숟가락이 없어서
2008.07.11 11:09
숟가락이 없어서
- 아내 덕에 다녀온 일본 여행(4) -
김 학
일본여행을 가려면 휴대용 숟가락 한 개쯤 가지고 갈 일이다. 홋카이도에서만 그런지는 모르지만 홋카이도의 일류 호텔 식당이나 유명 음식점에서도 숟가락을 구경할 수 없었다. 나무젓가락만 줄 뿐 숟가락은 아예 주지 않았다. 된장국을 주는 곳이나, 국물이 있는 식단인데도 숟가락은 없었다. 3박 4일 내내 그랬다. 군대시절 수통에 개인 숟가락을 꽂고 다니던 때가 떠올랐다.
오늘은 일본 홋카이도 여행 마지막 날. 서둘러 고료카쿠공원[五稜郭]을 찾았다. 이 고료카쿠공원은 일본 최초로 1864년에 프랑스건축방식으로 축성한 에도 말기의 성곽이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5각형의 별 모양을 이루고 있는 게 특이했다. 고료카쿠는 1853년 미국의 페리 함대가 들이닥친 이른바 흑선내항이라는 사건과 관련이 있다. 이 미국함대의 개항요구에 굴복한 도쿠가와 막부는 1854년에 일미화친조약을 체결하였고, 하코다테[函館]를 개항하였다.
이 하코다테를 통치하고자 막부가 설치한 하코다테 부교[函館 奉行]는 이곳의 산업육성과 개척 그리고 하코다테 방비강화를 위해 난학자(蘭學者)인 다케다 아야사부로에게 부교소[奉行所] 청사 이전에 따른 새로운 요새를 설계하라고 명하였다. 이에 따라 다케다 아야사부로는 유럽의 성곽도시를 모델로 한 요새를 고안했던 것이다. 약 7년 만에 완공한 고료카쿠는 홋카이도의 옛날 별칭의 하나인 에조의 정치와 외교, 방위의 거점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미국의 요구에 굴복한 도쿠가와 막부에 대한 일본인들의 불만은 마침내 막부타도운동으로 발전하여 일본을 둘로 나눈 보신전쟁의 원인이 되었다. 풍전등화의 위기에 빠진 막부세력 중 구 막부군 해군 부총재 에노모토 다케아키는 육군의 여러 부대를 수용한 함대를 이끌고 에조로 건너와 고료카쿠를 점거하였다. 그들은 1868년 12월 임시정권을 수립하고 정부에 도쿠가와 가신에 의한 에조개척허가를 요구했다. 그러나 그 다음해 봄, 정부는 정벌군을 파견하여 구 막부 탈주군에 대한 공격을 개시함으로써 하코다테 전쟁이 발발하였다. 압도적인 전력으로 공격한 신 막부군 앞에 히지카다 도시조와 같은 역전의 용사들도 허무하게 무너져 고료카쿠는 포위되고 말았다. 마침내 구 막부군이 항복함으로써 드디어 전쟁은 끝났다.
이런 역사를 안고 있는 고료카쿠는 일본의 봉건제도를 무너뜨린 땅이지만, 그 뒤 1914년에 공원으로 개방되어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1952년에는 특별사적으로 지정되어 지금은 역사의 증언자로서 관광객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이 고료카쿠에는 107미터 높이의 고료카쿠타워가 세워져서 관광객들의 필수 탐방 코스가 되고 있다. 한 번에 5백 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고료카쿠타워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니 멀리 하코다테 산과 쓰가루해협 그리고 별 모양의 성곽이 한 눈에 들어왔다.
고료카쿠는 사계절 언제나 아름답다고 한다. 특히 봄에는 1,600그루의 왕벚나무가 활짝 꽃을 피워 장관을 이루고, 초여름에는 ‘하코다테 고료카쿠 축제’가 열리는데 페리제독의 내항으로 시작된 고료카쿠의 역사를 재현하는 ‘시민창작 하코다테 야외극’은 고료카쿠의 해자(解字)와 돌담이 화려한 야외극의 무대가 된다고 한다. ‘고료 별의 꿈(호시노 유메)’은 별 모양의 해자 주위를 2,000개의 조명으로 장식하여 장관을 연출한다는 것이다. 고료카쿠는 이제 시민문화의 발신지가 되고 있다.
