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정체성
2007.07.04 16:24
종교와 정체성
종교는 그민족의 정체성을 찾아주고 이어나갈수 있어야한다. 한국에 가장 많은 교인수를 가지고있는
종교는
ㄱ ㄴ ㄷ 순으로 하면 기독교, 불교, 천주교 라 할수있다. 유대인들은 민족신앙으로서 구약만을 그들의 성서로 간주한다. 해서 유대인들의 민족주의 신앙은 그들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민족으로 키워냈다.
기독교의 성경에는 한민족이 아닌 이스라엘의 역사를 바탕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들이고
그 교리나 철학에 한민족의 문화나 정체성이 접붙혀지지 아니하면 외국에서 수입해서 사용하는 수입품 신앙이된다.
불교는 어떠한가? 인도에서 출발한 불교는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온지가 오래되지만 역사적 정치적으로 중국불교를 그대로 수입해서 우리의 문화나 정체성이 뿌리박은 종교로 성장시키지를 못했다.
그 증거로는 한국이 천년 이상을 인도의 원어보다는 중국의 의역된 불교용어들을 그대로 사용하고있다. 그러나 미국은 중국불교보다는 인도불교를 그대로 받아들여 그들의 철학 심리학을 첨가하여 개발해 나가고있다.
미국 이민불교에 이중표 교수님이 오셔서 L A 에서 법회를 하셨다. 누군가 이민불교의 앞날을 걱정하는질문을 했다. 미국에서 중국이민 기독교가 1 세때는 부흥을 했지만 2 세때는 급격히 쇠퇴해 버렸는데 한국 해외 이민불교도 앞날이 그리 밝지가 아니하다는 걱정하는 질문이었다.
3 – 4 세대 에가서 한국이민불교가 사라져 버리면 한국불교의 명맥을 이어가기 보다는 동양불교에 서양철학이 접붙혀진 미국불교를 다시 수입해서 명맥을 이어가는 모습을 생각하면 걱정이 된다는 의견이었다.
이중표교수님의 대답인즉 불교는 꼭 한국불교야만 되는것은 아니니 어떤불교이던지 받아들일만하면 받아들여서 성장해나가는것도 나쁘지는 않다는 대답이었다.
그러나 나의 의견은 다르다.
1. 직선적이고 자본주의적 실증주의에 입장에있는 서양철학은 조화를 이루는데는 다시말해 globalization 을 위한 화합에는 동양철학만 못하기에 서양화된 불교보다는 동양불교를 명맥으로 아어가야 한다는게 나의 의견이고
2. 종교는 역사적, 문화적, 입장에서 그 민족의 정체성을 아어갈수 있어야한다.
그러나 이중표 교수님은 불교라는 종교적입장에서만 대답했을뿐 정체성을 고려하지 아니하는 중요한 실수를 범했다. California에서 베트남불교는 미국불교를 받아들이지 않고도 그들의 베트남불교의 명맥을 어어가도록 정착되가고있다.
불교자체는 질이좋으면 어떤불교를 받아들이던 상관이 없겠으나 정체성문제는 우리는 누구인가를 결정하는 중요한 문화적, 민족적, 무형의 귀중한 재산이다.
만일에 중국과 미국이 전쟁이 났다고 가정을 하자. 미국서 태어나서 자란 중국인 3세들이 공군에 입대하여 중국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받았을때
그 조종사는 미국인 인가? 중국인 인가? 의 정체성에따라서 공격하는 방향이 달라지게된다.
중동과 미국이 전쟁이 났을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중동인 3세로서 미공군에 입대하여 중동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받았을때 정체성에 따라 자폭을 각오하고 공격하는방향이 달라지게된다.
적어도 그 민족의 철학을 이끌어가는 교수라면 넓은 안목으로 종교를 볼수 있었으면하는 아쉬움이 있다.
최근에 기독교를 비판하는 글들이 여러곳에서 나타난다.
주 원인은 기독교가 침략적이라는것 과 이스라엘의 역사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서 각민족의 정체성을 찾아줄수 없다는데 있다.
