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하마을 촌부가 된 전직대통령
2008.05.21 10:34
봉하마을 촌부가 된 전직대통령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이의
TV에서 장화를 신고 쓰레기를 청소하는 전직 대통령의 소박한 모습을 보며 한 번쯤 가보고 싶었다. 행촌수필문학회 봄 문학기행 목적지를 봉하마을로 정했기에 새벽부터 일어나 설쳤다. 그날따라 따뜻하던 날씨가 갑자기 바람이 불고 써늘해지니 서영이 아빠가 굳이 태워다 준다는 바람에 늦어서 미안하고 아이(서영)까지 데리고 가서 여러 문우님들에게 미안했다.
전주에서 김해까지 가는 길이 서울 가는 거리는 되는 것 같았다. 봉하마을에 들어서니 전직 대통령의 인기가 상상외로 대단하여 놀랐다. 길 따라 펄럭이는 수많은 현수막에는 전직 대통령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마을 입구에 있던 ‘고향으로 참 잘 오셨습니다.’ ‘당신이 있어 5년 동안 행복했습니다.’라는 글귀가 눈을 끌었다. 이해관계를 떠나 내 고향 사람이 대통령이라는 자부심으로 순수하게 사랑했던 고향사람들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다. 노 대통령이 잘못한다고 언론에서 떠들 때 그들의 마음도 편치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지금 한 동네서 같은 공기를 마시며 얼굴을 마주하는 지금이 그들은 더 행복할 것이다.
관광객들이 찾아올만한 볼거리나 먹을거리도 없는 평범한 농촌이었다. 재직 시 인기가 바닥을 쳤던 전 대통령을 만나보려는 관광객을 싣고 온 버스로 꽤 넓은 임시주차장이 꽉 찼다. 여기저기에서는 아직도 공사가 끝나지 않아 어수선하고, 볼만한 나무 한 그루 흔한 철쭉 한 그루조차 없는 마을이었다. 이렇도록 소박한 농촌이 전직 대통령의 고향이어서 관광객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일부 신문들이 노대통령의 일이라면 거품을 물고 무엇이나 헐뜯고 물고 늘어지더니 이곳에서도 그랬구나 싶었다. 거처하는 사저도 크거나 사치스러워 보이지 않았고 경호원 등이 머무는 집이 두어 채 있을 뿐 특별한 기사거리를 찾을 수 없었다. 신문기사를 보면서 대단한 호화별장이라도 지은 줄 알았는데 그저 그 분에게 맞겠다 싶은 집이었다. 머무는 집 앞에 초라한 3칸짜리 생가가 있었다. 대통령이 출생한 이 집은 다른 사람의 소유로 상상을 초월한 금액을 달라고 요구한다니 보존하려면 많은 어려움이 따를 듯싶었다. 시골 마을에서 도시 재 거축 지역의 알 박기가 이런 곳에서도 나타나다니 사람들의 욕심이 도시 땅 시골 땅을 안 가리는 모양이었다. 역시 대통령이라는 지위는 시골 땅값까지도 들썩거리게 만드는 힘이 있는 모양이다.
초기 방문객들은 대통령과 악수도 하고 사진도 찍는 모습을 TV에서 보았었다. 그런데 지금은 날마다 오전과 오후 2번씩 방문객을 맞이한다고 한다. 대통령과 사진도 찍고 악수도 해야지 했던 희망은 접을 수밖에 없었다. 만남의 장소는 발 디딜 틈도 없이 군중들로 꽉 차 비집고 들어 갈 수도 없었다.
약속된 시간이 가까워지자 모두 소리를 합쳐 “대통령님 나오세요!”라고 크게 여러 번 외치자 당신을 보고자 멀리서 달려온 군중들 쪽으로 나오시는 모습이 영락없는 농촌 아저씨였다. 점퍼차림의 검정바지 카우보이모자는 촌부의 모습으로 손색이 없었다. 얼굴은 검게 그을고 살이 조금 더 찌고 이마의 두 줄 상징은 더욱 깊게 패어있었다.
