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여는 소리들

2008.08.02 17:57

최기춘 조회 수:795 추천:9

새벽을 여는 소리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최기춘


새벽이 왔음을 알리는 소리들이 많이 달라졌다. 옛날 시골에서는 수탉이 목에 힘을 주고 새벽이 왔음을 제일 먼저 알렸고, 도회지에서는 통금해제 사이렌이 울리며 새벽을 알렸다. 그밖에도 두부장수의 종소리나 청소차의 새마을노래, 교회의 종소리 등이 새벽을 알리는데 한몫을 했었다.
그런데 요즘엔 새벽을 알리는 소리가 없다. 나는 다행히 새벽 04:30분이면 신문을 툭 던지는 소리가 들려서 새벽잠을 깬다. 아침에 중앙지와 지방지 한 부씩을 대략 살펴 보고 05:30분이면 전주천으로 나가 아침산책을 한다.

어은교 밑 천변으로 나서면 밤새워 달님과 밀회를 즐긴 달맞이꽃이 피곤한 기색도 없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샛노란 자태로 산책하는 사람들을 반긴다. 달맞이꽃은 남미 칠레가 원산지로 귀화한 식물이다.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된 달맞이꽃은 토종식물에 주눅 들지 않고 척박한 곳에서도 잘 자라는 걸 보면 번식력이 강한 식물인 것 같다. 승자의 일기는 태양에 비춰져 찬란한 역사가 되고 패자의 일기는 달빛에 숨겨져 신화가 된다는데 아마 달맞이꽃에게도 신화 하나쯤은 있으리라. 전주천의 생태계가 되살아나 물고기들이 많아졌다. 냇가 여기저기에서 먹이를 찾는 황새들의 모습도 자주 눈에 띤다. 새벽부터 먹이를 찾은 황새는 아마 오늘 만큼은 배를 넉넉히 채울 성싶다.

매곡교 주변에 이르면 새벽시장을 보느라 사람들의 발길이 빨라지고 여기저기서 손님들을 부르는 시골 할머니들의 호객하는 솜씨도 보통이 아니다. 매곡교 주변의 아침시장 풍경은 1960년대 시골장터를 연상케 한다. 아침시장을 구경하는 재미가 여간 쏠쏠한 게 아니다. 이곳에서는 아는 사람도 더러 만나 잠깐 정담을 나누기도 한다. 시장에서 사고파는 물건들은 대부분 농수산물로 밥상에 오를 찬거리들과 과일이 대종을 이룬다. 요즘은 주로 호박, 오이, 깻잎, 도라지, 메밀대, 호박잎, 풋고추, 가지, 마늘, 양파, 무, 배추, 고구마 잎, 참외, 수박, 자두, 복숭아, 토마토 등을 재배농민이 직접 가지고 나오기 때문에 값도 싸고 싱싱해서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 모두 만족한 표정들이다. 수산물도 없는 게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간혹 어떤 때는 우렁이나 다슬기도 가지고 나온다. 요 전날 아침에는 어떤 할머니가 파는 우렁이를  한 그릇에 5,000원씩에 두 그릇이나 사고 11,000원을 드리면서 가시는 길에 얼음과자라도 하나 사 잡수시라고 했더니 그 할머니가 우렁이를 반 그릇이나 더 주려고 하기에 그러실 필요 없다고 극구 사양해도 한사코 더 주셨다. 가지고 나온 물건은 밭에서 직접 수확하여 포반도 하지 않고 꾸밈없이 그대로 들고 나와, 대형마트에서 잘 손질하고 고급스럽게 포장하여 내놓은 물건에 비하여 모양새는 안 좋아도 인심이 넉넉하여 아침 내내 기분이 좋다.  

옛날 어른들은 아침 일찍 일어날 것을 강조했었다. 명심보감에도 1일지계는 재어인(一日之計在於寅)이라 하여 하루의 계획은 인시에 세워야 한다고 했으며, 인락불기면 일무소변(寅若不起 日無所辨)이라 하여 만약 인시에 일어나지 않으면 하루 종일 판단이 흐리다고 할 정도로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을 강조했다. 그래서 나도 아이들에게 아침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들이도록 타일렀었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아침 일찍 활동하는 사람들을 보면 다소 씁쓸한 생각이 든다. 분명 일찍 일어나 새벽에 활동하는 사람들이 잘 살아야 하는데 신문배달이나 청소부, 매곡교 주변시장의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은 모두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인 것 같다. 또 이른 새벽 산책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노인들로 사회의 소외계층이란 생각이 들어서다. 이들은 새벽을 열고 우리 일상생활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새벽산책을 하는 노인들도 젊어서 우리 사회를 이만큼 발전시키느라 평생을 바친 사람들이다. 이들을 잘 살게 하고 소외받지 않게 할 무슨 좋은 방도는 없을까? 나는 오늘도 새벽산책을 하며 곰곰 생각에 잠겨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