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내 고향 광주
2008.04.01 15:58
다시 찾은 내 고향 광주(廣州)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이의
고향을 떠난 지 50여년 만에 어렸을 때 살았던 고향을 찾았다. 나의 고향은 서울서 40분만 달리면 도착하는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양벌 3리. 아파트가 들어서며 인구가 늘어나더니 시로 승격한 신도시다. 도로가 좋아지고 서울이 팽창하다 보니 서울의 이웃이 됐다. 하지만 내가 학교 다닐 때는 서울에서 고향집으로 가는 일이 그리 쉽지 않았다. 버스는 언제나 콩나물시루같이 발 디딜 틈도 없었고, 비포장도로를 덜컹거리며 힘겹게 두어 시간이나 달려야 했다. 그래도 방학이 되어 광주로 가는 길은 즐거웠다. 마을 앞을 휘돌아 흐르는 경안천이 있고 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싼 뒷동산, 어려서 같이 놀던 친구들이 그리워서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손자들이 서울서 내려오는 날을 기다리며 언제나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놓고 세상에 다시없는 손자들인 양 반기셨다.
동대문에서 출발한 버스가 천호동을 지나면서부터 산길을 따라 꼬불꼬불한 고갯길을 돌고 돌아서 광주읍에 도착하면 경안천을 따라 널따란 논과 밭이 펼쳐진다. 읍에서 용인 쪽 국도를 따라 3km쯤 가면 내가 태어나서 유년시절을 보낸 내 고향 둔전 마을이 나온다.
동네 안 쪽 윗마을에 큰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아마 중학교 2학년이었을 때로 기억한다. 여름방학 때 유명한 영화배우 김승호 황정순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촬영장면을 볼 수 있었다. 청춘 남녀의 사랑의 밀회장소가 바로 큰 느티나무였었다. 그해 여름방학은 그들을 졸졸 쫓아다니다보니 훌쩍 가버려 뒤 늦게 방학 숙제하느라고 고역을 치르기도 하였다. 영화제목은 생각이 안 나지만 6. 25를 배경으로 한 전쟁 영화였었던 것 같다. 얼마 뒤 극장 단체관람을 하면서 내 고향이 이토록 아름다운 곳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며 큰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화면에 비친 느티나무는 웅장하고 아름다웠으며, 앞뜰에 펼쳐진 황금물결은 우리 동네가 부자마을인 듯 가슴이 벅차오르는 환희를 맛보기도 하였다.
지금도 그 자리에 느티나무가 그대로 있지만 옛날 그 나무라고 믿기지 않는다. 두 아름을 자랑하던 느티나무는 세월을 못 이겨 한 쪽은 텅 비어있고 반대쪽은 시멘트로 메운 상처투성이어서 안쓰럽다. 그 몸에 매달린 엉성한 가지들이 옛날의 전성기를 그리워하듯 애처로워 보인다.
초가집이 양옥으로 변하고, 빌라가 들어서서 옛날의 정취는 찾을 길이 없지만, 마을주민들이 느티나무를 보존하려고 노력하여 게나마 살아있다고 한다.
우리 마을은 서울이 가까워서 출퇴근할 수 있고, 산이 많아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으며, 한적한 풍경이 도시답지 않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몇 십 년 만에 찾은 고향이지만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모두가 낯이 설다. 어쩌다 노인이나 마주쳐야 조금 알 듯하니 마음속의 고향이나 뭐가 다르랴.
초등학교 시절, 새우를 잡고 달팽이를 줍던 냇가는 세월과 함께 물길조차 변해 버려 기억 속의 냇가마저 흐려질까 두려워 제방 둑으로 나가기가 두렵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동네가 산 밑에 있어서 아파트 들어설 자리가 없다는 점이다.
봄이면 산에서 꾀꼬리가 울고, 앞산 뒷산에는 진달래가 지천으로 핀다. 가을이면 뒷동산에서 알밤을 줍고, 청설모를 보며 도토리도 줍는다. 이런 자연이 주는 행복을 과연 우리는 언제까지 누릴 수 있을까.
