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장산에서 만난 베토벤

2008.07.07 17:18

위미앵 조회 수:750 추천:11

내장산에서 만난 베토벤
-2008 내장산국제음악제에 참석하고-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위미앵



  우리의 삶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 우린 가끔 다른 사람의 삶을 엿보려고 한다. 특히 예술가의 삶을 들여다보면 우리네 삶과 별반 다른 게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천재적인 음악적 재능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혹독한 삶의 대가를 치르는 것을 볼 수 있다. 베토벤도 그런 삶을 살았다.

  얼마 전 2008 내장산국제음악제에 참석하여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을 KBS교향악단의 연주로 듣게 되었다. 정읍시 정읍사예술회관은 오케스트라 연주회장으로는 작은 공간이었지만 음악을 듣고자 하는 관중의 관심은 뜨거웠다. 무대 바로 앞바닥까지 앉은 사람들로 가득 메운 연주회장은 베토벤 마니아들만 모여 있는 듯했다.
나 역시 베토벤에 관한 여러 서적들을 통해 베토벤의 삶을 알아가면서 본격적으로 베토벤의 음악에 빠져 들기 시작했다. ‘운명 교향곡’은 CD, DVD, TV를 통해 들었을 뿐 실제 연주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만큼 지방에서의 클래식 공부란 열악한 조건일 수밖에 없다. 숨을 죽인 가운데 울려 퍼지는 선율 속에서 인간 베토벤을 만날 수 있었다.

  베토벤의 삶은  안쓰러울 정도로  귀족계급에 대한 투쟁이었다. 당시 음악이 귀족들의 전유물로 여기던 시대에 평민으로 태어나 귀족과 어울려 살아야 했으니 귀족도 아니고 평민도 아닌 삶 속에서의 절망과 분노를 간직했을 것이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을 계기로 인간평등사상에 힘입어 베토벤의 의식은 깨어있었지만 당시 사회의 변화는 더디게 진행되었으니 그 틈새에 낀 베토벤의 삶은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귀족 여인에 대한 동경과 사랑은 결국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끝났고, 그럴 때마다 그는 음악으로 그 사랑을 표현했다. 그의 삶은 사랑-절망-분노의 순환 고리를 돌면서 이루어졌고 음악으로 사랑, 절망, 분노를 표현했던 것이다. ‘운명 교향곡’도 그런 삶의 표출이었다.

  클래식 음악의 매력은 악보에 나타나 있는 테크닉과 작곡가의 의도를 표현해내려는 연주가와 청중과의 교감이 아닐까 싶다. KBS교향악단의 ‘운명 교향곡’ 연주와 곡 해석은 대단했다. 짙은 색채로 들려오는 금관 악기의 울림은 온 청중을 사로잡았고, 특히 2악장의 아름다운 선율은 청중의 가슴에 불꽃 튀는 열정을 선사했다. 연주하는 동안 단원들끼리 주고받는 배려와 제스처는 완벽한 호흡을 자랑하는데 한 몫을 했다. 정읍까지 달려갔던 피곤함도 잊고 나 자신이 그의 음악 속으로 깊이 빠져 들어가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관객들은 끝없이  감동의 박수를 보냈고 나도 그 감동에 묻혀서 같이 박수를 보냈다.

  이번 음악회에서 베토벤의 숨결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었고 그의 분노, 사랑 과 절망까지도 구구절절 마음에 담아 왔다.  모든 인간이 음악 앞에 평등한 만큼 클래식 음악도 가진 자나 가지지 못한 자 모두에게 자유로이 들려 줄 수 있는 음악제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바로 베토벤이 진정 원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 2008. 7.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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