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사람
2008.04.09 10:44
행복한 사람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야간반 최윤
가족들과 더불어 제주도에 다녀왔다. 제주도는 많은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있는 관광명소지만 내 기억에 가장 오래 남은 곳은 ‘김영갑 갤러리’였다.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리에 있는 그 갤러리는 잘 찾지 않으면 그냥 스쳐 지나도 모를 만큼 수수하여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이었다. 갤러리 안으로 들어서자 고요하고 쓸쓸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예전엔 ‘학교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역시나 폐교를 개조해 만든 곳이라고 했다.
예전의 운동장이 지금은 정원으로 꾸며져 유채꽃, 목련, 동백, 수선화가 현무암들과 어우러져 있고, 꽃들 사이엔 오밀조밀한 토우(土偶)들이 세워져 있었다.
사진을 감상하기 전 좋은 공기를 마시며 산책하라는 작가의 사려 깊은 배려인 것 같았다. 잠시 산책을 하며 토우들을 구경했다. 작가는 사진을 찍다 병을 얻어, 요절했는데 그런 그가 가엾다는 생각을 하며 둘러보아서인지 정원에 꾸며진 토우들이 참 슬퍼 보였다. 자꾸만 토우들이 외롭게 생각에 잠겨있거나, 울고 있는 모습으로 보였다.
좋은 공기를 듬뿍 마시고 갤러리에 들어서니 작가의 사진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사진 속의 그는 병색이 짙은 여윈 얼굴이었다. 김영갑은 1957년 충남 부여에서 출생하여 2005년 5월 29일에 세상을 떴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제주도로 건너와 제주도의 매력에 흠뻑 빠져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의 사진을 보면 초라한 행색이지만 얼굴만큼은 행복한 웃음으로 가득했다. 그는 사진을 팔아 돈을 벌지도 않았고, 결혼도 하지 않았으며, 무거운 장비를 들고 몸을 돌보지 못한 탓에 근육이 마비되는 루게닉병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사진전 한 번 열지 못했다. 하지만 그저 제주도가 좋아서, 더 이상 몸에 힘이 빠져 사진을 찍을 수 없을 때까지 아름다운 제주도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으며 살았다. 어느 정도 제주도를 편애했느냐 하면 자신의 카메라로는 제주도만 담겠다며 외국 여행을 가도 카메라 없이 빈손으로 떠났으며, 다른 지역은 자신의 카메라에 담지 않았다 한다. 어찌 보면 융통성이 없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만큼 제주도를 연인처럼 사랑했었던 모양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그 상대방의 모든 행동이나 말, 심지어는 지나가는 길까지 모두 의미가 있어 보인다. 김영갑도 그랬는지 아침에 본 제주, 낮에 본 제주, 노을이 질 때의 제주, 바람이 불 때, 비가 올 때, 맑은 날의 제주 모습 등 여러 가지 장소를 찍기보다는 한 장소를 여러 번 찍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그저 똑같은 장소였을 제주도를 애정의 눈으로 보니, 볼 때마다 새롭고 다른 모습으로 보였던 것 같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풍경 사진을 보던 나는, 한 사진 앞에서 시선을 멈추었다. 그것은 아름다운 제주도의 풍경이 아닌 ‘김영갑’ 그의 사진이었다. 초라한 방안에 앉아 자신이 찍은 사진을 살펴보고 있는 사진이었는데, 내가 그동안 보았던 사람들 중 유일하게 ‘아, 정말 이 사람은 행복한 순간을 만끽하고 있구나! 이 사람은 지금 사랑에 빠져있구나!’하고 느껴지는 사진이었다. 그 사진이 마음에 들어 오랫동안 그 사진을 보다가 아래에 씌어진 작가의 글을 읽어 보았다.
“금전이란 내게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배가 고프면 주변에 있는 밭에서 무나 고구마를 캐먹으면 된다. 사람이 행복하려면 무언가와 사랑에 빠져야 한다. 그것은 잡념 없이 사랑하는 것이어야 한다. 사람이 잡념 없는 사랑을 하려면 욕심을 버려한 한다. 자신이 가장 몰두할 수 있는 그것. 그것을 찾게 되면 아무리 가난해도 그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다.”
난 그 사진 앞에서 오랫동안 떠날 수 없었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곳 제주도가 여러 혼들의 상념들이 모인다는 ‘섬’이어서 인지, 아니면 그 작가가 남긴 상념이 너무 강해서인지 나도 모르게 난 그와 동화된 듯한 느낌이었다. 만난 적도 없는 그 작가가 친절하게 내 곁으로 와서 어디서도 들은 적이 없는 감동적인 메시지를 말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면 너무 소녀 적인 감상일까?
