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렇게 수필을 쓴다/정원정

2009.11.24 15:23

김학 조회 수:305

나는 수필을 이렇게  쓴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정원정
                                          

가슴에 불씨 하나 묻고 살았다. 종잡을 수 없는 갈등과 공상, 가슴 뛰는 순간마다 불씨는 튀어 올랐다. 어딘가에 불씨를 지피면 활활 타오를 것만 같았다. 그러나 세상은 불씨만 붙여도 쉽게 불꽃이 피어오르는 짚가리가 아니었다. 허구한 날 가슴 검부잿불 속에서 시나브로 뒤척일 뿐, 요리조리 살아났다 사그라지며 내면 깊숙이 숨어버리기 일 수였다.

늦은 나이에 수필을 쓰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깊게 밴 삶의 고단함도 내려놓고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에 등록을 했다. 그리움과 갈구는 항상 불씨로 남아 수필을 쓰는데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순정함이 밀물처럼 밀려올 때 또는 지극히 주변이 고요할 때 자신을 태질하듯 글을 쓰고 싶었다.
글의 소재가 떠오르면 우선 제목부터 잡는다. 생각나는 대로 아는 만큼 글을 쓴다. 수필을 쓰는 일은 어쩌면 발가벗고 네거리에 나선 것 같기도 하다. 나를 감추고 곁다리 글을 쓸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내 안의 깊은 우물을 들여다 볼 수도 있었다. 안과 밖을 바라보며 어쩌면 가슴의 불씨를 다독이는 치유책으로 글을 썼을 것이다. 서툴게나마 열심 하나로 마구 썼다. 신변잡기의 산문임에도 지도교수는 다독이며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함께했다. 언젠가는 수필의 범주에 드는 글을 쓰리라고 기대하셨을까. 모국어인데도 문법을 모르니 구어체로 쓸 수밖에 없었다. 단어 하나하나도 사전을 찾는다. 워낙 국어 공부를 한 적이 없으니 사전을 스승 삼아야 했다. 내게는 우리말에 관계된 사전이 여러 권 있다. 똑같은 사전도 책상에 하나, 잠자는 침구 옆에 하나 따로 놓고 애매한 단어는 확실하게 찾아본다. 눈도 어둡고 활자도 작지만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찾다보면 덤으로 좋은 어휘도 눈에 띈다. 순 우리말을 자주 쓰게 되는데 잘 하는 일인지 모르겠다. 단순한 언어표현은 글이 밋밋한 것 같고 평범한 듯해서 독특하고 맛깔스러운 순 우리말을 쓰게 된다. 문학용어에는 순 우리말을 썼을 때 풍성함이 더 하는 듯해서다. 순 우리말에는 많은 상상이 함축되어 있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툇마루에서 토방으로 내려스며“오늘은 날이 잠포록하다.”하실 적에 느낌으로 바람도 없고 잔잔하다는 뜻으로 들렸다. 지극히 편안함이 전달되었다. 한 세대 전만 해도 촌부인 어머니들이 거침없이 썼던 고유어다. <옴니암니>같은 어휘도 어머니들이 흔하게 썼던 말이다. 가령 고샅과 골목은 느낌이 다르고 부엌과 정지의 분위기는 다르다. 그렇듯 우리의 좋은 전통과 토양, 정서와 의식의 산물인 ‘순 우리의 언어’를 언제부터인가 아깝게도 깡그리 잊고 살았다. 수필을 쓰면서 사전을 찾다보니 살려 쓸 ‘순 우리말’이  얼마나 다양한지 새롭다.

일단 생각나는 대로 아는 만큼 초고를 종이에 쓴다. 슬슬 써지지 않을 때는 며칠을 두고 조금씩 보탠다. 쓰는 중에 제목이 몇 번 바뀐다. 자료가 필요하다든가 막히는 대목은 관계된 책에서 찾는다. 다 써 놓고 또 다시 단락을 정비한다. 머리가 몇 가지를 주섬주섬 정리해 주면 손이 글을 쓰는 것 같다. 일단은 붓을 잡아야 글이 나온다. 머리에서 미처 생각 못한 것, 어디에서 읽은 것도 아닌 의식에서 조차 그만 둔 것, 또는 어디선가 읽었던 줄거리를 용케 기억해 내어 글을 만들어 낸다.
어려운 게 결미다. 엉뚱한 내용을 썼다 지우기를 여러 번한다. 내 나름의 철학이 메마르니 무슨 신통한 결미가 나오겠는가. 빈약한 사고에서 끌어낸 결미는 항상 스스로도 어색하다. 정서적인 글감을 포착하는 데는 크게 어렵지 않지만 끝맺음을 글답게 하기란 쉽지 않다. 내 재능 없음이 들어나는 대목이다. 생각이 모자란 태생적 한계이리라.

컴퓨터에 올려 프린트를 한 다음에 본격적으로 정서를 한다. 지난밤에 지질하게 고쳤는데 아침에 보면 또 손 볼 데가 눈에 띈다. 고치기로 하면 한이 없다. 좀 더 손을 보면 조금은 나은 글이 되련만 참을성 없이 후닥닥 올려 버린다. 다작보다는 하나라도 제대로 써야 하련만 알면서도 처음부터 그 버릇을 고치지 못한다. 처음 두서없이 초등학교 작문 수준에서 시작하여 수필을 알게 되었으니 3년 동안 참 많이 배웠다. 콩나물이 물을 흘러 버려도 쑥쑥 자라듯이 수필 쓰는 작업도 어느 사이 여기까지 한무릎공부를 했다. 지도교수의 수필쓰기에 힘을 기울인 보살핌이 용기를 실어주었다. 함께 공부하는 문우들의 격려도 한몫 했었다. 한갓 평범한 글을 등단작으로 뽑아 주고 수필을 쓰도록 자신감을 키워준 <대한문학>에도 고마움을 안고 있다. 글 쓰는 이들이 흔히 하는 말이 산고의 진통을 겪으면서 쓴다고 하는데 그 경지까지는 이르지 못해서일까. 아직은 전심전력을 쏟아가며 글을 썼다고 고백하기에는 자신이 없다. 지나 놓고 보니 즐기며 썼다고 해야 옳을 것 같다. 그래서 아직도 수필 언저리에서 서성일 뿐이지만. 무엇보다도 부박한 세태 속에서 수필의 아름다움을 배우는 좋은 분들과의 만남이 있어 세월의 덧없음을 잊고 지내왔다.  

불씨가 기분 좋게 타들어갈 수 있는 수필을 공부하면서 나는 지금 낙엽더미 쌓인 세상 뜨락에서 쓸어 모은 마른 잎새들을 고요하고 쓸쓸하게 태우는 수필 속에 빠져있다. 그러나 아직은 시작일 뿐, 여성으로서 격동의 시기를 건너오며 몸으로 겪고,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새긴 이야기들이 얼마나 무궁한가. 어미로서 기쁘고도 한스러운 이야기들은 또 얼마나 무진한가. 이제는 내가 안고 써야 할 글은 무엇일까. 많이 생각하고 오래 삭히어 맑은 정신의 품격을 빚어내는 글을 쓸 수는 없는 걸까. 자신을 닦는 진실과 자존이 우선 함께해야 하겠지만, 줄기차게 노력하면 80대 나이에도 가능하기는 하는 걸까. 무연히 턱없는 꿈을 꾸어 본다.

                                       (2009.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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