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멋진 성묘/이수홍
2010.10.24 08:45
아주, 멋진 성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이수홍
추석이면 성묘를 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막내라 집에서 차례는 지내지 않고 성묘만 간다. 여느 때는 소주 한 병에 집에서 장만한 안주를 싸가지고 간다. 종이컵에 술을 따라 묘 앞에 놓고 절을 하며 묘에 술을 뿌리고 음복을 한다. 산신령님이 자실 것도 묘지 모퉁이에 마련된 돌 판에 술을 딸아 놓았다가 뿌린다. 지하에 계신 조상님이 못 자신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한다. 힘들게 산에 올라가서 술을 마시고 과일 등 안주를 먹으면 맛이 참 좋다. 성묘를 하러 가지고 간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만든 그 예법은 가히 칭찬 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나는 차를 가지고 가기 때문에 술도 마실 수 없고 식탐도 별로 좋지 않아 아무것도 안가지고 가서 절만 하고 오기도 한다.
올해에는 조상님들을 더 기쁘게 할 방법이 없을까 생각했다. ‘응, 옳다 됐다. 9월 20일자로 펴낸 내 두 번째 수필집 《춤추는 산수유》를 갖다 바쳐야지’ 라는 생각을 했다. 아내에게 상의를 했더니 당신다운 기발한 착상이라며 좋아했다. 성묘 가기 전날 밤 늦게 집근처 홈플러스에 가서 책을 넣기에 알맞은 지퍼 백(25×30cm)을 샀다. 책 3권 앞표지 다음 장에 이렇게 썼다.
“할아버지 할머니께 드립니다. 2010년 추석 손자 수홍.
아버님께 드립니다. 2010년 추석 막둥이 수홍.
어머님께 드립니다. 2010년 추석 막둥이 수홍.”
책을 비닐봉지에 넣고 지퍼를 채우고 성묘를 가서 묘 앞에 놓고 절을 했다. 관리인이 언제 벌초를 했는지 잡초가 군데군데 한 뼘 정도 올라온 풀을 어머니의 흰머리를 뽑아 드리듯 손으로 몇 잎 잡아 뜯었다. 술을 따를 때보다 절차도 간단해서 좋았다. 남들이 하지 않는 아이디어로 나 혼자만 하는 일 같아 가슴이 뿌듯했다. 내가 과문한 탓인지 자기가 쓴 책을 놓고 성묘를 한 사람이 있다는 말을 아직까지는 듣지 못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합장을 해서 한 권만 드리고 아버님과 어머님은 따로 계셔서 한 권씩 드렸다. 아내더러 할아버지는 한문만 아시고 어머니는 한글도 못 읽으시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했더니 천당에는 세종대왕님도 계시니 다 배워서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눈비가 와도 괜찮고 바람이 불어도 끄떡없고 아무나 와서 읽은 뒤 다시 넣고 지퍼만 닫으면 된다.
20여 년 전에는 서울친척들이 버스를 대절해서 성묘를 오면 나는 전주에서 그 차를 타고 함께 갔는데 지금은 형제의 직계가족끼리 다닌다. 형님, 사촌동생들, 조카들, 손자손녀 등 성묘 간 모든 사람들이 다 볼 것이다. 나도 다음에 성묘 가서는 글 한 편을 읽어야겠다.
30여 년 전 고물상을 경영하던 후배의 트럭 뒤에 타고 성묘를 간 일이 있었다. 추석날 모악산에 올라가 장군봉에 제상을 차려놓고 고향 쪽을 향하여 절을 하는 성묘도 해 보았지만, 이번처럼 특이하고 멋진 성묘는 처음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돌아가셔서 나의 공부에대해서는 관심이 없으셨다. 어머니는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찰관이 된 뒤에 돌아가셔서 나의 공부문제에 대해서 무척이나 애를 많이 태우셨다.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르시는 분이었지만 나를 가르치려고 무척이나 고생을 하셨다. 우리 집이 공비들에 의해 불에 타버려 내가 고등학교도 못 다니게 되자 불에 탄 쌀로 엿을 만들어 도붓장사를 하여 학비를 조달하셨다.
추석이 십여 일 지난 오늘, 재작년에 시집온 막내며느리에게 선산을 보여주려고 또 성묘를 갔다. 막내내외가 묘소에 도착하자마자 묘소 앞에 놓인 책을 보고 깜짝 놀라면서,
“어! 우리아버님, 참 멋지시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감탄을 했다.
유난히도 파란 하늘에 솜털 같은 흰 구름이 두둥실 떠 있었다. 그 구름에 천당에 사시는 어머님이 내가 갖다드린 수필집을 보시고 무척 기뻐하시며 서너 개 남은 이빨이 보이도록 크게 웃으시는 것 같았다.