난 ‘투덜거리기 여왕’이다. 항상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목마름으로 살아간다. 왜 난 왜 다른 사람보다 못하는 걸까, 난 왜 이리 부족한 걸까, 하고 늘 자신을 채근했고 주위 사람까지 탓하며 투덜거렸다. 결국, ‘무엇을 하며 살아야 남들이 봤을 때 부러워하는 삶일까?’ 하고 난 늘 남들과 비교하며 욕심을 갖고 살았기에 늘 힘들었던 것이다. 겉치레에만 매달려 내가 진심으로 원하고,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등한시했던 것임을 알았다. 그리고 어떤 삶이 진정 행복한 삶인지 궁금했던 내 마음에 ‘김영갑’, 그는 어느 정도의 해답을 보여 주었다.
사진 감상을 끝낸 뒤, 방명록에 이렇게 나의 감상을 적어 두었다.
“제대로 된 옷 한 벌 없고, 내다 버린 고구마를 주워 먹고 살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예전엔 믿지 않았지만 오늘 당신을 보니까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사는 동안 당신은 당신의 삶을 사랑할 수 있었겠지요. 어떤 사람들은 ‘당신은 가난하니까 불행할 거야’라고 말해도 못들은 척 행복한 웃음을 지었을 당신의 모습이 상상됩니다. 처음 당신을 보았을 땐 가엾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남들이 모르는 행복을 느꼈겠구나 싶으니까 아픈 맘은 사라집니다. 당신은 당신의 세계에서 가장 행복했다고 확신합니다. 그런 당신의 세계가 맘에 듭니다. 그 세계에 잠시 몸담고 갑니다.”
꽤 오랫동안 머물렀던 모양이다. 언니가 가자고 하여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덧 해가 지고 있었다. 가족들과 함께 갤러리를 나서며 생각했다.
‘김영갑 님. 감사합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혼란스러웠던 제 맘을 잡아 주어서. 제 머릿속에 늘 안개처럼 뿌옇게 흐려있던 고민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아요. 괜한 욕심에 주변 사람들에게 투덜거려 맘을 상하게 하고, 또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 방황했던 내 맘을 알 것 같아요. 남들에게 보이는 모습이 아닌 내가 진정 사랑하고 몰두하면서 행복함을 느끼는 길을 찾아야겠습니다.’
다시 한 번 작가를 닮은 조용한 정원을 바라본 뒤, 다음 행선지로 발걸음을 돌렸다. 처음 들어 올 땐, 그저 슬프게만 보였던 토우들이 좋은 감상이 되었냐고 묻는 듯 나를 향해 인자한 미소를 보내 주었다. 그들에게도 인사를 하고 난 갤러리를 나섰다. 그의 사진과 그의 삶에서 교훈을 얻고 가는 그런 날이었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야간반 최윤
가족들과 더불어 제주도에 다녀왔다. 제주도는 많은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있는 관광명소지만 내 기억에 가장 오래 남은 곳은 ‘김영갑 갤러리’였다.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리에 있는 그 갤러리는 잘 찾지 않으면 그냥 스쳐 지나도 모를 만큼 수수하여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이었다. 갤러리 안으로 들어서자 고요하고 쓸쓸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예전엔 ‘학교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역시나 폐교를 개조해 만든 곳이라고 했다.
예전의 운동장이 지금은 정원으로 꾸며져 유채꽃, 목련, 동백, 수선화가 현무암들과 어우러져 있고, 꽃들 사이엔 오밀조밀한 토우(土偶)들이 세워져 있었다.
사진을 감상하기 전 좋은 공기를 마시며 산책하라는 작가의 사려 깊은 배려인 것 같았다. 잠시 산책을 하며 토우들을 구경했다. 작가는 사진을 찍다 병을 얻어, 요절했는데 그런 그가 가엾다는 생각을 하며 둘러보아서인지 정원에 꾸며진 토우들이 참 슬퍼 보였다. 자꾸만 토우들이 외롭게 생각에 잠겨있거나, 울고 있는 모습으로 보였다.
