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며느리 전성시대
2008.03.18 10:00
지금은 며느리 전성시대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김영옥
“나는 며느리가 무서워!”
세상이 바뀌어도 이렇게 바뀔 수 있을까. 여자가 시집을 가면 무섭기 1호가 시어머니인데 그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무섭다니, 알 수없는 일이다. 70대 할머니들 몇이 모여 수다를 떨며 놀다가 자식들 이야기로 돌아가니 한 분이 ' 며느리가 무섭다'고 하자 모두가 공감하는 눈치였다.
우리 70대 이상의 여인들은 남녀차별시대에 태어나 3종지도(三從之道)의 덕목을 지키느라 한세상을 움츠리고 살아 왔는데 이제 며느리 시집살이까지 하며 살아야 되니 서러운 세상살이에 수다가 아니라 하소연이 절로 나온 것이었으리라. 요즘 아들보다 수입이 높은 똑똑한 며느리를 쌍수로 환영할 일이지만 오히려 시부모들에게는 크게 부담스럽고 불만을 주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우리 세대들의 여인들은 가난과 책임만 물려받았으면서도 투정 한 번 못하고 살았다. 시어머니란 존재가 얼마나 무서웠던지, 그 눈밖에 나지 않으려고 눈물을 삼켜가며 가시밭을 걷는 심정이었다. 친정 갔다 오라는 날을 어기면 사립문을 열고 들어서기가 무서웠고 딸이나 연거푸 낳으면 미역국이 아니라 눈물국을 먹어야 했다. 고개를 들고 쳐다보며 말 한마디 못하고 무조건 존경하고 행여 비위를 어길세라 벌벌 떨다시피 하며 살아 왔다. 김치나 간장 한 병 갖다 먹지 않았고 손자를 봐 달라고 부탁한 적도 없이 살아온 세대이다.
나이 든 우리 세대들도 좋은 환경에서 높은 교육을 받았다면 요즘 젊은이들보다 능력이 결코 부족하지 않았으리라. 온갖 고난을 지혜와 슬기로 대처하고 인내하며 살아왔다. 그런 우리 노인들이 노년의 생활비를 마련하지 못하여 무능하다 여기고, 물려줄 재산조차 없는 것을 탓하고 푸대접한다면 그 마음이 오죽할까. 어느새 시어미가 되어 이제며느리시집살이까지 하게 되었으니 불행한 시대에 태어났음을 자위하면서도 가끔은 땡감 씹은 마음이 아닐 수 없다. 가진 것은 다 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없는 재산을 많이 요구하는 자식이나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맞벌이를 한다고 고생하는 며느리들을 시어머니들도 다 이해하며 안쓰럽게 여긴다.
요즘 방송되는 사극에서도 시어머니인 인수대비가 똑똑한 며느리를 폐위시켜 사약까지 내린 것은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이 빚어낸 비극이었다. 손자인 연산군의 가슴에 비수를 품게 한 원인제공은 인수대비의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욕망이 낳은 비극이 아니었던가. 사랑하는 내 아들, 사랑하는 내 남편을 위한다면 가장 가깝게 잘 지내야할 두 쪽이 대결한다는 것은 무지한 소치이다. 옛 세상이나 지금 세상이나 가정의 모든 권한이 여자에게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또한 가운데 끼어 있는 남자가 중심을 잘 잡아 정리해야 집안이 편안함을 보여주는 교훈이기도 하다. 좀 섭섭한 점이 있어도 서로 사려 깊게 배려하고 이해하는 마음으로 대화를 해서 풀어야지 일방통행으로 치닫다보니 다른 사람에게까지 엄청난 비극을 초래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이젠 우리 노인들도 무조건 젊은 세대들을 탓할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고 이해를 먼저 해야 할 것 같다. 우리 세대들은 눈, 귀, 입이 있어도 없는 것처럼 살았지만 그들은 다 열고 살아왔으니 무슨 일인들 못하랴! 아들딸 차별없는 세상에서 자신이 최고인 양 교육받은 그들이 시댁가족이라 해서 얼마나 어렵고 귀하게 여기겠는가. 먼저 진실한 사랑으로 끌어안아 주면서 좋은 본을 보여야 하리라.