고료카쿠타워에 오르면 특히 전망 2층을 꼭 찾아보아야 한다. 고료카쿠 역사의 회랑인 그곳에는 고료카쿠의 역사를 배울 수 있는 전시장이 마련되어 있다. 그래픽으로 보여주는 ‘고료카쿠 이야기’는 페리제독의 내항부터 시작되는 고료카쿠의 역사를 연표와 그림, 도면으로 알기 쉽게 소개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그리고 16개의 정경모형 ‘메모리얼 풀’을 통해 고료카쿠가 거쳐 온 격동의 역사와 그 드라마를 직접 볼 수도 있다. 이걸 보더라도 일본의 역사 역시 순탄하게만 흘러 온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보더라도 역사는 백성의 피를 먹고 발전하는 것 같다.
이제 하코다테 국제공항으로 달려가 오후 1시 40분에 이륙하여 인천국제공항으로 가는 대한항공 KE774기에 올라야 한다. 내 나라 내 삶터로 간다는 게 이렇게 즐거울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었다. 오늘 저녁부터는 끼니때마다 숟가락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김학 약력
1980년 월간문학으로 등단/<실수를 딛고 살아온 세월> 등 수필집 9권, 수필평론집 <수필의 맛 수필의 멋>/펜문학상, 한국수필상, 영호남수필문학상 대상, 신곡문학상 대상, 연암문학상 대상, 대한민국 향토문학상, 전주시예술상 등 다수 수상/전북수필문학회 회장, 대표에세이문학회 회장, 임실문인협회 회장, 전북문인협회 회장, 전북펜클럽 회장 역임/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전담교수,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이사장/
e-mail: crane43@hanmail.net http://crane43.kll.co.kr http:blog.daum.net/crane43
- 아내 덕에 다녀온 일본 여행(4) -
김 학
일본여행을 가려면 휴대용 숟가락 한 개쯤 가지고 갈 일이다. 홋카이도에서만 그런지는 모르지만 홋카이도의 일류 호텔 식당이나 유명 음식점에서도 숟가락을 구경할 수 없었다. 나무젓가락만 줄 뿐 숟가락은 아예 주지 않았다. 된장국을 주는 곳이나, 국물이 있는 식단인데도 숟가락은 없었다. 3박 4일 내내 그랬다. 군대시절 수통에 개인 숟가락을 꽂고 다니던 때가 떠올랐다.
오늘은 일본 홋카이도 여행 마지막 날. 서둘러 고료카쿠공원[五稜郭]을 찾았다. 이 고료카쿠공원은 일본 최초로 1864년에 프랑스건축방식으로 축성한 에도 말기의 성곽이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5각형의 별 모양을 이루고 있는 게 특이했다. 고료카쿠는 1853년 미국의 페리 함대가 들이닥친 이른바 흑선내항이라는 사건과 관련이 있다. 이 미국함대의 개항요구에 굴복한 도쿠가와 막부는 1854년에 일미화친조약을 체결하였고, 하코다테[函館]를 개항하였다.
