 그곳에 도착한 택시는 나를 내려주고 근처에서 또 다른 승객을 태우게 될 것이다. 내가 광화문으로 가자고 하지 않았으면 그 승객이 아닌 또 다른 미지의 승객을 태웠을 것이다. 택시는 애첩만큼이나 편리하고 편안하다. 미련 없이 택시에서 내릴 수 있듯 애첩 역시 미련 없이 헤어질 수가 있다.
승용차나 본처는 그럴 수가 없다. 우선 미련 없이 헤어질 수가 없다. 승용차와 헤어지려면 매매양도 절차가 필요하고, 본처와 헤어지려면 이혼이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얼마나 난감하고 어려운 일인가. 승용차를 신형차로 자주 바꾸고, 이혼을 밥먹듯 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느 사람이라면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다. 가까스로 승용차를 한 대 구입하면 폐차시킬 때까지 굴리고, 한 번 결혼하면 검은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동고동락하는 게 필부필부의 일생이다.

나는 내일도 택시를 타야 한다. 문우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그 자리에 가면 여러 문우들을 만나게 될 터이고, 그 문우들과 더불어 술잔을 주고받게 되려니 해서다. 귀가할 때도 또 나는 택시를 타야 한다. 어떤 택시를 타게 될지, 어떤 기사를 만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도 모르고, 택시나 택시기사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가 택시를 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라고 하리라. 하지만 우연이란 예측하지 못한 필연이라고 하지 않던가.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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