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실용화는 열쇠가 아니다. 1
2007.05.07 13:20
영어 실용화는 열쇠가 아니다. 1
며칠 전 어느 신문에서 영어 못하는 ‘영어 공화국’이라는 기사를 보니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임신부가 태어날 아기의 태교를 위해서 영어 태교를 하는가 하면, 아기를 돌보는 영어 아기 돌봄이(baby-sitter)를 둔다고 했다.
또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되면 영어 유치원에 보내거나 영어 학원 또는 조기유학을 보내는 등 영어 교육 시장에 쏟아 부어지는 돈이 일본의 3배인 15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처럼 극성을 부리는데도 대한민국은 영어 소통이 가장 힘든 나라로 평가 되고 있으며, 외국인을 위한 영어 인증 시험(TOEFL)에 “말하기” 시험이 추가되면서부터 세계 147개국 중에서 111위로 떨어졌고, 특히 “말하기” 부분만을 본다면 134위로 거의 꼴지에 가깝다고 했다.
지금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영어 교육의 열기로 뜨겁게 달아오른 영어 용광로와 같다.
이 기사를 쓴 기자는 이와 같이 열과 성의를 다 바치는데도 왜 영어를 못하는 이유로 교실밖에서는 영어를 쓰지 않아 실용화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원인이며, 실용 회화 교사가 부족한 것도 하나의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막대한 돈을 퍼 부면서도 영어 못하는 나라로 전락하는 이유가 영어 실용화가 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일런지 모르나 사실은 이 사회의 내면에 보이지 않는 고질적인 문제들이 영어 못하는 나라로 추락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 사회의 내면에 깔려있는 고질적인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지금보다 더 많은 돈이 영어 교육에 투자되고, 그 위에 영어를 일상생활 용어로 사용하도록 한다 해도 결코영어 잘하는 나라의 반열에 오를 수 없음은 물론이거니와 아마도 몇 년 사이에 우리말은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으로 확신한다.
지금도 우리말을 하고 있는지 영어를 하고 있는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죽은 영어 나부랭이들을 섞어 쓰는 판국이라 우리말이 도태되기 시작한지 이미 오래이다.
일상생활에서 영어로 말하며 생활해야 한다는 것은 한국어라는 대한민국의 나랏말은 쓸 필요가 없게 된다는 뜻이다.
나랏말이 없어진다는 것은 그 나라가 이 지구상에서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옛날부터 우리는 자신의 유식함을 과시하려고 외국어를 섞어 쓰는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으며 지금도 이런 과시욕은 지속되고 있다.
중국대륙의 영향을 받고 있었을 때에는 한자말을 섞어 써서 자신의 유식을 과시하던 때가 있었고,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말을 섞어 쓰면서 자신을 과시하던 시절이 있었다.
광복을 맞은 오늘날에는 영어를 섞어 써서 자신을 과시하려는 사람들로 바뀌었다.
요즘은 죽은 영어 나부랭이라도 섞어 쓰지 않으면 유명인의 딱지가 붙지 않는다.
그야말로 정신 상태가 사대사상에 찌들어 우리 것은 하찮게 여기고 남의 것이라면 맹목적으로 숭상하고 따르는 나쁜 습관이 있다.
더욱 한심한 것은 정부 산하의 기업 이름도 모두 서양말로 바꾸기 경쟁을 하고 있다.
국내의 직업 운동 단체들도 모두 외국어 이름으로 우리말 이름은 하나도 없다.
우리나라 자동차나 전자제품들이 세계 각국으로 많이 팔려 나가고 있는데도 제품 이름이 우리말로 된 것이 하나도 없고 모두 서양식 이름뿐이다.
나라 곳곳을 둘러보아도 우리 고유문화의 흔적을 가진 이름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도저히 찾아볼 수 없다.
반 만년동안 수많은 고난을 겪으며 지켜온 배달의 말이 “영어”라는 남의 나랏말로 인해서 버려지고 있다.
이처럼 정부나 백성이 내 나랏말을 버리고 모두 영어에 미쳐 있지만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세계에서 영어를 잘 못하는 나라에 속한다.
세계 어느 나라를 보더라도 우리처럼 온 백성들이 영어 교육에 미쳐있지는 않다.
일본 사람들의 영어에 대한 생각은 우리처럼 맹목적으로 반드시 영어를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고 꼭 필요한 전문직에 종사하려는 목적으로 영어를 배운다는 정도이다.
그러나 우리는 맹목적이다. 나는 못해도 내 자식만은, 남들이 시키니까 내 아이도 남에게 뒤떨어지면 안 된다는 막연한 목적을 위해서 달려가고 있는 것을 보노라면 가히 영어에 미친 정신병자를 방불케 한다.
이렇게 영어에 미쳐있는 온전치 못한 정신 상태에서 영어 실용화를 한답시고 모든 일상 언어를 영어로 사용하도록 한다면 과연 우리말이 온전히 남아나겠는가?
영어 교육에 그와 같이 많이 투자하고 열과 성의를 다 하는데도 영어를 못하는 이유는 결코 영어의 실용화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주변 환경이 아무리 많은 돈을 투자하더라도 영어를 잘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고 단호히 말하겠다.
- 계속 -
한글 연구회
최 성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