(2008. 3. 31.)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이의
고향을 떠난 지 50여년 만에 어렸을 때 살았던 고향을 찾았다. 나의 고향은 서울서 40분만 달리면 도착하는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양벌 3리. 아파트가 들어서며 인구가 늘어나더니 시로 승격한 신도시다. 도로가 좋아지고 서울이 팽창하다 보니 서울의 이웃이 됐다. 하지만 내가 학교 다닐 때는 서울에서 고향집으로 가는 일이 그리 쉽지 않았다. 버스는 언제나 콩나물시루같이 발 디딜 틈도 없었고, 비포장도로를 덜컹거리며 힘겹게 두어 시간이나 달려야 했다. 그래도 방학이 되어 광주로 가는 길은 즐거웠다. 마을 앞을 휘돌아 흐르는 경안천이 있고 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싼 뒷동산, 어려서 같이 놀던 친구들이 그리워서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손자들이 서울서 내려오는 날을 기다리며 언제나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놓고 세상에 다시없는 손자들인 양 반기셨다.
동대문에서 출발한 버스가 천호동을 지나면서부터 산길을 따라 꼬불꼬불한 고갯길을 돌고 돌아서 광주읍에 도착하면 경안천을 따라 널따란 논과 밭이 펼쳐진다. 읍에서 용인 쪽 국도를 따라 3km쯤 가면 내가 태어나서 유년시절을 보낸 내 고향 둔전 마을이 나온다.
동네 안 쪽 윗마을에 큰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아마 중학교 2학년이었을 때로 기억한다. 여름방학 때 유명한 영화배우 김승호 황정순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촬영장면을 볼 수 있었다. 청춘 남녀의 사랑의 밀회장소가 바로 큰 느티나무였었다. 그해 여름방학은 그들을 졸졸 쫓아다니다보니 훌쩍 가버려 뒤 늦게 방학 숙제하느라고 고역을 치르기도 하였다. 영화제목은 생각이 안 나지만 6. 25를 배경으로 한 전쟁 영화였었던 것 같다. 얼마 뒤 극장 단체관람을 하면서 내 고향이 이토록 아름다운 곳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며 큰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화면에 비친 느티나무는 웅장하고 아름다웠으며, 앞뜰에 펼쳐진 황금물결은 우리 동네가 부자마을인 듯 가슴이 벅차오르는 환희를 맛보기도 하였다.
지금도 그 자리에 느티나무가 그대로 있지만 옛날 그 나무라고 믿기지 않는다. 두 아름을 자랑하던 느티나무는 세월을 못 이겨 한 쪽은 텅 비어있고 반대쪽은 시멘트로 메운 상처투성이어서 안쓰럽다. 그 몸에 매달린 엉성한 가지들이 옛날의 전성기를 그리워하듯 애처로워 보인다.
초가집이 양옥으로 변하고, 빌라가 들어서서 옛날의 정취는 찾을 길이 없지만, 마을주민들이 느티나무를 보존하려고 노력하여 게나마 살아있다고 한다.
우리 마을은 서울이 가까워서 출퇴근할 수 있고, 산이 많아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으며, 한적한 풍경이 도시답지 않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몇 십 년 만에 찾은 고향이지만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모두가 낯이 설다. 어쩌다 노인이나 마주쳐야 조금 알 듯하니 마음속의 고향이나 뭐가 다르랴.
초등학교 시절, 새우를 잡고 달팽이를 줍던 냇가는 세월과 함께 물길조차 변해 버려 기억 속의 냇가마저 흐려질까 두려워 제방 둑으로 나가기가 두렵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동네가 산 밑에 있어서 아파트 들어설 자리가 없다는 점이다.
봄이면 산에서 꾀꼬리가 울고, 앞산 뒷산에는 진달래가 지천으로 핀다. 가을이면 뒷동산에서 알밤을 줍고, 청설모를 보며 도토리도 줍는다. 이런 자연이 주는 행복을 과연 우리는 언제까지 누릴 수 있을까.
(2008.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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