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왜 장수의 나라인가 했더니

2008.07.09 17:40

김학 조회 수:759 추천:12

일본이 왜 장수의 나라인가 했더니
- 아내 덕에 다녀 온 일본여행(3) -
                                          김 학


일본이 세계적으로 장수의 나라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다. 일본 사람들의 평균수명은 남자가 79세이고 여자는 85.81세. 우리나라 사람들보다는 그들이 남녀 모두 5살쯤 더 오래 산다는 이야기다. 100세 이상의 노인은 무려 2만 8천여 명으로 우리나라보다 무려 30배나 많다. 일본 역시 노인문제가 큰 사회문제구나 싶었다.

일본사람들이 그처럼 장수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니 머리가 끄덕여졌다. 맵고 짜지 않게 먹는 식성과 해산물이나 채소 위주의 먹을거리, 소식(小食)과, 적당한 운동 그리고 충분히 잠을 자는 것이 바로 장수의 비결이라는 것이다. 또 날마다 녹차를 즐겨 마시는 것도 장수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하루에 녹차를 무려 22잔이나 마시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밖에 온천욕을 즐기는 것도 하나의 원인이려니 싶었다.
오늘도 나는 이른 새벽 호텔 온천을 찾았다. 나이가 지긋한 노인들이 많아서 그런지 벌써 여러 사람이 온천욕을 즐기고 있었다. 노천온천으로 나가니 발가벗은 채 구령을 외치며 체조로 몸을 푸는 노인이 있었다. 맑은 공기를 마시고 청정한 기분에 젖어서 그런지 활기차 보였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상쾌해졌다.

오늘은 아름다운 항구도시 하코다테[函館]를 둘러보는 날이다. 이 홋카이도의 하코다테는 일본이 나가사끼, 요코하마와 더불어 처음으로 서양 사람들에게 문호를 연 3대 항구 중 하나다. 일본의 근대화는 바로 여기서부터 비롯되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개항의 흔적이 지금까지도 그대로 남아 있어 감회가 새로웠다.
일본은 이들 3대 항구를 개항하면서 서양식 근대화방식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서양식 근대화의 요체는 목적지향성[Goal Orientation: 目的志向性]이란 점이다. 일본인은 누구나 자기 분야에서 일본 최고가 되기를 바랐다. 그러니 일본의 산업은 모든 분야가 고르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도쿄제국대학을 나온 수재라 하더라도 자기 아버지가 몇 대째 우동집을 경영하고 있으면 벼슬길로 나가지 않고 그 가업(家業)을 물려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일본은 모든 산업이 고르게 발전하고 국력이 크게 신장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나 중국은 근대화 과정에서 지위지향성[Status Orientation: 地位志向性]을 추구했다. 머리가 좋은 사람들은 누구나 과거에 응시하여 벼슬길로 나가려 했던 것이다. 그 결과 머리 좋은 젊은이들이 벼슬길로 몰려들었고 엄청난 경쟁을 뚫고 벼슬길에 오른 사람들은 또 승진할 때마다 무한경쟁을 해야 했다. 인재들이 모두 벼슬길로 모이다 보니 모든 산업이 고르게 발전할 수 없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게 국력의 차이로 나타났고, 결국 우리나라는 일본의 침략을 받았던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코다테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덕인 하치만자카[八幡坂]에는 개항 때 세운 서양식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있어 멋진 풍경이었다. 옛날 행정중심지답게 구 하코다테 공회당도 그대로 있었다. 또 항구 쪽으로 내려가니 20세기 초 개항 때부터 세워진 붉은 색 벽돌창고가 여러 채 있었는데, 그 창고는 갖가지 상품과 음식을 파는 쇼핑 몰로 활용되고 있었다. 물류창고로 쓰였던 창고의 겉모습을 그대로 둔 채 내부만 바꿔서 재활용하는 일본인들의 지혜가 놀라웠다. 창고들이 있기에 개항 때의 분위기를 그대로 엿볼 수 있어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거리에 가로등이 하나둘 켜질 무렵 하코다테 로프웨이를 찾았다. 세계 3대 야경(夜景) 중 하나로 꼽힌다는 곳이다. 높이가 335미터의 하코다테 산 정상에서 해가 진 뒤 서서히 드러나는 이 야경이 ‘백만 불 야경’이라던가. 그러나 남산의 서울타워에서 굽어 본 서울의 환상적인 야경에는 미치지 못한 것 같았다. 제 눈에 안경이어서 그럴까?
여행에는 으레 에피소드가 있게 마련이다. 우리 일행 중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메이수테이호텔을 떠나면서 각자 자기 가방을 챙겼다. 그런데 하코다테에 도착하여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는데 호텔에서 가이드에게 연락이 왔다. 우리 일행 중 누군가가 자기 가방을 남겨두고 떠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선뜻 내 가방이라고 나서는 이가 없었다. 그 가방의 명찰을 보라고 했더니 우리 일행인 ㅈ씨의 가방이었다. 정신을 차린다고 차려도 이런 실수가 일어났다. 그 호텔에서 나오는 관광버스 편에 돌려받긴 했지만 그 가방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린 우리들의 시간낭비는 아무도 보상해 주지 않았다.
오늘 머물 곳은 하코다테 유노카와지역에 위치한 헤이세이칸[平成館] 온천호텔이다. 바다가 가까워서 호텔 방안에서도 태평양 바다가 읊어대는 파도소리가 들렸다. 버스 안에서 들었던 가이드의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일본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것 3가지는 지진과 화재 그리고 아버지라고 했던가?

*김학 약력
1980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실수를 딛고 살아온 세월> 등 수필집 9권, 수필평론집 <수필의 맛 수필의 멋>/펜문학상, 한국수필상, 신곡문학상 대상, 영호남수필문학상 대상, 연암문학상 대상, 대한민국 향토문학상, 전주시예술상 등 다수 수상/전북수필문학회 회장, 대표에세이문학회 회장, 임실문인협회 회장, 전북문인협회 회장, 전북펜클럽 회장 역임/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전담교수,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이사장/
e-mail:crane43@hanmail.net http://crane43.kll.co.kr http://blog.daum.net/crane43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74 엄마의 질투 오명순 2008.07.16 752
673 암태도 소작쟁의 정원정 2008.07.14 761
672 발이 최고야 김영옥 2008.07.13 747
671 사람이 물 위를 걷는다면 김길남 2008.07.11 746
670 화난 머슴들 최기춘 2008.07.11 764
669 숟가락이 없어서 김학 2008.07.11 756
» 일본이 왜 장수의 나라인가 했더니 김학 2008.07.09 759
667 내장산에서 만난 베토벤 위미앵 2008.07.07 750
666 나는 여왕이로소이다 최정순 2008.07.04 747
665 다시 쓰는 냉장고 김길남 2008.07.04 749
664 골목안 사람들 공순혜 2008.07.01 755
663 작심사일 최윤 2008.06.30 747
662 내 삶의 바탕화면 구미영 2008.06.30 747
661 아나지털세대 정영권 2008.06.26 746
660 역지사지 이수홍 2008.06.26 748
659 자녀교육의 길잡이 조규열 2008.06.24 750
658 실수가 오히려 김길남 2008.06.22 764
657 안골 리더십 스쿨 윤석조 2008.06.19 753
656 라디오와 엄지발가락 최정순 2008.06.18 749
655 촛불 문화제 김상권 2008.06.17 7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