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문화제

2008.06.17 14:25

김상권 조회 수:749 추천:9

촛불 문화제
           전주안골노인복지회과 수필창작반 김상권


나는 초등학교시절에 등잔불 밑에서 공부를 했었다.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보면 으레 콧속이 시꺼멓게 변했었다. 촛불을 켜놓고 공부한 적은 거의 없었다.  깜깜한 밤길을 걸을 땐 등불이나 남폿불을 사용했었다. 그러다가 집집마다 전기가 들어왔다. 그러나 전력난이 심해서 정전이 잦았다. 그때마다 양초로 어둠을 밝혔다. 관공서나 학교 및 각 직장의 숙직실에는 비상상자에  양초 2개와 성냥이 꼭 있어야 했다. 그런 양초가 지금은 조명용이 아니라 장식용으로 쓰인다.

촛불은 성스러운 예식이나 종교적 의식 때 켠다. 석가탄신일에는 색색의 연등을 들고 거리를 행진하기도 한다. 이밖에도 큰 행사 때는 전야제에 으레 촛불행진이 이루어진다. 촛불은 희생을 의미한다. 촛불은 자신을 태워 어둠을 쫓아내고 주위를 밝게 비춘다. 그래서 촛불은 기쁨과 희망의 상징이기도 하다.

광우병에 걸린 소는 뇌에 구멍이 생겨 스펀지처럼 변하며 거품을 내뿜다가  죽는다고 한다. 사람이 광우병에 걸린 소를 먹을 경우 인간 광우병에 걸리며, 일단 발병하면 100% 죽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제일 먼저 심각하게 받아들인 사람들이 10대 어린 학생들이었다. 이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선 것이다.

나는 6월 10일 밤, 전주 팔달로 민중서관 앞 네거리로 나갔다. 노래와 춤, 풍물 등으로 시끌벅적했다. 시위라기보다는 마치 놀이문화에 가까웠다. 촛불문화제가 진행될수록 시민들은 계속 늘어났다. 중․고등학교 남‧여학생, 가족단위, 친구, 주부, 나이 먹은 사람 등 다양했다.
시민들은 한 손에는 촛불, 다른 한 손에는 ‘미국 쇠고기 수입 협상 무효’ 라는 붉은 카드를 들고 자신의 의사를 자연스럽게 표현했다. 자유발언도 있었다. 집회를 마치고 밤 9시 30분부터 공설운동장까지 촛불 대행진이 계속되었다. 나는 이런 분위기를 느끼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이날은 1987년 6․10 항쟁 21주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그때 6월 항쟁의 목표는 ‘대통령 직선제 쟁취’에 있었다. 반체제 민주세력과 넥타이 부대 민주시민세력은 결국 군사독재세력을 굴복시켰다. 21년 전 6월은 최루탄이 난무하고 화염병을 던지는 험악한 시위였다. 그러나 2008년 6월 10일 ‘촛불문화축제’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을 외치는 평화로운 축제였다.

  전국적으로 수십만 명이 촛불시위에 참가한 것은 젊은 네티즌의 힘이라고 한다. 실시간으로 인터넷을 통하여 의견과 정보를 주고받는다. 또 합의과정을 거치기도 한다. 이 촛불시위의 현장이 참 민주주의를 배울 수 있는 산 교육장이라고 생각되었다. 마치 고대 아테네를 민주정치로 꽃 피울 수 있게 한 아크로폴리스 광장과도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1960년 4․19의거,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10항쟁 때 능동적으로 참여해 본 적이 없었다. 나의 소극적인 성격 탓이다.  그러나 이번만은 달랐다. 우리 모두가 안전한 먹을거리를 먹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집에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명박 정부는 순수한 기원을 담은 촛불의 민심을 모르쇠해서는 안될 것이다.

촛불은 외쳤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누구지요?”
“국민이오!”
“머슴은 누구입니까?”
“대통령이오!”

  촛불이 꺼지면 온 세상은 어둠에 묻히고 만다.


                 (2008.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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