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겪은 삽화들
2012.06.22 11:08
캐나다에서 겪은 삽화들
-캐나다 방문기(2)-
김 학
흰 바탕의 양쪽 끝에 빨간색 무늬가 있고 그 가운데에 빨간색 단풍이 그려진 국기를 보면 캐나다가 떠오른다. 6‧25전쟁 때 16개 UN참전국의 하나이기도 한 캐나다는 잊을 수 없는 우리의 우방이다.
캐나다 국기는 단풍잎 모양 때문에 흔히 ‘메이플 리프 플래그(Maple Leaf Flag)라고도 한다. 양쪽의 빨강색은 태평양과 대서양을 뜻하고, 12개의 각(角)이 있는 빨간 단풍잎은 캐나다 12개 주를 상징한다. 빨강과 하양은 영국의 국기 유니언 잭에서 따온 색인데 1921년부터 나라의 색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 이전까지는 빨강바탕에 영국 국기 등이 들어있는 국기를 사용하다가, 1964년 10월 22일 캐나다 국회에서 현재의 국기가 채택되었다고 한다. 그 다음해 2월 15일 영국의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가 이것을 캐나다의 국기로 공포한 것이다. 캐나다는 영국 연방인 까닭이다.
세계에서 가장 서비스가 좋다는 인천국제공항에서 태평양을 건너 캐나다 서부 밴쿠버공항까지 가는 데는 무려 10시간이 걸렸다. 3등석 승객으로서는 참으로 지루하고 힘든 비행이었다. 공항에서 내리자 이슬비가 달려와 우리 일행을 환영해 주었다. 캐나다에서 머문 1주일동안 하루를 빼고는 날마다 비가 우리와 함께 움직였다. 이 비를 비행기에 태워 40여 년 만의 가뭄에 시달리는 우리나라로 보내고 싶은 마음 간절했다.
이번 캐나다 여행은 카메라 없는 나들이였다. 첫날 가이드에게 촬영을 부탁한 뒤 디지털 카메라를 돌려받다가 떨어뜨리는 바람에 고장이 났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는 귀국할 때까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빌붙어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 일행 34명 중에는 81세의 노스님 한 분과 69세의 목사님 한 분이 계셔서 든든했다. 정정하신 노스님은 고급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아름다운 경치를 카메라에 담았고, 우리 일행을 촬영해 주기도 하셨다. 우리 부부도 신세를 졌는데 인화하여 사진을 보내주겠다고 하셨으니 기대가 된다. 이번 캐나다 여행에서는 두 분의 성직자가 동행했기에 부처님과 하나님이 잘 보살펴 주시리라는 은근한 믿음이 있었다.
비를 맞으며 면사포폭포를 구경하러 공원을 찾은 어느 날이었다. 그 공원은 길이 여러 갈래로 나 있었다. 가이드는 꼭 올라간 길로 되돌아오라고 신신당부했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 분들이 있었다. 스님과 목사님을 포함한 11명이 길을 잃었다. 관광버스로 공원을 한 바퀴 돌고서야 일행을 만날 수 있었다. 스님이나 목사님도 길눈이 어둡기는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외국여행을 가면 여권관리를 잘 하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이번 캐나다여행에서도 다를 바 없었다. 한국여권은 인기가 있어서 하나에 3백만 원씩에 팔린다고 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여권을 분실한 분이 있었다. 여류 소설가 J씨가 그 주인공이었다. 우리는 한국문인협회가 마련해 준 이름표 뒤쪽에 여권을 끼워 넣어 목에 걸고 다녔다. 그런데 J씨는 어디선가 그 목걸이를 잃어버린 것이다. 본인은 얼마나 황당했을까? 주 캐나다영사관에서 가까스로 임시여권을 만들어 함께 귀국할 수 있어 그나마 천만다행이었다.