역사상 유래가 없는 재임 시 탄핵을 받고 모든 집무를 대행에게 맡기고 칩거할 때에도 초조해 하지 않고 법의 심판에 따라 의연한 행보를 보였던 분이다. 대통령이라는 권좌에서 물러나는 것을 두려워하기보다는 미안한 마음이 앞섰으리라.
말만 했다하면 트집을 잡아 대통령으로서의 자질과 자격이 없다고 몰매를 맞던 전직 대통령이다. 그런데 오늘의 이러한 현상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실까? 옆에 있던 젊은 여자들은 “오빠, 사랑해요!”하며 외쳤다. 안 들린다고 외치는 방문객들을 향해 마이크 하나 설치하자고 경호원에게 넌지시 조크를 하는 여유가 편해보였다.
왜 이렇게 모여들고 열광할까?
권력과 물욕은 동반자가 되어 부정부패 속에 축재를 하고도 양심의 가책도 없이 아방궁에 앉아 태연자약한 행태가 우리나라의 전직 대통령들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 분은 다 같이 잘 살자는 분배정책 때문에 가진 자들의 불만과 원망 즉 지도층의 지지를 못 얻어 실패한 대통령으로 신문지상에 오르내렸던 것이다. 인기가 바닥을 처도 소신대로 밀고나갔던 이 분은 부정부패를 없애려고 노력했고 정경유착의 끈을 자른 분이다. 권력을 이용하여 부정축재를 안했고 없는 자의 편에 서서 일하려고 하셨던 걸 모두가 알고 있음이리라.
전직 대통령들은 가끔 뜬금없는 소리로 자기 존재를 드러내기 좋아한다. 그런가 하면 가장 청렴한 듯 무일푼이라고 말하는 괴이한 전직 대통령도 있다. 그러나 고향으로 돌아가 마음을 비우고 촌부가 되어 자연인으로 돌아가 고향동네에서 사는 지금의 모습이 존경스럽기에 나도 즐거운 마음으로 이곳에 오지 않았는가.
난 노사모도 아니고 열린 우리당도 아니었지만 국회의원 시절부터 거침없이 할 말을 하는 그가 왠지 정이 가고 믿음직스러웠다. 재직 시 노 대통령을 향해 욕하고 헐뜯는 소리는 쉽게 접해지는 일들 중 하나였다. 돈 좀 있고 학벌이 높을수록 그 빈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난 들을 때마다 참을 수가 없어 가끔은 언쟁을 하기도 하였다.
대학을 나오고 돈도 남부럽지 않을 만큼 있고 미모도 겸비한 60대의 여자는 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대통령을 헐뜯고 비난하고 상스런 욕까지 서슴없이 내뱉곤 하였다. 어느 날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그런 식으로 매도할 수 있느냐고 맞받아쳤더니 그 뒤로 뜨악한 사이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지금도 별로 나아졌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녀가 지금쯤 봉하마을을 둘러본다면 생각이 좀 바뀌지 않을까.
사람은 신이 아니다. 누구나 잘못도 하고 실수도 한다. 어느 정책이 효과를 보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반드시 잘못됐다고 할 수도 없다. 시간이 지나봐야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모든 것은 역사가 말하는 법이니까.
대통령이 나오자 사람들에 밀리어 손녀 서영이가 모자를 떨어뜨렸다. 군중들이 빠지고 난 다음 찾으려고 기다렸다. 그러나 모자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멋있는 그 모자는 어느 여자아이의 머리에 얹혀져 제 본연의 구실을 할 것이다. 전 대통령이나 현 대통령이나 모자의 신세와 별 다름이 없지 않나 싶다.
대통령이라는 권력의 모자는 영원히 쓸 수 있는 모자가 아니다. 임기가 만료되면 권력의 모자는 다음 주인에게 물려주고 떠나야 하는 자리다. 물러난 뒤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사는 전직 대통령을 우리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고향으로 내려와 농부로 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신선한 멋에 힘찬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5년 동안 수고하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낙서를 정성껏 쓰고 다음 행선지인 진주 촉석루를 향해 발길을 옮겼다.
