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림 시인의 '태양의 풍속'
2004.08.02 23:33
태양의 풍속
김기림
태양아
다만 한 번이라도 좋다. 너를 부르기 위하여 나는 두루미의 목통을 빌려오마. 나의 마음의 무너진 터를 닦고 나는 그 우에 너를 위한 작은 궁전을 세우련다. 그러면 너는 그 속에 와서 살아라. 나는 너를 나의 어머니 나의 고향 나의 사랑 나의 희망이라고 부르마. 그리고 너의 사나운 풍속을 좇아서 이 어둠을 깨물어 죽이련다.
태양아
너는 나의 가슴속 작은 우주의 호수와 산과 푸른 잔디밭과 흰 방천防川에서 불결한 간밤의 서리를 핥아버려라. 나의 시냇물을 쓰다듬어주며 나의 바다의 요람을 흔들어주어라. 너는 나의 병실을 어족들의 아침을 다리고 유쾌한 손님처럼 찾아오너라.
태양보다도 이쁘지 못한 시. 태양일 수 없는 서러운 나의 시를 어두운 병실에 켜놓고 태양아 네가 오기를 나는 이 밤을 새워가며 기다린다.
<이 시는>
태양은 새로움과 힘의 상징이다. 시인은 목을 늘여, 마치 두루미의 목통처럼 길게 늘여 이러한 태양을 불러댄다. 그래서 찾아온 태양은 어둠을 깨물어 죽이고 마음속에 드리워있는 불결한 것들 마저 씻어버린다. 새로운 세상이다. 시인은 이러한 세상의 도래를 열망하고있다.
김기림 시인은 1930년대, 시적 구조에 대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이를 펼쳐온 모더니즘 운동을 이끈 한국현대시의 기초를 닦아놓은 인물이다. 이 시는 그러한 그의 사상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1908 함북 학성태생
1930년 조선일보를 통해 등단
1950년 전쟁중 납북
시집 『기상도』, 『태양의 풍속』등 7권
2004-01-09 08: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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