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밤하늘의 '왕방울만한 별'
2009.04.11 08:02
지리산 밤하늘의‘왕방울만한 별’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 야간반 이승수
산악회원들이 테마산행을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평소 별로 말이 없던 현순이가 불쑥 한마디 하였다.
“얼마 전 지리산 야간산행을 하는데 하늘에 왕방울만한 별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광경이 정말 환상적이더라!”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몸은 커다란 전율에 휩싸이고 말았다. 주말, 사진, 산행기 등이 오버랩 되었고 애써 태연한 척하였지만 심장의 고동 때문에 숨쉬기가 곤란할 지경이었다. 조급하게도 내 생각의 나래는 이미 저‘벽소령’늙은 적송가지 끝까지 날아가 별들과 만나고 있었던 것이다. 현순이는 끝내 웃지 않았다. 농담이라며 번복하지 않았고, 말을 바꿀까봐 경계하며 불안해하는 내 마음을 눈치 챈 것 같지도 않았다. 2008년 유월 그믐날 단행한 지리산 야간산행은 그래서 시작되었다.
“날씨가 좋아야 할 텐데‥‥‥.”
반야봉에서 낙조를 보고, 연하천에서 생명수로 목을 축인 뒤 벽소령과 세석평전 구간에서 그‘왕방울만한 별’을 감상할 계획이었다.
‘벽소령 명월’은 지리산 8경으로 정해져 있기에 여러 사람이 달을 보며 수 없이 많은 소원을 빌었을 터, 경치도 경치려니와 기(氣)가 넘칠 듯해 그곳에서 별들과의 성대한 상면의식을 거행할 예정이었고 그 피크타임은 밤 10시쯤으로 정하였다.
그놈 그 왕방울만한 놈들이 폼 나게 보고 싶었다. 모아도 보고, 떼어도 보고, 겸손하게 봤다가, 거만하게 보았다가, 수줍게 보았다가, 질풍노도와 같이 보았다가, 마무리로 뛸 듯이 기쁘게 볼 셈이었다. 한편으로는 누워서 보다가 기대어도 보고, 서서 보다가 앉아서도 보고, 나뭇가지에 매달려서도 볼 생각이었다. 사진은 별의 크기순으로 찍다가, 두세 개씩 모아서 찍다가, 렌즈에 들어오는 놈은 모두 모아 찍다가, 내가 아는 별자리는 아주 특별하게 찍을 계획이었다. 혹 별똥별이 떨어질지도 모를 일, 그놈은 번개처럼 셔터를 눌러 꼬리라도 붙잡을 생각이었다. 별 주변에 은하수가 드리운다면 그것은 보너스라 여길 참이었다.
6월 그믐날, 지리산 노루목을 거쳐 반야봉에 이르니 어느새 표지석 뒤로 땅 그림자가 일고 있었다. 온기가 부서지는 산자락은 어스레하고 광합성을 멈춘 초목들의 서운한 꼴들은 이내 호졸근해지고 있었다. 지는 기운은 저리도 매정할까, 생각하는 사이 낙조가 진행되었다. 억겁을 질러온 거룩한 담금질이 시작된 것이다. 서리 맞은 홍시와도 같이 너울거리는 햇덩이 뒤로 소녀가 처음 칠한 립스틱 색상 같은 연홍의 파장이 줄줄이 사그라지고 있었다. 초등생 목도리 선과 꼭 닮은 잘록한 구름조각까지 파르스레한 하늘가로 스러지면서 이내 어둠이 밀려오고, 서운한 사방은 침묵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연하천 샘물은 언제 와서 먹어도 기운이 세다. 물을 마시려는데 눈 가운데로 하늘이 들어왔다. 희뿌연 장막 너머로 뿌려진 여러 개의 별들과 함께‥‥‥. 저들일까? 나를 감동시킬 그 별들이. 그러나 아직은 큰 느낌이 없다. 시내에서 보던 그것들과 별로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벽소령 가는 길은 하늘 금이 선명하다. 낮에 그리도 울창하고 분주했던 숲은 검은색 하나로 채색되어 단조롭고 편안해 보였다. 초등학생이 검정 크레파스 하나로 그린 산 그림과 똑 같았다. 그림 그 길로 타박타박 발을 옮겨 벽소령에 이르렀다. 산장에서 노란 불빛이 새어나왔다. 휴식의 빛이다. 쉬어가라고 손 을 내미는 빛, 마치 엄마의 품과도 같이 포동포동하고 살가운 빛이었다.
밤 10시가 되어 별을 볼 준비를 했다. 시야가 확 트인 곳, 커다란 나뭇가지가 앉기 편하게 드리운 곳, 기쁨을 누리기에 충분한 곳을 찾았다. 하나 더, 카메라를 손에 들고 사방으로 운신하기 편한 곳,
“아, 찾았다!”
이내 하늘이 열렸다. 그날의 하늘은 유난히도 토실토실하면서 투명했다. 그 바탕위로 별들이 무리지어 떠 있었다. 북두칠성, 북극성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우리 선조들은 여름 별자리를 남방주작으로 분류했다는데…….
