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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外 · 윤곤강 (尹崑崗)

2006.10.08 15:49

유봉희 조회 수:1188 추천:62

‘나비’外 … 윤곤강 (尹崑崗)
  해바라기

윤 곤 강 (尹崑崗)


벗아! 어서 나와
해바라기 앞에 서라.

해바라기꽃 앞에 서서
해바라기꽃과 해를 견주어 보자.

끓는 해는 못되어도
가을엔 해의 넋을 지녀
해바라기의 꿈은 붉게 탄다.

햇살이 불처럼 뜨거워
불열에 눈이 흐리어

보이지 않아도, 우리 굳이
해바라기 앞에 서서
해바라기처럼 해를 보고 살지니

벗아! 어서 나와
해바라기 꽃앞에 서라


  나 비

윤 곤 강 (尹崑崗)


비바람 험상궂게 거쳐 간 추녀 밑 -
날개 찢어진 늙은 노랑나비가
맨드라미 대가리를 물고 가슴을 앓는다.

찢긴 나래에 맥이 풀려
그리운 꽃밭을 찾아갈 수 없는 슬픔에
물고 있는 맨드라미조차 소태 맛이다.

자랑스러울 손 화려한 춤 재주도
한 옛날의 꿈 조각처럼 흐리어
늙은 무녀(舞女)처럼 나비는 한숨진다.


(시문학 3호, 1930.5)

  아지랑이

윤 곤 강 (尹崑崗)


머언 들에서
부르는 소리
들리는 듯.

못 견디게 고운 아지랑이 속으로
달려도
달려가도
소리의 임자는 없고.

또다시
나를 부르는 소리,
머얼리서
더 머얼리서
들릴 듯 들리는 듯….


  폐원 · 廢園

윤 곤 강 (尹崑崗)


머- ㄴ 생각의 무성한 잡초가
줄줄이 뻗어 엉클어지고 자빠지고
눈물 같은 흰꽃 한 송이 방긋 핀 사이로.

사-늘한 주검이 배암처럼 기어가다가
언뜻 마주친 때 임이 부르는 눈동자처럼
진주빛 오색 구름장이 돋아나는 것!

외로운 사람만이 안다
외로운 사람만이 알아......
슬픔의 빈터를 찾아
족제비처럼 숨이는 마음.


  꽃피는 달밤에

윤 곤 강 (尹崑崗)


빛나는 해와 밝은 달이 있기로
하늘은 금빛도 되고 은빛도 되옵니다.

사랑엔 기쁨과 슬픔이 같이 있기로
우리는 살 수도 죽을 수도 있으오이다.

꽃피는 봄은 가고 잎피는 여름이 오기로
두견새 우는 달밤은 더욱 슬프오이다.

이슬이 달빛을 쓰고 꽃잎에 잠들기로
나는 눈물의 진주구슬로 이 밤을 새웁니다.

만일 당신의 사랑을 내 손바닥에 담아
금방울 같은 소리를 낼 수 있다면
아아, 고대 죽어도 나는 슬프지 않겠노라.


  언덕

윤 곤 강 (尹崑崗)


언덕은 늙은 어머니의 어깨와 같다.

마음이 외로워 언덕에 서면
가슴을 치는 슬픈 소리가 들렸다
언덕에선 넓은 들이 보인다

먹구렝이처럼 달아나는 기차는
나의 시름을 싣고 가버리는 것이었다

언덕엔 푸른 풀 한포기도 없었다

들을 보면서 나는 날마다 날마다
가까워 오는 봄의 화상을 찾고 있었다
아아, 고대 죽어도 나는 슬프지 않겠노라.


  입추

윤 곤 강 (尹崑崗)


소리 있어 귀 기울이면
바람에 가을이 묻어오는,

바람 거센 밤이면
지는 잎 창에 와 울고,

다시 가만히 귀 모으면
가까이 들리는 머언 발자취.

낮은 게처럼 숨어 살고
밤은 단잠 설치는 버릇,

나의 밤에도 가을은 깃들어
비인 마음에 찬 서리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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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 · 歲月

윤 곤 강 (尹崑崗)


소리 있어 귀 기울이면
바람에 가을이 묻어오는,

바람 거센 밤이면
지는 잎 창에 와 울고,

다시 가만히 귀 모으면
가까이 들리는 머언 발자취.

낮은 게처럼 숨어 살고
밤은 단잠 설치는 버릇,

나의 밤에도 가을은 깃들어
비인 마음에 찬 서리 내린다.


  황소

윤 곤 강 (尹崑崗)


바보 미련둥이라 흉보는 것을
꿀꺽 참고 음메! 우는 것은

지나치게 성미가 착한 탓이란다
삼킨 콩깍지를 되넘겨 씹고
음메 울며 슬픔을 삭이는 것은

두 개의 억센 뿔이 없는 탓은 아니란다


  지렁이의 노래

윤 곤 강 (尹崑崗)


아지못게라 검붉은 흙덩이속에
나는 어찌하여 한 가닥 붉은 띠처럼
기인 허울을 쓰고 태어 났는가

나면서부터 나의 신세는 청맹관이
눈도 코도 없는 어둠의 나그네여니
나는 나의 지나간 날을 모르노라
닥쳐올 앞날은 더욱 더 모르노라
다못 오늘만을 알고 믿을 뿐이노라

낮은 진구렁 개울속에 선잠을 엮고
밤은 사람들이 버리는 더러운 쓰레기속에
단 이슬을 빨아마시며 노래부르노니

오직 소리없이 고요한 밤만이
나의 즐거운 세월이노라

집도 절도 없는 나는야
남들이 좋다는 햇볕이 싫어
어둠의 나라 땅밑에 번듯이 누워
흙물 달게 빨고 마시다가
비 오는 날이면 따 우에 기어나와
갈 곳도 없는 길을 헤매노니

어느 거츤 발길에 채이고 밟혀
몸이 으스러지고 두도막에 잘려도
붉은 피 흘리며 흘리며 나는야
아프고 저린 가슴을 뒤틀며 사노라


  피리

윤 곤 강 (尹崑崗)


보름이라 밤 하늘의
달은 높이 현 등불 다호라
임하 호올로 가오신 임하
이 몸은 어찌호라 외오 두고
너만 혼자 홀홀히 가오신고.

