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우리 집 10대 뉴스/이금영
2012.01.02 07:23
돌아보면 감사한 한 해
-2011. 우리 집 10대 뉴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이금영
지나간 한 해를 돌아보며 우리 집 10대 뉴스를 차분한 마음으로 정리해 보려고 눈을 기다렸다. 그런데 눈은 아니 오고 매서운 찬바람만 불어온다. 일 년 동안 별 탈 없이 지낸 우리 집 10대 뉴스를 간추려 보았다.
1. 남편 신재철 님 화가의 꿈 실현
재직기간에는 여건이 맞지 않아서인지 그림공부를 하지 못하고 다른 취미생활로 오랜 세월이 흘렀다. 정년퇴직 후 취미로 시작한 사군자와 수채화로 열정을 다하더니 2011년 봄 전북미술대전에서 <세월>이란 작품으로 입선을 하고, 8월에 온고을미술대전에서 수채화 <모정>으로 우수상을 받았다. 또 묵향인 사군자는 전라북도 도청에서 초대작가가 되어 시상식이 있었다. 여러 해 동안 노력한 결과로 동양화와 서양화 부문에서 우뚝 자리매김을 하였다. 격려와 함께 큰 박수를 보낸다.
2. 부안교육지원청 열린 갤러리에서 수채화 전시
남편이 퇴직 후 3년여 동안 그린 수채화를 부안교육지원청 열린 갤러리에서 첫 전시회를 가졌다. 배우자로 초대되어 같이 참석하였다. 남편은 부안교육지원청 관내 학교에 방과 후 학교 미술 강사로 주 2회씩 출근하였다. 열린 갤러리에서 방과 후 강사들의 작품을 전시할 기회가 주어졌는데 첫 전시를 남편의 작품으로 갖게 되었다. 개관식의 테이프커팅 때 부안교육지원청 직원 모두가 한 자리에 모여 화려한 국화꽃과 함께 전시를 하게 되었다. 전시회를 베풀어준 교육장님께 감사드린다.
3. 시집간 딸 경력직 공채로 이직하다
작년 가을 29세에 결혼하고 직장에 충실히 다니면서도 끊임없이 공부를 하던 딸이 안쓰러웠다. 영어와 디자인 공부에 인문학까지 주말을 편안하게 쉴 때가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직 소식이 들려왔다. 좀더 나은 여건과 복지가 보장된 기업에서 일하고 싶다고 네이버로 일자리를 옮겼다. 새로운 곳에서 적응하자니 어려움도 있었을 것이다. 새내기 주부이자 직장인으로서 열심히 잘살고 있다. 엄마와 가까이 살 수 있다면 먹을 것이라도 도움을 주련만 애만 태우고 바라볼 뿐이다. 시댁이 대구라서 설은 시댁에서 신정은 친정에서 보내기로 했다고 한다. 백년손님을 맞이하려면 대청소도하고 맛있는 음식도 준비하려면 부산할 것 같다.
4.독서지도사로 작은 도서관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나는 수필의 소재를 찾아보려고 독서지도사가 되어 다문화가정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하던 일도 내려놓을 나이에 작년부터 선생님이 되어 아동독서지도를 하게 되었다. 올해는 열 명이나 되는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을 맡게 되었는데 통제가 어렵다. 조금만 눈길을 주지 않으면 토라지고 산만해진다. 봄에 시작할 때는 동화책을 돌아가면서 읽을 때 모기만한 소리로 더듬거리며 읽었었다. 이제는 동시 창작을 하여 큰 소리로 서로 먼저 발표를 하려고 한다. 동시를 창작하여 처음으로 <소년문학>10월호에 실었다. 정현이 엄마는 어린 딸의 문학적 재능을 발견하게 되어 감사하다고 했다. 그리고 작가로 키우고 싶다고 하였다.
