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바둑 한 수 하실까요
2008.03.28 21:07
아버지, 바둑 한 수 하실까요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최기춘
아버지에 대한 추억들을 이야기할 때 우리 또래들은 대부분 아버지는 엄하시고 고지식하시고 황제처럼 군림하신 권력자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는 달랐다. 우리 아버지는 자상하지는 않아도 인자하시고, 돈 잘 주시고, 많이 알지만 자식들 앞에서 내색도 않으셨다. 북을 잘 치시고 춤을 잘 추시며, 서예도 잘 하시고 시조나 판소리도 즐겨하시는 멋과 풍류를 아시는 멋진 아버지셨다. 우리는 형제가 여덟 명이다. 그런데 어린 시절부터 장성할 때까지 아버지에게 꾸지람을 듣고 매를 맞아본 형제가 한 사람도 없다고 하면 아마 거짓이라고 말할 사람들도 더러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형제들은 아버지에게 한 사람도 매를 맞거나 심하게 꾸지람을 들어본 일이 없다.
아버지는 우리들의 어린 시절에 돈을 잘 주셨다. 아버지가 돈을 잘 주셨다고 하니까 살림살이가 넉넉 했나보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결코 살림살이가 넉넉해서 잘 주신 게 아니다. 아버지는 우리형제들이 돈이 필요하다고 하면 대략 물으시곤 항상 달라는 금액보다 더 많이 주셨다. 어린 시절 친구들을 보면 대개 부모님께서 하는 거짓말이 용돈 때문에 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우리 형제들은 부모님께 거짓말을 할 필요가 별로 없었다. 친구들과 놀다가 다소 밤늦게 집에 들어가도 아버지는 별로 책망을 안 하시고 또 농사철 바쁠 때 일손을 거들지 않아도 별 말씀을 안 하시니까 부모님께 별로 거짓말을 해본 기억이 없다. 아버지는 일만 하시는 것보다는 노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아버지는 돈이나 노동에 대한 철학이 있으셨다. 돈이란 벌고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쓰는 데도 인색하면 안 되고 특히 수전노가 되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노동 또한 생활의 한 방편이지 쉴 지도 모르고 미래에 대한 예측이나 생각 없이 일만 열심히 한다고 잘사는 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노는 법도 많이 알려주셨다. 우리 형제들은 화투(민화투, 육백, 고스톱) 꼬누, 장기, 바둑 등도 아버지에게 다 배웠다. 우리 어린시절에는 화투도 퍽 귀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설이 돌아오면 화투와 바둑판, 장기판 그리고 잔돈도 준비해주시고 화투, 바둑, 장기 등 놀이를 가르쳐 주셨다.
며느리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명절이면 아버지는 며느리들과 고스톱을 치시고 우리 형제들은 형제들끼리 고스톱과 장기, 바둑을 두게 하셨다. 아버지께 어린 시절부터 배운 솜씨라 모두 실력들이 짱짱했다. 우리 8형제는 화투, 장기, 바둑 못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도박을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래서 나는 내 며느리 에게도 자신 있게 말한다. 손자 재경이가 화투를 만지면 못 만지게 하는데 오히려 어린 시절부터 노는 방법을 건전하게 지도해 주면 화투놀이도 셈하는 방법도 터득하고 여러 가지로 장점도 있으니 좋은 쪽으로 각하라고 일러준다. 아버지는 우리형제들이 장성하여 직장 따라 전주에 나와 사니까 가끔 전주에 오신다. 우리 집에서 대부분 형제들이 직장에 출근하면 며느리들을 소집해서 고스톱을 치시곤 하셨다.
바둑은 다른 형제들과 자주 두셨지만 나와 제일 많이 두셨다. 바둑 실력은 아버지께 아홉 점을 놓고 배웠는데 내가 군대에 입대할 무렵에는 기력이 비슷했었다. 기력은 아마추어 초단정도가 될 것이다. 아버지는 바둑을 두실 때 고사 성어나 바둑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해주셨다.
