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시/임혜신

2007.11.02 04:34

미문이 조회 수:241 추천:2

비 오는 날을 위한 광고/임혜신 그 어느 날 비가 내리고 알 수 없는 고통으로 당신이 힘들어지거든 우리동네로 오셔요. 우유와 빵이 떨어졌다고 어서 가서 사와야 한다고 남편과 아이들에게 쪽지를 남겨놓고 오셔요 커넌街와 아틀란틱街가 만나는 곳, 푸른 페인트를 칠한 슈퍼로 오셔요 비오는 날, 혹시 밀가루가 필요하거나 소금이 몹시 필요하거든 우리동네 수퍼엔 소년이 산답니다. 짐도 싸주고 우산을 받쳐주기고 하고 잠시 당신의 장바구니를 봐주기도 할 소년, 눈이 찌그러진 소년, 입이 찌그러진 소년, 다리도 절룩거리는 나이야 어찌되었건 언제나 소년 같은 한 사람이, 안녕, 잘 있었니? 웅얼거리는 그의 입은 잘 열리지 않지만 그러나 당신이라면 들을 수 있을 거예요. 소금과 밀가루가 죽도로 필요했던 그 사람이 진정 당신이라면, 들을 수 있을 거예요. 장바구니에 톡톡 떨어지는 싱싱한 빗물소리를 막 떨어진 올린더 꽃잎같이 따스한 물소리를, 어깨를 지나 무릎을 지나 주룩 주룩 흘러내리는 빵, 우유, 소금, 밀가루, 그리고 사과, 상추, 아 달콤한 망고의 목소리들을 작고 동그란 입 속에 갇혀 우물거리는 그 목소리가 어찌 그리 쩌렁쩌렁 가슴을 울리는지 아니 울릴 수 있는 것인지, 그러나 캐지 마셔요. 어느 의사가 받았을까 어느 어른이 걸음마를 가르쳤을까 어느 바람이 재생의 길을 가르쳤을까 혹시 어느 종교를 믿는가, 묻지 마셔요 아무도 모르게 당신도 빗물이 되고 눈물이 되고 마침내 도랑이 되어 하얗게 흐르게 된다면 그때가 바로 집으로 돌아가실 때랍니다. 가서 즐겁게 빵이 되고 망고가 될 때랍니다 당신과 소년의 발을 적시며 흘러가던 슬픈 가을 빗줄기처럼 때때로 사고 파는 일도 간절한 사랑이거나 그리움이 되는 것을 그 때가 바로 잊을 때랍니다. 잊을 수 없을 때까지 조용히, 조용히 잊을 때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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