캐나다의 차량들은 모두 우리나라처럼 왼쪽에 운전석이 있었다. 우리가 탄 관광버스는 안전띠가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캐나다에서는 차량이 붐비지 않고 교통사고가 적어서 어깨띠 정도는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버스 안에서 우산을 받아야 했다. 맑은 날 공기를 소통시키려고 만들어 놓은 천장의 창문을 꽉 닫았는데도 차내로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기 때문이다. 버스 안에서 우산을 받다니, 나로서는 색다를 첫 경험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삽화는 목사님에게 소주를 권한 일이려니 싶다. 식사 때마다 애주가(愛酒家)들은 끼리끼리 모였다. 그 자리에는 으레 목사님도 동석 하셨다. 뱃속이 좋지 않을 때 소주를 마셨더니 씻은 듯이 나았다는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난 뒤부터 목사님은 애주당의 당원이 되었다. 목사님은 한 병에 2만 4천 원이나 받는 소주를 사기도 하셨다. 나는 그 목사님에게 목사님이 소주를 마시는 것은 눈높이를 소시민과 맞추는 일이라며 주석설교(酒席說敎)를 하기도 했다. 82세로 최고령이신 부천의 K수필가와 서울의 K시인, 성남의 J소설가, 그리고 전주의 K수필가는 이번 캐나다 여행 때 긴급 창당한 애주당의 정예 멤버들이었다. 이거야말로 캐나다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삽화다.
캐나다는 잘 사는 나라라는데 숙소나 음식은 마땅치 않았다. 숙소만 보더라도 호텔이나 모텔보다는 ‘inn'이 많았다. 'inn'이라면 ’여인숙‘이라고 배우지 않았던가? 그래서 그런지 아침식사도 시원치 않았다. 쌀밥이 없는 경우가 많았고, 있더라도 안남미(安南米)로 지은 밥이 전부였다. 김치는 물론 없었다. 한국 관광객에 대한 배려가 없어 아쉬웠다. 동남아나 아프리카 여행 때도 이렇지는 않았는데……. 나는 그 안남미 밥을 불면 날아가는 밥이기에 ’날아가는 밥‘이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날이 갈수록 어서 집에 가서 하얀 쌀밥에 김치와 된장찌개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토종인 나는 역시 단군의 후손임이 분명했다.
여행은 추억의 노적가리 쌓기다. 나는 이번 캐나다 여행에서 단풍은 구경하지 못했지만 나름대로 새로운 체험을 많이 할 수 있어 좋았다.
(2012. 6. 23.)
-캐나다 방문기(2)-
김 학
흰 바탕의 양쪽 끝에 빨간색 무늬가 있고 그 가운데에 빨간색 단풍이 그려진 국기를 보면 캐나다가 떠오른다. 6‧25전쟁 때 16개 UN참전국의 하나이기도 한 캐나다는 잊을 수 없는 우리의 우방이다.
캐나다 국기는 단풍잎 모양 때문에 흔히 ‘메이플 리프 플래그(Maple Leaf Flag)라고도 한다. 양쪽의 빨강색은 태평양과 대서양을 뜻하고, 12개의 각(角)이 있는 빨간 단풍잎은 캐나다 12개 주를 상징한다. 빨강과 하양은 영국의 국기 유니언 잭에서 따온 색인데 1921년부터 나라의 색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 이전까지는 빨강바탕에 영국 국기 등이 들어있는 국기를 사용하다가, 1964년 10월 22일 캐나다 국회에서 현재의 국기가 채택되었다고 한다. 그 다음해 2월 15일 영국의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가 이것을 캐나다의 국기로 공포한 것이다. 캐나다는 영국 연방인 까닭이다.
세계에서 가장 서비스가 좋다는 인천국제공항에서 태평양을 건너 캐나다 서부 밴쿠버공항까지 가는 데는 무려 10시간이 걸렸다. 3등석 승객으로서는 참으로 지루하고 힘든 비행이었다. 공항에서 내리자 이슬비가 달려와 우리 일행을 환영해 주었다. 캐나다에서 머문 1주일동안 하루를 빼고는 날마다 비가 우리와 함께 움직였다. 이 비를 비행기에 태워 40여 년 만의 가뭄에 시달리는 우리나라로 보내고 싶은 마음 간절했다.
