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무엇으로 사는가/유영희
2010.12.13 07:44
작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봄빛 유영희(행촌수필문학회. 전북여성장애인연대 대표)
이번 주에도 신간작품집이 여섯 권이나 배달되었다. 시집과 수필집, 중편 소설집 외에 문예지도 있다. 책을 보낸 작가의 이름은 대부분이 낯설다. 문학단체의 주소록을 통해 보낸 게 분명하다. 유독 바빴던 한 주에, 유독 책도 많이 배달되니 아직까지 겉봉을 뜯지 못한 책도 있다. 보내준 작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게 도리임을 알지만 그저 마음뿐이다.
세 번째 수필집을 냈다. 3집을 내기까지 출판계약에서 작가가 칼자루를 쥔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공동투자라는 명목으로 실행된 1집 《남편의 외박을 준비하는 여자》는 몇 권의 책이 팔렸는지도 모른 채 막을 내렸다. 영세했던 출판사는 계약기간을 채우지도 못하고 부도가 나 버렸다. 수필집 한 권을 상재했음에 만족하며 치통처럼 도지는 회의를 애써 삼켰다.
2집 《자장면과 짬뽕사이》는 자비출판을 했다. 계약서에 인세라는 항목은 아예 없고, 서점에 고작 100권의 책을 깔았던 출간은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주고 싶은 사람에게 그리고 받고 싶다는 사람에게 마음 놓고 책을 건네주었다. 그러면서도 무슨 오기인지 문학단체의 주소록을 뒤져 책을 보내는 일은 하지 않았다. 함께 공부한 문우들에게도 얼굴을 마주하는 경우에나 책을 건넸지 우편발송을 하지 않았다. 왜 보내주지 않느냐는 항의와 함께 너무 비싸게 군다는 말도 들었다.
3집 《발칙한 행복》을 내면서 감히 인세에 도전을 했다. 작가에게 유리한 조건은 여전히 없었다. 낼 돈 다 내면서 작가가 받은 책은 고작 100권에 불과하고, 300부가 인세공제부수였다. 문학적 가치부여보다는 일상에서 만나는 웃음을 테마로 한 책으로 누구라도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것이었다. 교정을 담당했던 출판사 직원이, 웃느라 일하기가 힘들었다는 말은 내겐 기대로 적용되었다. 100권의 책은 언론사와 꼭 주어야 하는 몇몇 분들에게만 발송하였다. 문단에도 특별한 몇 분께만 책을 보냈다. 다른 작가들은 책을 내면 달라고 하지 않아도 보내주는데, 왜 안 주느냐는 말을 지인들과 문우들에게서 들었다. 읽고 싶으면 사서 보라고 말을 하는데, 당연히 줘야 할 책을 안 주는 것 같아 죄인이 된 듯 얼굴까지 붉어지곤 했다.
세권의 수필집을 내며 950만원의 돈이 들어갔다. 지인들이 건네주는 격려금 외에 인세로 받은 것은 한 푼도 없다. 날마다 판매량을 알려주는 출판사 홈피에 《발칙한 행복》의 지금까지 판매 부수는 210권이다. 앞으로 얼마가 더 나갈지 모르지만 주제를 모르고 꾸었던, 인세에 대한 꿈을 접었다. 누구든 돈만 있으면 책을 찍어내고, 집에 가만히 앉아서 받도록 우편으로 보내주는 판국이니 나부터도 시집이나 수필집을 사서 보는 일이 드물다. 그러면서 내 책은 사서 읽으라고 했으니 이건 도둑놈 심보가 아닌가.
