슛!골인

2008.04.24 10:44

최정순 조회 수:738 추천:2

슛! 골인
            -막둥이의 결혼을 기대하며-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최정순


봄은 혼인의 계절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편지함 열기가 겁날 정도로 3,4월 내내 일주일에 한두 건씩 청첩장과 함께 전화가 줄을 잇는다.  

계모임 총무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용인 즉 자기 아들 결혼식 날 예식장에서 모임을 가지면 계금도 아낄뿐더러 결혼식에도 참석하고 일거양득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뜬금없는 전화를 받고 내심 놀랐다. 친구 입이 아무리 무겁기로서니 일언반구도 없이 아들을 결혼시킨다는 소리에 백번 축하한다고  했지만 기분이 묘했다. 친구와 나는 처지가 비슷해서 서로 만나면 나 같은 동지가 있다는 점에서 위안을 받았는데, 이젠 그런 동지가 없어지게 되니 갑자기 허전해졌다. 나는 부모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부모가 반 중매쟁이라던데, 친구 아들과 우리 집 막둥이와는 초등학교 동창인데다 동갑내기다. 친구가 부럽기도 하고, 막둥이에게 미안한 생각까지 들었다.  
  
슛! 골인, 4강에 진출, 아! 대한민국, 짝짝짝, 붉은 악마들, ‘Red’라 쓰인 티셔츠, 거리마다 대형 스크린, 멋진 세리머니, 히딩크, 박지성, 안정환 선수 등등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통쾌하다. 세계가 들끓었던 2002년 한일월드컵대회만큼이나 그해 우리 집 막둥이도 화려했었다.
서울에서 유학을 마친 총각이 전국 각지에서 모인 사나이들을 물리치고 효성그룹에 슛! 골인을 했으니 말이다. 입사연수를 마치고 집에 다니러 왔을 때 내 앞에 내민 명함은 나를 다시 한 번 감동시켰다. 명함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다.

주식회사 효성중공업 퍼포먼스그룹 전력PU/차단기설계팀 정지균    

자식사랑은 내리사랑이라더니 누나와 형보다도 막둥이가 더 애잔한 이유는 부모가 되어봐야 안다. 축구공같이 둥글둥글한 생김새만큼이나 성격 또한 너그럽고 부드러우며 자상한 편이다. 남성으로서 자기주장을 섣불리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묵묵히 펴나가는 스타일이다. 우리 집 막둥이를 보면 그냥 든든하다. 솥뚜껑만한 손으로 피아노 건반을 눌러 섬세한 음을 만들어내는 장면을 보면 그저 즐겁다. 막둥이 덕에 내가 팔불출이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좋다.
바야흐로 세월은 흘러 29살 되던 해부터 중매가 들어왔건만 콧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누나와 형은 한 번 선보고 슛! 골인하여 아들 딸 낳고 잘도 사는데, 일에 빠진 막둥이는 좀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그렇더니만 맞선도 보고 신식말로 미팅도 하는 것 같았다.  

선을 본 대상도 축구선수 수만큼이나 다양했다. 초중학교 교사, 학원강사, 약사, 미용사. 간호사, 여자 건축사, 영양사, 호텔 경리사, 보육사 등등. 잘 되나 싶어 조심스럽게 물어보면 패스미스로 공을 놓쳐버리고, 장거리 슈팅을 날려보지만 골대만 맞고 튕겨져 나와 노골이고, 헤딩골로 넣어 봤지만 기술부족으로 골대를 넘겨버리고, 페널티킥을, 어느 땐 프리킥을 얻어내 수비진을 뚫고 힘껏 쏴 보지만 이번에도 역시 노골, 마지막 네 번까지 만나보고는 옐로카드를 들고 말았단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팀에 들어가기만 하면 뭘 해. 슛! 골인을 시켜야지.  

아들아! 여자란, 축구선수가 발로 공을 다루듯이, 무조건 세게 골대만 보고 쏜다 해서 다루어지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네가 피아노를 치듯이 강, 약, 중강 약, 세게도 두드리고 여리게도 두드리며, 점점 빠르게도 쳐보고 점점 느리게도 치면서 절정에 이르면 드라마틱하고 다이나믹하게 연주해야 감흥이 오는 존재란다.    
  
긍정적인 생각만 가지고 사는 우리 ‘막둥이 정 과장’ 파이팅이다. 앞으로 곧 좋은 짝이 나타날 것으로 엄마는 믿고 또 믿는다.              

  
                                      (2008. 4.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