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으로 돌아 온 대통령
2008.05.04 06:02
고향으로 돌아 온 대통령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김영옥
내가 다니는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반에선 학기마다 4개 반이 함께 문학기행을 간다. 올봄에는 지난 2월에 퇴임한 제16대 노무현 대통령이 고향인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봉화산 기슭 봉하마을에 내려와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들도 그곳을 행선지로 정했다.
서쪽인 전주에서 동쪽인 김해까지의 먼 거리지만 동서관통로가 생겨 3시간 만에 도착할 수 있었 다. 동서남북 전국 각처에서 관광버스들 20여 대가 손님들을 풀어놓으니 이 작은 마을은 인산인해란 말이 어울릴정도로 소란스러웠다. 그 흔한 철쭉꽃 한 그루도 없고 길 옆의 논밭에 자갈을 깔아 임시주차장을 만든 것뿐 그다지 볼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오라고 초대한 것도 아니고, 누가 시켜서도 아닌데 2개월여 동안 날마다 많은 군중이 모여든다니 참 알 수없는 일이다. 벌써 25만여 명이 다녀갔다지 않은가? 그 분의 재직 시엔 정치를 잘못한다고 흔들어대던 국민들이, 그분을 보겠다고 먼 길을 마다않고 이렇게 찾아온 이유가 도대체 무얼까? 그가 남보다 월등하게 잘 생겼다거나 돈이 많아서 선물을 준다는 것도 아니고, 그곳이 유명한 관광지도 아닌데 말이다.
봉화산 기슭에 남향의 단층건물 세 채가 아늑해 보였다. 그 앞에는 조그만 3칸 집이 있는데 그분의 생가라고 한다. 집은 비어 있었지만 집값을 엄청나게 비싸게 달라고 한다는 말까지 들렸다. 생가가 뭐 그리 대단한가? 태어난 곳보다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자라왔으며 지금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더 중요할 것 같았다. 오후에 만날 시간은 3시라고 해서 우리들은 해발 140m쯤 되는 봉화산 등산을 하려고 올라갔지만 나는 힘들어 오르지 않고 집채보다 큰 바위 아래서 졸졸 흐르는 약수만 마시고 내려왔다. 봉화산은 낮았지만 두 봉우리를 받치고 있는 엄청 큰 바위가 어쩐지 마음에 와 닿았다.
우리가 간 날은 2008년 4월 26일 토요일. 날마다 많은 사람들과 악수를 하다 보니 노무현 대통령 내외분의 팔목과 어깨가 아플 지경에 이르고 사진을 찍느라 병이 날 정도라고 했다. 요즘은 오전 오후 시간을 정하여 하루에 네 번씩 관광객들을 만난다고 했다.
“대통령님, 나오세요!”
라고 외치니 대문을 열고 천천히 걸어 나오면서 손을 들어 군중들에게 환영의 인사를 하였다. 집앞 골목길에는 군중들이 서있고 길위에서 약 30m 거리를 왔다 갔다하며 마이크도 없이 인사말 몇 마디를 하고 사진 찍으라며 포즈만 취해주었다. 부인 권양숙 여사는 나오지 않았다.‘보고 싶으니 나오시라'고 외치자,
“마누라가 나오면 그 사람만 처다 보고 나는 안 볼 것 같아 못나오게 했다.”
고 농담도 하는 약간 살이 찐 노 대통령의 얼굴이 편안해보였다. 카우보이 모자를 벗으니 기름끼없는 머리카락은 염색이 탈색되었고, 이마의 특유한 두 줄기 주름은 사진에서보다 더 깊이 패어있었고 얼굴은 검게 탔다. 옷은 회색 점퍼에 검정바지 차림이었다. 잘 차려 입고 집무실서 보던 대통령 때와는 달리 영락없는 소박한 농군의 모습이었다.
가정이나 국가나 다를 바 없다. 가족이나 온 국민 모두가 잘 해야지 가장이나 대통령 혼자만 잘 한다고 될 일인가. 혼자 결정하는 것은 아닐진대 잘못된 것 모두를 책임자에게만 돌리고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는 당파싸움은 재발하지 말았으면 한다. 집안 식구 모두가 협조해야 가정이 편안하듯이 나라의 책임자라 하여 완전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좀 모자라면 도와주고 협조하는 것이 국민의 도리일 것 같다. 나라의 대표자로 내세워 놓고 헐뜯고 몰아붙이고 잘못되면 모든 걸 뒤집어 씌워 함부로 다루는 것만은 삼갔으면 싶다. 국민들의 질도 좀 높아졌으면 한다. 남을 탓하기 전에 자기반성부터 해 볼 일이다.
