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문학인의 삶

2007.06.28 06:53

강 정 실 조회 수:340 추천:13


돌아가신 이문구 선생이 살아계실 때 이런 말을 하신 적이 있다. “문인들 중에 글은 잘 쓰는데 사람이 영 아닌 경우가 있고, 사람은 좋은데 글은 좀 부족한 사람이 있지만 둘 중의 하나만 좋아도 괜찮아.” 글도 잘 쓰는데 사람도 좋으면 더 바랄 게 없겠지만, 글도 잘 쓰지 못하면서 사람도 아주 말종인 경우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문인들끼리 만나다보면 문학에 대한 이야기보다 문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다. 문인들의 재미있는 일화를 화제에 올리며 즐거운 자리가 이어지는가 하면, 문인들의 음주와 실수와 결함과 이성적이지 못한 행각에 대한 질타와 비난이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그런 인간적 결함만으로 그의 문학이 동시에 매도되는 것 또한 그를 정확하게 본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겉으로 드러난 그의 언행을 그의 문학의 전부라 말할 수 없으며, 그의 문학은 언제나 그 이상의 어떤 것을 지니고 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좋다고 하여 그의 문학이 다 좋다고 예단하는 것 또한 오류일 수 있다. 문학이 삶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기는 하지만, 문학은 우리가 보는 문인 이상의 그 어떤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문인을 하나의 인상이나 이미지로만 기억하고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말하는 것도 단면만 보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한 인간을 정확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이육사는 그의 정신을 서릿발 칼날 진 위에다 가져다 놓은 사람이다. 하늘이 다 끝나고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꽃은 빨갛게 핀다고 믿는 사람이다. 쉽게 포기하지 않는 매서운 정신의 사람이다. 육사는 의열단원들이 설립한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를 이수한 사람이었고 “정면으로 달려드는 표범을 겁내서는 한 발자국이라도 물러서지 않으려는 내 길을 사랑할 뿐”이며 “행동의 연속만이 있을 따름”이라고 말한 시인이다.
‘계절의 오행’이란 글에 나오는 이 말은 육사를 행동하는 시인이라고 말하는 많은 이들이 즐겨 인용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 글은 “이래서 내 가을은 다 지나가고 뒤뜰에 황화(黃化) 한 포기가 피어있으니 어느 동무가 술 한 병 들고 오면 그 꽃을 따서 저 술 한 잔에도 흩어주고 나도 한 잔 마셔 보겠소”로 끝난다.
육사는 민족도 알지만 가을도 알고 가을꽃을 따서 술잔에 띄워 마실 줄도 알던 사람이다. 1942년 신석초와 국화를 따다가 술잔에 띄워주며 마시다가 급기야는 요정을 찾아가 밤 깊도록 술을 마시기도 한다. 군사정치간부학교에서 폭탄 제조법, 투척법, 암살법을 배운 육사도 육사이고 요정에 가는 육사도 육사인 것이다. 그 모든 것의 합이 육사인 것이지 어느 한 부분만이 육사인 것은 아니다.
그는 어릴 적부터 한학을 배우고 ‘고문진보’나 ‘팔대가’를 공부했던 사람이다. 그런가 하면 아주 댄디한 사람이다. 양복에 상어가죽구두를 신고 진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식당을 찾아가거나, 버터도 고소한 맛이 없으면 그냥 버려두는 취향을 가진 사람이다. 손이 찢어져 수술을 받는 동안 살이 베어지는 싸각싸각하는 소리를 그대로 듣고 서 있는 사람이면서 한편으로는 델리킷한 사람이다. 경찰서를 열 몇 번씩이나 잡혀 들어갔다 온 사람이지만 어릴 적에는 해당화꽃을 서로 자기 방에다 가져다 놓으려고 형제끼리 싸우곤 했던 사람이다.
퇴계의 직계손이고 남성적, 지사적인 사람이긴 하지만, 신여성들이 결혼하고 나서 성격 차이로 곧 이혼하는 행태를 모멸의 어조로 심하게 비판했던 사람이다. 이혼의 이유가 여자에게만 있는 것은 아닐 터인데 당대 남성들에 대한 비판은 없다. 이런 단점까지가 다 육사의 실체이다. 여기까지 알아야 한 인간을 이해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도 육사의 문학을 다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 또한 문학인 것이다.

<경향신문 '도종환의 칼럼'에서 발췌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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