‘헤라의 젖’(Milky way)이라는 은하수가 길게 깔려있었다.
“흐흐, 저건 보너스다.”
여기저기서 영롱한 빛들이 꿈틀댔다. 그런데, 그런데 내가 찾는‘왕방울별들’이 안 보였다. 이상했다. 이 정도의 일기상태라면 충분할 텐데? 시간이 좀 더 지나야 되나? 아니 이동을 해 볼까? 가보자. 1시간 반 걸려 세석평전에 도착했다. 그곳은 하늘이 동쪽으로 열려있었다. 역시 잔챙이 별들의 잔치였다. 별들이 숨을 쉬는 시간인가 보다. 개구리 볼처럼 올록볼록 움직였다. 무리지어 깜박였다. 청명한 하늘은 온통 별들의 숨결로 꿈틀대고 있었다. 한꺼번에 다 살피고자 촛대봉에 올랐다. 시야가 확 트이면서 온 하늘의 별들을 모두 관찰할 수 있었다. 정숙한 별, 수줍은 별, 경망스런 별, 겸손한 별, 교만한 별, 매너 있는 별, 터프한 별……. 별들이 성깔대로 꿈틀대고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가 찾는‘왕방울만한 별’이 안 보인다는 점이었다. 부아가 치밀었다. 홧김에 카메라를 하늘로 들여대 보았다. 검었다. 액정 속에 아무것도 나타나는 게 없었다. 이럴 수가? 더욱 그 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더 나를 약 오르게 했다. 준비한 세리머니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야속한 하늘에 성대한 별들의 숨쉬기는 계속되고 있었지만 내 눈에는 경이로움이 하나도 없었다. 아! 왕방울만한 별들이여, 그 잔치여~
이때 문득 소설‘연금술사’의 주인공 양치기‘산티아고’생각이 났다. 피라미드 앞에서 보물을 찾기 위해 모래땅을 파고 있는……. 나야말로 거기서 연금술을 했던 것이 아닐까?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그날의 밤하늘은 나에게 현란한 잔치를 베풀어 주었건만 나는 무엇인가에 홀려 연금술을 흉내 내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너는 무엇을 생각하는가?”
자조의 꾸지람이다.
혼돈의 시간이 지나고 며칠 뒤 지구과학 교사인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별이 크게 보이는 때가 있나? 또 천 9백 미터쯤 올라가면 별이 더 크게 보일 수 있어? 디지털카메라로 별을 찍으면 어떻게 나오지?”
친구는 미소를 지으며 내게 반문했다.
“지리산이 인공위성이라도 되니?”
별을 보러 지리산에 간 이야기는 비밀이다. 특히 현순이에게는…….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 야간반 이승수
산악회원들이 테마산행을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평소 별로 말이 없던 현순이가 불쑥 한마디 하였다.
“얼마 전 지리산 야간산행을 하는데 하늘에 왕방울만한 별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광경이 정말 환상적이더라!”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몸은 커다란 전율에 휩싸이고 말았다. 주말, 사진, 산행기 등이 오버랩 되었고 애써 태연한 척하였지만 심장의 고동 때문에 숨쉬기가 곤란할 지경이었다. 조급하게도 내 생각의 나래는 이미 저‘벽소령’늙은 적송가지 끝까지 날아가 별들과 만나고 있었던 것이다. 현순이는 끝내 웃지 않았다. 농담이라며 번복하지 않았고, 말을 바꿀까봐 경계하며 불안해하는 내 마음을 눈치 챈 것 같지도 않았다. 2008년 유월 그믐날 단행한 지리산 야간산행은 그래서 시작되었다.
“날씨가 좋아야 할 텐데‥‥‥.”
반야봉에서 낙조를 보고, 연하천에서 생명수로 목을 축인 뒤 벽소령과 세석평전 구간에서 그‘왕방울만한 별’을 감상할 계획이었다.
‘벽소령 명월’은 지리산 8경으로 정해져 있기에 여러 사람이 달을 보며 수 없이 많은 소원을 빌었을 터, 경치도 경치려니와 기(氣)가 넘칠 듯해 그곳에서 별들과의 성대한 상면의식을 거행할 예정이었고 그 피크타임은 밤 10시쯤으로 정하였다.
그놈 그 왕방울만한 놈들이 폼 나게 보고 싶었다. 모아도 보고, 떼어도 보고, 겸손하게 봤다가, 거만하게 보았다가, 수줍게 보았다가, 질풍노도와 같이 보았다가, 마무리로 뛸 듯이 기쁘게 볼 셈이었다. 한편으로는 누워서 보다가 기대어도 보고, 서서 보다가 앉아서도 보고, 나뭇가지에 매달려서도 볼 생각이었다. 사진은 별의 크기순으로 찍다가, 두세 개씩 모아서 찍다가, 렌즈에 들어오는 놈은 모두 모아 찍다가, 내가 아는 별자리는 아주 특별하게 찍을 계획이었다. 혹 별똥별이 떨어질지도 모를 일, 그놈은 번개처럼 셔터를 눌러 꼬리라도 붙잡을 생각이었다. 별 주변에 은하수가 드리운다면 그것은 보너스라 여길 참이었다.