예수는 흑인처럼 검을수도 았고 백인처럼 힐수도 있어야 한다.
우리의 기독교가 되려면 국악이 접붙혀져야하고 한국문화가 접붙혀져야 선진국에서 빌려다쓰는 종교가이닌 정체성이 있는 종교가된다.
한국불교도 중국불교의 틀에서 벗어나도록 부지런히 개발해야한다.
한국불교가 천년이상을 상속되어 내려오다보니 마비가되어 그대로 그냥 이어가기만 하면 되는즐 알지만
학문적인면에서 보면 기독교보다 더 비판을 받아야할 결핍된에 부분들이 너무 많다는것을 지긱한다면
중 이나 법사들은 명상이나하며 체면만을 유지할만큼 한가할때가 아니다.
그럼 불교계를 비판하는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있냐고 내게 묻겠지만
불교에서는 언제 내게 기회를 주었는가?
능력없고 50 년전의 낡은설법 으로 시간을 때워나가는 - - 제데로 할줄도 모르는자들이 법당을 이끌어나가면서도 내게 언제 기회를 주었는가?
겨우 이민 1 세 중에서 나이많은 노인들로만 명맥을 유지해나갈수밖에 없는것은
미국문화에 접붙혀지지 못했고 불교가 현실성이 없기때문이다.
불교가 후진국에서만 번성하는 이유중에 하나가 불교교리와 철학에
자본주의에 역행하는 뿌리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낭비가 미덕이라는 자본주의와는 반대로 검소, 절약, 무소유, 비 공격적 교리등은
21 세기에는 꼭 필요한 철학이지만 선진국에서는 아직은 반가워하지 않는 요소들이다.
한국불교의 세계화를위해 영어로된 불교서적과 학문의 개발도 시금한 큰 과제 중에 하나이지만
시대감각에 둔해져버린 노장승려들과 눈밖에 날까봐 아무말못하고 따르기만하는 용기없는 젊은 승려들,
인재를 키우기보다는 산속이나 도시에 절을 더 지어서 부동산이나 늘이려는 욕심쟁이들이
앞을 볼리가 없다.
종교는 그민족의 정체성을 찾아주고 이어나갈수 있어야한다. 한국에 가장 많은 교인수를 가지고있는
종교는
ㄱ ㄴ ㄷ 순으로 하면 기독교, 불교, 천주교 라 할수있다. 유대인들은 민족신앙으로서 구약만을 그들의 성서로 간주한다. 해서 유대인들의 민족주의 신앙은 그들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민족으로 키워냈다.
기독교의 성경에는 한민족이 아닌 이스라엘의 역사를 바탕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들이고
그 교리나 철학에 한민족의 문화나 정체성이 접붙혀지지 아니하면 외국에서 수입해서 사용하는 수입품 신앙이된다.
불교는 어떠한가? 인도에서 출발한 불교는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온지가 오래되지만 역사적 정치적으로 중국불교를 그대로 수입해서 우리의 문화나 정체성이 뿌리박은 종교로 성장시키지를 못했다.
그 증거로는 한국이 천년 이상을 인도의 원어보다는 중국의 의역된 불교용어들을 그대로 사용하고있다. 그러나 미국은 중국불교보다는 인도불교를 그대로 받아들여 그들의 철학 심리학을 첨가하여 개발해 나가고있다.
미국 이민불교에 이중표 교수님이 오셔서 L A 에서 법회를 하셨다. 누군가 이민불교의 앞날을 걱정하는질문을 했다. 미국에서 중국이민 기독교가 1 세때는 부흥을 했지만 2 세때는 급격히 쇠퇴해 버렸는데 한국 해외 이민불교도 앞날이 그리 밝지가 아니하다는 걱정하는 질문이었다.
3 – 4 세대 에가서 한국이민불교가 사라져 버리면 한국불교의 명맥을 이어가기 보다는 동양불교에 서양철학이 접붙혀진 미국불교를 다시 수입해서 명맥을 이어가는 모습을 생각하면 걱정이 된다는 의견이었다.