(2008. 5. 8.)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이의
TV에서 장화를 신고 쓰레기를 청소하는 전직 대통령의 소박한 모습을 보며 한 번쯤 가보고 싶었다. 행촌수필문학회 봄 문학기행 목적지를 봉하마을로 정했기에 새벽부터 일어나 설쳤다. 그날따라 따뜻하던 날씨가 갑자기 바람이 불고 써늘해지니 서영이 아빠가 굳이 태워다 준다는 바람에 늦어서 미안하고 아이(서영)까지 데리고 가서 여러 문우님들에게 미안했다.
전주에서 김해까지 가는 길이 서울 가는 거리는 되는 것 같았다. 봉하마을에 들어서니 전직 대통령의 인기가 상상외로 대단하여 놀랐다. 길 따라 펄럭이는 수많은 현수막에는 전직 대통령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마을 입구에 있던 ‘고향으로 참 잘 오셨습니다.’ ‘당신이 있어 5년 동안 행복했습니다.’라는 글귀가 눈을 끌었다. 이해관계를 떠나 내 고향 사람이 대통령이라는 자부심으로 순수하게 사랑했던 고향사람들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다. 노 대통령이 잘못한다고 언론에서 떠들 때 그들의 마음도 편치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지금 한 동네서 같은 공기를 마시며 얼굴을 마주하는 지금이 그들은 더 행복할 것이다.
관광객들이 찾아올만한 볼거리나 먹을거리도 없는 평범한 농촌이었다. 재직 시 인기가 바닥을 쳤던 전 대통령을 만나보려는 관광객을 싣고 온 버스로 꽤 넓은 임시주차장이 꽉 찼다. 여기저기에서는 아직도 공사가 끝나지 않아 어수선하고, 볼만한 나무 한 그루 흔한 철쭉 한 그루조차 없는 마을이었다. 이렇도록 소박한 농촌이 전직 대통령의 고향이어서 관광객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일부 신문들이 노대통령의 일이라면 거품을 물고 무엇이나 헐뜯고 물고 늘어지더니 이곳에서도 그랬구나 싶었다. 거처하는 사저도 크거나 사치스러워 보이지 않았고 경호원 등이 머무는 집이 두어 채 있을 뿐 특별한 기사거리를 찾을 수 없었다. 신문기사를 보면서 대단한 호화별장이라도 지은 줄 알았는데 그저 그 분에게 맞겠다 싶은 집이었다. 머무는 집 앞에 초라한 3칸짜리 생가가 있었다. 대통령이 출생한 이 집은 다른 사람의 소유로 상상을 초월한 금액을 달라고 요구한다니 보존하려면 많은 어려움이 따를 듯싶었다. 시골 마을에서 도시 재 거축 지역의 알 박기가 이런 곳에서도 나타나다니 사람들의 욕심이 도시 땅 시골 땅을 안 가리는 모양이었다. 역시 대통령이라는 지위는 시골 땅값까지도 들썩거리게 만드는 힘이 있는 모양이다.
초기 방문객들은 대통령과 악수도 하고 사진도 찍는 모습을 TV에서 보았었다. 그런데 지금은 날마다 오전과 오후 2번씩 방문객을 맞이한다고 한다. 대통령과 사진도 찍고 악수도 해야지 했던 희망은 접을 수밖에 없었다. 만남의 장소는 발 디딜 틈도 없이 군중들로 꽉 차 비집고 들어 갈 수도 없었다.
약속된 시간이 가까워지자 모두 소리를 합쳐 “대통령님 나오세요!”라고 크게 여러 번 외치자 당신을 보고자 멀리서 달려온 군중들 쪽으로 나오시는 모습이 영락없는 농촌 아저씨였다. 점퍼차림의 검정바지 카우보이모자는 촌부의 모습으로 손색이 없었다. 얼굴은 검게 그을고 살이 조금 더 찌고 이마의 두 줄 상징은 더욱 깊게 패어있었다.
