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남편의 외박을 준비하는 여자 출간화제
2005.07.25 08:36
[책과 사람]뼈를 갈아대는 통증 글 한줄 한줄에 녹아
「남편의 외박을...」펴낸 1급 지체장애인 유영희씨
단 한 줄을 쓰더라도 아픔을 간직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유영희씨.
10개의 손가락 중 3개를 움직여 자판을 두들겼다. 가슴에 묻었던 고백들을 어설픈 몸짓으로 끌어내고, 조심스레 책으로 엮었다.
“전신의 뼈마디를 갈아대는 듯한 류머티스의 통증으로 몸을 움직일 수 없었죠. 그 20여년의 세월은 깊은 사색의 터널이었습니다.”
류머티스 후유증으로 1급 지체장애인으로 생활하고 있는 유영희씨(46). 2004년 「수필과비평」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유씨가 첫 수필집 「남편의 외박을 준비하는 여자」(책읽는사람들)를 펴냈다.
“글을 써서 수필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가족들이 아무리 잘해줘도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 있었고, 내 꿈과 내 가족과 내 희망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죠.”
건강을 잃고 포기해야 했던 것들. 아내로서 엄마로서 따뜻한 밥 한끼 차려주지 못하는 처지를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가장 힘이 들었다. 숨만 쉬고 있어도 고맙다는 가족들을 누워서 바라봐야 했던 유씨는 사이버상에 잡글 형식으로 미안한 마음을 조금씩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번 수필집 역시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기 보다 가족들에 대한 보답이다.
‘남편의 외박을 준비하는 여자’. 되바라진 제목은 아내가 죽어도 상관없다는 수술 동의서에 10번의 도장을 찍으며 이미 숯이 되어버린 가슴을 안고 살아가는 남편 김기창씨(53·김제 금산중학교)를 위한 것이다. 여든셋의 병든 노모의 아들이자 평생 장애를 안고살아가는 여자의 남편, 여동생과 두 아들에 대한 책임감까지, 가장이라는 멍에를 지고 살아가는 남편에 대한 유씨의 애절한 마음이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느라 애쓰는 남편에게 여행을 독려하는 아내. 하루의 삶을 진통제로 이어가는 아내는 할 수 있으면 외출도 열심히 하며 남편의 마음과 발맞추려 한다.
“제가 그동안 많이 아팠고 그 과정에서 실패도 경험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앞서나갈 때 나는 머무르고만 있었지요. 단 한 줄을 쓰더라도 아픔을 간직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어요.”
만나는 사람마다 만나는 사물마다 수필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그는 소멸되어 버릴 존재들이 작품 속에서 영원성을 얻게 만든다. 그 영원성은 웃음과 평화, 위안을 찾을 수 있는 긍정적인 삶의 태도다. 되돌아보면 아픈 시간들은 글 한 줄 한 줄로 조금씩 치유되고 있었다.
전북대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에서 글쓰기를 시작, 지난해 장애인문학상 대상, 가족사랑수기공모 최우수상 등을 수상했다.
전북일보/도휘정 기자(hjcastle@jeonbukilbo.co.kr)
2005년 07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