젊은 며느리들이여! 그대들도 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세월은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간다는 걸 아는가. 가정의 행복열쇠가 며느리 손에 쥐어져 있다는 것을 명심할 일이다. 자가용을 몰고 다니는 터에 몇 분도 걸리지 않는 곳에 계시는 부모에게 통장으로 생활비 보내는 것을 생색까지 내고 부담스레 여긴대서야 말이 되는가. 철따라 과일 몇 개라도 사들고 와서 잠깐 얼굴이라도 보고 안부라도 묻고 생활비를 드리고 간다면 부모마음이 얼마나 기쁠까. 가끔 식사 한 끼라도 같이 하는 정도를 바라는 것이지 큰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멀리 있는 처지이면 안부전화라도 한다면 더없이 고마울 뿐이다. 요즘은 멀리 사는 손자들 얼굴도 잊어버릴 정도다. 나이가 들수록 자식과 손자들이 보고 싶고 외로울 때가 많은 걸 진정 모르는가.
얼마 전 TV에서 보았던 어느 강사의 말이 생각난다. 현재 한국이라는 나라는 세계 230여개 나라 중에 잘살기로는 11번째요, 소비와 낭비로는 4번째요, 행복지수는 130번째가 넘는다고 했다. 돈이 많다고 해서 사람의 마음까지 결코 행복한 것이 아님을 일깨워준 자료다. 고등교육을 받고 수입이 많은 똑똑한 현대며느리들이 매사를 사무적인 태도로 이론과 논리적으로 대하기 때문에 ‘며느리가 무섭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을까?
조금만 관심을 갖고 다정다감하게 대한다면 시부모는 더 좋아하고 더 가까워질 것이다. 사랑하는 남편을 낳아 길러주신 시부모가 불만이 쌓이고 서러운 마음을 갖는다면, 힘든 직장을 다니며 고생하는 것이 무슨 보람이 있을까. 버둥거리며 고생하는 것도 가족 모두의 행복지수를 높이려는 목적이 아닐까?
시어머니의 대를 이어가야 할 사람이 바로 며느리이다. 가정의 창시자인 하느님께서 남자와 여자의 역할을 다르게 마련한 것을 새겨보면서 행복한 가정이 여인들의 책임임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2008년 3월)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김영옥
“나는 며느리가 무서워!”
세상이 바뀌어도 이렇게 바뀔 수 있을까. 여자가 시집을 가면 무섭기 1호가 시어머니인데 그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무섭다니, 알 수없는 일이다. 70대 할머니들 몇이 모여 수다를 떨며 놀다가 자식들 이야기로 돌아가니 한 분이 ' 며느리가 무섭다'고 하자 모두가 공감하는 눈치였다.
우리 70대 이상의 여인들은 남녀차별시대에 태어나 3종지도(三從之道)의 덕목을 지키느라 한세상을 움츠리고 살아 왔는데 이제 며느리 시집살이까지 하며 살아야 되니 서러운 세상살이에 수다가 아니라 하소연이 절로 나온 것이었으리라. 요즘 아들보다 수입이 높은 똑똑한 며느리를 쌍수로 환영할 일이지만 오히려 시부모들에게는 크게 부담스럽고 불만을 주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우리 세대들의 여인들은 가난과 책임만 물려받았으면서도 투정 한 번 못하고 살았다. 시어머니란 존재가 얼마나 무서웠던지, 그 눈밖에 나지 않으려고 눈물을 삼켜가며 가시밭을 걷는 심정이었다. 친정 갔다 오라는 날을 어기면 사립문을 열고 들어서기가 무서웠고 딸이나 연거푸 낳으면 미역국이 아니라 눈물국을 먹어야 했다. 고개를 들고 쳐다보며 말 한마디 못하고 무조건 존경하고 행여 비위를 어길세라 벌벌 떨다시피 하며 살아 왔다. 김치나 간장 한 병 갖다 먹지 않았고 손자를 봐 달라고 부탁한 적도 없이 살아온 세대이다.