이 하코다테를 통치하고자 막부가 설치한 하코다테 부교[函館 奉行]는 이곳의 산업육성과 개척 그리고 하코다테 방비강화를 위해 난학자(蘭學者)인 다케다 아야사부로에게 부교소[奉行所] 청사 이전에 따른 새로운 요새를 설계하라고 명하였다. 이에 따라 다케다 아야사부로는 유럽의 성곽도시를 모델로 한 요새를 고안했던 것이다. 약 7년 만에 완공한 고료카쿠는 홋카이도의 옛날 별칭의 하나인 에조의 정치와 외교, 방위의 거점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미국의 요구에 굴복한 도쿠가와 막부에 대한 일본인들의 불만은 마침내 막부타도운동으로 발전하여 일본을 둘로 나눈 보신전쟁의 원인이 되었다. 풍전등화의 위기에 빠진 막부세력 중 구 막부군 해군 부총재 에노모토 다케아키는 육군의 여러 부대를 수용한 함대를 이끌고 에조로 건너와 고료카쿠를 점거하였다. 그들은 1868년 12월 임시정권을 수립하고 정부에 도쿠가와 가신에 의한 에조개척허가를 요구했다. 그러나 그 다음해 봄, 정부는 정벌군을 파견하여 구 막부 탈주군에 대한 공격을 개시함으로써 하코다테 전쟁이 발발하였다. 압도적인 전력으로 공격한 신 막부군 앞에 히지카다 도시조와 같은 역전의 용사들도 허무하게 무너져 고료카쿠는 포위되고 말았다. 마침내 구 막부군이 항복함으로써 드디어 전쟁은 끝났다.
이런 역사를 안고 있는 고료카쿠는 일본의 봉건제도를 무너뜨린 땅이지만, 그 뒤 1914년에 공원으로 개방되어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1952년에는 특별사적으로 지정되어 지금은 역사의 증언자로서 관광객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이 고료카쿠에는 107미터 높이의 고료카쿠타워가 세워져서 관광객들의 필수 탐방 코스가 되고 있다. 한 번에 5백 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고료카쿠타워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니 멀리 하코다테 산과 쓰가루해협 그리고 별 모양의 성곽이 한 눈에 들어왔다.
고료카쿠는 사계절 언제나 아름답다고 한다. 특히 봄에는 1,600그루의 왕벚나무가 활짝 꽃을 피워 장관을 이루고, 초여름에는 ‘하코다테 고료카쿠 축제’가 열리는데 페리제독의 내항으로 시작된 고료카쿠의 역사를 재현하는 ‘시민창작 하코다테 야외극’은 고료카쿠의 해자(解字)와 돌담이 화려한 야외극의 무대가 된다고 한다. ‘고료 별의 꿈(호시노 유메)’은 별 모양의 해자 주위를 2,000개의 조명으로 장식하여 장관을 연출한다는 것이다. 고료카쿠는 이제 시민문화의 발신지가 되고 있다.
고료카쿠타워에 오르면 특히 전망 2층을 꼭 찾아보아야 한다. 고료카쿠 역사의 회랑인 그곳에는 고료카쿠의 역사를 배울 수 있는 전시장이 마련되어 있다. 그래픽으로 보여주는 ‘고료카쿠 이야기’는 페리제독의 내항부터 시작되는 고료카쿠의 역사를 연표와 그림, 도면으로 알기 쉽게 소개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그리고 16개의 정경모형 ‘메모리얼 풀’을 통해 고료카쿠가 거쳐 온 격동의 역사와 그 드라마를 직접 볼 수도 있다. 이걸 보더라도 일본의 역사 역시 순탄하게만 흘러 온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보더라도 역사는 백성의 피를 먹고 발전하는 것 같다.
이제 하코다테 국제공항으로 달려가 오후 1시 40분에 이륙하여 인천국제공항으로 가는 대한항공 KE774기에 올라야 한다. 내 나라 내 삶터로 간다는 게 이렇게 즐거울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었다. 오늘 저녁부터는 끼니때마다 숟가락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김학 약력
1980년 월간문학으로 등단/<실수를 딛고 살아온 세월> 등 수필집 9권, 수필평론집 <수필의 맛 수필의 멋>/펜문학상, 한국수필상, 영호남수필문학상 대상, 신곡문학상 대상, 연암문학상 대상, 대한민국 향토문학상, 전주시예술상 등 다수 수상/전북수필문학회 회장, 대표에세이문학회 회장, 임실문인협회 회장, 전북문인협회 회장, 전북펜클럽 회장 역임/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전담교수,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이사장/
e-mail: crane43@hanmail.net http://crane43.kll.co.kr http:blog.daum.net/crane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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