역사상 유래가 없는 재임 시 탄핵을 받고 모든 집무를 대행에게 맡기고 칩거할 때에도 초조해 하지 않고 법의 심판에 따라 의연한 행보를 보였던 분이다. 대통령이라는 권좌에서 물러나는 것을 두려워하기보다는 미안한 마음이 앞섰으리라.
말만 했다하면 트집을 잡아 대통령으로서의 자질과 자격이 없다고 몰매를 맞던 전직 대통령이다. 그런데 오늘의 이러한 현상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실까? 옆에 있던 젊은 여자들은 “오빠, 사랑해요!”하며 외쳤다. 안 들린다고 외치는 방문객들을 향해 마이크 하나 설치하자고 경호원에게 넌지시 조크를 하는 여유가 편해보였다.
왜 이렇게 모여들고 열광할까?
권력과 물욕은 동반자가 되어 부정부패 속에 축재를 하고도 양심의 가책도 없이 아방궁에 앉아 태연자약한 행태가 우리나라의 전직 대통령들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 분은 다 같이 잘 살자는 분배정책 때문에 가진 자들의 불만과 원망 즉 지도층의 지지를 못 얻어 실패한 대통령으로 신문지상에 오르내렸던 것이다. 인기가 바닥을 처도 소신대로 밀고나갔던 이 분은 부정부패를 없애려고 노력했고 정경유착의 끈을 자른 분이다. 권력을 이용하여 부정축재를 안했고 없는 자의 편에 서서 일하려고 하셨던 걸 모두가 알고 있음이리라.
전직 대통령들은 가끔 뜬금없는 소리로 자기 존재를 드러내기 좋아한다. 그런가 하면 가장 청렴한 듯 무일푼이라고 말하는 괴이한 전직 대통령도 있다. 그러나 고향으로 돌아가 마음을 비우고 촌부가 되어 자연인으로 돌아가 고향동네에서 사는 지금의 모습이 존경스럽기에 나도 즐거운 마음으로 이곳에 오지 않았는가.
난 노사모도 아니고 열린 우리당도 아니었지만 국회의원 시절부터 거침없이 할 말을 하는 그가 왠지 정이 가고 믿음직스러웠다. 재직 시 노 대통령을 향해 욕하고 헐뜯는 소리는 쉽게 접해지는 일들 중 하나였다. 돈 좀 있고 학벌이 높을수록 그 빈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난 들을 때마다 참을 수가 없어 가끔은 언쟁을 하기도 하였다.
대학을 나오고 돈도 남부럽지 않을 만큼 있고 미모도 겸비한 60대의 여자는 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대통령을 헐뜯고 비난하고 상스런 욕까지 서슴없이 내뱉곤 하였다. 어느 날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그런 식으로 매도할 수 있느냐고 맞받아쳤더니 그 뒤로 뜨악한 사이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지금도 별로 나아졌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녀가 지금쯤 봉하마을을 둘러본다면 생각이 좀 바뀌지 않을까.
사람은 신이 아니다. 누구나 잘못도 하고 실수도 한다. 어느 정책이 효과를 보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반드시 잘못됐다고 할 수도 없다. 시간이 지나봐야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모든 것은 역사가 말하는 법이니까.
대통령이 나오자 사람들에 밀리어 손녀 서영이가 모자를 떨어뜨렸다. 군중들이 빠지고 난 다음 찾으려고 기다렸다. 그러나 모자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멋있는 그 모자는 어느 여자아이의 머리에 얹혀져 제 본연의 구실을 할 것이다. 전 대통령이나 현 대통령이나 모자의 신세와 별 다름이 없지 않나 싶다.
대통령이라는 권력의 모자는 영원히 쓸 수 있는 모자가 아니다. 임기가 만료되면 권력의 모자는 다음 주인에게 물려주고 떠나야 하는 자리다. 물러난 뒤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사는 전직 대통령을 우리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고향으로 내려와 농부로 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신선한 멋에 힘찬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5년 동안 수고하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낙서를 정성껏 쓰고 다음 행선지인 진주 촉석루를 향해 발길을 옮겼다.
(2008.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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