나이 든 우리 세대들도 좋은 환경에서 높은 교육을 받았다면 요즘 젊은이들보다 능력이 결코 부족하지 않았으리라. 온갖 고난을 지혜와 슬기로 대처하고 인내하며 살아왔다. 그런 우리 노인들이 노년의 생활비를 마련하지 못하여 무능하다 여기고, 물려줄 재산조차 없는 것을 탓하고 푸대접한다면 그 마음이 오죽할까. 어느새 시어미가 되어 이제며느리시집살이까지 하게 되었으니 불행한 시대에 태어났음을 자위하면서도 가끔은 땡감 씹은 마음이 아닐 수 없다. 가진 것은 다 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없는 재산을 많이 요구하는 자식이나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맞벌이를 한다고 고생하는 며느리들을 시어머니들도 다 이해하며 안쓰럽게 여긴다.
요즘 방송되는 사극에서도 시어머니인 인수대비가 똑똑한 며느리를 폐위시켜 사약까지 내린 것은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이 빚어낸 비극이었다. 손자인 연산군의 가슴에 비수를 품게 한 원인제공은 인수대비의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욕망이 낳은 비극이 아니었던가. 사랑하는 내 아들, 사랑하는 내 남편을 위한다면 가장 가깝게 잘 지내야할 두 쪽이 대결한다는 것은 무지한 소치이다. 옛 세상이나 지금 세상이나 가정의 모든 권한이 여자에게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또한 가운데 끼어 있는 남자가 중심을 잘 잡아 정리해야 집안이 편안함을 보여주는 교훈이기도 하다. 좀 섭섭한 점이 있어도 서로 사려 깊게 배려하고 이해하는 마음으로 대화를 해서 풀어야지 일방통행으로 치닫다보니 다른 사람에게까지 엄청난 비극을 초래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이젠 우리 노인들도 무조건 젊은 세대들을 탓할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고 이해를 먼저 해야 할 것 같다. 우리 세대들은 눈, 귀, 입이 있어도 없는 것처럼 살았지만 그들은 다 열고 살아왔으니 무슨 일인들 못하랴! 아들딸 차별없는 세상에서 자신이 최고인 양 교육받은 그들이 시댁가족이라 해서 얼마나 어렵고 귀하게 여기겠는가. 먼저 진실한 사랑으로 끌어안아 주면서 좋은 본을 보여야 하리라.
젊은 며느리들이여! 그대들도 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세월은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간다는 걸 아는가. 가정의 행복열쇠가 며느리 손에 쥐어져 있다는 것을 명심할 일이다. 자가용을 몰고 다니는 터에 몇 분도 걸리지 않는 곳에 계시는 부모에게 통장으로 생활비 보내는 것을 생색까지 내고 부담스레 여긴대서야 말이 되는가. 철따라 과일 몇 개라도 사들고 와서 잠깐 얼굴이라도 보고 안부라도 묻고 생활비를 드리고 간다면 부모마음이 얼마나 기쁠까. 가끔 식사 한 끼라도 같이 하는 정도를 바라는 것이지 큰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멀리 있는 처지이면 안부전화라도 한다면 더없이 고마울 뿐이다. 요즘은 멀리 사는 손자들 얼굴도 잊어버릴 정도다. 나이가 들수록 자식과 손자들이 보고 싶고 외로울 때가 많은 걸 진정 모르는가.
얼마 전 TV에서 보았던 어느 강사의 말이 생각난다. 현재 한국이라는 나라는 세계 230여개 나라 중에 잘살기로는 11번째요, 소비와 낭비로는 4번째요, 행복지수는 130번째가 넘는다고 했다. 돈이 많다고 해서 사람의 마음까지 결코 행복한 것이 아님을 일깨워준 자료다. 고등교육을 받고 수입이 많은 똑똑한 현대며느리들이 매사를 사무적인 태도로 이론과 논리적으로 대하기 때문에 ‘며느리가 무섭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을까?
조금만 관심을 갖고 다정다감하게 대한다면 시부모는 더 좋아하고 더 가까워질 것이다. 사랑하는 남편을 낳아 길러주신 시부모가 불만이 쌓이고 서러운 마음을 갖는다면, 힘든 직장을 다니며 고생하는 것이 무슨 보람이 있을까. 버둥거리며 고생하는 것도 가족 모두의 행복지수를 높이려는 목적이 아닐까?
시어머니의 대를 이어가야 할 사람이 바로 며느리이다. 가정의 창시자인 하느님께서 남자와 여자의 역할을 다르게 마련한 것을 새겨보면서 행복한 가정이 여인들의 책임임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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