(2010.10.3.일요일)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이수홍
추석이면 성묘를 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막내라 집에서 차례는 지내지 않고 성묘만 간다. 여느 때는 소주 한 병에 집에서 장만한 안주를 싸가지고 간다. 종이컵에 술을 따라 묘 앞에 놓고 절을 하며 묘에 술을 뿌리고 음복을 한다. 산신령님이 자실 것도 묘지 모퉁이에 마련된 돌 판에 술을 딸아 놓았다가 뿌린다. 지하에 계신 조상님이 못 자신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한다. 힘들게 산에 올라가서 술을 마시고 과일 등 안주를 먹으면 맛이 참 좋다. 성묘를 하러 가지고 간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만든 그 예법은 가히 칭찬 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나는 차를 가지고 가기 때문에 술도 마실 수 없고 식탐도 별로 좋지 않아 아무것도 안가지고 가서 절만 하고 오기도 한다.
올해에는 조상님들을 더 기쁘게 할 방법이 없을까 생각했다. ‘응, 옳다 됐다. 9월 20일자로 펴낸 내 두 번째 수필집 《춤추는 산수유》를 갖다 바쳐야지’ 라는 생각을 했다. 아내에게 상의를 했더니 당신다운 기발한 착상이라며 좋아했다. 성묘 가기 전날 밤 늦게 집근처 홈플러스에 가서 책을 넣기에 알맞은 지퍼 백(25×30cm)을 샀다. 책 3권 앞표지 다음 장에 이렇게 썼다.
“할아버지 할머니께 드립니다. 2010년 추석 손자 수홍.
아버님께 드립니다. 2010년 추석 막둥이 수홍.
어머님께 드립니다. 2010년 추석 막둥이 수홍.”
책을 비닐봉지에 넣고 지퍼를 채우고 성묘를 가서 묘 앞에 놓고 절을 했다. 관리인이 언제 벌초를 했는지 잡초가 군데군데 한 뼘 정도 올라온 풀을 어머니의 흰머리를 뽑아 드리듯 손으로 몇 잎 잡아 뜯었다. 술을 따를 때보다 절차도 간단해서 좋았다. 남들이 하지 않는 아이디어로 나 혼자만 하는 일 같아 가슴이 뿌듯했다. 내가 과문한 탓인지 자기가 쓴 책을 놓고 성묘를 한 사람이 있다는 말을 아직까지는 듣지 못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합장을 해서 한 권만 드리고 아버님과 어머님은 따로 계셔서 한 권씩 드렸다. 아내더러 할아버지는 한문만 아시고 어머니는 한글도 못 읽으시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했더니 천당에는 세종대왕님도 계시니 다 배워서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눈비가 와도 괜찮고 바람이 불어도 끄떡없고 아무나 와서 읽은 뒤 다시 넣고 지퍼만 닫으면 된다.
20여 년 전에는 서울친척들이 버스를 대절해서 성묘를 오면 나는 전주에서 그 차를 타고 함께 갔는데 지금은 형제의 직계가족끼리 다닌다. 형님, 사촌동생들, 조카들, 손자손녀 등 성묘 간 모든 사람들이 다 볼 것이다. 나도 다음에 성묘 가서는 글 한 편을 읽어야겠다.
30여 년 전 고물상을 경영하던 후배의 트럭 뒤에 타고 성묘를 간 일이 있었다. 추석날 모악산에 올라가 장군봉에 제상을 차려놓고 고향 쪽을 향하여 절을 하는 성묘도 해 보았지만, 이번처럼 특이하고 멋진 성묘는 처음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돌아가셔서 나의 공부에대해서는 관심이 없으셨다. 어머니는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찰관이 된 뒤에 돌아가셔서 나의 공부문제에 대해서 무척이나 애를 많이 태우셨다.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르시는 분이었지만 나를 가르치려고 무척이나 고생을 하셨다. 우리 집이 공비들에 의해 불에 타버려 내가 고등학교도 못 다니게 되자 불에 탄 쌀로 엿을 만들어 도붓장사를 하여 학비를 조달하셨다.
추석이 십여 일 지난 오늘, 재작년에 시집온 막내며느리에게 선산을 보여주려고 또 성묘를 갔다. 막내내외가 묘소에 도착하자마자 묘소 앞에 놓인 책을 보고 깜짝 놀라면서,
“어! 우리아버님, 참 멋지시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감탄을 했다.
유난히도 파란 하늘에 솜털 같은 흰 구름이 두둥실 떠 있었다. 그 구름에 천당에 사시는 어머님이 내가 갖다드린 수필집을 보시고 무척 기뻐하시며 서너 개 남은 이빨이 보이도록 크게 웃으시는 것 같았다.
(2010.10.3.일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