이중표교수님의 대답인즉 불교는 꼭 한국불교야만 되는것은 아니니 어떤불교이던지 받아들일만하면 받아들여서 성장해나가는것도 나쁘지는 않다는 대답이었다.
그러나 나의 의견은 다르다.
1. 직선적이고 자본주의적 실증주의에 입장에있는 서양철학은 조화를 이루는데는 다시말해 globalization 을 위한 화합에는 동양철학만 못하기에 서양화된 불교보다는 동양불교를 명맥으로 아어가야 한다는게 나의 의견이고
2. 종교는 역사적, 문화적, 입장에서 그 민족의 정체성을 아어갈수 있어야한다.
그러나 이중표 교수님은 불교라는 종교적입장에서만 대답했을뿐 정체성을 고려하지 아니하는 중요한 실수를 범했다. California에서 베트남불교는 미국불교를 받아들이지 않고도 그들의 베트남불교의 명맥을 어어가도록 정착되가고있다.
불교자체는 질이좋으면 어떤불교를 받아들이던 상관이 없겠으나 정체성문제는 우리는 누구인가를 결정하는 중요한 문화적, 민족적, 무형의 귀중한 재산이다.
만일에 중국과 미국이 전쟁이 났다고 가정을 하자. 미국서 태어나서 자란 중국인 3세들이 공군에 입대하여 중국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받았을때
그 조종사는 미국인 인가? 중국인 인가? 의 정체성에따라서 공격하는 방향이 달라지게된다.
중동과 미국이 전쟁이 났을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중동인 3세로서 미공군에 입대하여 중동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받았을때 정체성에 따라 자폭을 각오하고 공격하는방향이 달라지게된다.
적어도 그 민족의 철학을 이끌어가는 교수라면 넓은 안목으로 종교를 볼수 있었으면하는 아쉬움이 있다.
최근에 기독교를 비판하는 글들이 여러곳에서 나타난다.
주 원인은 기독교가 침략적이라는것 과 이스라엘의 역사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서 각민족의 정체성을 찾아줄수 없다는데 있다.
예수는 흑인처럼 검을수도 았고 백인처럼 힐수도 있어야 한다.
우리의 기독교가 되려면 국악이 접붙혀져야하고 한국문화가 접붙혀져야 선진국에서 빌려다쓰는 종교가이닌 정체성이 있는 종교가된다.
한국불교도 중국불교의 틀에서 벗어나도록 부지런히 개발해야한다.
한국불교가 천년이상을 상속되어 내려오다보니 마비가되어 그대로 그냥 이어가기만 하면 되는즐 알지만
학문적인면에서 보면 기독교보다 더 비판을 받아야할 결핍된에 부분들이 너무 많다는것을 지긱한다면
중 이나 법사들은 명상이나하며 체면만을 유지할만큼 한가할때가 아니다.
그럼 불교계를 비판하는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있냐고 내게 묻겠지만
불교에서는 언제 내게 기회를 주었는가?
능력없고 50 년전의 낡은설법 으로 시간을 때워나가는 - - 제데로 할줄도 모르는자들이 법당을 이끌어나가면서도 내게 언제 기회를 주었는가?
겨우 이민 1 세 중에서 나이많은 노인들로만 명맥을 유지해나갈수밖에 없는것은
미국문화에 접붙혀지지 못했고 불교가 현실성이 없기때문이다.
불교가 후진국에서만 번성하는 이유중에 하나가 불교교리와 철학에
자본주의에 역행하는 뿌리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낭비가 미덕이라는 자본주의와는 반대로 검소, 절약, 무소유, 비 공격적 교리등은
21 세기에는 꼭 필요한 철학이지만 선진국에서는 아직은 반가워하지 않는 요소들이다.
한국불교의 세계화를위해 영어로된 불교서적과 학문의 개발도 시금한 큰 과제 중에 하나이지만
시대감각에 둔해져버린 노장승려들과 눈밖에 날까봐 아무말못하고 따르기만하는 용기없는 젊은 승려들,
인재를 키우기보다는 산속이나 도시에 절을 더 지어서 부동산이나 늘이려는 욕심쟁이들이
앞을 볼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