등단 7년을 맞으며 청탁받았던 원고가 얼마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청탁서에도 원고료는 없었다. 거의 모든 문예지는 ‘선생님의 옥고를 기다립니다.’라는 말과 함께 책이 나오면 글이 실린 책을 몇 권 보낸다는 게 전부다. 각종 문예지를 통해 등단 작가가 무더기로 쏟아지니 신문사인들 원고료가 존재할 리 없다. 문예지에 등단하면 작가가 오십 권 혹은 백 권의 책을 사야 하는 것은 정해진 관례이다. 만 삼년 째 고정 연재를 하고 있는 지방 주간신문에서도 정신노동의 대가는 그저 봉사라는 이름표만 붙여질 뿐이다. 만 2년째 연재를 했던 월간지는, 편당 십만 원의 계약서를 쓰고 시작했다. 하지만 고료는 석 달에 불과했다. 줄 돈이 없으니 고료 대신 월간지 100권을 받으면 어떻겠느냐는 메일을 받으며 교회식구들에게 선물하겠다는 생각에 흔쾌히 수락을 하였다.
졸작이지만 한 편의 글을 위한 작가의 수고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모든 노동에는 대가라는 게 쥐어지는데 정신노동을 하는 대부분의 작가에게 주어지는 대가는, 명예나 자기만족에서 그친다. 작가가 직업이라고 당당히 말하며 오로지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삶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작가는 그저 고상한 취미에서 얻어진 이름표뿐이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른 직업 전선에서 뛰어야만 한다. 출판사에서 날마다 새로운 책이 쏟아져 나오지만 판매되는 책은 너무 적다. 대부분의 유통은 판매가 아닌, 작가에 의해 무료배포로 이루어진다. 뭉칫돈을 써서 책을 찍고, 그것도 부족해 우편요금까지 감당하며 책을 발송한다. 이러다보니 책은 사서 보는 것이 아닌 공짜로 받아 보는 것이라는 의식이 작가들에게 더 팽배하다.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글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이건 분명 잘못이다. 순수문학의 발전을 위해 국가차원에서 작가의 검증과 지원 제도 하나쯤 마련되어야 하지 않나 싶다. 그렇지 않으면 작가의 위상은 계속 추락할 것이며 더불어 몇몇을 제외한 대부분의 문인들은 제살 뜯어먹기의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다. 모든 작가는 원한다. 자신이 쓴 작품이 정당한 평가와 대가를 받을 수 있기를…….
봄빛 유영희(행촌수필문학회. 전북여성장애인연대 대표)
이번 주에도 신간작품집이 여섯 권이나 배달되었다. 시집과 수필집, 중편 소설집 외에 문예지도 있다. 책을 보낸 작가의 이름은 대부분이 낯설다. 문학단체의 주소록을 통해 보낸 게 분명하다. 유독 바빴던 한 주에, 유독 책도 많이 배달되니 아직까지 겉봉을 뜯지 못한 책도 있다. 보내준 작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게 도리임을 알지만 그저 마음뿐이다.
세 번째 수필집을 냈다. 3집을 내기까지 출판계약에서 작가가 칼자루를 쥔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공동투자라는 명목으로 실행된 1집 《남편의 외박을 준비하는 여자》는 몇 권의 책이 팔렸는지도 모른 채 막을 내렸다. 영세했던 출판사는 계약기간을 채우지도 못하고 부도가 나 버렸다. 수필집 한 권을 상재했음에 만족하며 치통처럼 도지는 회의를 애써 삼켰다.
2집 《자장면과 짬뽕사이》는 자비출판을 했다. 계약서에 인세라는 항목은 아예 없고, 서점에 고작 100권의 책을 깔았던 출간은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주고 싶은 사람에게 그리고 받고 싶다는 사람에게 마음 놓고 책을 건네주었다. 그러면서도 무슨 오기인지 문학단체의 주소록을 뒤져 책을 보내는 일은 하지 않았다. 함께 공부한 문우들에게도 얼굴을 마주하는 경우에나 책을 건넸지 우편발송을 하지 않았다. 왜 보내주지 않느냐는 항의와 함께 너무 비싸게 군다는 말도 들었다.