바둑을 두시다가 작은 곳에 집착하면 소탐대실이라고 하셨다. 내 바둑이 불안전한 상태에서 공격하면 아생연후살타라 하셨다. 앞만 보고 공격하면 성동격서라 하셨다. 제대하고 돌아와서는 아버지와 나의기력이 더욱 비슷해져 바둑을 두다 보면 날을 새는 날도 더러 있었다. 내가 직장생활을 시작 한 뒤로는 자주 바둑을 둘 시간이 없고 또 멀리 떨어져 사니까 바둑을 둘 기회가 적어졌지만 그래도 명절이나 휴가 때면 가끔 바둑을 두었다. 어느 때인가, 내 막내아들과 아버지가 바둑을 두시는 걸 들여다보다가 깜짝 놀랐다. 아버지가 자꾸 헛수를 두셔서 처음에는 손자에게 일부러 져주시려고 그러는가 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그런 게 아니었다.
아버지께서 바둑판 전체를 두루 파악하지 못하셔서 자꾸 헛수를 두신 걸 보고 마음이 허전하기도 하고 안타까웠다. 그때 그 순간의 심정을 말과 글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실은 나는 말뿐이지 아버지께 평소 잘 해드리지 못했다. 고향에서 효자라고 소문이 자자한 바로 위형님이 아버님이 사시는 고향에서 면장으로 재직하고 계시면서 부모님을 잘 모셔서 셋째아들인 나는 형님들을 믿고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지 못했다. 항상 바쁘다는 핑계로 정년하고 나면 시간을 내어 부모님을 자주 찾아뵈면서 잘해야겠다고 마음속으로 자주 다짐을 했었다. 아버지는 내가 정년도 하기 전 2006년 정월 대보름날 92세에 돌아가셨다. 막상 정년을 하니 아버님은 돌아가시고 어머님만 계신데 나는 지금도 형님들께 의존하고 어머님을 자주 찾아뵙지 못한다.
돌아오는 한식날에는 어머니도 찾아뵙고 아버지 산소에도 찾아가 ‘아버님 바둑 한 수 하실까요?’ 하고 여쭈어봐야겠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최기춘
아버지에 대한 추억들을 이야기할 때 우리 또래들은 대부분 아버지는 엄하시고 고지식하시고 황제처럼 군림하신 권력자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는 달랐다. 우리 아버지는 자상하지는 않아도 인자하시고, 돈 잘 주시고, 많이 알지만 자식들 앞에서 내색도 않으셨다. 북을 잘 치시고 춤을 잘 추시며, 서예도 잘 하시고 시조나 판소리도 즐겨하시는 멋과 풍류를 아시는 멋진 아버지셨다. 우리는 형제가 여덟 명이다. 그런데 어린 시절부터 장성할 때까지 아버지에게 꾸지람을 듣고 매를 맞아본 형제가 한 사람도 없다고 하면 아마 거짓이라고 말할 사람들도 더러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형제들은 아버지에게 한 사람도 매를 맞거나 심하게 꾸지람을 들어본 일이 없다.
아버지는 우리들의 어린 시절에 돈을 잘 주셨다. 아버지가 돈을 잘 주셨다고 하니까 살림살이가 넉넉 했나보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결코 살림살이가 넉넉해서 잘 주신 게 아니다. 아버지는 우리형제들이 돈이 필요하다고 하면 대략 물으시곤 항상 달라는 금액보다 더 많이 주셨다. 어린 시절 친구들을 보면 대개 부모님께서 하는 거짓말이 용돈 때문에 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우리 형제들은 부모님께 거짓말을 할 필요가 별로 없었다. 친구들과 놀다가 다소 밤늦게 집에 들어가도 아버지는 별로 책망을 안 하시고 또 농사철 바쁠 때 일손을 거들지 않아도 별 말씀을 안 하시니까 부모님께 별로 거짓말을 해본 기억이 없다. 아버지는 일만 하시는 것보다는 노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아버지는 돈이나 노동에 대한 철학이 있으셨다. 돈이란 벌고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쓰는 데도 인색하면 안 되고 특히 수전노가 되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노동 또한 생활의 한 방편이지 쉴 지도 모르고 미래에 대한 예측이나 생각 없이 일만 열심히 한다고 잘사는 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노는 법도 많이 알려주셨다. 우리 형제들은 화투(민화투, 육백, 고스톱) 꼬누, 장기, 바둑 등도 아버지에게 다 배웠다. 우리 어린시절에는 화투도 퍽 귀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설이 돌아오면 화투와 바둑판, 장기판 그리고 잔돈도 준비해주시고 화투, 바둑, 장기 등 놀이를 가르쳐 주셨다.