5. 신문사 신춘문예에 응모하다
지인한테서 우리말 사전을 선물로 받았다. 수필문학을 한다고 하여 알 만한 사람은 알고 있는데 이렇다 할 수필을 내놓지 못하고 있어서인지 묵직한 사전을 구입해서 보내 주었다. 그 성의에 감복하여 그동안 써 놓았던 작품을 골라 용기를 내어 공모전에 보냈다. 문학도의 꽃이라고 하는 ‘신춘문예’, 커다란 봉투에 빨간 글씨로 ‘신춘문예 응모작 수필부문'이라고 써서 우체국에서 빠른우편으로 마감 날 부쳤다. 괜스레 무슨 큰일이라도 한 것처럼 마음이 뿌듯하였다. 복권을 사서 감춰둔 사람처럼 자꾸만 달력에 시선이 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6. 아들이 마련해준 환상적인 콘서트 관람 이야기
신이 내린 목소리 조수미 콘서트를 로얄석에서 관람하였다. 아들이 마련해 준 티켓으로 조수미와 눈도 맞출 수 있는 거리였다.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와 함께 반짝이는 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우아하면서도 발랄해 보이는 그녀가 등장하였다. 보헤미안'이라는 타이틀로 진행되는 이번 콘서트는 환상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기대했었다. 그런데 원어로 부르는 콘서트는 내 기대와는 달랐다. 집으로 돌아와 내가 좋아하는 ‘물망초’ 김동규와 같이 부른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명성황후’ ‘아베마리아’ ‘사랑의 기쁨’ 등 그녀의 노래들을 며칠을 들으며 환상에 젖어 보았다.
소프라노 조수미는 세계무대 데뷔 25주년을 맞아 전국순회기념 콘서트를 전주에서는 한국소리문화의 전당에서 공연을 하였다.
가을의 낭만 이선희 콘서트를 삼성문화회관 R석에 앉아서 보았다. 무대장치를 직접 짊어지고 다닌단다. 화려하고 웅장하였다. 자그마한 체구의 이선희는 카리스마 넘치는 에너지로 관중들을 압도하였다. 내 생애 처음으로 옆 좌석의 여인을 따라 앞으로 나가서 같이 뛰고 소리 지르며 여흥을 즐겼다. 오랜만에 ‘J에게’를 속 시원하게 따라 불렀다.
아들이 집에서 직장을 다니니 이런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성실히 열정을 다하는 아들이 있어서 대견하고 든든하다.
7. 내가 키운 배추로 김장을 하다
몇 년 동안 밭농사를 지었지만 내가 가꾼 배추로 김장을 해보기는 처음이다. 땅에 붙어 자라지도 못하는 채소를 수수방관하였다. 벌레가 뜯어먹고 지지리 못생긴 배추였는데 촉촉이 내리는 가을비에 쑥쑥 자라 노랗게 속이 차고 달고 맛있는 배추가 되었다. 맛있는 김장을 할 수가 있었고, 나머지는 무와 함께 땅을 파고 묻어두었다.
작년에는 무 농사를 실패하였다. 단단한 흙에서 꼬리 부분이 배배꼬여 기형이 된 무들을 볼 때 죄를 지었다. 그런데 올해는 지난해 경험을 토대로 이랑을 만들어 무 농사에 정성을 들였더니 통통하고 파릇한 무가 예쁘게 잘 자랐다. 작은 것은 총각김치를 담그고 굵은 것은 날로 과일처럼 깎아먹기도 한다.
8. 국내여행으로 삶을 재충전하다
우리 부부는 봄나들이 여행지를 위도로 선택했다. 위도에서 평생을 사셨다는 노인은 볼 것이라고는 물밖에 없노라고 했지만, 넓고 푸른 바다에서 고깃배도 타보고 고사리고 보고, 쑥도 뜯으며, 우리는 아름다운 추억의 한 페이지를 만들었다.
전주역사박물관 주최로 우리 부부는 삼복더위에 1박 2일의 이순신 전적지 답사를 떠났다. 전북대학교 교수님의 인솔로 해설을 들으며 충렬사에서 충무공을 참배하였다. 거제대교를 건너고 통영만의 수려한 천혜의 푸른바다를 바라보며 멍게비빔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진주성 촉석루 아래 의암에 올라 논개를 생각하며 말없이 흐르는 남강을 바라보았다.
들꽃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지리산 둘레 길을 1박 2일로 친구와 걸었다. 친구들과 일 년에 한 번쯤은 여행을 하고 싶다. 푸른 하늘이랑 같이 어우러져 마냥 소녀로 돌아가 본 흐뭇한 여정이었다.
무박 열차여행으로 설악산과 정동진의 간이역에서 쪽빛바다를 바라보는 것은 늦가을의 낭만이었다. 나에게 또 기회가 온다면 무박 눈꽃열차를 타고 설원을 달리고 싶다.