3집 《발칙한 행복》을 내면서 감히 인세에 도전을 했다. 작가에게 유리한 조건은 여전히 없었다. 낼 돈 다 내면서 작가가 받은 책은 고작 100권에 불과하고, 300부가 인세공제부수였다. 문학적 가치부여보다는 일상에서 만나는 웃음을 테마로 한 책으로 누구라도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것이었다. 교정을 담당했던 출판사 직원이, 웃느라 일하기가 힘들었다는 말은 내겐 기대로 적용되었다. 100권의 책은 언론사와 꼭 주어야 하는 몇몇 분들에게만 발송하였다. 문단에도 특별한 몇 분께만 책을 보냈다. 다른 작가들은 책을 내면 달라고 하지 않아도 보내주는데, 왜 안 주느냐는 말을 지인들과 문우들에게서 들었다. 읽고 싶으면 사서 보라고 말을 하는데, 당연히 줘야 할 책을 안 주는 것 같아 죄인이 된 듯 얼굴까지 붉어지곤 했다.
세권의 수필집을 내며 950만원의 돈이 들어갔다. 지인들이 건네주는 격려금 외에 인세로 받은 것은 한 푼도 없다. 날마다 판매량을 알려주는 출판사 홈피에 《발칙한 행복》의 지금까지 판매 부수는 210권이다. 앞으로 얼마가 더 나갈지 모르지만 주제를 모르고 꾸었던, 인세에 대한 꿈을 접었다. 누구든 돈만 있으면 책을 찍어내고, 집에 가만히 앉아서 받도록 우편으로 보내주는 판국이니 나부터도 시집이나 수필집을 사서 보는 일이 드물다. 그러면서 내 책은 사서 읽으라고 했으니 이건 도둑놈 심보가 아닌가.
등단 7년을 맞으며 청탁받았던 원고가 얼마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청탁서에도 원고료는 없었다. 거의 모든 문예지는 ‘선생님의 옥고를 기다립니다.’라는 말과 함께 책이 나오면 글이 실린 책을 몇 권 보낸다는 게 전부다. 각종 문예지를 통해 등단 작가가 무더기로 쏟아지니 신문사인들 원고료가 존재할 리 없다. 문예지에 등단하면 작가가 오십 권 혹은 백 권의 책을 사야 하는 것은 정해진 관례이다. 만 삼년 째 고정 연재를 하고 있는 지방 주간신문에서도 정신노동의 대가는 그저 봉사라는 이름표만 붙여질 뿐이다. 만 2년째 연재를 했던 월간지는, 편당 십만 원의 계약서를 쓰고 시작했다. 하지만 고료는 석 달에 불과했다. 줄 돈이 없으니 고료 대신 월간지 100권을 받으면 어떻겠느냐는 메일을 받으며 교회식구들에게 선물하겠다는 생각에 흔쾌히 수락을 하였다.
졸작이지만 한 편의 글을 위한 작가의 수고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모든 노동에는 대가라는 게 쥐어지는데 정신노동을 하는 대부분의 작가에게 주어지는 대가는, 명예나 자기만족에서 그친다. 작가가 직업이라고 당당히 말하며 오로지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삶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작가는 그저 고상한 취미에서 얻어진 이름표뿐이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른 직업 전선에서 뛰어야만 한다. 출판사에서 날마다 새로운 책이 쏟아져 나오지만 판매되는 책은 너무 적다. 대부분의 유통은 판매가 아닌, 작가에 의해 무료배포로 이루어진다. 뭉칫돈을 써서 책을 찍고, 그것도 부족해 우편요금까지 감당하며 책을 발송한다. 이러다보니 책은 사서 보는 것이 아닌 공짜로 받아 보는 것이라는 의식이 작가들에게 더 팽배하다.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글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이건 분명 잘못이다. 순수문학의 발전을 위해 국가차원에서 작가의 검증과 지원 제도 하나쯤 마련되어야 하지 않나 싶다. 그렇지 않으면 작가의 위상은 계속 추락할 것이며 더불어 몇몇을 제외한 대부분의 문인들은 제살 뜯어먹기의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다. 모든 작가는 원한다. 자신이 쓴 작품이 정당한 평가와 대가를 받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