며느리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명절이면 아버지는 며느리들과 고스톱을 치시고 우리 형제들은 형제들끼리 고스톱과 장기, 바둑을 두게 하셨다. 아버지께 어린 시절부터 배운 솜씨라 모두 실력들이 짱짱했다. 우리 8형제는 화투, 장기, 바둑 못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도박을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래서 나는 내 며느리 에게도 자신 있게 말한다. 손자 재경이가 화투를 만지면 못 만지게 하는데 오히려 어린 시절부터 노는 방법을 건전하게 지도해 주면 화투놀이도 셈하는 방법도 터득하고 여러 가지로 장점도 있으니 좋은 쪽으로 각하라고 일러준다. 아버지는 우리형제들이 장성하여 직장 따라 전주에 나와 사니까 가끔 전주에 오신다. 우리 집에서 대부분 형제들이 직장에 출근하면 며느리들을 소집해서 고스톱을 치시곤 하셨다.
바둑은 다른 형제들과 자주 두셨지만 나와 제일 많이 두셨다. 바둑 실력은 아버지께 아홉 점을 놓고 배웠는데 내가 군대에 입대할 무렵에는 기력이 비슷했었다. 기력은 아마추어 초단정도가 될 것이다. 아버지는 바둑을 두실 때 고사 성어나 바둑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해주셨다.
바둑을 두시다가 작은 곳에 집착하면 소탐대실이라고 하셨다. 내 바둑이 불안전한 상태에서 공격하면 아생연후살타라 하셨다. 앞만 보고 공격하면 성동격서라 하셨다. 제대하고 돌아와서는 아버지와 나의기력이 더욱 비슷해져 바둑을 두다 보면 날을 새는 날도 더러 있었다. 내가 직장생활을 시작 한 뒤로는 자주 바둑을 둘 시간이 없고 또 멀리 떨어져 사니까 바둑을 둘 기회가 적어졌지만 그래도 명절이나 휴가 때면 가끔 바둑을 두었다. 어느 때인가, 내 막내아들과 아버지가 바둑을 두시는 걸 들여다보다가 깜짝 놀랐다. 아버지가 자꾸 헛수를 두셔서 처음에는 손자에게 일부러 져주시려고 그러는가 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그런 게 아니었다.
아버지께서 바둑판 전체를 두루 파악하지 못하셔서 자꾸 헛수를 두신 걸 보고 마음이 허전하기도 하고 안타까웠다. 그때 그 순간의 심정을 말과 글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실은 나는 말뿐이지 아버지께 평소 잘 해드리지 못했다. 고향에서 효자라고 소문이 자자한 바로 위형님이 아버님이 사시는 고향에서 면장으로 재직하고 계시면서 부모님을 잘 모셔서 셋째아들인 나는 형님들을 믿고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지 못했다. 항상 바쁘다는 핑계로 정년하고 나면 시간을 내어 부모님을 자주 찾아뵈면서 잘해야겠다고 마음속으로 자주 다짐을 했었다. 아버지는 내가 정년도 하기 전 2006년 정월 대보름날 92세에 돌아가셨다. 막상 정년을 하니 아버님은 돌아가시고 어머님만 계신데 나는 지금도 형님들께 의존하고 어머님을 자주 찾아뵙지 못한다.
돌아오는 한식날에는 어머니도 찾아뵙고 아버지 산소에도 찾아가 ‘아버님 바둑 한 수 하실까요?’ 하고 여쭈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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