군중 앞에 서있는 저 분도 잘난 사람이면 모두가 선망하는 그 자리가 얼마나 힘들고 진저리가 났으면, 누구나 동경하지만 실천에 옮기기 어려운 고향마을에 내려와 어린 시절에 낯익은 산천에 안기려 했을까. 견디기 어려울 때 보통사람이 쓰는 말을 했다하여 트집 잡고 물어뜯으니 그 시달림이 오죽했을까. 늘 흔들어 대는 비바람을 막느라 가슴 조이던 5년이 결코 행복하지만은 않았으리라. 이제 훌훌 털고 고향마을에 정착하여 오염된 하천을 정화시키려고 장화를 신고 쓰레기를 건저올리고 농민과 어울려 낙후된 고향마을을 발전시켜보고자 하는 지금 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심정은 어떨까?
누구든 죽고 나면 그 삶을 평가하고, 이사를 가고 나면 좋고 나쁘고를 평가하게 된다. 저 많은 관광객들은 권력을 무기삼아 큰 치부를 하지 않고 나라에 큰 재난없이 지내다 서민으로 돌아와 마을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지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그 순수한 모습을 보려고 찾아온 게 아닐까? 참 이상한 일이다. 유난히 큰 입을 벌려 가식없이 활짝 웃는 웃음이 모두에게 전이되어 흐뭇했다. 손을 흔들어 잘 가라는 인사를 하고 집안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이 무척 행복해 보였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김영옥
내가 다니는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반에선 학기마다 4개 반이 함께 문학기행을 간다. 올봄에는 지난 2월에 퇴임한 제16대 노무현 대통령이 고향인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봉화산 기슭 봉하마을에 내려와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들도 그곳을 행선지로 정했다.
서쪽인 전주에서 동쪽인 김해까지의 먼 거리지만 동서관통로가 생겨 3시간 만에 도착할 수 있었 다. 동서남북 전국 각처에서 관광버스들 20여 대가 손님들을 풀어놓으니 이 작은 마을은 인산인해란 말이 어울릴정도로 소란스러웠다. 그 흔한 철쭉꽃 한 그루도 없고 길 옆의 논밭에 자갈을 깔아 임시주차장을 만든 것뿐 그다지 볼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오라고 초대한 것도 아니고, 누가 시켜서도 아닌데 2개월여 동안 날마다 많은 군중이 모여든다니 참 알 수없는 일이다. 벌써 25만여 명이 다녀갔다지 않은가? 그 분의 재직 시엔 정치를 잘못한다고 흔들어대던 국민들이, 그분을 보겠다고 먼 길을 마다않고 이렇게 찾아온 이유가 도대체 무얼까? 그가 남보다 월등하게 잘 생겼다거나 돈이 많아서 선물을 준다는 것도 아니고, 그곳이 유명한 관광지도 아닌데 말이다.
봉화산 기슭에 남향의 단층건물 세 채가 아늑해 보였다. 그 앞에는 조그만 3칸 집이 있는데 그분의 생가라고 한다. 집은 비어 있었지만 집값을 엄청나게 비싸게 달라고 한다는 말까지 들렸다. 생가가 뭐 그리 대단한가? 태어난 곳보다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자라왔으며 지금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더 중요할 것 같았다. 오후에 만날 시간은 3시라고 해서 우리들은 해발 140m쯤 되는 봉화산 등산을 하려고 올라갔지만 나는 힘들어 오르지 않고 집채보다 큰 바위 아래서 졸졸 흐르는 약수만 마시고 내려왔다. 봉화산은 낮았지만 두 봉우리를 받치고 있는 엄청 큰 바위가 어쩐지 마음에 와 닿았다.
우리가 간 날은 2008년 4월 26일 토요일. 날마다 많은 사람들과 악수를 하다 보니 노무현 대통령 내외분의 팔목과 어깨가 아플 지경에 이르고 사진을 찍느라 병이 날 정도라고 했다. 요즘은 오전 오후 시간을 정하여 하루에 네 번씩 관광객들을 만난다고 했다.
“대통령님, 나오세요!”
라고 외치니 대문을 열고 천천히 걸어 나오면서 손을 들어 군중들에게 환영의 인사를 하였다. 집앞 골목길에는 군중들이 서있고 길위에서 약 30m 거리를 왔다 갔다하며 마이크도 없이 인사말 몇 마디를 하고 사진 찍으라며 포즈만 취해주었다. 부인 권양숙 여사는 나오지 않았다.‘보고 싶으니 나오시라'고 외치자,
“마누라가 나오면 그 사람만 처다 보고 나는 안 볼 것 같아 못나오게 했다.”
