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성동 신데렐라

2008.07.19 10:29

김수영 조회 수:755 추천:10

호성동 신데렐라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김수영




실로 7년 만의 외출이였다.

결혼 후 딸과 두 살 터울의 아들을 키우며 나만의 시간을 갖게된 것은 올 3월  3일 이었다. 두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첫날. 나에게는 광복절보다 더 기쁜 나의 해방이었다. 우선 집안 청소부터 서둘러 끝냈다. 격일근무로 10시 쯤 귀가한 남편과 함께 오붓한 점심식사와 함께 데이트를 즐겼다. 즐거운 나들이도 잠시, 아이들이 돌아올 시간이 가까웠다. 왜 이리 시간은 잘 가는지. 어느 덧 3시가 되었다. 아침 9시부터 이 여섯 시간은 7년 간의 보상으로는 너무 짧게 느껴졌다. 그런데도 간혹 딸 아이며 처음 어린이집에 간 아들의 얼굴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그리움과는 별개였다.

이튿날 화요일 오전 11시. 수영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레슨 또한 결혼 이후 처음이니 8~9년 만이었다. 수년 동안 구겨진 자세는 엉망이었지만 그래도 다행히 몸이 물을 기억하고 있었다. '수영'이가 '수영'을 배우기시작한 것이다. 고된(?) 연습을 마친 뒤 늦은 점심을 먹고 있으려니 어느새 시계는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바짝 긴장하고 아이들을 맞으러 나갔다.

다음 날 수요일.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 강의를 듣는 오전 10시. '첫 설렘'이란 느낌을 언제 가져 보았던가. 기억조차 가물가물해져서 내 나이조차 잊을 뻔했다. 긴장 했던 두 시간의 강의도 끝나고 문우들과 맛있는 점심식사도 했다. 이후 실로 오랜만에 어느 누구와도 아닌 혼자서 시내 한 복판을 거닐었다. 번잡한 시내 상가들도 구경하고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도 곁눈질로 쳐다보았다. 그리곤 서점에 들어가 아이들의 책이 아닌 나만의 책을 연신 골라 보았다. 내가 즐겨 쓰는 실로 '난 부자다'라는 영혼의 포만감을 만끽했다. 읽으려고 사둔 서너 권의 책도 아직 책장에 그대로 있건만 내 뇌는 손으로 하여금 지갑을 열라고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기분 좋은 과소비다. 이 순간 나는 진짜 부자였다.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전주시 덕진구 호성동 우리 집에 도착할 무렵, 휴대폰의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아, 3시다. 여왕 같던 기분도 알람 때문에 깨져버리고 양손 가득 짐을 들고 열심히 뛰었다. 숨도 안 쉬고 뛰어 아이들보다 간신히 먼저 도착하여 현관 열쇠를 돌렸다. 이젠 화려한 싱글이 아닌 두 아이의 엄마로 돌아올 시간이었다. 꿈에서 깨어 현실로 돌아온 듯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렇게 나만의 시간을 갖고자 부지런을 떨어보지만 시간은 어느 새 아이들이 올 시간에 맞추어져 있었다. 하루 중 오후 3시만이 유독 빨리 오는 것 같다. 아니 시간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 의심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넉달 반, 오전을 수영과 수필공부로 돌아온 싱글을 만끽할 무렵인 지난 수요일. 마른 장마로 인해 내 몸의 수분도 증발되고 있었다. 빠진 강의자료를 보충하기위해 인쇄소로 뛰기 시작했다. 땀방울이 연신 등을 타고 흐르고 볼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더웠다.

  앗!
  삐걱!

4cm굽의 왼쪽 샌들 끈이 떨어져 버렸다. 낭패였다. 다행히 긴 바지 속에 맨발을 감추었다. 한 손엔 회비 봉투를, 다른 손엔 끈 떨어진 샌들을 들고 평생교육원 대문을 나섰다. 그러길 몇 걸음.

  땡그랑.
  또르륵.

동전 두 개가 도로 위에 나뒹굴었다. 마치 내 신세 같았다. 100원 짜리 동전 하나는 찾았다. 100원인지 500원인지 모르는 거액은 아쉽지만 이내 포기했다. 신데렐라도 아니고 이게 무슨 꼴이람. 재투성이 신데렐라보다 더 엉망진창이었다. 이미 결혼은 했으니 백마 탄 왕자님은 둘째 치고라도 흰색 카니발을 타는 남편이라도 와주었으면. 힘겹게 인쇄소에 들어선 신데렐라의 절규,

  "사모님, 슬리퍼 좀 빌려주세요!"

새 샌들을 신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 한산하고 시원한 뒷 좌석에 앉아 또다시 동화같은 명상에 빠졌다. 집이 가까워질수록 여왕은 간데 없고 나만 남는다.

휴대폰 알람 시간이 울린다. 어김없이 3시다. 마법이 풀리는 시간이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샌들을 또각거리며 오늘도 나만의 궁전으로 향했다.

                                                   (2008.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