6월 그믐날, 지리산 노루목을 거쳐 반야봉에 이르니 어느새 표지석 뒤로 땅 그림자가 일고 있었다. 온기가 부서지는 산자락은 어스레하고 광합성을 멈춘 초목들의 서운한 꼴들은 이내 호졸근해지고 있었다. 지는 기운은 저리도 매정할까, 생각하는 사이 낙조가 진행되었다. 억겁을 질러온 거룩한 담금질이 시작된 것이다. 서리 맞은 홍시와도 같이 너울거리는 햇덩이 뒤로 소녀가 처음 칠한 립스틱 색상 같은 연홍의 파장이 줄줄이 사그라지고 있었다. 초등생 목도리 선과 꼭 닮은 잘록한 구름조각까지 파르스레한 하늘가로 스러지면서 이내 어둠이 밀려오고, 서운한 사방은 침묵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연하천 샘물은 언제 와서 먹어도 기운이 세다. 물을 마시려는데 눈 가운데로 하늘이 들어왔다. 희뿌연 장막 너머로 뿌려진 여러 개의 별들과 함께‥‥‥. 저들일까? 나를 감동시킬 그 별들이. 그러나 아직은 큰 느낌이 없다. 시내에서 보던 그것들과 별로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벽소령 가는 길은 하늘 금이 선명하다. 낮에 그리도 울창하고 분주했던 숲은 검은색 하나로 채색되어 단조롭고 편안해 보였다. 초등학생이 검정 크레파스 하나로 그린 산 그림과 똑 같았다. 그림 그 길로 타박타박 발을 옮겨 벽소령에 이르렀다. 산장에서 노란 불빛이 새어나왔다. 휴식의 빛이다. 쉬어가라고 손 을 내미는 빛, 마치 엄마의 품과도 같이 포동포동하고 살가운 빛이었다.
밤 10시가 되어 별을 볼 준비를 했다. 시야가 확 트인 곳, 커다란 나뭇가지가 앉기 편하게 드리운 곳, 기쁨을 누리기에 충분한 곳을 찾았다. 하나 더, 카메라를 손에 들고 사방으로 운신하기 편한 곳,
“아, 찾았다!”
이내 하늘이 열렸다. 그날의 하늘은 유난히도 토실토실하면서 투명했다. 그 바탕위로 별들이 무리지어 떠 있었다. 북두칠성, 북극성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우리 선조들은 여름 별자리를 남방주작으로 분류했다는데…….
‘헤라의 젖’(Milky way)이라는 은하수가 길게 깔려있었다.
“흐흐, 저건 보너스다.”
여기저기서 영롱한 빛들이 꿈틀댔다. 그런데, 그런데 내가 찾는‘왕방울별들’이 안 보였다. 이상했다. 이 정도의 일기상태라면 충분할 텐데? 시간이 좀 더 지나야 되나? 아니 이동을 해 볼까? 가보자. 1시간 반 걸려 세석평전에 도착했다. 그곳은 하늘이 동쪽으로 열려있었다. 역시 잔챙이 별들의 잔치였다. 별들이 숨을 쉬는 시간인가 보다. 개구리 볼처럼 올록볼록 움직였다. 무리지어 깜박였다. 청명한 하늘은 온통 별들의 숨결로 꿈틀대고 있었다. 한꺼번에 다 살피고자 촛대봉에 올랐다. 시야가 확 트이면서 온 하늘의 별들을 모두 관찰할 수 있었다. 정숙한 별, 수줍은 별, 경망스런 별, 겸손한 별, 교만한 별, 매너 있는 별, 터프한 별……. 별들이 성깔대로 꿈틀대고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가 찾는‘왕방울만한 별’이 안 보인다는 점이었다. 부아가 치밀었다. 홧김에 카메라를 하늘로 들여대 보았다. 검었다. 액정 속에 아무것도 나타나는 게 없었다. 이럴 수가? 더욱 그 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더 나를 약 오르게 했다. 준비한 세리머니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야속한 하늘에 성대한 별들의 숨쉬기는 계속되고 있었지만 내 눈에는 경이로움이 하나도 없었다. 아! 왕방울만한 별들이여, 그 잔치여~
이때 문득 소설‘연금술사’의 주인공 양치기‘산티아고’생각이 났다. 피라미드 앞에서 보물을 찾기 위해 모래땅을 파고 있는……. 나야말로 거기서 연금술을 했던 것이 아닐까?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그날의 밤하늘은 나에게 현란한 잔치를 베풀어 주었건만 나는 무엇인가에 홀려 연금술을 흉내 내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너는 무엇을 생각하는가?”
자조의 꾸지람이다.
혼돈의 시간이 지나고 며칠 뒤 지구과학 교사인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별이 크게 보이는 때가 있나? 또 천 9백 미터쯤 올라가면 별이 더 크게 보일 수 있어? 디지털카메라로 별을 찍으면 어떻게 나오지?”
친구는 미소를 지으며 내게 반문했다.
“지리산이 인공위성이라도 되니?”
별을 보러 지리산에 간 이야기는 비밀이다. 특히 현순이에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