고 농담도 하는 약간 살이 찐 노 대통령의 얼굴이 편안해보였다. 카우보이 모자를 벗으니 기름끼없는 머리카락은 염색이 탈색되었고, 이마의 특유한 두 줄기 주름은 사진에서보다 더 깊이 패어있었고 얼굴은 검게 탔다. 옷은 회색 점퍼에 검정바지 차림이었다. 잘 차려 입고 집무실서 보던 대통령 때와는 달리 영락없는 소박한 농군의 모습이었다.
가정이나 국가나 다를 바 없다. 가족이나 온 국민 모두가 잘 해야지 가장이나 대통령 혼자만 잘 한다고 될 일인가. 혼자 결정하는 것은 아닐진대 잘못된 것 모두를 책임자에게만 돌리고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는 당파싸움은 재발하지 말았으면 한다. 집안 식구 모두가 협조해야 가정이 편안하듯이 나라의 책임자라 하여 완전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좀 모자라면 도와주고 협조하는 것이 국민의 도리일 것 같다. 나라의 대표자로 내세워 놓고 헐뜯고 몰아붙이고 잘못되면 모든 걸 뒤집어 씌워 함부로 다루는 것만은 삼갔으면 싶다. 국민들의 질도 좀 높아졌으면 한다. 남을 탓하기 전에 자기반성부터 해 볼 일이다.
군중 앞에 서있는 저 분도 잘난 사람이면 모두가 선망하는 그 자리가 얼마나 힘들고 진저리가 났으면, 누구나 동경하지만 실천에 옮기기 어려운 고향마을에 내려와 어린 시절에 낯익은 산천에 안기려 했을까. 견디기 어려울 때 보통사람이 쓰는 말을 했다하여 트집 잡고 물어뜯으니 그 시달림이 오죽했을까. 늘 흔들어 대는 비바람을 막느라 가슴 조이던 5년이 결코 행복하지만은 않았으리라. 이제 훌훌 털고 고향마을에 정착하여 오염된 하천을 정화시키려고 장화를 신고 쓰레기를 건저올리고 농민과 어울려 낙후된 고향마을을 발전시켜보고자 하는 지금 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심정은 어떨까?
누구든 죽고 나면 그 삶을 평가하고, 이사를 가고 나면 좋고 나쁘고를 평가하게 된다. 저 많은 관광객들은 권력을 무기삼아 큰 치부를 하지 않고 나라에 큰 재난없이 지내다 서민으로 돌아와 마을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지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그 순수한 모습을 보려고 찾아온 게 아닐까? 참 이상한 일이다. 유난히 큰 입을 벌려 가식없이 활짝 웃는 웃음이 모두에게 전이되어 흐뭇했다. 손을 흔들어 잘 가라는 인사를 하고 집안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이 무척 행복해 보였다.
댓글 0
|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 634 | 봉하마을 촌부가 된 전직대통령 | 이의 | 2008.05.21 | 718 |
| 633 | 누군가는 지켜야 할 텐데 | 최기춘 | 2008.05.21 | 720 |
| 632 | 세 평의 땅 쟁탈전 | 형효순 | 2008.05.20 | 716 |
| 631 | 닭들의 수난기 | 김영옥 | 2008.05.19 | 719 |
| 630 | 그해 여름에 나는 | 홍기양 | 2008.05.17 | 718 |
| 629 | '나를 따르라 정신'을 갖자 | 김학 | 2008.05.10 | 722 |
| 628 | 아버지 | 김길남 | 2008.05.10 | 720 |
| 627 | 노무현 대통령의 고향, 봉하마을을 찾아보니 | 임두환 | 2008.05.10 | 719 |
| 626 | 우리소, 한우를 웃게하라 | 최기춘 | 2008.05.10 | 719 |
| 625 | 봉하마을 문학기행을 다녀와서 | 최윤 | 2008.05.10 | 726 |
| 624 | 인연, 그 영원한 비밀 | 이현도 | 2008.05.08 | 724 |
| 623 | 춘향제 체험기 | 형효순 | 2008.05.07 | 723 |
| 622 | 어느 여름날의 스케치 | 김학 | 2008.05.06 | 729 |
| 621 | 칭찬하고 싶은 사람 | 김병규 | 2008.05.06 | 724 |
| 620 | 은행나무꽃 | 오명순 | 2008.05.04 | 727 |
| 619 | 지안핸키시/김용학 | 김용학 | 2008.05.04 | 726 |
| » | 고향으로 돌아 온 대통령 | 김영옥 | 2008.05.04 | 725 |
| 617 | 나는 행복합니다 | 김용학 | 2008.05.03 | 726 |
| 616 | 노무현, 그 행복 전도사 | 김정길 | 2008.05.03 | 726 |
| 615 | 쓰레기 줍는 전직 대통령 | 김금례 | 2008.05.03 | 7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