월간 ‘수필과비평’은 전남 장흥에서 전국행사가 있어 소설가 이청준 생가를 찾아 문학의 숨결을 느꼈고, ‘행촌수필문학회’는 강릉에서 열린 수필의 날 행사에 참가하고 귀로에 원주의 박경리 토지문학관을 돌아보았으며, 영호남수필문학회는 경주에서 열린 시상식에 참석하여 불국사를 둘러보고, 호미곶을 찾아 쪽빛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었다.
9. 치아치료 해를 넘기다
치아는 오복 중 하나라고 했다. 한 쪽은 보철치료로 마무리하였는데 다른 쪽은 임플란트를 해야 하기 때문에 새해 초부터 병원을 들락거릴 일을 생각하면 우울해진다. 얼마를 더 고생해야 할지 모르겠다. 금이빨이 열 개가 넘으니 끔찍하다. 성경말씀에 오늘일은 오늘만 걱정하고 내일일은 내일 생각하라고 했다. 아침에 남편이 자색 고구마와 사과, 바나나에 우유를 넣어 만들어주는 주스가 나한테는 최상의 음식이다. 의료비로 거금을 지불하니 돈도 아깝다.
10. 서울 막내 여동생 새집으로 이사하다
여동생이 서울로 떠난 지 어언 20년이 지났다. 전셋집에서 살면서 1남1여를 잘 키웠다. 유별나게 우환이 있어 고생도 많이 했다. 정부의 보금자리주택시행으로 새 아파트를 장만하였다. 잘 키운 딸은 열 아들이 부럽지 않다더니 우리 조카를 두고 한 말인 것 같다. 올해 서른 살이 되었으니 좋은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기를 바란다.
서민들의 살림이 위협을 받을 만큼 소비자 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고 있다. 그래도 어김없이 얼굴 없는 기부천사는 전주 노송동에 나타났다. 춥기 만한 이 겨울에 온기가 돈다. 각종 공과금도 덩달아 오른다. 기름 값도 너무 올라 이제는 차를 움직이려면 겁이 난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학교폭력 때문에 힘들어하는 가족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 돌아보면 우리 가족에게 신묘년은 감사한 한 해였다. 새해에는 우리 가족 모두가 건강관리를 위해 운동에 좀더 관심을 가져야겠다.
(2011. 12. 31.)
-2011. 우리 집 10대 뉴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이금영
지나간 한 해를 돌아보며 우리 집 10대 뉴스를 차분한 마음으로 정리해 보려고 눈을 기다렸다. 그런데 눈은 아니 오고 매서운 찬바람만 불어온다. 일 년 동안 별 탈 없이 지낸 우리 집 10대 뉴스를 간추려 보았다.
1. 남편 신재철 님 화가의 꿈 실현
재직기간에는 여건이 맞지 않아서인지 그림공부를 하지 못하고 다른 취미생활로 오랜 세월이 흘렀다. 정년퇴직 후 취미로 시작한 사군자와 수채화로 열정을 다하더니 2011년 봄 전북미술대전에서 <세월>이란 작품으로 입선을 하고, 8월에 온고을미술대전에서 수채화 <모정>으로 우수상을 받았다. 또 묵향인 사군자는 전라북도 도청에서 초대작가가 되어 시상식이 있었다. 여러 해 동안 노력한 결과로 동양화와 서양화 부문에서 우뚝 자리매김을 하였다. 격려와 함께 큰 박수를 보낸다.
2. 부안교육지원청 열린 갤러리에서 수채화 전시
남편이 퇴직 후 3년여 동안 그린 수채화를 부안교육지원청 열린 갤러리에서 첫 전시회를 가졌다. 배우자로 초대되어 같이 참석하였다. 남편은 부안교육지원청 관내 학교에 방과 후 학교 미술 강사로 주 2회씩 출근하였다. 열린 갤러리에서 방과 후 강사들의 작품을 전시할 기회가 주어졌는데 첫 전시를 남편의 작품으로 갖게 되었다. 개관식의 테이프커팅 때 부안교육지원청 직원 모두가 한 자리에 모여 화려한 국화꽃과 함께 전시를 하게 되었다. 전시회를 베풀어준 교육장님께 감사드린다.