아으 피맺힌 내 마음
피리나 불어 이 밤 새오리
숨어서 밤에 우는 두견새처럼
나는야 밤이 좋아 달밤이 좋아.

이런 밤이사 꿈처럼 오는 이들 ---
달을 품고 울던 <벨레이느>
어둠을 안고 간 <에세이닌>
찬 구들 베고 간 눈 감은 고월(古月), 상화(尙火)
낮으란 게인양 엎디어 살고
밤으란 일어 피리나 불고지라.

어두운 밤의 장막 뒤에 달 벗삼아
임이 끼쳐 주신 보밸랑 고이 간직하고
피리나 불어 설운 이 밤 새오리

다섯 손꾸락 사뿐 감아 쥐고
살포시 혀를 대어 한 가락 불면
은쟁반에 구슬 구을리는 소리
슬피 울어 예는 여울물 소리
왕대숲에 금바람 이는 소리….

아으 비로서 나는 깨달았노라
서투른 나의 피리 소리언정
그 소리 가락 가락 온 누리에 퍼지어

붉은 피 방울 방울 돌면
찢기고 흩어진 마음 다시 엉기리


  진리(眞理)에게

윤 곤 강 (尹崑崗)


어떤 어둠 속에서도 진리(眞理)! 너는
항상 불타는 뜻을 잃지 않았다.
오랜 세월을 비바람 눈보라 속에
날개를 찢기고 찢기면서도 너는
단 한 번 고개 숙인 적이 없구나.
불타는 넋이여, 곧고 억센 힘이여.
너는 언제나 깊은 잠 속에서도 깨어나
화살처럼 곧고 빠른 네 뜻을 세워나간다.

감당할 수 없는 어떤 큰 힘이 있어
너를 내놓아라, 나에게 울러댄다면
진흙 속에 얼굴 파묻고 고꾸라질지라도
나는 못 주겠노라 오직 너 하나만은
십자가에 못박혀 피흘리고 죽은 이처럼
빛나는 눈알에 괴로운 입술 깨물어
삶과 죽음을 넘어선 삶의 기쁨을 안고
찬란한 네 품에 안겨 눈감을지라도…

오오, 영원한 세월 속에 사는 것,
너만이 끊임없이 괴로움 속에서
새벽을 알려주는 쇠북소리.
너만이 새날이 닥쳐옴을 알려주고
너만이 살아있는 보람을 믿게 해주고
너만이 나와 나의 벗들의 흩어진 마음을
보이지 않는 실마리로 굳게 얽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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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곤강 (尹崑崗 1911-1950)

충남 서산(瑞山) 출생. 시인, 본명은 붕원(朋遠).
천석군(1, 500石)을 하는 부농의 가정에서 3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14세까지 한학을 배웠다.
아호 곤강(崑崗)은 천자문 '금생여수 옥출곤강
(金生麗水 玉出崑崗)'에서 유래한 것이라 함.
1925년 상경. 보성고등보통학교(普成高等普通學校)에 편입,
1928년에 졸업(22회)하고 같은해 혜화전문학교(惠化專門學校)에
입학하였으나 5개월 만에 중퇴하였다. 그뒤 1930년 일본으로
건너가 1933년 센슈대학(專修大學)을 졸업하였다. 귀국과 동시에
카프(KAPF)에 가담하였다가 1934년 카프 제2차검거사건 때 체포되어 전주에서 7개월간 옥고를 치르고 석방되어 당진으로 일시 낙향하였다. 이듬해 상경하여 1936년 무렵부터 시작.
1937년 《자오선》을 통해 활발한 창작활동을 하였다.
초기에 카프의 일원으로 작품을 남김(시 <나비>). 일제 치하의
암흑과 불안, 절망을 노래하는 퇴폐적 시와 풍자적인 시를 썼다.

성격은 냉철하고 날카로웠으며 1938년 이후에는 신경쇠약,
정신분열증을 앓음. 그뒤 1939년에는 《시학 詩學》 동인으로
활약하였으며, 민족항일기에는 징용을 피하여 낙향,
면서기로 근무하다가 광복 후 다시 상경하여 1946년(35세) 모교인
보성학교 국어교사로 부임하여 교육과 함께 문필활동을 재개했고,
1948년에는 중앙대학교 교수 및 성균관대학교 강사를 역임하였다.
척추염 및 신경쇠약으로 병상에 눕다.
1950년 (39세) 음력 1월7일 종로구 화동 138번지 자택에서 사망.
충남 당진군 순성면 갈산리에 안장.
시집으로 <대지(大地)>(1937), <만가(輓歌)>(1938), <동물시집>(1939), <빙화(氷華)>(1940), <피리>(1948), <살어리>(1948)
등이 있다. 동인지 <시학(詩學)>을 주재했다.


낡은 호롱에 불을 켜들고
날 찾어 오는 이 있을가 여겨
밟으면 자욱도 없을 언 눈길을
설레이는 마음은 더듬어간다.-「눈 쌓인 밤」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