이번 캐나다 여행은 카메라 없는 나들이였다. 첫날 가이드에게 촬영을 부탁한 뒤 디지털 카메라를 돌려받다가 떨어뜨리는 바람에 고장이 났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는 귀국할 때까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빌붙어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 일행 34명 중에는 81세의 노스님 한 분과 69세의 목사님 한 분이 계셔서 든든했다. 정정하신 노스님은 고급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아름다운 경치를 카메라에 담았고, 우리 일행을 촬영해 주기도 하셨다. 우리 부부도 신세를 졌는데 인화하여 사진을 보내주겠다고 하셨으니 기대가 된다. 이번 캐나다 여행에서는 두 분의 성직자가 동행했기에 부처님과 하나님이 잘 보살펴 주시리라는 은근한 믿음이 있었다.
비를 맞으며 면사포폭포를 구경하러 공원을 찾은 어느 날이었다. 그 공원은 길이 여러 갈래로 나 있었다. 가이드는 꼭 올라간 길로 되돌아오라고 신신당부했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 분들이 있었다. 스님과 목사님을 포함한 11명이 길을 잃었다. 관광버스로 공원을 한 바퀴 돌고서야 일행을 만날 수 있었다. 스님이나 목사님도 길눈이 어둡기는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외국여행을 가면 여권관리를 잘 하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이번 캐나다여행에서도 다를 바 없었다. 한국여권은 인기가 있어서 하나에 3백만 원씩에 팔린다고 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여권을 분실한 분이 있었다. 여류 소설가 J씨가 그 주인공이었다. 우리는 한국문인협회가 마련해 준 이름표 뒤쪽에 여권을 끼워 넣어 목에 걸고 다녔다. 그런데 J씨는 어디선가 그 목걸이를 잃어버린 것이다. 본인은 얼마나 황당했을까? 주 캐나다영사관에서 가까스로 임시여권을 만들어 함께 귀국할 수 있어 그나마 천만다행이었다.
캐나다의 차량들은 모두 우리나라처럼 왼쪽에 운전석이 있었다. 우리가 탄 관광버스는 안전띠가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캐나다에서는 차량이 붐비지 않고 교통사고가 적어서 어깨띠 정도는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버스 안에서 우산을 받아야 했다. 맑은 날 공기를 소통시키려고 만들어 놓은 천장의 창문을 꽉 닫았는데도 차내로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기 때문이다. 버스 안에서 우산을 받다니, 나로서는 색다를 첫 경험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삽화는 목사님에게 소주를 권한 일이려니 싶다. 식사 때마다 애주가(愛酒家)들은 끼리끼리 모였다. 그 자리에는 으레 목사님도 동석 하셨다. 뱃속이 좋지 않을 때 소주를 마셨더니 씻은 듯이 나았다는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난 뒤부터 목사님은 애주당의 당원이 되었다. 목사님은 한 병에 2만 4천 원이나 받는 소주를 사기도 하셨다. 나는 그 목사님에게 목사님이 소주를 마시는 것은 눈높이를 소시민과 맞추는 일이라며 주석설교(酒席說敎)를 하기도 했다. 82세로 최고령이신 부천의 K수필가와 서울의 K시인, 성남의 J소설가, 그리고 전주의 K수필가는 이번 캐나다 여행 때 긴급 창당한 애주당의 정예 멤버들이었다. 이거야말로 캐나다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삽화다.
캐나다는 잘 사는 나라라는데 숙소나 음식은 마땅치 않았다. 숙소만 보더라도 호텔이나 모텔보다는 ‘inn'이 많았다. 'inn'이라면 ’여인숙‘이라고 배우지 않았던가? 그래서 그런지 아침식사도 시원치 않았다. 쌀밥이 없는 경우가 많았고, 있더라도 안남미(安南米)로 지은 밥이 전부였다. 김치는 물론 없었다. 한국 관광객에 대한 배려가 없어 아쉬웠다. 동남아나 아프리카 여행 때도 이렇지는 않았는데……. 나는 그 안남미 밥을 불면 날아가는 밥이기에 ’날아가는 밥‘이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날이 갈수록 어서 집에 가서 하얀 쌀밥에 김치와 된장찌개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토종인 나는 역시 단군의 후손임이 분명했다.
여행은 추억의 노적가리 쌓기다. 나는 이번 캐나다 여행에서 단풍은 구경하지 못했지만 나름대로 새로운 체험을 많이 할 수 있어 좋았다.
(2012. 6. 23.)