3. 시집간 딸 경력직 공채로 이직하다
작년 가을 29세에 결혼하고 직장에 충실히 다니면서도 끊임없이 공부를 하던 딸이 안쓰러웠다. 영어와 디자인 공부에 인문학까지 주말을 편안하게 쉴 때가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직 소식이 들려왔다. 좀더 나은 여건과 복지가 보장된 기업에서 일하고 싶다고 네이버로 일자리를 옮겼다. 새로운 곳에서 적응하자니 어려움도 있었을 것이다. 새내기 주부이자 직장인으로서 열심히 잘살고 있다. 엄마와 가까이 살 수 있다면 먹을 것이라도 도움을 주련만 애만 태우고 바라볼 뿐이다. 시댁이 대구라서 설은 시댁에서 신정은 친정에서 보내기로 했다고 한다. 백년손님을 맞이하려면 대청소도하고 맛있는 음식도 준비하려면 부산할 것 같다.
4.독서지도사로 작은 도서관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나는 수필의 소재를 찾아보려고 독서지도사가 되어 다문화가정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하던 일도 내려놓을 나이에 작년부터 선생님이 되어 아동독서지도를 하게 되었다. 올해는 열 명이나 되는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을 맡게 되었는데 통제가 어렵다. 조금만 눈길을 주지 않으면 토라지고 산만해진다. 봄에 시작할 때는 동화책을 돌아가면서 읽을 때 모기만한 소리로 더듬거리며 읽었었다. 이제는 동시 창작을 하여 큰 소리로 서로 먼저 발표를 하려고 한다. 동시를 창작하여 처음으로 <소년문학>10월호에 실었다. 정현이 엄마는 어린 딸의 문학적 재능을 발견하게 되어 감사하다고 했다. 그리고 작가로 키우고 싶다고 하였다.
5. 신문사 신춘문예에 응모하다
지인한테서 우리말 사전을 선물로 받았다. 수필문학을 한다고 하여 알 만한 사람은 알고 있는데 이렇다 할 수필을 내놓지 못하고 있어서인지 묵직한 사전을 구입해서 보내 주었다. 그 성의에 감복하여 그동안 써 놓았던 작품을 골라 용기를 내어 공모전에 보냈다. 문학도의 꽃이라고 하는 ‘신춘문예’, 커다란 봉투에 빨간 글씨로 ‘신춘문예 응모작 수필부문'이라고 써서 우체국에서 빠른우편으로 마감 날 부쳤다. 괜스레 무슨 큰일이라도 한 것처럼 마음이 뿌듯하였다. 복권을 사서 감춰둔 사람처럼 자꾸만 달력에 시선이 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6. 아들이 마련해준 환상적인 콘서트 관람 이야기
신이 내린 목소리 조수미 콘서트를 로얄석에서 관람하였다. 아들이 마련해 준 티켓으로 조수미와 눈도 맞출 수 있는 거리였다.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와 함께 반짝이는 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우아하면서도 발랄해 보이는 그녀가 등장하였다. 보헤미안'이라는 타이틀로 진행되는 이번 콘서트는 환상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기대했었다. 그런데 원어로 부르는 콘서트는 내 기대와는 달랐다. 집으로 돌아와 내가 좋아하는 ‘물망초’ 김동규와 같이 부른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명성황후’ ‘아베마리아’ ‘사랑의 기쁨’ 등 그녀의 노래들을 며칠을 들으며 환상에 젖어 보았다.
소프라노 조수미는 세계무대 데뷔 25주년을 맞아 전국순회기념 콘서트를 전주에서는 한국소리문화의 전당에서 공연을 하였다.
가을의 낭만 이선희 콘서트를 삼성문화회관 R석에 앉아서 보았다. 무대장치를 직접 짊어지고 다닌단다. 화려하고 웅장하였다. 자그마한 체구의 이선희는 카리스마 넘치는 에너지로 관중들을 압도하였다. 내 생애 처음으로 옆 좌석의 여인을 따라 앞으로 나가서 같이 뛰고 소리 지르며 여흥을 즐겼다. 오랜만에 ‘J에게’를 속 시원하게 따라 불렀다.
아들이 집에서 직장을 다니니 이런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성실히 열정을 다하는 아들이 있어서 대견하고 든든하다.
7. 내가 키운 배추로 김장을 하다
몇 년 동안 밭농사를 지었지만 내가 가꾼 배추로 김장을 해보기는 처음이다. 땅에 붙어 자라지도 못하는 채소를 수수방관하였다. 벌레가 뜯어먹고 지지리 못생긴 배추였는데 촉촉이 내리는 가을비에 쑥쑥 자라 노랗게 속이 차고 달고 맛있는 배추가 되었다. 맛있는 김장을 할 수가 있었고, 나머지는 무와 함께 땅을 파고 묻어두었다.