좋은 공기를 듬뿍 마시고 갤러리에 들어서니 작가의 사진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사진 속의 그는 병색이 짙은 여윈 얼굴이었다. 김영갑은 1957년 충남 부여에서 출생하여 2005년 5월 29일에 세상을 떴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제주도로 건너와 제주도의 매력에 흠뻑 빠져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의 사진을 보면 초라한 행색이지만 얼굴만큼은 행복한 웃음으로 가득했다. 그는 사진을 팔아 돈을 벌지도 않았고, 결혼도 하지 않았으며, 무거운 장비를 들고 몸을 돌보지 못한 탓에 근육이 마비되는 루게닉병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사진전 한 번 열지 못했다. 하지만 그저 제주도가 좋아서, 더 이상 몸에 힘이 빠져 사진을 찍을 수 없을 때까지 아름다운 제주도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으며 살았다. 어느 정도 제주도를 편애했느냐 하면 자신의 카메라로는 제주도만 담겠다며 외국 여행을 가도 카메라 없이 빈손으로 떠났으며, 다른 지역은 자신의 카메라에 담지 않았다 한다. 어찌 보면 융통성이 없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만큼 제주도를 연인처럼 사랑했었던 모양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그 상대방의 모든 행동이나 말, 심지어는 지나가는 길까지 모두 의미가 있어 보인다. 김영갑도 그랬는지 아침에 본 제주, 낮에 본 제주, 노을이 질 때의 제주, 바람이 불 때, 비가 올 때, 맑은 날의 제주 모습 등 여러 가지 장소를 찍기보다는 한 장소를 여러 번 찍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그저 똑같은 장소였을 제주도를 애정의 눈으로 보니, 볼 때마다 새롭고 다른 모습으로 보였던 것 같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풍경 사진을 보던 나는, 한 사진 앞에서 시선을 멈추었다. 그것은 아름다운 제주도의 풍경이 아닌 ‘김영갑’ 그의 사진이었다. 초라한 방안에 앉아 자신이 찍은 사진을 살펴보고 있는 사진이었는데, 내가 그동안 보았던 사람들 중 유일하게 ‘아, 정말 이 사람은 행복한 순간을 만끽하고 있구나! 이 사람은 지금 사랑에 빠져있구나!’하고 느껴지는 사진이었다. 그 사진이 마음에 들어 오랫동안 그 사진을 보다가 아래에 씌어진 작가의 글을 읽어 보았다.
“금전이란 내게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배가 고프면 주변에 있는 밭에서 무나 고구마를 캐먹으면 된다. 사람이 행복하려면 무언가와 사랑에 빠져야 한다. 그것은 잡념 없이 사랑하는 것이어야 한다. 사람이 잡념 없는 사랑을 하려면 욕심을 버려한 한다. 자신이 가장 몰두할 수 있는 그것. 그것을 찾게 되면 아무리 가난해도 그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다.”
난 그 사진 앞에서 오랫동안 떠날 수 없었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곳 제주도가 여러 혼들의 상념들이 모인다는 ‘섬’이어서 인지, 아니면 그 작가가 남긴 상념이 너무 강해서인지 나도 모르게 난 그와 동화된 듯한 느낌이었다. 만난 적도 없는 그 작가가 친절하게 내 곁으로 와서 어디서도 들은 적이 없는 감동적인 메시지를 말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면 너무 소녀 적인 감상일까?
난 ‘투덜거리기 여왕’이다. 항상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목마름으로 살아간다. 왜 난 왜 다른 사람보다 못하는 걸까, 난 왜 이리 부족한 걸까, 하고 늘 자신을 채근했고 주위 사람까지 탓하며 투덜거렸다. 결국, ‘무엇을 하며 살아야 남들이 봤을 때 부러워하는 삶일까?’ 하고 난 늘 남들과 비교하며 욕심을 갖고 살았기에 늘 힘들었던 것이다. 겉치레에만 매달려 내가 진심으로 원하고,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등한시했던 것임을 알았다. 그리고 어떤 삶이 진정 행복한 삶인지 궁금했던 내 마음에 ‘김영갑’, 그는 어느 정도의 해답을 보여 주었다.
사진 감상을 끝낸 뒤, 방명록에 이렇게 나의 감상을 적어 두었다.
“제대로 된 옷 한 벌 없고, 내다 버린 고구마를 주워 먹고 살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예전엔 믿지 않았지만 오늘 당신을 보니까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사는 동안 당신은 당신의 삶을 사랑할 수 있었겠지요. 어떤 사람들은 ‘당신은 가난하니까 불행할 거야’라고 말해도 못들은 척 행복한 웃음을 지었을 당신의 모습이 상상됩니다. 처음 당신을 보았을 땐 가엾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남들이 모르는 행복을 느꼈겠구나 싶으니까 아픈 맘은 사라집니다. 당신은 당신의 세계에서 가장 행복했다고 확신합니다. 그런 당신의 세계가 맘에 듭니다. 그 세계에 잠시 몸담고 갑니다.”
꽤 오랫동안 머물렀던 모양이다. 언니가 가자고 하여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덧 해가 지고 있었다. 가족들과 함께 갤러리를 나서며 생각했다.
‘김영갑 님. 감사합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혼란스러웠던 제 맘을 잡아 주어서. 제 머릿속에 늘 안개처럼 뿌옇게 흐려있던 고민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아요. 괜한 욕심에 주변 사람들에게 투덜거려 맘을 상하게 하고, 또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 방황했던 내 맘을 알 것 같아요. 남들에게 보이는 모습이 아닌 내가 진정 사랑하고 몰두하면서 행복함을 느끼는 길을 찾아야겠습니다.’
다시 한 번 작가를 닮은 조용한 정원을 바라본 뒤, 다음 행선지로 발걸음을 돌렸다. 처음 들어 올 땐, 그저 슬프게만 보였던 토우들이 좋은 감상이 되었냐고 묻는 듯 나를 향해 인자한 미소를 보내 주었다. 그들에게도 인사를 하고 난 갤러리를 나섰다. 그의 사진과 그의 삶에서 교훈을 얻고 가는 그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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