작년에는 무 농사를 실패하였다. 단단한 흙에서 꼬리 부분이 배배꼬여 기형이 된 무들을 볼 때 죄를 지었다. 그런데 올해는 지난해 경험을 토대로 이랑을 만들어 무 농사에 정성을 들였더니 통통하고 파릇한 무가 예쁘게 잘 자랐다. 작은 것은 총각김치를 담그고 굵은 것은 날로 과일처럼 깎아먹기도 한다.
8. 국내여행으로 삶을 재충전하다
우리 부부는 봄나들이 여행지를 위도로 선택했다. 위도에서 평생을 사셨다는 노인은 볼 것이라고는 물밖에 없노라고 했지만, 넓고 푸른 바다에서 고깃배도 타보고 고사리고 보고, 쑥도 뜯으며, 우리는 아름다운 추억의 한 페이지를 만들었다.
전주역사박물관 주최로 우리 부부는 삼복더위에 1박 2일의 이순신 전적지 답사를 떠났다. 전북대학교 교수님의 인솔로 해설을 들으며 충렬사에서 충무공을 참배하였다. 거제대교를 건너고 통영만의 수려한 천혜의 푸른바다를 바라보며 멍게비빔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진주성 촉석루 아래 의암에 올라 논개를 생각하며 말없이 흐르는 남강을 바라보았다.
들꽃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지리산 둘레 길을 1박 2일로 친구와 걸었다. 친구들과 일 년에 한 번쯤은 여행을 하고 싶다. 푸른 하늘이랑 같이 어우러져 마냥 소녀로 돌아가 본 흐뭇한 여정이었다.
무박 열차여행으로 설악산과 정동진의 간이역에서 쪽빛바다를 바라보는 것은 늦가을의 낭만이었다. 나에게 또 기회가 온다면 무박 눈꽃열차를 타고 설원을 달리고 싶다.
월간 ‘수필과비평’은 전남 장흥에서 전국행사가 있어 소설가 이청준 생가를 찾아 문학의 숨결을 느꼈고, ‘행촌수필문학회’는 강릉에서 열린 수필의 날 행사에 참가하고 귀로에 원주의 박경리 토지문학관을 돌아보았으며, 영호남수필문학회는 경주에서 열린 시상식에 참석하여 불국사를 둘러보고, 호미곶을 찾아 쪽빛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었다.
9. 치아치료 해를 넘기다
치아는 오복 중 하나라고 했다. 한 쪽은 보철치료로 마무리하였는데 다른 쪽은 임플란트를 해야 하기 때문에 새해 초부터 병원을 들락거릴 일을 생각하면 우울해진다. 얼마를 더 고생해야 할지 모르겠다. 금이빨이 열 개가 넘으니 끔찍하다. 성경말씀에 오늘일은 오늘만 걱정하고 내일일은 내일 생각하라고 했다. 아침에 남편이 자색 고구마와 사과, 바나나에 우유를 넣어 만들어주는 주스가 나한테는 최상의 음식이다. 의료비로 거금을 지불하니 돈도 아깝다.
10. 서울 막내 여동생 새집으로 이사하다
여동생이 서울로 떠난 지 어언 20년이 지났다. 전셋집에서 살면서 1남1여를 잘 키웠다. 유별나게 우환이 있어 고생도 많이 했다. 정부의 보금자리주택시행으로 새 아파트를 장만하였다. 잘 키운 딸은 열 아들이 부럽지 않다더니 우리 조카를 두고 한 말인 것 같다. 올해 서른 살이 되었으니 좋은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기를 바란다.
서민들의 살림이 위협을 받을 만큼 소비자 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고 있다. 그래도 어김없이 얼굴 없는 기부천사는 전주 노송동에 나타났다. 춥기 만한 이 겨울에 온기가 돈다. 각종 공과금도 덩달아 오른다. 기름 값도 너무 올라 이제는 차를 움직이려면 겁이 난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학교폭력 때문에 힘들어하는 가족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 돌아보면 우리 가족에게 신묘년은 감사한 한 해였다. 새해에는 우리 가족 모두가 건강관리를 위해 운동에 좀더 관심을 가져야겠다.
(2011. 12.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